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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3
예술인 고용보험의 실효성에 대한 고민
최미애 / 영남일보 기자
1. 들어가며
지난해 12월 10일부터 예술인 고용보험이 시행되면서 예술인도 실업 급여, 출산 전후 급여 등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임의 가입이 아닌 의무 가입이라는 점에서 예술인들이 스스로 고용보험 가입을 위해 에너지를 쏟는 불필요한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긍정적인 측면이 있긴 하지만, 예술인의 활동이 일반적인 노동과는 다소 차이가 있어 이를 어떻게 유연하게 적용할 것인지가 향후 예술인 고용보험안착 여부를 판가름할 것으로 전망된다.
필자는 2018년 ‘창작하기 좋은 대구 만들기’라는 제목으로 연속 보도를 하면서 프랑스 파리와 벨기에 브뤼셀을 방문해 예술인과 예술인들을 위한 사회 안전망이 이들 나라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취재했다. 당시 취재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해외 예술인 고용보험 사례를 살펴보고, 현재 시행 중인 예술인 고용보험을 바라보는 예술인들의 시각에 대해서도 짚어보고자 한다.
2. 예술인 고용보험을 먼저 도입한 해외 사례
(1) 프랑스
국내에서 예술인 고용보험을 도입하기로 했을 때 가장 많이 언급된 사례는 프랑스의 ‘앙테르미탕’(Intermittent)이다. ‘앙테르미탕’은 프랑스의 공연예술인 대상 실업보험제도다. 실업보험금을 받는 공연예술인 또한 ‘앙테르미탕’이라고 부른다. 이 제도는 1936년 영화산업 종사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정책인데, 지금은 시각영상, 영화, 음악, 연극 등의 분야로 그 범위가 확대됐다. 공연예술가로 1년에 507시간 일하면 그 다음 해에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여기서 말하는 507시간에는 누군가와 계약서를 쓰고 하는 일이 아닌, 창작활동을 준비하는 시간도 포함된다.

우리나라와 프랑스의 가장 큰 차이는 지역 사회에서 예술인을 직업인으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이들 또한 사회 안전망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에 사회 구성원들이 동의한다. 당시 프랑스에서 만난 한 예술인은 ‘솔리다리테(solidarite)’가 프랑스의 예술인 정책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솔리다리테’는 ‘연대’라는 뜻이다.
프랑스 국민들이 ‘앙테르미탕’에 무한한 신뢰를 보내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에서도 앙테르미탕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은 존재한다. 프랑스 경영자 단체 MEDEF(프랑스 산업 연맹)은 1992년부터 앙테르미탕을 없애야 한다며 목소리를 내왔다. 앙테르미탕에 대한 세금 11.45% 가운데, 9.05%를 고용주가, 2.40%를 예술인이 부담해 상대적으로 고용주의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반면 공연예술 분야 노동조합인 CGT 스펙터클은 이에 반발하고 있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경영자 단체에서 앙테르미탕에 대해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국내에서는 모델이 될 만한 사례로 ‘앙테르미탕’을 언급했지만, 정작 그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 프랑스에서도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예술가로서 수입이 없을 때 대비하기 위해 앙테르미탕 자격을 얻고자 하다보면, 막상 예술가로서 추구하는 창작활동과 멀어지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에서 만난 배우 요안 구종씨도 앙테르미탕이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근로시간을 채우기 위해서 계약서 작성에 필요한 활동을 하다 보면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창작활동을 하는 시간을 내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앙테르미탕은 창작활동의 정량적인 면을 자격 유지 기준으로 삼는다. 이 기준은 코로나19 상황에선 프랑스의 예술인 사회 안전망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요인이 됐다.
그 결과, 나름 사회보장제도의 지원을 받아온 프랑스의 예술인들도 전례 없는 위기를 겪어야 했다. 지난해 코로나19 확산으로 공연장이 문을 닫고 축제들이 취소되면서, 앙테르미탕이 요구하는 계약을 맺고 하는 예술활동이 모두 중단됐기 때문이다. 그 결과 예술인들은 앙테르미탕 자격을 갖추지 못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었다. 이에 프랑스 정부는 지난해 5월 코로나19 사태로 일이 끊긴 배우, 무용수, 무대 디자이너, 음악가 등 문화예술 분야 종사자에게 1년여간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미술 관련 예술인을 대상으로 하는 제도로는‘메종 데 작티스트(Maison de artistes·예술가의 집)’가 있다. 1952년 예술인들을 중심으로 설립됐고, 1960~70년대 정부에 의해 공인된 단체가 됐다.
시각예술 분야에서 창작 활동을 하는 예술인이 메종 데 작티스트의 등록대상이다. 매년 자신의 작품을 거래한 영수증을 모아 신고하고, 이를 근거로 메종 데 작티스트에 예술인으로 등록하면 공식적인 인정을 받고, 의료보험을 포함한 사회보장 제도의 혜택을 받는다.

파리의 한 예술가단체 사무실에 붙여진 노동절 포스터. ‘함께 합시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예술인도 노동자로 인정해 함께하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출처 : 영남일보)
(2) 벨기에
벨기에도 예술인을 대상으로 실업급여를 지급하는 제도가 마련되어 있다. 다만 예술인들을 별도로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노동자와 같은 제도를 적용한다. 벨기에에선 예술인들도 국가실업기관인 ONEM(Office National de l’Emploi)를 이용한다. 아티스트마다 받는 금액은 차이가 있지만, 한 달에 약 1천 유로(약 130만원)를 받는다.
노동자들과 함께 묶여있지만, 제도를 적용하는 방식은 예술인에 맞췄다. 예술인들이 일정 기간에만 일하고,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활동한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벨기에에선 노동자들은 노동한 날의 수를 일정 수준 채워야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데, 일시적인 활동이 대부분인 예술인들은 그 기준에 맞추기 어렵다.
일반 노동자의 경우 연령대에 따라 일정 기간 321~624일 일을 해야 실업급여를 받지만, 예술인은 18개월 동안 156일은 일해야 하고, 이 중 66.6%(104일)이 예술인으로 활동한 날이어야 한다.
정부에선 이를 위해 별도로 일한 날을 계산하도록 하는 ‘레그르 듀 카쉐’(regle du cachet)를 도입했다. 예술인들은 자신이 일한 날을 확인해 매달 기관에 제출하고, 기관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산정해 실업급여를 지급한다.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실업급여 지급 기준과 다른 것이 또 하나 있다. 벨기에에서 실업급여는 한 고용주에 고용돼 일했던 마지막 4주 동안 세전 월급 액수를 기준으로 산정한다. 예술인은 프로젝트당 보수를 받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고려했다. 이에 맞춰 실업급여 신청을 한 분기의 바로 전 분기에 받은 세전 보수가 기준이 된다.
벨기에의 예술인 대상 협동조합인 스마트(SMart)에서 빌려주는 창작공간에서 예술인이 창작활동을 하고 있는 모습. (출처 : 영남일보)
대구문화재단 청년예술가육성지원사업의 심사 장면. 청년예술가육성지원사업은 지역의 청년 예술인의 창작 기반을 마련해주는 대표적인 제도다. (출처: 대구문화재단)
3. 우리나라 예술인 고용보험의 과제
도입 6개월을 넘긴 우리나라의 예술인 고용보험은 지난 8월 11일 기준 가입자 수가 6만명을 넘어섰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12월 시행 이후 정부가 당초 예상한 가입 인원(7만 명)의 85.7%가 고용보험에 가입한 것이라고 밝혔다.
지역 문화계에도 고용보험을 가입하는 사례가 심심찮게 보인다. 우선 대구문화재단의 지원금을 받는 사업에 참여하면, 고용보험을 무조건 가입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공공 공연장에서 진행하는 공연도 마찬가지다.
예술인 고용보험을 가입하는 이들은 20~30대 젊은 예술인이 대부분이다. 이들이 나이 많은 예술인보다는 상대적으로 이런 제도에 대한 관심이 더 많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예술인 고용보험은 고용주가 50%, 예술인이 50%를 부담하는데, 이 금액이 큰 부담은 되지 않는다는 게 대부분의 평가다.

물론 한계점도 있다. 고용보험 자체가 예술인에게 적용하는 게 쉽지 않은 데다 같은 예술 안에서도 일부 장르에는 적용하는 게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공연예술과 달리 문학, 미술 등의 분야는 기간이 정해진 일이 아니어서 일한 날을 산정해서 보험에 가입하는 개념을 적용하는 게 쉽지 않다. 창작활동으로 받는 보수 또한 일시적으로 지급되는 것도 고용보험을 적용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예술가로 활동하고도 예술인 고용보험 가입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점도 우려된다. 고용보험 가입을 위해 예술활동을 한 계약서가 필요한데, 없을 경우 자신의 예술활동을 어떻게 증명하느냐의 문제다. 다만 서면 계약서 작성이 과거보다는 정착된 만큼 이런 우려는 기우일지도 모른다.
정부에선 나름의 보완책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예술인 고용보험 관련 홈페이지 중 ‘Q&A’코너에는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더라도 예술인 고용보험은 적용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단, 이 경우 노무 제공 기간과 보수를 증명할 수 있는 다른 증빙이 필요하다는 게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설명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계약 여부 확인이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가급적 서면계약으로 자신의 활동을 증명할 것을 유도하고 있다.

지난해 진행된 대구예술인지원센터의라운드테이블 ‘예술작당(糖)회’ 중 ‘위기의 예술가들’ (유튜브 캡처)
4. 나가며
예술인 고용보험은 보수가 불안정한 예술인에게 좋은 제도이긴 하지만, 예술인들이 이 제도를 제대로 인지하고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지역 예술인에게“예술인 고용보험에 가입한 경험이 있냐”고 물었을 때 “예술인 고용보험에 대해서 모른다”는 반응도 나왔기 때문이다.
실제 과거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시행하는 제도의 경우에도, 지역에선 잘 몰라서 신청해볼 생각을 못 하는 경우도 있었다. 서류의 장벽 때문에 지원 자체를 못 하기도 한다. 예술인 대부분이 대학에서 예술 분야만 배우고 바로 현장으로 나오는 만큼, 이러한 제도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최근 대구예술인지원센터가 생기면서 지역에서 관련 제도를 알리고, 지원하는 창구가 마련돼 조금이나마 여건이 나아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