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예술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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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예술의 힘 #청년예술인
내 삶의 목소리를 이제 후학들의 새 삶으로
이동환 / 바리톤
– 나의 삶 속에 자리 잡게 된 음악(성악)
성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때는 고3때다. 그 이전부터 음악은 내 삶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으나, 전공하겠다는 확고한 결정을 내리기까지는 어머니의 권유가 큰 힘이 되었다. 화학공학과 교수인 아버지께서는 음악을 전공한다 하였을 때 반대하셨지만, 어머니는 달랐다. 음악을 들으시면 매번 감동의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감수성이 풍부하고 본인조차도 성악을 전공하고 싶어 했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 곁에서 음악을 자연스럽게 접했다. 특히, 어린 시절부터 나는 남들 앞에서 노래하는 것을 좋아했다.

대학교 시절 음성은 제법 괜찮은 것 같았지만 노래하는 방식과 성대를 사용하는 방법을 잘 몰랐던 것 같다. 스스로 그다지 강한 성대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 생각하였기에 연습을 1시간 하면 2시간 정도는 악보를 보면서 쉬거나 노래를 분석하며 외국어 단어를 찾고 오페라 캐릭터 분석을 하며 다시금 목의 컨디션을 회복하는 습관을 길렀다. 그렇게 반복하며 군악대를 다녀온 후, 2년 동안은 거의 연습실에서 지냈다. 대학교 3학년 때 우연히 처음 나갔던 ‘마산 MBC 가곡 콩쿠르’에서 1등 없는 2등을 하면서부터 노래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후로는 다양한 콩쿠르에 나가면서 무대 뒤에서 노래하는 것이 재밌고 뿌듯해지면서 졸업 후에 자연스레 유학 가는 길을 모색하게 되었다. 유학을 독일로 선택한 이유는 독일 전 도시에 극장이 하나씩 있으니 “나 또한 그 많은 극장 중 어딘가에서 솔리스트로 활동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물음에서 바로 나는 독일 유학 생활을 선택했다.

– 바리톤 이동환으로써의 활동
영남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를 졸업 한 후 독일로 유학 생활을 시작한 나는 독일 함부르크 국립 대학교 오페라 과(마스터)와 함부르크 국립극장 오펀 스튜디오 과정을 병행했다. 이후 아우크스부르크 국립 극장에서 5년간 전속 주역 가수로 활동 하였으며 2013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벨베데레 국제 성악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독일 최고의 극장이라고 할 수 있는 베를린 도이체 오퍼 극장에서 솔리스트 활동을 했다. 또한, 이 콩쿠르를 통해서 2014년에는 세계 3대 오페라 극장 중 하나인 영국 로얄 오페라하우스 코벤트 가든 에서 데뷔할 수 있었다.

그 외에도 프랑스 툴루즈 극장, 이탈리아 베로나 필하모닉 극장, 노르웨이 오슬로 오페라하우스, 독일 다름슈타트 국립극장, 독일 하이델베르크 극장 등 많은 활동을 했다. 학생시절 영상으로 많이 접했던, 소위 성악 계에서 대가라고 칭할 수 있는‘로베르토 알라냐’, ‘후안디에고 플로레즈’, ‘디아나 탐라우’, ‘브린 터펠’, ‘레오 누치’, ‘토마스 햄슨’등 많은 슈퍼스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유럽에서 15년 동안 극장 생활을 하고 2021년 모교인 영남대학교 음악대학교 성악과 교수로 부임했다.

좌) 아우크스부르크 국립극장 로엔그린 왕의 전령관 2014 / 우) 슬로바키아 국립극장 콘서트 2017
좌) 도이체 오퍼 극장 오페라 랭스로의 여행 돈 알바로 백작 2018 / 우) 2019 시즌 도이체 오퍼 극장 카르멘
한국에서는 2012년 대구오페라하우스 초청공연인 국제 오페라 축제의 카르멘에서 ‘에스카미요’역으로 국내 데뷔를 한 후, 국립오페라단, 광주시오페라단, 경남오페라단에서 오페라 주역을 활동했다. 그 외에도 KBS 교향악단, 대구시향, 과천시향, 코리안 심포니, 프라임 필 오케스트라 등과 호흡을 맞추며 솔리스트로서 음악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국립오페라단 라보엠 마르첼로 2018
– 나의 음악 세계, 그리고 바리톤의 매력
음악에 있어서만큼은 완벽주의자가 되는 편이다. 작품 분석부터 가사의 이해, 오페라 캐릭터 연구 등 공연을 앞두고는 충분한 기간을 두고 공부를 한다. 바리톤만의 매력을 묻는다면 다름 음역에서 찾을 수 없는 ‘중후함’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따듯하면서도 부드럽고 힘 있는 소리가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욱 깊어지기 때문이다. 40대에 접어든 나는 이전과는 좀 더 다른 소리를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오페라 중에 바리톤은 주로 왕이나 아버지 같은 역할이 많기 때문에 그에 따른 연륜 또한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신 바리톤은 꾸준한 자기 관리와 체력을 유지한다면 오랫동안 노래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50대 뿐만 아니라 그 이상이 되었을 때도 중후한 모습으로 라 트라비아타 의‘제르몽’이나‘리골레토’처럼 푸근하고 사랑이 넘치는 아버지 역할을 노련하게 소화하고 싶다. 학생시절 소프라노 이영순(현 명예교수님)께서 은퇴기념 콘서트 때 부른 한국 가곡 ‘옛날은 가고 없어도.’(더듬어 지나온 길 피고 지던 발자국들, 헤이는 아픈 대신 즐거움도 섞였구나, 옛날은 가고 없어도 그때 어른거려라)를 들으며 객석에서 감동의 눈물을 흘린 기억이 있다. 나 또한 그분처럼 나이가 지긋할 때 리사이틀을 열어 중후한 음성으로 관객들에게 오래가는 감동을 줄 수 있는 성악가가 되는 것이 작은 소망이다.

국립오페라단 라트라비아타 제르몽 2020
– 다시 돌아온 모교, 그리고…
공연 하루 전날의 설렘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동안 연습해 온 것을 무대에서 시도해볼 수 있는 그런 설렘. 베를린에는 3개의 훌륭한 극장들이 있는데, 나는 그 중에서도 합창단원을 제외하고는 유일한 한국인 솔리스트였다(2015-2019).

처음부터 노래를 잘하는 방법을 나 또한 알지 못했기에 유학시절 좌절을 겪고 있는 학생들의 고민에 너무나 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고, 공연들을 제외한 시간의 상당 부분을 유학 온 학생들과 자연스럽게 함께 보냈다. 시간이 흘러 지도했던 학생들이 입시에 합격하거나 극장에 취직이 된 모습을 보면 마치 내 일처럼 뿌듯하고 벅찬 보람을 느꼈다.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 무대에서 노래하는 것 이상으로 내가 가르침에 행복함을 느낀다는 걸 알 수 있었고, 함께 공유하며 성장하는 것이 더 큰 기쁨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021년 3월 영남대학교 성악과 교수 부임
노래는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닌 것을 너무도 잘 알기에 좋은 소리를 유지하는 방법을 익혀야만 한다. 또, 노래란 좋은 체력과 긍정적인 마인드를 바탕으로 하여 본인과의 싸움에서 이겨내야만 하는 것이기에 때로는 두려운 미래에도 불구하고 묵묵한 끈기를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다년간의 유럽극장에서 솔리스트 활동을 하며 스스로 터득한 노하우들은 이제 영남대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이바지하는데 활용할 예정이다. 학생들이 가진 소리들이 모두 다르기에 일정한 소리를 강요하기보다, 그들의 눈높이에 맞춘 교육을 진행하고자 한다. 학교의 교육에 지장이 없는 한 계속해서 나의 커리어에 대한 것도 끊임없이 노력 할 계획이다. 앞으로 다가오는 2022년에는 예술의전당에서 리사이틀과 서울시립오페라단 오페라 공연이 계획되어 있고, 베를린 도이체 오퍼극장에서 2021/22시즌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와 ‘로엔 그린’, 2022/23시즌 오페라 ‘시몬 보카네그라’, ‘헨젤과 그레텔’, ‘살로메’가 예정되어 있다. 교수로써 뿐만 아니라 바리톤 이동환으로써의 활동들을 통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세계에 영남대학교를 알리고 위상을 높이는데 작게나마 이바지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