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예술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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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예술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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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예술의 힘 #중·장년 예술인
1992년 건축가, 그리고 2022년 건축가
이상석 / 이상도시건축사사무소 대표
내년이면 건축의 길로 접어든지 30년이 된다.
기라성 같은 선배 건축가들에 비하면 새발에 피도 안 말랐지만 그래도 한 분야에 긴 시간 몸을 담았으면 나름 내공이 쌓일 법도 한데 영 신통찮다.
TV에 생활의 달인이란 프로그램을 가끔씩 보다 보면 한 분야에 수십 년을 보낸 달인들이 그야말로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 갈 법한 가공할 업력을 보여주는데 건축설계에 30여년을 바친 나의 주특기는 뭘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도통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

이 정도 내공이 쌓이면 건축주가 풀어놓은 얘기 거리를 한 방에 캡쳐 해서 일필휘지로 스케치 해 주면 바로 계약서에 도장 찍고 통장에 계약금이 들어오고… 뭐 그런 기분 좋은 생각은 상상에 그친다.

문뜩 꿈 많던 20대 건축학도로 돌아가 본다.
화장품 광고에 등장하던 X세대의 중심에 있던 90년대 초 경산의 모교는 그 때도 올해처럼 벚꽃이 만발하다. 성냥갑처럼 다닥다닥 붙어 않아 제도판에 머리 쿡 쳐박고 르꼬르뷔제, 루이스 칸, 안도 다다오 같은 건축대가들의 서적들을 뒤적거리며, 에이 모르겠다, 괜히 옆에 친구들 꼬드겨 잔디밭에 옹기종기 모여 않아 막걸리 한잔하며 노닥거리며 놀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공간은 그대로인데 새카맣던 머리칼은 어느새 희끗 희끗한 중년의 되었고, 학생에서 겸임교수로 30년 전의 내 또래 같던 친구들에게 건축을 지도한다.
그 때와는 설계실 풍경도 많이 달라졌다. 건축과에서 더 이상은 제도판을 구경할 수 없다. 널찍한 공간에 개인 책상이 주어지고 제도판 자리엔 개인 노트북과 큼직한 평면 모니터가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4년제였던 공과대학 건축공학과가 건축학부로 독립하면서 건축설계는 5년제로 바뀌었다.

세계건축사연맹(UIA)의 주도로 국제적으로 건축사 자격의 질과 내용의 동등성을 기반으로 한 상호인증을 위하여 5년제 이상의 건축교육과 3년 이상의 건축실무수련을 교육연한으로 제한하고 있다. 이로 인해 건축사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5년제 건축학을 전공하여야 한다.

지천명에 이른 내 또래 건축가가 되기 위한 과정을 열거하면 20살에 건축공학과에 입학하여 4년의 학생기간과 그 중간에 28개월의 군생활을 더하면 대략 28살에 건축사 사무소의 건축사보로 5년의 실무 기간을 거치면 대략 32살에 건축사 시험에 첫 도전한다. 평균 3년, 길면 5년 정도 수험생 생활을 하다 운이 좋아(?) 30대 후반에 건축사 자격을 취득하면 비로소 자신의 이름으로 건축을 시작한다. 무명의 신진 건축가가 자리 잡고 안정적으로 정착 하려면 디자인부터 시작해서 인허가, 그리고 준공의 사이클이 한 바퀴 돌아서 적어도 5년의 작품 활동 기간이 필요하다.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기성 건축가가 되려면 대략 45살이 된다.

우리 건축가협회의 신입 회원의 나이가 30대 후반이나 40대 초반인 이유가 여기에 기인한다. 필자도 건축사보로 10여년을 보낸 후 30대 후반에 2년 정도 고민하다 40이 넘어서야 독립했다.
돌이켜 보면 99년도 학교를 졸업하고 때는 국가부도위기라는 IMF 직후라 갈 곳도 없고, 불러 주는 곳도 없이 도서관에서 한 6개월 빈둥거리다가 서울에 계신 선배님의 부름을 받고 갔다가 무려 13년의 세월을 보내고 다시 대구로 귀환했다.
객지에 있다 보면 항상 따라 다니는 고민이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늙어가는 부모님 걱정이 제일 크다. 그나마 전문직이다 보니 일반 샐러리맨 보다는 귀향에 대한 부담은 덜 하지만 삶의 터전을 옮기는 일은 고려 사항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나의 직장뿐만 아니라 배우자의 직장문제, 아이들의 학교 문제, 주거의 문제 등등.
다행히 배우자도 나와 동향이고 부모님도 대구에 계셔서 쉽게 설득했고, 아이들도 아직 초등학생이라 저항의 그리 크지 않았다. 집은 세주고 받은 전세금만으로도 집을 구하는 데는 부족하지는 않아서 대구로의 귀향은 큰 어려움은 없었다.

막상 이름을 걸고 오픈 하니 모든 게 서먹하고 막막하였다. 사회생활의 인맥은 대부분 수도권이라 그나마 반겨주는 이들은 대학 동기들과 선후배들, 그리고 고향 친구들이 전부였다.
먼저 개업한 선배님들 찾아뵈니 한 2년 정도는 버틸 자금 준비해서 도전 하라는 말이 맞는 듯 정말 한 6개월은 개미 한 마리 얼씬하지 않았다. 자치단체에서 발주하는 설계 공모도 별루 나오는 것도 없고 그야말로 파리 날리고 있었는데 드디어 주택의뢰가 들어 왔다.

경산의 주택인데 땅이 맹지였다. 맹지란 말 그대로 도로에 면하지 않는 남의 땅을 거쳐서 들어가는 대지였다. 처음 건축주가 대지를 들고 왔을 때는 토지사용승낙서를 받을 수 있다고 해서 성급한 마음에 계약서에 덥석 도장을 찍었는데 막상 토지사용승낙서를 받으려 하니 갖은 핑계를 대고 승낙을 해 주지 않았다.
첫 수주를 이렇게 망치고 싶지 않아서 동분서주 허가부서를 드나들었더니 담당이 현황도로를 인정해 줄 수 있는 20여년 이전의 위성사진이나 근거를 제출해 주면 허가해 줄 수 있다고 한다.
항공사진을 찾아보니 경산지역은 구할 수가 없어, 건축주의 큰 딸이 골목에서 찍은 사진을 제출해서 허가를 어렵게 받아냈다. 그러나 막상 공사가 시작되니 뒷집에서 자기 집 앞 전망이 가린다고 2층 주택을 1층으로 낮추라고 민원을 내고 레미콘이나 철근 자재를 싣고 오는 공사 차량이 골목으로 들어 올 수 없도록 출입구까지 차량으로 막으며 공사를 방해 했다.
다행히 건물 기초를 치고 난 뒤라 콘크리트 구조를 목조로 변경하여 공사를 재개 했다. 차량이 들어 올 수 없으니 일일이 자재를 인력으로 옮겨서 공사를 어렵게 마무리 했다.
이렇게 어렵게 시작된 대구에서의 나의 건축 작업이 내년이면 10여년, 건축에 입문한지 30여년이 된다.
지자체에서 발주하는 공공건축물도 한 3년 열심히 두드리니 기적같이 당선의 기회가 주어지고 매번 어렵기는 하지만 꾸준히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좌) 경산상암리주택전경-첫작품 / 우) 원고개도서관전경-첫공공건축작품
지나고 보니 학생 시절이던 90년대에도 우리 대구경북건축가협회 선배님들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았다. 지금도 27년째 이어온 대구경북건축아카데미 행사는 2회와 3회 행사 때는 학생신분으로, 그리고 25회와 26회는 지도하는 튜터로 한세대를 이어 혜택을 주고 받았으며, 내가 지도한 학생들에게 수십년이 흘러 기성 건축가가 되었을 때도 후배들을 위해 봉사해 달라고 당부한다. 올해는 협회 총무 이사로 건축계의 선배님들이 닦아 놓으신 여러 업적들에 누가 되지 않게 더욱 발전 시켰으면 하는 바램이다.
좌) 대구경북건축아카데미-2020년 / 우) 어린이건축학교-2019년
최근 우리 건축계에 걱정스런 일들이 생겼다.
건축가가 되기 위한 관문이 이렇게 길고 좁아지면서 대구협회에 등록된 건축사가 850여명인데 반해 등록된 건축사보가 350여명이란 통계가 발표되었다. 건축사보란 건축사가 되기 위해 수련하는 예비 건축사들인데 현역 건축사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우리 다음 세대를 이어나갈 예비건축사 수가 턱없이 부족해 진다는 이야기다.

원인은 건축학인증 5년제에 기인한다.
과거에는 고등학교 건축과를 졸업하면 10년의 수련기간, 전문대를 졸업하면 8년의 수련기간, 4년제를 졸업하면 5년의 수련기간을 거치면 건축사가 되기 위한 자격이 주어졌다. 기간이 차이 날 뿐 원천적인 진입장벽은 없었지만 지금은 5년제 건축학을 전공하지 않으면 건축사가 될 수 있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결과는 심각하다.
대구, 경북 한 해에 졸업하는 5년제 건축학도는 대략 200여명이다. 이 중 거의 절반은 수도권으로 취업한다. 남아있는 100명중 20%는 공무원 및 공기업, 그리고 20%는 유학 혹은 대학원에 진학한다.
그리고 대략 20%는 건축이 아닌 다른 길로 진로를 잡는다. 그러면 지역에 남은 인력은 대략 40여명이다. 상위 10개 기업이 2명 혹은 3명 이상 채용하면 그야말로 대부분 건축가는 나홀로 사무소를 운영해야 한다.
객관적 데이터는 아니지만 5학년 졸업반을 몇 년 지도하며 학생들과 상담해본 경험을 토대로 열거하였다.
건축사로의 원천적 진입이 차단되자 공업고등학교, 전문대학 건축과는 태반이 미달이다. 설령 졸업하여 건축사 사무소에 근무를 하더라도 금방 의욕상실이 된다. 동기부여가 되질 않는 것이다.

건축이란 학문은 미술이나 음악과 같이 홀로 독주가 불가능하다. 설계분야에서는 구조, 기계, 전기, 소방, 토목, 조경의 각 분야 전문가의 조력이 필요하고 현장에서는 현장소장뿐만 아니라 숙련된 목수와 철근, 조적, 창호, 미장, 방수를 비롯한 수많은 자재와 인력이 투입되어야 비로소 완성된 건물이 세상에 빛을 볼 수 있다.

어쩌면 모 시상식에서 유명 배우가 말했던 수많은 스탭들이 정성들여 지은 밥상에 숟가락 하나 얹었을 뿐인데 본인만 이렇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서 너무 죄송하다고, 건축가야 말로 진정 이러한 겸손한 마음을 되새겨 보아야 할 듯하다. 영상이나 책자에 본인의 작품을 소개 하며 작가의 디자인 개념을 설명하는 우아한 모습 뒤에는 보이지 않는 장인들이 피땀 흘려 제작하는 수고로움이 있었다고 한번쯤 얘기해 줄만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