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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리뷰 #전시
대구미술관 개관10주년 기념전
대구근대미술 《때와 땅》전을 마치며
박민영 / 대구미술관 수집연구팀장
대구근대미술전 <때와 땅> 포스터
대구미술관의 《때와 땅》은 대구의 근대미술의 시작과 전개과정을 선각자들의 발자취를 따라 가며 조망하고,그들이 추구한 가치와 비전을 발견해 보는 자리였다. 이 전시는 일제강점기, 해방과 전쟁으로 점철된 시대에 한국미술사에 있어 새로운 예술의 유입과 각성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특히 대구를 중심으로 발현된 근대 문화 정신과 궤적을 통해 엄혹한 역사의 전개 가운데에서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지키고 새로운 예술을 창조하려한 이들의 노력과 시대정신을 담아보려 했다.
전통 서화의 대가 서병오는 당대 전통미술과 신미술을 통틀어 예술의 수호자를 자처하였고, 그의 든든한 배경아래 문화·예술의 중요성을 깨달은 이상정, 이여성, 박명조, 서동진과 같은 선각자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다시 이들을 영향아래 이인성, 이쾌대와 같은 걸출한 스타가 탄생할 수 있었다. 대구의 미술은 세대를 이어가면서 새로운 교육과 자극을 받았고, 그 저변과 영역은 점점 확장되어갔다. 이처럼 근대 예술인들은 사회 문화의 변혁기에도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열린 자세로 시대와 함께 나아갔다는 사실을 전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때와 땅> 전시 전경
구체적으로 전시의 섹션은 192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질곡의 시대를 따라가면서 등장하는 새로운 이슈와 변화의 원동력을 찾고자 했다.
첫 번째, ‘예술과 함께 사회와 함께’라는 주제에서는 근대초기 대구의 전통 서화와 미술의 만남, 그리고 당대 예술인들의 사회성을 조병하였다. 대구의 근대미술이 가진 사회성은 한국미술 전체를 통틀어 독특한 성격이라 할 수 있고, 많은 시사점을 준다. 서화계에서는 당대 경제, 사회를 선도한 서화가, 독립운동가, 경제인 등이 모여 교남시서화연구회(1922년 설립)를 결성하는가 하면 신미술에서는 1920년대 초에는 대구의 사회 문화운동 뿐 아니라 무장 독립투쟁에까지 앞장선 실천가 이상정이 있었다. 또한 사회, 정치, 예술에 걸쳐 조선의 현재와 미래를 조망한 이여성은 개인을 초월한 역량을 보여주었다. 게다가 봉건사회가 무너져가던 조선에 계급투쟁을 역설한 이상춘과 같은 신진 예술가가 1920년대와 1930년대 사이에 등장했다는 것은 시대성을 반영한 대구 예술의 역동성을 말해준다.
두 번째, ‘대구 근대의 색’의 주제로 서양화 도입 후의 전개를 대구의 양화 전문 단체인 ‘향토회’(1930-1935)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대구 서양화의 실질적인 전개는 1920년대 후반 서동진, 박명조의 개인전과 1930년대 향토회의 멤버들의 활동을 통해서라 할 수 있다. 특히 1923년 이상정이 설립한 벽동사(碧潼社)에 이어 서동진의 대구미술사(大邱美術社)(1927년 설립)는 교육과 광고 인쇄 등의 활동을 하며 문화예술의 확산과 보급에도 관여하였다. 이들은 미술이 한낱 여기(餘技)나 개인적인 성취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하고, 지역 인재를 양성하는 등 사회 전반에 미칠 영향을 염두에 두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세 번째 섹션에 전시한 한국근대미술의 기린아 이인성과 이쾌대가 탄생할 수 있게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구 지역사회의 많은 이들의 지원이 가난한 천재 예술가 이인성을 조선 최고의 작가로 키워내었고, 당대 최고 지성인이었던 형 이여성에게 지대한 영향을 받은 이쾌대는 진정한 조선의 예술을 찾고자하는 목표를 세울 수 있었다.
네 번째, ‘회화 전문에 들다’에서는 근대미술이 성장하게 된 요인으로 사제관계와 교육의 영향을 다뤄보았다. 문화적 자극이 한정되었던 근대 초기에는 일본 유학을 통한 일본 미술의 영향이 있었다. 그러다가 점점 대구사범 등 국내에 고등교육과정인 생기면서 미술의 전문화가 진행되었고, 미술교사와 제자의 관계에서 받게 된 당대 일본 미술의 흐름과 더 나아가 세계 미술의 영향을 살펴보았다. 구체적으로는 대구사범학교의 미술교사 타카야나기 타네유키(高柳種行)와 계성학교 미술교사로 제자들을 예술가로 키운 서진달의 예에서 미술이 어떻게 습득되고, 해석되고, 확산되는가를 볼 수 있었다.
다섯째 ‘피난지 대구의 예술’에서는 해방과 전쟁의 혼란기에 지켜온 예술정신을 살펴보았다. 전쟁기 대구로 몰려온 예술가들은 예술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답하여야 했다. 인간의 가장 밑바닥의 생존 본능이 드러났던 그때 과연 예술은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인간 실존은 무엇인지 그 해답을 찾아야 했다. 역설적이게도 전쟁 기간 중 상고예술학원(1951-1952)에 모인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들이 보여준 공동체를 위한 예술의 역할은 빛을 발하였고, 전쟁의 상흔은 추상미술과 같은 새로운 미술이 가능하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어미홀 전시 전경
140여점의 작품으로 구성된 전시를 다 둘러보게 나면 어미홀의 아카이브 공간에 들어서게 된다. 한정된 전시 공간에서 시대별 자료를 보여줄 수 없어서 별도의 공간에서 다양한 아카이브 자료를 전시하여 대구의 시공간을 체험하게 하였다. 아카이브는 여섯 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었고, 첫 번째 예술가들의 저서에는 근대 교남시서화연구회의 시선집『참격시선』(1922)을 비롯해 당대 최고의 지성인이었던 김용준, 이여성의 『조선미술대요』(1949), 『조선복식고』(1946)등을 전시하였다. 또한 밀접한 관계에 있었던 당대 화가와 문인, 음악가의 교류한 흔적을 이상화, 현진건, 윤복진 등의 문학집과 저작으로 보여주었다. 두 번째에서 네번째 섹션에서는 대구의 문화예술 지형을 세 개의 지도를 통해 보여주었다. 1945년을 기점으로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사회·문화단체, 예술공간, 이들이 모인 다방과 식당, 다양한 기관과 상업 공간, 서점, 사진관 등 대구의 예술이 머물렀던 흔적을 구체적인 공간에 놓아보았다. 또한 이원식 선생의 저서와 여러 인물의 구술을 참고해 편집한 ‘대구문화인물지형도’에서는 당대 사회 문화 리더들의 활동 영역 대구를 변화시킨 큰 동력이 되었음을 확인해 주었다. 그리고 ‘문화인물관계도’를 통해서는 이들의 사회, 문화 활동이 한국 정치 사회 예술 전반에 걸쳐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1920년대와 1950년대 사이 예술가들의 행적은 다양한 아카이브 자료로 나타났다. 근대미술에 오랜 역사를 가진 만큼 대구에 남은 보물 같은 자료들이 예술가들의 후손에 의해 보존되고 있었다. 특히 다섯 번째 ‘대구근대미술을 지킨 사람들’을 주제로 5인의 작가들의 유족과 대구 1세대 미술사가인 권원순의 인터뷰에서 대구 근대미술이 기록되고 전달된 과정을 들어볼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근대미술연표를 통해 한국미술과 세계사의 큰 흐름 가운데 대구의 미술이 나아간 자취를 살펴보았다.
《때와 땅》전을 준비하면서 필자는 새로운 사회가 도래하고 예술이라는 개념이 확립되기 시작하는 시점에 당대 예술가들이 가졌던 문화 예술에 대한 가치관과 지향점을 찾아보고 싶었다. 이들의 지향점은 과거의 전통과 서구의 모더니즘이 만나는 전환기를 이끈 원동력이며, 이는 곧 우리 근대미술의 정체성과도 연결될 것이다. 지금까지 일본이나 서구 미술의 수동적인 영향과 해석이라는 경로보다는 우리 근대 미술인들이 보여준 생각을 읽고 그들의 실천에서 우리 근대미술사의 인(因)과 연(緣)을 이어보고 싶었다.
그러기에 대구라는 공간은 한국미술의 한 지역적 현상으로 한정될 수도 있지만, 근대미술이 일어났던 탄탄한 배경과 그들 간에 밀접한 영향관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한국 근대미술이 지향한 바를 한눈에 조망하기에 좋은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직 깊이 있는 연구나 자료의 부족이라는 한계도 있었지만, 전시를 통해 이상정과 이여성이라 빛나는 선각자를 알게 된 것은 큰 성과였다. 이들의 보여준 다양한 사회활동이나 독립운동과 같은 다방면에 걸친 활동영역을 보게 되면, 어쩌면 그들은 여태껏 우리가 만들어온 화가의 상에 조금 비켜있는 인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예술가이기 전에 먼저 우리의 미술이 나아갈 바를 제시한 예지자였고, 새로운 길을 열어준 개척자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은 더욱 크다 하겠다. 전시를 마치면서 향후 이들에 대한 더 깊은 연구야 말로 한국미술의 근원적인 동력과 우리 모더니즘의 정체성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는 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때와 땅> 전시장 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