젬베라는 악기를 알게 되고 그 매력에 푹 빠져 젬베와 서아프리카 리듬을 배우기 위해 서울을 오가며 클래식 연주자 활동을 병행하던 나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새로운 길을 가기 위해 몰입했다. 가까운 아시아의 일본, 중국, 대만, 싱가폴 등에 젬베의 거장이 와서 워크샵이 열리면 마치 기차표를 예매하듯 별 고민 없이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멀리는 세계에서 가장 기가 막힌 테크닉을 가진 코트디부아르 출신 젬베 연주자에게 배우기 위해 프랑스까지 날아가고, 전 세계에 젬베를 알리고 젬베계의 교장선생님과 같은 기니 출신 거장에게 배우기 위해 멕시코로 날아갔다. 가는 길에 뉴욕에 들려 클래스도 듣고 여행도 하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젬베숍 중 하나인 곳에 가서 악기도 구입했다. 그 날 뉴욕에 십몇년 만인지 몇십년 만인지 엄청난 폭설이 내려 무릎까지 올라오는 눈을 밟고 가서 악기를 공수했다. 젖은 운동화를 신고 걸어다닌 탓에 발목에 접촉성 피부염이 심하게 와 몇 일을 참 고생한 웃지 못할 추억도 있다.
그렇게 몇 년 동안 배움을 위해 해외를 다니며 수많은 거장들과 앞선 길을 가는 비(非)아프리칸의 훌륭한 선생님들 그리고 나와 같은 친구들을 만나 함께 젬베를 배우고 연주하며 국적과 인종, 나이에 관계없이 친구가 되어 마음을 나누었으며 그 때 느낄 수 있는 자유로움과 행복감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젬베는 단순히 악기 이상을 넘어선 나의 삶을 변화하게 해준, 선천적 길치인 내가 혼자 낯선 곳을 여행하고 능동적으로 내 삶을 계획하고 실행하게 하는 용기와 현재의 행복이 뭔지를 알게 해준, 세계 어디를 가도 친구들이 모이게 만들어 주는 참으로 신기하고 큰 존재였다.
젬베를 배우고 여행하며 나는 마음이 공허한 사람에서 행복한 사람으로 바뀌었다.
영상편집으로 6명의 내가 동시에 여러 아프리칸 타악기를 연주하는 일명 ‘원맨 앙상블’을 만들어 페이스북에 올리며 대구에도 함께 할 동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글을 쓰기도 했다. 그러다가 결심했다. 모으자, 키우자, 대구에서 한번 만들어보자.
젬베를, 서아프리카 리듬을 혼자가 아닌 함께 어울려 연주하고 즐기고 싶었던 나는 팀 이름을 원따나라로 정하고 구호를 ‘우리 모두 함께, 원따나라’로 만들었다.
한명 두명 점점 멤버들을 모으기 시작했고 모두 국악 타악, 서양 타악, 드럼 등 이미 타악기를 연주하는 전문연주자였지만 아프리카에서 온 타악기는 처음인 이들에게 흥미를 느끼게 해주고 연주의 기초부터 다양한 리듬과 그 리듬들에 담긴 문화와 정서까지 알려주어야 했다.
젬베와 두눈바, 상반, 킨키니, 발라폰 등의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한 서아프리카의 13세기 말리제국에서 비롯된 만뎅 (Mandingue) 문화권의 전통악기들로 그들의 수많은 장단 중 우리나라 사람들도 쉽게 받아들이고 리듬을 탈수 있는 것 위주로 레파토리를 짜고 연습했다. 그렇게 처음엔 아프리칸 타악그룹으로 시작하여 연습 할 스튜디오, 악기, 의상, 공연 레파토리 연습 등 하나하나 준비해 나갔다.
많은 난관이 있었다. 악기가 워낙 울림이 큰지라 층간 소음으로 컴플레인이 계속해서 들어왔다. 소음을 고려하여 지하로 들어가서 방음 처리를 많이 했지만 무용지물이였다. 다툼이 생기기도 하고 소음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을 하기도 했다. 연습을 100% 힘을 발휘해서 할 수가 없었다. 그 스트레스는 말로 다할 수가 없었다. 또다시 인테리어 및 방음공사로 돈을 들이고도 같은 상황이 발생하지 않기 위해 몇 년을 또 다니며 적합한 장소를 찾았고, 마침내 지금 중구 경상감영길의 민원이 발생하지 않을 지하장소를 찾아냈다. 하지만 끝이 아니였다. 물난리를 겪고 여전히 어디서 물이 샐까 노심초사 마음을 졸였다. 그래, 삶이 언제나 순탄하기만 할 수는 없으니….
완벽할 순 없지만 지금은 마음껏 100%의 힘을 발휘하여 연습할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이곳 ‘원따나라 스튜디오’는 매우 소중한 곳이다. 2016년 이곳으로 이사를 오고 나서 본격적으로 연습에 박차를 가하고 그 해 7월, 우리의 첫 번째 정기공연 서아프리카 뮤직&댄스 콘서트 <Let’s Go to Africa>를 남구에 위치한 극장 ‘꿈꾸는 씨어터’에서 하루 2회 공연을 전석 매진으로, 꼭 보고 싶어하는 관객을 위해 앞자리에 방석까지 깔아가며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원따나라가 연주하는 서아프리카 타악기의 리듬은 항상 춤과 함께였고 춤을 위한 리듬이였기에 서울에서 함께 팀을 했던 댄서들을 섭외해서 함께 공연하였다. 첫 정기공연 이후로 본격적으로 ‘아프리칸 타악그룹’에서 춤과 음악이 함께하는 퍼포먼스팀 ‘아프리칸 공연예술그룹 원따나라’로 타이틀을 변경하였다.
무용단원은 서울에만 있다가 드디어 대구에 로컬 무용단원도 생겼고 점점 퍼포먼스 팀으로 구색을 갖추며 성장시켜 나갔으며 2017년, 2018년 어려움 속에서도 꾸준히 정기공연을 올렸다. 사실 원따나라에는 여성 멤버들이 많은데 2017년 두 번째 정기공연 당시 나는 출산 후 3개월 밖에 되지 않은 몸으로 공연을 기획하고 무대에 섰으며 우리 안무가이자 무용수는 임신 4개월 차 였음에도 불구하고 무대를 날뛰었다. 2018년 세 번째 정기 공연때는 또 다른 연주단원이 뱃속에 아기가 있는 채로 젬베를 메고 공연을 하였다. 그래도 우리의 아이들은 모두 건강하게 자라고 있고 모두 남다른 흥이 넘친다. 에너지를 엄청 많이 써야 되는 장르지만 여성 연주자, 무용수로서 좋은 문화를 만들자고 서로를 응원하며 이 씬의 여성 아티스트로 좋은 선례가 되고자 했다.
2017년부터는 ‘문화가 있는 날 청춘마이크 아티스트’로 선정이 되어 대구 경북의 많은 불특정 대중들과 거리공연으로 만났고 그 후 4년 동안 연속으로 청춘마이크 대구경북권의 아티스트로 선발이 되며 대구를 대표하는 청년예술단체 중 한 팀으로 자리매김 하였다. 2019년에는 청춘마이크 대구경북권의 최우수 예술가로 수상을 하여 2020년도 청춘마이크를 프리 패쓰로 올라가게 되었다는 자랑도 해본다. 2018년과 2020년에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문화순회사업인 ‘신나는 예술여행’에도 선정이 되어 영남권의 수십개의 순회처를 발굴하고 공연을 하였다. 2020년에는 무려 30회의 신나는 예술여행 공연을 해야 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취소와 연기가 숱한 악재 속에서도 끈질기게 무사히 모든 공연을 다 해내었다. 주로 유아부터 어린이, 중고등학생들을 만날 기회가 많았는데 연령대가 어릴수록 몸 속의 타고난 흥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느끼는대로 춤추고 표현하였다. 중고등학생들도 처음엔 쭈볏거리다가 흥겨운 리듬과 춤에 점점 마음을 열곤 했다. 너무 재밌었지만 부끄러워서 마음껏 즐기지 못한게 아쉬웠다며 다음에도 꼭 다시 공연을 보고싶다는 학생들의 후기 메시지를 받으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공연은 대구에 거주하는 서아프리카 출신 난민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공연이였다. 우리가 그들의 고향 리듬과 춤을 보여주는 셈이라 과연 어떨까 기대가 되었는데 역시나 우리 공연을 관람하는건 안중에 없고 모두 일어서서 무대에 난입하기도 하고 춤추고 놀기 바쁜 아프리카 언니들 덕분에 우리도 너무 즐겁고 감동적이였던 추억이다. 몇 개 어설프게 알고 있는 그들의 민족 언어를 말할 때면 너무나 좋아라하던 모습이 생생하다.
새로운 기회도 생겼다. 이 전에도 스트릿 댄스나 DJ, 국악과의 콜라보레이션 경험은 있었는데 2019년부터는 대구시립무용단의 정기공연에 두 차례나 함께 하고 대구와 서울의 무용페스티벌에도 동행하며 현대무용을 위해 서아프리카 리듬을 각색하고 새로운 리듬도 창작하였다. 오롯이 음악 팀으로써 타 장르와의 협업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드디어, 공동체의 사랑과 예술로 거듭나고 성장하는 시골소녀의 성장 스토리가 나왔고 8월 말 대구문화예술회관 팔공홀에서 열릴 우리의 새로운 도전을 위해 모두 고군분투했다. 처음 시도 하는 일에 쉬운 일은 없었다. 단원들은 작품연습 외에도 의상과 악기, 무대제작 등 여러 가지로 머리를 싸매었다. 제목 <Rebirth>는 극 중 주인공의 성장을 뜻하기도 하지만 우리 원따나라의 성장을 뜻하기도 했다. 코로나19로 인한 거리두리 좌석 덕분인지 티켓은 오픈한지 얼마 안 되어 매진이 되고 언론사들의 관심을 받아 인터뷰도 출연도 많이 하고 이 공연만 끝나면 마치 꽃길만 펼쳐질 것 같았다.
하지만, 공연을 일주일 앞두고 코로나19의 확산으로 모든 공공시설이 폐쇄되었다. 아예 폐쇄가 되어버린 탓에 비대면으로 전환조차 할 수 없었고 모든 티켓은 환불 처리되었다. 너무 허무하고 절망이 되었지만 주인공 소녀의 이야기처럼 우리에게 실제로 닥친 시련을 어떻게든 이겨내야 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연기된 날짜로 다시 대관을 할 수 있었고 잠시 마음의 휴식기를 가지고 다시 힘을 내어 몰입했다.
<Rebirth>의 여세를 몰아 이틀 뒤 울산의 쇠부리축제의 일환으로 열린 타악경연대회 ‘타악페스타 두드리’에서는 본선경연에 올라간 전국10개 팀 중 원따나라가 상금 천만원이 주어지는 대상인 ‘이의립상’을 수상하였다.
2020년은 코로나19의 악재 속에 너무나 바쁘게 지옥과 천국을 오가는 잊지못할 한해였다.
한국에서, 대구에서, 타문화권의 그것도 듣기에도 생소한 서아프리카 만뎅문화권의 예술을 한다는 것은 아직도 너무나 큰 장벽과 어려움이 많다. 지금껏 공연을 많이 하며 아프리카에 대한 무지와 선입견을 없애고 이 음악과 춤의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알린다고 해왔으나 아직도 갈 길이 멀게 느껴진다.
우리는 앞으로 더 배워가야 할 것이고 다양한 도전을 계속 해 나갈 것이다.
이색적이지만 공감할 수 있는 공연을 지향하고 전문예술단체로써 더 성장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 속에서 어떻게 우리의 평범한 삶과 행복 또한 함께 누리고 영위할 수 있는지, 고민은 계속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