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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리뷰 #음악
오페라 <사랑의 묘약>
이 현 / 영남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 교수
지금 우리에겐 사랑의 묘약이 필요하다.
코로나19로 지구촌은 자전과 공전 이외에는 모든 것이 비정상이다. 이러한 가운데 한차례 연기된 대구 국제 오페라 축제는 해외 단체 출연 없이 규모를 축소하여 「20-21 대구 오페라 축제」로 해를 넘겨 진행하고 있다. 1월 30일(토), 개막작 <사랑의 묘약>을 보기위해 오페라 하우스를 찾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공연 티켓은 직접 구매 하여 공연을 관람한다. 30여년을 무대 위에 있다가 관객의 입장에서 공연을 평 한다는 것은 내 음악인생의 성찰이고 반성이자 내 살을 도려내는 아픔을 감수할 용기가 필요했다. 이 글을 통해 나에게 책임을 수반함과 동시에 변화와 개혁의 과제를 모두에게 던지고 싶다.
아는 만큼 보이는 오페라
클레식 음악들이 그렇듯, 오페라도 아는 만큼 작품에 몰입할 수 있다. 「L’Elisir d’amore」사랑의 묘약은 펠리체 로마니가 대본을 쓰고 가에타노 도니제티가 작곡한 Buffa 희극 오페라다. 이 작품은 외젠 스크리브 대본으로, 다니엘 오버가 작곡한 「Le Philtra」 미약(媚藥)을 대본가 로마니가 각색해서 완성했다. 두 작품 모두 영국 켈트족의 古史(고사)에 나오는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그 원전이다. 오페라에서 아디나가 읽고 있던 그 책이기도 하다. 미약은 마신 후에는 하루를 못 만나면 병이 나고, 사흘을 못 만나면 죽게 된다는“죽음의 묘약”이지만, 도니제티의“사랑의 묘약”은 마시게 되면 사랑하는 여인이 자기를 사랑하게 된다는 그야말로 황당한 묘약이다. <사랑의 묘약>의 탄생은 이렇다. 밀라노의 스칼라극장과 경쟁 관계였던 카놉비아나 극장 지배인 알렉산드로 라나리는 차기 작품 연습이 2주일 앞으로 다가왔는데도 위촉한 작품이 아직 완성될 기미가 없자, 곧바로 한 달 전 스칼라극장에 올렸던 「Ugo,Conte di Parisi 파리의 백작 우고」가 실패한 도니제티에게 매달린다. 도니제티는 같은 볼로냐 음악원 선배였던 롯시니가 「세빌리아 이발사」를 13일 만에 작곡한 것을 두고 ‘게으름뱅이라서 그렇다’ 라고 말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을 정도로 워낙 다(多)작가였고 속필(速筆)이었다. 도니제티는 즉시 로마니에게 대본을 의뢰했고 로마니는 이미 스크리브의 「미약」을 바탕으로 써 놓았던 「Elisir」묘약을 각색하여 일주일 만에 대본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도니제티는 14일 만에 작곡을 완성한다.1)

워낙 갑작스레 작곡을 하다 보니 제대로 된 아리아가 없어 로마니와 의견 대립 끝에 부랴부랴 만든 아리아가 그 유명한 「Una furtiva lagrima」(남 몰래 흘리는 눈물)이다. ‘묘약을 다량으로 마셨으니 당연히 짝사랑하는 아디나는 이미 군대에 입대해 버린 자신을 생각하며 남 몰래 눈물을 흘릴 것이다’라는 다소 4차원 적 노래다. 그러다 보니 로마니는 6/8박자의 청승맞은 이 아리아가 부파 오페라에 어울리지 않는다면서 반대했었다. 작품 배경 시기는 19C 초 바스크 지방의 산골마을이다. 악보에는 L’azione si svolga in un villaggio nel paese de’Baschi (바스크지역의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이야기)라고 적혀있는데 그래서인지 프러덕션마다 제 각각 해석으로 이탈리아 또는 스페인으로 표시하고 있다. 이번 작품은 19C 이탈리아라고 표시하고 있다. 스크리브의 「미약」의 배경은 스페인 바스크지방이지만, 로마니의 사랑의 묘약은 이탈리아 바스키 마을로 배경이 바뀐다. 실제로 이탈리아 움브리아의 테르니 지역 오르비에토에 해발 165m의 Baschi(바스키)라는 작은 마을이 존재한다.

출처 : 이탈리아 오르비에토 관광 안내 홈페이지
비평 그리고 변명
이번 「사랑의 묘약」은 현대적으로 바꿨다. 그래서 프로그램 북에 연출가의 辯(변)을 실었으면 어땠을까 생각 해 본다. 관객들은 연출가의 의도를 읽으므로 작품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런 설명 없이 각색한 줄거리만 올려놓으면 처음 보는 관객들은 원래 그런 내용의 작품으로 인식하지 않을까? 나 역시 연출가 선생님의 사전 코멘트 덕에 무대를 짐작은 했지만, 무대는 2019년 국제 영 아티스트 페스티벌에서 사용한 손가락 모양의 하트 조형물과 세트들이 그대로 동원 되었다. 예산 부족의 이유로 연출가의 창의성이 발휘 되지 못하고 궁여지책으로 기존의 세트를 재활용하여 무대를 만들어야 하는 그 마음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까. 어떤 작품을 앙코르 공연 하는 것이라면 모르겠으나 평소 시즌 오페라와는 다르게 다양한 실험 작품들을 이슈로 해야 하는 페스티벌답게 특별한 공연을 기대했던 사람들에게는 아쉬운 무대가 아니었을까? 프로그램 북을 좀 더 얘기 해 보자. 관객들 중 자막이 있는데 깨알 같이 인쇄 된 대본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물며 영어로 된 대본까지 따로 올린 이유가 궁금했다. 차라리 그동안 오페라 축제에서 세 차례(2003년,2009년,2014년) 공연했던 「사랑의 묘약」 공연들을 소개하는 지면을 할애 했으면 어땠을까. 배역들의 캐릭터 변화도 보인다. 가난하고 순진한 농촌 총각이면서 아디나를 짝사랑하는 네모리노는 요즘의 트렌드인 가든 요리사로 변신 했고, 부자이면서 농장주인 변덕쟁이 아디나는 가든파티 주인공으로 변했다. 이 오페라의 가장 하이라이트 장면은 떠돌이 약장수 둘카마라 박사의 등장이다. 그의 신비롭고 화려한 등장은 이 오페라 최고의 명장면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영 아티스트 페스티벌에서 사용한 빨간 클래식 카에 캐리어만 추가 장착했다. 그런데 그 멋진 등장이 업 스테이지 하수에서 상수로 동선을 잡아 하수의 무대세트와 다운스테이지 센터에서 노래하는 합창단에 의해 시야가 가려져 아쉬움이 남았다. 그러나 경험 많은 둘카마라 역의 윤성우는 특유의 관록으로 관객의 시선을 자신에게 끌어당기는데 능숙했다. 이번 공연은 전체적으로 봤을 때 도니제티의 음악과는 좀 거리감이 있었다. 가사와 음악의 강약이 입체적이질 못했고 겹 점 4분 음표의 음가의 길이와 대비되는 점 16분 음표와 32분 음표, 스타카토와 악센트의 대비 그리고 짧게 형성된 레가토 하나하나가 전체 프레이즈로 연결되는 기법은 후에 베르디에게까지 영향을 줄 정도로 중요한 부분인데 간과 한 듯 했고 오케스트라 반주는 Slapstick(슬렙스틱: 부파에서 보여주는 과장된 몸짓이나 소리)을 받혀주지 못했다. 무대 위에 솟아있는 또 다른 하수 무대는 색 다른 아이디어였지만 포지션이 뒤에 위치하고 있어, 가수들이 아무 의미 없이 뒤쪽으로 찾아 올라가는 움직임은 오히려 극적 몰입을 반감시켰다. 특히 발랄한 연기와 미성의 소프라노 이경진은 고음에서 만큼은 피하고 싶은 위치였을 것이다. 그 무대를 자주 사용한 리릭테너인 권재희도 중창에서는 위치상 상대적으로 앙상블 벨런스가 깨졌다. 벨코레 역의 바리톤 김만수는 시간이 가면서 스스로 즐기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Dio오케스트라는 많은 오페라 반주 경험만큼 좀 더 안정적인 조직으로 발전되길 바라고 가수들과 함께 노래하면서 즐기면서 연주하는 단원들이 많아지기를 기대 해본다. 그러나 레치타티보에서 신디사이저가 내는 챔발로 소리는 너무 강했고 차라리 피아노로 연주 했으면 어땠을까? 대구 오페라 콰이어도 단원 상호간 교감을 나누며 안정적 연주를 하였지만 극의 현대적 재미를 더해주기 위한 뮤지컬 안무가 오히려 어색했다. 설상가상으로 주역들과는 달리 개인 의상을 입고 있어 대구 오페라의 민낯을 보는 것 같아 부끄러웠다. 조명 디자이너의 고충이 심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극 전개상 갈등의 정점인 2막의 장면6을 생략한 것도 아쉽다. 평소에는 들을 수 없고 볼 수 없는 장면을 볼 수 있는 페스티벌을 기대 해 본다.
출처 : 대구오페라페스티벌 공연프로그램 북
비평은 창조의 정수다 -오슨웰스-
오랜 전통위에 엄청난 잠재력으로 자생력과 추진력을 보여준 대구 오페라. 이번 공연을 보면서 그것을 하나로 묶는 선진 예술경영시스템과 작품의 질적 예술적 깊이를 고뇌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작품성이 완성되지 못했을 때의 부끄러움과 자괴감은 예술가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진정한 예술가라면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 채찍을 들 것이다. 그 채찍을 스스로 들게 하는 것은 건전한 비평이다. 내 후년이면 오페라 하우스가 20살 성년이 된다. 비판이 아닌 건전한 비평. 비평과 토론이 살아있는 오페라의 도시. 대구 오페라가 성년이 될 수 있는 유일한 출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