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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리뷰 #공연
대구시립극단 스탠딩 드라마 <The Play>
이완기 / 대구시립극단 제작기획
스탠딩 드라마 「The Play」란?
대구시립극단(예술감독 정철원)과 TBC가 공동 제작한 새로운 형태의 콘텐츠로 무대, 의상, 분장 등을 최소화하고 오로지 배우의 연기술만 극대치로 노출해 무대화하고 이것을 촬영하여 라디오와 TV로 송출하는 또 하나의 연극 공연이다. 형식으로는 시청자의 거실을 무대화, 소파를 객석화 하여 연극배우를 정말 가까이서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며 내용으로는 지친 시민들에게 희망과 힐링을 전하려한다.
스탠딩 드라마 「The Play」방송의 소개 장면 中
코로나에 움츠린 우리, 이제는 일어서야 한다!
대극장, 소극장, 영화관, 운동장 등 사람이 모여 함께 즐기는 것이 제재당해야 하는 시절 –시대라 하지 않겠다!- 이 왔고 또 적극 동참해야하는 사회의식이 마땅한 상황이다. 그럼 관객 앞에서 스스로의 존재 의미를 확인하는 연극인들은 무엇을 할 수 있나? 좌절이 깊고 길어지고 있지만 앉아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냥 시간을 보내자니 오금이 저리고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조바심과 불안에 떨고 있었다. 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대구시립극단 아닌가? 우린 전장에 위문공연을 가는 심정으로 이 시기에 적절한 무언가를 해 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럼 대구시립극단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은 실행의 시작점만 늦출 뿐이다. 일어서야 할 때다.
스탠딩 드라마 「The Play」방송의 인트로 中
시민들에게 힐링과 희망을!
대구시립극단의 역할을 더 적극 찾아보자는 원론에 동의하며 예술감독 포함 차석 이상의 단원 7명이 그리 익숙하지 않은 화상회의를 열었다. 재택근무명령으로 모일 수가 없었다. 이 어설픈 화상회의에서 기발한 아이템이 나올리 만무했다. 그 와중에 예전 아이템인 오디오북이 비대면 콘텐츠로 어떠냐는 강석호 차석의 한마디가 이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였다. 기왕이면 살아있는 이야기를 담자는 의견에 공모를 열어 작품을 찾기로 했다. 드디어 시민들에게 희망과 힐링을 전할 새로운 방법을 찾은 것이다.
새로운 가능성
하지만 단순히 mp3 파일을 제작하여 배포하는 것만으로는 이 작업의 효과를 키울 수 없다는 예상에 무대가 아닌 적절한 플랫폼을 찾기로 했다. 우리의 유튜브 구독자 수는 무의미한 숫자이기에 최후의 수단 또는 보조수단으로 두고 라디오 송출을 목적으로 방송과 접촉해 보기로 했다. 우리의 제작의도와 오디오북이라는 콘텐츠에 TBC 황재섭PD는 엄청 좋은 기획이라며 화답했고, 김실화 국장에게 보고한 뒤 TV로도 방송하자는 큰 제안을 다시 해 왔다. 하지만 우리는 예산 여건이 그리 여유롭지 못하였다. 머뭇머뭇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황PD는 방송제작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며 빨리 시작하자고 했다. 이제 달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뽀얀 곰탕 국물 같던 앞길이 갑자기 밝아진 것이다.
대구시립극단 단원 창작프로젝트
한편, 시립극단 단원들은 여전히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움직였다. 이 프로젝트는 2020년에 새로 기획되어 단원들에게 엄청난 부담을 주었다. 오로지 단원들이 스스로 쓰고 연출하고 연기하여야만 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정기공연은 그대로 하고 남는 시간을 모두 부어 이 미션을 완수해야했다. 작년에는 세 번의 프로젝트에 무려 10개의 단막극이 무대에 올랐다. 이에 추가되어 공모전에서 선정된 6개의 작품이 스탠딩 드라마 「The Play」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설상가상이었지만 달려야 했다.
공모 – 시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2020년 9월 16일 ~ 23일
지친 시민들에게 희망과 힐링을 전할 수 있는 작품이라며 공모전 제목을 달았다. 형식에 맞추어 희곡을 쓰는 작가들의 참여를 유도함과 더불어 일반 시민이 라디오에 사연 보내듯 자유롭게 써도 되는 분야로 나누어 공모를 열었다. 총 97편의 작품을 심사한 결과 희곡 4편과 사연 2편이 선정되었다. 작가들과 협의 후, 단원들이 작품을 공연에 더 어울리게 수정하는 길고 어려운 작업이 이어졌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깜빡깜빡」, 「당신의 베를린」, 「자취방 손님은, 어머니」, 「현수막 비행기」, 「거름에서 피어난 사랑」, 「친구 같은 마스크」라는 6편의 작품이 시민들에게 희망과 힐링을 전하기 위해 탄생하였다.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단원들은 꽉 짜인 시간계획, 넘쳐버린 연습으로 모두 지쳐갔다. 상반기를 떠내려 보낸 우리는 행군에서 뒤쳐진 후미그룹이 선두를 따라잡으려는 듯 달릴 수밖에 없었다. 오전 신체훈련과 정철원 예술감독의 부임 후 첫 작품인 정기공연 셰익스피어의「십이야」연습을 마친 후 점심식사를 하고 시작되는 스탠딩 드라마 「The Play」연습. 작품 수정과 연습이 동시에 이루어져야하는 작업이기에 시간이 모자라는 힘든 상황이 매일 반복되었다. 하지만 대구 시민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맡은 바를 열심히 해 낼 뿐인 것이다. 묵묵히 땀만 흘려준 우리 배우들이 그저 자랑스럽고 고맙기만 할 뿐이었다.
드디어 촬영. 2020년 11월 10일 ~ 12일
황재섭PD는 연극에 경험이 있는 배민주PD를 이 작업에 동참시켜 전문성을 확보했다. 8대의 카메라는 배우들을 담기에 여념이 없었다. 공연은 미니멀이 콘셉트였지만 촬영은 맥시멈이 콘셉트인 듯 했다. 하루에 10분짜리 두 편씩만 촬영했으니 촬영 분량이 어마어마했다. 편집이 걱정되긴 했으나 기대 또한 되는 것이 미안하기도 했다. 배우들은 관객의 박수를 먹고 자라는데 텅 빈 객석과 외눈박이 카메라를 향해 연기해야하는 생경함은 초겨울 썰렁한 극장 공기보다 더 쓸쓸하게 다가왔으리라.
작품 둘러보기 – 스탠딩 드라마 「The Play」
◆ 자취방 손님은, 어머니
작_최민주 각색·연출_천정락 / 출연_백은숙, 김효숙, 이서하
“엄마, 이제는 엄마 그만두고 엄마도 엄마 인생을 살아.”
「자취방 손님은, 어머니」 사진_서영석
서울 근교 작은 자취방. 딸의 아침은 숙취로 매우 괴롭다.
누구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은 시간. 엄마가 연락도 없이 들이 닥친다.
그리고 이어지는 엄마의 충격선언!
“나 엄마 그만둘래. 나도 내 인생을 살 거야.”……
가족의 관계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시도가 참신한 작품으로 눈물과 웃음을 자유자제로 연기하는 백은숙(수석단원)의 연기가 돋보이며 언뜻 철없어 보이지만 속 깊은 내면연기를 보인 이서하의 연기도 발군이다. 연출은 가능한 한 원작을 살리되 연기자가 돋보일 수 있게 구성한 점이 미덕으로 보인다.
◆ 깜빡깜빡
작_서수아 각색·연출_김재권 / 출연_김경선, 김정연, 황승일
많은 걸 잊어버리면서도 절대 잊지 않는 자식사랑
깜빡깜빡해도 함께 하는 두 할머니의 우정
「깜빡깜빡」 사진_서영석
코로나로 면회가 금지된 치매 병동.
김복자 할머니는 아들이 간절히 갖고 싶어 했던 장난감을 사주기 위해 탈출을 시도한다. 그런 복자를 도와 망을 보는 조말순 할머니. 하지만 간호사에게 병동탈출 계획은 들키고 마는데… 과연 무사히 병동을 탈출하여 64년생의 아들을 만날 수 있을까?
웃음과 감동이 교차하는 대중성이 충만한 작품이다. 또한 배우들이 참 고마운 작품이다. 아름다운 배우들이 분장도 없이 노역을 소화 하려니 못생겨 보이는 표정도 마다하지 않고 열연을 펼쳐주어 또 다른 감동이었다. 김재권 연출은 감동을 웃음 속에 숨겨 잘 전달하였다.
◆ 현수막 비행기
작_김도영 각색·연출_김동찬 / 출연_강석호, 김명일, 김채이
현수막으로 날개를 만들어 하늘을 날고자 하는 노인을 통해 인간의 도전과 유쾌한 꿈을 엿본다.
「현수막 비행기」 사진_서영석
노인이 바느질을 하는 어느 작은 병실.
노인의 병실로 의사가 회진을 온다. 둘은 한때 사제지간이었고, 이제는 제자였던 의사의 병원에서 여생을 보내는 중이다. 의사에게 노인은 치밀하고 현명하고 유능한 의사였지만 현재는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뱉고 의식은 몽롱하고 쇠약해져만 가는 어린아이처럼 비춰진다.
연극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작품. 현실 같은 상황 속에 비현실적 인물을 투입해 인간의 이상향을 비춘다. 철학적인 질문과 현실적인 대사가 교차하는 장면이 좋다. 김동찬(차석단원)의 담백한 연출로 각 인물의 개성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 당신의 베를린
작_조은정 각색·연출_김재권 / 출연_박상희, 김재권, 박찬규
인생의 진정한 목적지는 무엇인가? 우리가 꿈꾸는 곳은 정녕 어디일까?
「당신의 베를린」사진_서영석
베를린이라는 장소를 두고 손님과 영화티켓 판매원의 대화를 담은 이야기. 서울역에서 베를린에 가려는 손님이 엉뚱하게 역 위에 위치한 영화관에서 티켓을 사려고 한다. 그곳에서 베를린영화제를 꿈꾸며 영화티켓을 팔고 있는 판매원을 만나는데…
가장 난이도가 높은 작품. 보기에도 만들기에도 어려운 작품이었다. 마치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는 듯 했다. 정서적 공상을 묘하게 풀어낸 독특한 작품이다. 박상희와 박찬규의 호흡이 아주 돋보이는 작품이다.
◆ 친구 같은 마스크
작_김희아 각색·연출_김동찬 / 출연_김채이
우리는 더 단단하고 강해져 가는 중이라 생각합니다.
내년에 이렇게 말하게 되겠죠. 작년 참 힘들었는데 우리 정말 잘 이겨냈다, 그지?
「친구 같은 마스크」 사진_서영석
난 태어날 때부터 얼굴의 반이 붉은 색 점으로 물든 채 태어났고 기억이 없는 어린 시절 버려져 보육원에서 자랐다. 어릴 때부터 놀림당하는 것이 부끄러워 어두운 곳을 죄인처럼 찾아다녔다. 그러다 스무 다섯 살에는 암선고까지 받게 되어 얼굴의 반이 사라져 버렸다. 놀림당하지 않고 상처받지 않으려고 늘 쓰고 다니는 마스크, 나에겐 친구 같은 마스크. 그런데 느닷없는 코로나로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다니다니….
작가의 삶이 녹아있는 작품으로 몰입감이 좋은 작품이다. 불편하지만 마스크를 써야만 하는 지금 이시기에 마스크를 늘 써야만 했던 사람의 이야기가 가슴 깊이 감동으로 전해진다. 8분 남짓의 독백을 소화한 김채이 배우의 노력이 얼마만큼 이었을까 하는 짐작은 기획자에게 고마움 이상으로 다가온다. 아울러 신파로 가지 않고 담담함으로 더 큰 울림을 전한 김동찬(차석단원)의 연출도 특별했다.
◆ 거름에서 피어난 사랑
작_허필은 각색·연출_천정락 / 출연_최우정
두려움 속에서도 피어나는 희망은 분명 존재한다.
거름 속에서 피어나는 꽃이 있기에 우리는 계속 정화될 수 있는 게 아닐까.
「거름에서 피어난 사랑」 사진_서영석
평소 관심을 가지고 있던 여성과 첫 데이트. 하필 그날 일하던 가게에서 전화가 걸려왔는데 내가 카운터를 볼 때 코로나 확진자가 다녀갔단다. 유달리 조심스러워하는 성격의 그녀인데 하필 확진자의 접촉자가 나라니! 정말 내가 코로나에 걸린다면? 나 때문에 그녀와 그녀의 가족들도 코로나에 걸린다면? 그녀는 날 평생 원망하며 살겠지? 우리 사랑은 이대로 끝나는 건가….?! 코로나는 다행히 음성이 나와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그 일이 있어 우리의 사랑은 시작됐다.
누구나 한 번은 겪거나 상상해 봄직한 이야기로 매우 친숙하게 다가왔다. 배우의 독백만으로도 장면이 연상되는 매우 현실감이 뛰어난 작품이었다. 익살스러운 최우정의 연기가 코믹하면서도 힘이 있었다. 모노드라마로 10분이 넘는 작품을 견인하기 위해 불면의 밤이 많았다는 소감을 들었다.
OSMU
이렇게 제작된 스탠딩 드라마 「The Play」는 1. 희곡집으로 2. 라디오로 3. TV로 4. 유튜브로 5. USB에 담겨 다양하게 활용되었다. 앞으로도 시각 장애인들을 위한 음원 배포 등 또 다른 용처를 찾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구시립극단은
대구시립극단이 펴 낸 『창작단편 희곡집』의 소제목인 ‘2공2공, 미래도 막은 오른다.’라는 표현은 연극인들이 오래도록 들어 온‘그래도 막은 오른다.’라는 말을 조금 바꿔 보았다. 절대 무대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희망과 다짐을 담았다. 대구시립극단은 언제나 그랬듯 시민들을 위해 열심히 막을 올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