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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공감 #기고
농촌과 예술가가 함께 살아가는
예술가 ‘一村맺기’프로젝트
신동우 / (사)인디053 기획사업팀장, 예술의성협동조합 이사장
경운기 타면서 예술 하고 싶은 청년예술가 어디 계세요? 라는 슬로건으로 예술가와 시골 마을이 관계를 맺은 지 6개월이 지났다. 6개 마을에 각자 한 달에서 넉 달까지 연극, 무용, 영상, 미술, 사진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모여 마을 주민들과 살았다. 함께 식사도 하고, 술도 마시며 모내기부터 황금 들판을 넘어 추수 때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평생에 붓을 만져본 적 없는 평균 나이 80의 어르신들과 예술가가 함께한 이야기다.
1. 예술가, 의성군을 만나다.
의성군은 인구소멸 1위라는 불명예를 가지고 있다. 이대로면 곧 지도상에 의성군이 사라진다. 이는 오히려 청년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했다. 의성군은 청년들이 정주 가능성을 모색했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예술가 일촌맺기 프로젝트는 의성 살아보기 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되었다. 현재 전국 각지에서 다양하게 진행되는 청년의 한달살이를 의성군에서 진행한 것이다. 다만 다른 지역과의 가장 큰 차이가 바로 이 예술가 일촌맺기 프로젝트이다.
전국 시군구 인구소멸위험 지수[사진=한국고용정보원]
2. 예술가 일촌맺기 준비하다.
예술가 일촌맺기 프로젝트는 촌수를 개념인 一寸과 동음이의어인 一村으로 마을과 예술가가 더욱더 가까운 관계를 만든다는 뜻으로 네이밍 되었다. 코로나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는 4월 한 달간 의성군 서부권역(안계면 일대)에 마을 이장님을 만나고 사업을 설명하며 작가들의 주거 공간을 찾았다. 이 기간 동안 시골의 많은 빈집과 사용되지 않는 공간을 알게 되었다. 공간과 함께 주민과 이장님의 관심이 높은 지역을 중심으로 6개의 마을을 선정했다. 어떤 마을은 이전 부군수님이 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집을 내주셨고, 낙동강이 한눈에 보이는 마을에서는 공동시설인 건강 쉼터를 내주시기도 하셨다. 수리와 도배, 집기 등을 채우며 예술가들이 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의성군의 청년 기준인 만 45세 이하의 청년예술가를 2주간 모집했고 미술, 연극, 무용, 영상, 사진, 문학, 섬유공예, 마술, 공연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신청했다.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으로 서류와 인터뷰 심사를 진행했고, 마을의 특성과 예술가의 활동 계획서를 토대로 매칭하여 총 18명의 예술가를 선정했다.
현재 각 지역에서 이뤄지는 청년 한달살이와는 다르게 예술가 일촌맺기 프로젝트는 각 예술가가 마을에 들어가서 실제로 마을 주민들의 공동체 속에 살아보며 정주 가능성과 마을을 기반으로 예술 활동의 기회를 찾고 문화적 가치를 만들어 갈 기회도 찾아보는 사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인 레지던시 프로그램처럼 개인작품을 위한 금전적 지원과 비평, 작품전시를 지원해 주지는 않았다. 대신 청년들의 정주 여건을 마련하는 살아보기 사업이기 때문에 각 예술가에게 마을 안에 집과 공과금, 소정의 생활비를 지원했다. 그리고 입주 조건으로 마을주민과 문화예술프로그램 운영이다. 문화프로그램의 방식은 주민 대상 프로그램이거나 주민과 함께 마을 공동작품을 제작하는 방식이다. 프로그램 참여 시간은 최소 6시수로 매주 2시간씩 3주 정도의 시간으로 주민과 만나기를 바랬다. 이는 예술가가 주민공동체의 일환이 되기 위한 최소한의 시간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마을과 예술가의 만남을 시작했다.
예술가 일촌맺기 모집포스터
3. 예술가, 주민을 만나다.
오리엔테이션이 있었고 매월 작가들이 마을에 들어왔다. 짧게는 1개월에서 길게 4개월까지 주민들과 함께 문화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마을에 온 청년예술가는 주민과의 인사와 친목 도모를 위한 관계맺기 프로그램에 자신이 준비해온 문화예술프로그램에 관해 설명했다. 그러면 그 프로그램을 마을 분들과 논의하여 실제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을 최종 선정했다. 이런 과정들은 주민들이 직접적으로 활동에 참여하고 공급자와 수혜자 형태의 프로세스를 바꿔보고자 했다. 마을 상황에 따라 작가들이 준비해온 방법들이 유기적으로 변화였다.
서제1리-박주은 예술가와 벽화 그리기
모흥3리-밀양아리랑에 맞춰 박도운예술가와 한국무용 수업
(영상) 모흥3리-밀양아리랑에 맞춰 박도운예술가와 한국무용
주민과 함께 그림을 그리고 싶은 작가는 주민들의 요구에 벽화를 진행했고, 마을에 내려오는 노래로 한국무용을 하고 싶은 예술가는 80 넘은 어르신들이 일어서는 것이 힘들다보니 서서 춤을 출 수 없으니 앉아서 진행하며 영상으로 제작하였다. 넉 달 동안 마을에서 주민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글을 쓴 작가는 19금을 넘어 79금(?)의 내용으로 인해 진땀을 흘리기도 했다.
옥연1리-백한결 예술가와 한국무용 수업
위양2리, 서제1리 권은미예술가와 로프작품 전시
생송3리-비행기팀과 연극 공연
준비해온 수량보다 훨씬 많은 작품을 만들어 재료를 추가로 구매해준 일이 부지기수였다. 6개월이 지난 지금 주민들이 만들어 낸 작품만 200점이 넘었다. 하지만 작품의 수보다 평생 전시장도 한번 가보지 못한 평균나이 80의 어르신들이 청담동 갤러리에서 전시도 진행했으며, 함께 벽화도 그리고, 춤추고 노래했다. 이제는 다리가 길어 보이게 사진 찍는 법을 배웠다며 좋아하기도 했다. 연극관람보다 연극공연을 먼저 해보는 특별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작가가 만들어주고 떠난 마을회관 내 전시장을 활용하여 마을 주민이 직접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이 모든 게 6개월간 마을에서 이뤄진 일이다. 예술 활동을 매개로 새롭게 마을의 활력을 생긴 것이다.
김민정 예술가와 마을전시 및 잔치
서제1리-김지용 예술가와 청담동 갤러리 전시
예술가에게도 시골에서 직접 생활을 하면서 새로운 예술 활동과 사회적 역할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또한 자신의 예술 활동에 마을, 주민, 자연환경 등 농촌 어메니티를 활용하여 새로운 예술적 영감을 얻기도 하였다.
참여예술가 마을살이
예술가와 마을주민 두 주체가 만난 시너지는 말로 하기 어렵다. 서로 평생 다른 호흡으로 살아 온 두 주체가 몇 달간 같이 살면서 밥도 먹고, 술도 마시며, 함께 소풍을 가기도 했다. 떠날 때 서로 안으며 흘린 눈물이 모든 걸 말해줬다. 마을에는 젊은이가 필요했고 청년예술가에게는 정신적 쉼이 필요한 시점에 일촌맺기 프로젝트는 미약하게나마 두 자체를 엮었다.
4, 농촌에 새로운 길이 있다.
6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의성에서 활동하면서 농촌과 예술의 새로운 접점을 찾아볼 수 있었다. 이전의 농촌에서 예술은 마을환경개선 수준의 작품 제작이거나 평생학습 또는 읍, 면 단위의 주민 대상 프로그램이 중심이다. 이는 마을 경로당 내 이뤄지는 프로그램들도 건강체조, 웃음치료, 치매예방 등 생활문화로서 예술 활동이 아닌 단순 건강예방차원으로 진행된다. 이런 활동의 문제는 시간으로 진행되는 일회성이며, 단순 체험이다. 이는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이 부재한 단순한 예술적 학습구조의 방식으로 공급자와 수혜자의 방식이다.
예술가 일촌맺기 프로젝트는 이런 단순 방식을 벗어나 마을에 예술가가 직접 살면서 삶에 기반한 생활문화생태계를 만들고, 예술의 일상화를 통해 주민의 라이프스타일을 변화시키고자 했다. 예술가에게도 농촌이라는 곳이 정주 개념을 넘어 새로운 활동 근거지로서 삶의 터전을 찾아볼 수 있었다.
또한 실제로 농촌에 정착해 살지 않지 않더라도 라이프스타일로서 농촌 지향의 삶을 살고 싶은 예술가와 청년이 생겨나고 있다. 이들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농촌사회를 응원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예술가는 예술적 개입)을 통해 관계를 형성하고자 한다. 이번 2020 의성살아보기 예술가 일촌맺기 프로젝트는 예술가의 예술적 활동과 주민체험이라는 범위를 넘어 지역에 청년들이 살아가는 새로운 방법 모색과 정주개념을 넘어 관계인구와 교류인구로서 청년예술가가 의성과 관계 맺는 첫 발걸음이다.
(영상) 의성 살아보기_예술가 일촌맺기 프로젝트_세 달간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