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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리뷰 #공연·전시
탁월한 ‘결합’, 그리고 다층적 ‘해석 혹은 번역’의 물길
서론
정종구 / 대문 편집위원, 대구미술관 학예연구실교육팀장
최근 우리는 전혀 연관되지 않을 것 같은 기존의 대상이나 생각들을 연결하는 발상으로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창의적 활동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곳의 아이디어를 저곳에 결합하는 식이다. 문학적 접근을 바탕으로 시각예술가와 음악가가 함께하여 부산 도시에 관하여 흥미로운 해석을 펼쳤던 ‘2020 부산비엔날레 – 열 장의 이야기와 다섯 편의 시’가 그러했고, 그리고 회화뿐만 아니라 음악, 문학, 고고학, 영화 등 다른 장르와의 결합을 통해 실험적인 시도를 보여주는 대구미술관의 ‘제20회 이인성미술상 수상작가 조덕현전’이 그렇다. 특히, 조덕현전 전시구성의 마지막 작품인 ‘음의 정원’은 자연환경을 포괄하는 시각예술과 윤이상의 음악이 함께하며 관람객의 입체적 상상을 자극한다. 이처럼 우리의 공감각적 감성을 충만하게 이끄는 탁월한 결합과 다층적인 해석 혹은 번역의 물길들을 이글에서 다시 되새겨 기억해보자.

2020 대구오페라축제 출품작, 댄스오페라 ‘카르멘’이 대구오페라하우스와 무용단체인 카이로스댄스컴퍼니 합작으로 9월 25일 무대에 올랐다. 성악가들의 음악적인 완성도와 무용수의 에너지 넘치는 춤, 연극적 요소가 더해져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을 현대무용으로 해석한 작품이다. 또 8월 25일부터 11월 15일까지 개최한 대구예술발전소 기획전시, ‘글리치&비주얼아트-팬데믹’은 글리치 음악과 시각예술이 결합하는 협업이다. PROLOGUE, PART 1~3, EPILOGUE로 구성된 연극구조의 이 공연전시에는 각 PART의 시각예술과 그 작업의 해석, 번역에 관한 15분간씩의 다양한 글리치 음악이 함께 한다. 그리고 지난 10월 17일부터 10월 25일까지 무대에 오른 봉산문화회관과 상주단체 지오뮤직의 기획공연 ‘유산게임’은 개념미술과 연극을 세심하고 주의 깊게 결합한다. 신체의 한계를 활용하는 이건용 미술가의 ‘신체드로잉’ 작업에 대한 해석을 미술관이 아니라 공연장에서 만나는 새로운 번역이다. 또한 이 연극무대에는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는 대구미술가의 작품을 매번 다르게 등장시켜 좀 더 견고한 결합을 실험하는 연출도 흥미롭다.

강약에 상관없이 이어지며 지속하는 물길처럼, 지금의 이러한 결합과 다층적 해석 혹은 번역 등의 활동은 꼬리에 꼬리를 물듯이 이어지거나 번져나갈 가능성이 짙다. 아마도 이러한 확산은 문제를 해결하려는 새로운 예술실험의 운명일지도 모른다. 이 같은 활동을 산출해냈던 기획자, 예술 감독, 연출가에게 물어보자. 어쩌자고 이렇게 탁월한 결합을 생각하셨나요?

댄스오페라 CARMAN
김영남 / 카이로스댄스컴퍼니 대표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대구시립무용단에서 무용수로 만 10년을 보냈다. 몇 번의 안무자가 바뀌고 정기공연부터 행사, 해외공연까지 다양한 공연과 안무스타일, 경험을 쌓을 수 있었던 값진 시간들이였다. 시 소속의 무용단이니 10년 동안 여러 편의 오페라에 참여를 하였다. 그러나 그 당시 내게 오페라 공연을 한다는 것은 잠시 출연하고 하염없이 기다리며, 몇 번의 리허설을 참여해야만 하는 참여하고 싶지 않은 공연 1순위였던 걸로 기억되었다.
무용단을 그만두고 독립적으로 공연활동을 하던 중 우연한 기회에 오페라 제작에 1달 동안 참여하게 되었다. 악보를 하나하나 짚으며 장면 장면을 만들고, 그렇게 4주가 흘러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는 것에 참여하고 나니 오페라도 내가 좋아하는 무용처럼 매력 있는 장르라고 느끼게 되었다. 오페라에 관심을 가진 것은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재미있다고 생각되니 관심이 가져지고 공연을 보러 가게 되고, 관련 서적을 읽게 되었다. 또한 여행 삼아 해외에 유명 오페라 페스티벌이나 오페라 극장을 찾아 공연을 관람하곤 했다. 특히 해외의 잘 알려진 현대무용단이 오페라를 현대무용으로 만든 작품들을 인상 깊게 보았다. 나도 그러한 작품을 한번 만들어 보았으면 하는 막연한 생각도 하곤 했다.

어김없이 한해를 마무리 할 때쯤이면 다음해 사업을 위한 서류쓰기가 한창이다. 우연히 대구 오페라 재단에 창작 소오페라 공모를 보게 되었고, 오페라를 현대무용으로 옮긴다고 머릿속으로만 그려보았던 일을 글로서 옮겨보게 되었다.
20살 때부터 대구의 이곳저곳에 있는 합창단에서 합창 안무를 수십 번 했었는데 이것은 좋은 경험으로 남을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 그 중 한 곳에서 합창단 반주자와 1년 반을 주 2회 씩 함께 근무하며 친하게 지냈는데, 합창단을 그만둔 그녀는 이태리로 오페라코치 공부를 하러 떠났다. 우리는 간간히 연락하다가 공부를 마치고 대구로 다시 돌아온 그녀와 재회를 했다. 반주자에서 오페라 코치가 된 그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공모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결과의 불확실성을 안고 함께 작품을 구상하게 되었다. 시작부터 쉽지는 않았다. 보지 않은 것을 머릿속에 그리고, 상상만 했던 것을 상대방에게 설명하고 동의를 구해 구현시킨다는 것이 쉬울 리가 없었다. 우리는 충분히 서로 알고 충분히 이야기 나누었다고 생각했지만 예산 편성에 들어가니 시각을 더 중시하는 나는 조명과 무용수들과 의상에, 청각을 더 중시하는 그녀는 음향과 오페라 가수들에 무게를 두었다. 우리는 각자의 전공분야에 대한 특징과 장·단점에 대해 존중을 담은 많은 대화의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 봐도 현대무용으로 오페라를 표현하는 특이한 방식이 선정될지 의구심을 가졌지만 그러한 점들을 긍정적으로 본 극장에서 선정되어 글로 옮긴 작업들을 무대에서 구체화 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런데 시작도하기 전에 음악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에 관한 문제로 작품에 대한 삽도 못 뜬 채 1달이 넘게 지나갔다. 피아노 반주만으로 할 것인지, 오케스트라 녹음을 할 것인지, 미디 작업으로 만들 것인지… 여러 의견이 분분했고, 나는 많은 회의와 그 분야 전문가들에게 여러 의견을 물어본 뒤 그것들을 바탕으로 어떤 방식으로 할지 결정해야만 했다. 전문가들의 의견도 그러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작품에 맞는 음악을 작곡해서 꼭 쓰고 싶은 부분이 있었다. 내가 처음 카르멘을 보았을 때 인상 깊었던 부분들, 그 장면들만큼은 현대무용이 가지는 매력으로 표현해 보고 싶었다.

댄스오페라카르멘은 원작소설 프랑스의 작가 프로스페르 메리메의 작품을 바탕으로 만들었는데 소설에 묘사된‘한여름에도 통풍이 되지 않는 좁은 작업장 안에서 500명 쯤 둘러앉아 담뱃잎을 말고 있는 담배공장의 최하층 여성 노동자들, 삶의 무게에 짓눌려 감정이 먼저가 되어버린 이들의 시시비비를 가릴 수 없는 싸움, 바르고 정의롭게 살아가려는 한 남자의 고뇌 가운데서도 자신의 순수한 사랑을 지키려는 노력, 그 사랑이 증오와 질투, 분노로 변하여 결국 죽음이라는 파국으로까지 몰고 가는 그때의 감정들’이러한 부분들은 온전히 현대무용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하여 40년을 함께 지낸 친동생에게 작곡과 음악작업을 의뢰했다. 태어날 때부터 함께 있어 서로가 원하는 부분을 잘 이해하고는 있었지만, 1870년대에 만들어진 음악과 2020년에 만든 음악 사이에 이질감을 최소화 하는 건이 관건이었다. 악보 컷팅 초안을 짜고 댄스오페라에 맞는 무용수들과 가수들을 캐스팅하고 장면들을 노트에 그렸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오페라 카르멘은 스페인 남부의 안달루시아 지방의 집시가 주인공으로 이국적인 지방색이 도드라지는 작품인데 나는 이번 작품의 의상을 한국적 색채가 묻어나는 한국무용의 치마를 베이스로 디자인했다. 현대무용을 전공했지만 평소 한국무용을 좋아한 것도 있고, 집시들의 춤이나 투우사의 망토를 치마를 이용하고 싶었다. 현대무용이라는 용어가 동시대적인 것을 뜻하는 것이니 한국무용과 현대무용의 경계가 흐려진 것은 오래전 일이고, 250년 전의 오페라를 현대에 맞춰 각색하는 것도 동시대적인 작업이 아닐까 생각을 했다. 이쯤 되니 춤을 바탕으로 한 오페라, 한국적 의상, 작곡한 현대음악…. 상상하는 장면들은 즐거웠지만 너무 이상한 작품이 나오는 것이 아닐까? 스스로도 염려스러웠다. 사실 이제까지 내가 만들어온 작품들도 장르와 장르를 섞어놓은 융·복합적인 공연이 대부분이었다. 판소리와 현대무용, 무용수가 대사를 하거나 배우가 등장하는 등 늘 인간의 언어가 등장했고, 디제잉이나 댄스스포츠, 요가 등이 등장하고, 움직임 또한 현대무용과 한국무용을 섞고, 실용무용이라고 불리는 여러 춤들을 조합한 움직임들이 많았다. 때에 따라 과한 의상과 현란한 조명, 여러 소품들을 이용한 춤들로 때로는 좋다는 평도 들었지만 여러 가지 이유들로 좋아하지 사람들로부터 악평도 많이들은 터라 조심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새로운 것을 한다는 것만큼 창작의 재미를 주는 것은 없을 것이다. 서로 다른 분야의 이들이 모여 서로의 장르를 이해하며 또 다른 것을 창조해 낼 때 연습시간은 웃음과 활기가 떠나지 않았다. 낯선 것들이 만나 함께 새로운 길을 모색할 때 충돌 또한 피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자신만의 것이 또 누군가의 것과 섞여 다른 것으로 변했을 때, 그때의 기쁨은 과정의 스트레스를 상쇄하고도 남기에 충분하였다.

다른 장르와 함께 작업을 할 때 가장 필요한 것은 그 장르에 대한 이해인 것 같다. 타 장르에 대한 이해. 그것은 그 분야에 대한 지식일 수도 있지만 그것 외에도 그 장르를 하는 사람들의 특징, 표현 방식, 그 분야가 무대화를 진행할 때의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존중을 전제로 한 이해로 함께 작업을 한다면, 음악회 때 같은 무대에서 잠시 춤을 춘다든가 춤을 라이브로만 연주한다든지 하는 일회성 무대가 아닌 장르의 융합이라고 생각한다. 조연출의 사인에 발성을 중요시하는 오페라 가수들은 기존 오페라와 달리 스스로 등퇴장 동선과 무용수들과의 타이밍 그리고 자신의 춤 동작까지 정확히 인지하고 외워야 했다. 무용수들 또한 댄스오페라 공연을 하고 있다는 것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나의 춤과 에너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역할과 표현이 더 중시되었으며 음악 또한 박자와 멜로디를 완전히 외워야만 했다. 무용수들은 주인공이 아닌 때로는 배경이 되기도 하고, 지나가는 행인이 되기도 하고 사물이 되기도 했다. 그때마다 에너지와 호흡을 달리 해야 했다.

좌) 1막 카르멘의 등장 | 우) 2막 카르멘의 유혹
4막 비극으로 가는 카르멘과 호세의 다툼
지난 겨울 첫 회의를 했었는데 봄이 지나고 여름이 지났다. 코로나19라는 특수성이 상반기 내내 공연업을 하는 이들을 무대와 멀어지게 했다. 그래서 더 많은 시간을 고민하게 되었고, 무대를 그리워하고, 연습에 열중한 듯하다. 2020년 봄 재난지역으로 선포된 대구답게 상황에 따라 공연장소도 2번이나 바뀌게 되었고, 공연날짜 또한 번복되는 대혼란을 겪었다. 장소가 변한다는 것은 무용 동선과 연출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친다. 날짜가 변한다는 것은 연습한 출연진들이 출연하지 못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담보로 한다.
결국 멀쩡한 공연장을 두고 야외에 무대를 만들어 띄어앉기를 한 관객 50명만을 위한 공연을 하게 되었다. 준비한 스텝들의 노고야 말하지 않아도 짐작이 갈 것이다. 일회성 야외 행사가 아니라 야외지만 작품으로 관객들을 만나기 위해 많은 스텝들이 몇날 며칠을 고생했다. 그리고 야외에서 1주일간의 리허설로 컨디션 난조를 겪은 모든 출연진들의 고생. 바람 부는 야외에서 생소한 오페라는 보는 관객들. 참, 이상한 공연이다. 그렇지만 우리 모두는 몇 달 동안 준비한 공연을 간절한 마음으로 이틀 동안 잘 치러냈다. 리허설 기간 동안 비가 내려 대피하기도 했고, 공연 날 비 예보가 있어 몇 달간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까 전전긍긍하기도 했다. 다행히 맑은 날씨에 이틀간의 공연이 끝났다. 처음 어색한 인사를 주고받으며 작품을 시작했던 출연진들은 어느새 너무나 가까워져 있었다. 작품을 진행하며 중간 중간 터져 나왔던 불평들도 어느새 에피소드로 둔갑하여 웃으며 이야기 하고 있었다.
공연 시작 전 오페라하우스 앞에 마련된 무대
사회는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고 있다. 20년 전 내가 대학을 졸업할 때 무용을 전공한 이들에게 직업은 무용단에 입단한다거나 무용학원을 한다던가하는 아주 한정적 이였다. 그 동안 초, 중고교 마다 방과 후 교실도 생기고 뮤지컬, 연극, 합창, 오페라, 음악회나 각종 축제에 무용 엄밀히 말하면 움직임, 안무는 중요한 것이 되었으며, 일반인들도 발레나 실용무용을 많이 배우게 되었다. 다양한 무용공연 혹은 무용을 접목한 공연도 많아졌고, 공연 관객들은 다양한 공연을 더 낮은 연령대에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기술과 매체의 발달로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다양해지다 못해 확장되어 한정 지울 수 없을 정도이다. 팬데믹 상태에 있는 2020년은 공연의 영상화 작업이 가속화 되는 전환점이 되었다. 이러한 때에 장르와 장르, 기술과 예술을 결합한 공연은 더욱 요구되어지며, 이러한 융·복합 공연은 더욱 많이 생겨날 것이다. 더군다나 지역의 인재 유출이 도드라지는 이 때에 지역의 많은 예술가들에게 이러한 창작 방식으로 도출한 새로운 공연은 새로운 시대의 관객들을 위한 하나의 돌파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공연이 끝난 후 기념촬영
글리치 앤 비주얼아트 <팬데믹>展
임상우 / 대구예술발전소 예술감독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영화 <콘텍트(Contact)>의 원작 소설을 썼던 미국의 천문학자이자 물리학자 칼 에드워드 세이건(Carl Edward Sagan)은 1973년 화성에 대한 ‘테라포밍(Terraforming)’을 제안했다.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을 지구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환경을 지구처럼 만들어 인간이 살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2006년, 미래학자 다니엘 핑크(Daniel H. Pink)는 그의 저서 <새로운 미래가 온다(A Whole New Mind)>에 창조적, 독창적, 예술적 콘텐츠를 배경으로 하는 패러다임 ‘하이콘셉트’ 시대에 대해 주장했다. 대부분의 할리우드 영화는 하이콘셉트의 개념인 ‘~한다면’ 이라는 네러티브에서 시작한다. 그러한 하이콘셉트 영화들이 <아바타>, <쥐라기 공원>, <터미네이터>, <인터스텔라> 같은 영화다. 두 이론의 공통점은 상상력에서 출발해 수궁할 수 있는 이론적, 기술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지난 대구예술발전소에서 기획한 ‘글리치 앤 비쥬얼아트 <팬데믹>展’은 상상력에서 시작했다. “글리치 음악과 시각작가들이 공동 작업을 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가?” 이러한 기획의도에 부가적인 장치를 한 것이 새로운 공간의 해석과 설계다. 새로운 공간의 해석은 전시장 공간을 연극 공간 속으로 스토리와 함께 결합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전시가 아닌 ‘전시공연(展示公演)’으로 설명될 수 있다. 마치 공연 기획 및 제작 경험을 바탕으로 전시장을 공연장처럼 공간적 구조를 설계해 마치 공연을 보는 전시로 관객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테라포밍’ 같은 작업이다. 또한 글리치 음악이라는 장르와 시각예술이 결합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가를 철저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마치 시나리오나 희곡대본처럼 스토리텔링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최종 구조를 프롤로그, 파트 1~3, 에필로그 형태가 됐다.

팬데믹展 포스터
관객은 객석에 앉아 각 막의 변화과정을 보는 것이 아니라 전시공간에서 스스로 이동하며 각 막의 변화를 체험하는 것이다. 음악은 각각의 작품에 개별적인 음악이 오케스트라를 이루는 심포니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팬데믹 전시 전경
예술은 새로운 시도와 도전을 통해 발전하고 확장되어진다. 또한 예술은 공간을 통해 발표되고 대중을 만난다. 그 공간이 전시장이든 공연장이든 제 3의 다른 공간이든, 공간의 구조는 예술작품을 어떻게 감상하고 접근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다. 전시는 연극과 같지 않다. 그러나 전시의 효과나 기획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도구로서 연극의 구조와 공간은 상당한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전시장이라는 획일적인 공간해석에서 탈피해 새로운 공간적 개념을 결합해 ‘~한다면’으로 시작된 프로젝트가 ‘글리치 앤 비주얼아트 <팬데믹>展’이다. 글리치 음악과 시작예술의 만남은 콘셉트가 되고, 그 주제인 <팬데믹>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연극적인 구조와 공간적 해석을 설계한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하이콘셉트 개념의 일환으로 대구는 오페라, 뮤지컬, 음악, 현대미술, 현대무용 등이 다른 어느 도시보다 예술가들의 활동이 활발하고 새로운 콘텐츠의 생산과 발표가 끊임없이 시도되는 도시로서 하이콘셉트를 바탕으로 새로운 시도를 도전하기에 최적의 환경과 인적자원이 확보된 도시다. 앞으로도 서로 다른 장르의 전문가들이 협업해 융·복합 콘텐츠 생산의 전초기지 역할을 해야 한다. 대구예술발전소는 앞으로 새롭고 도전적인 시도를 통해 대구시민들에게 신선한 예술작품을 만날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극 <유산게임>
손호석 / 연출가
우선은 연극 「유산 게임」에 대해 소개를 조금 할 필요가 있겠다. 이 연극은 현대미술 중에서도 개념 미술을 소재로 하여 만들어진 작품이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현대미술 작가인 백화수는 세상을 떠나면서 자신의 유작을 가장 적확하게 해석하는 자녀에게 3천억 정도 가치가 있는 미술작품들을 유산으로 물려주겠다는 유언을 남긴다. 자녀들은 유산을 받기 위해 유작을 해석하려고 노력하면서 관객들과 함께 현대 개념 미술과 미술 시장에 대한 이해를 조금씩 넓혀 가게 된다.
현대 미술과 연극을 결합한 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이 작품을 쓴 것은 아니다. 시작은 개인적인 관심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현대 미술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고 전시를 관람하고, 책을 찾아서 읽고, 몇 작품은 소장도 하면서 미술과 가까워지게 되었다. 그러던 중에 이건용 작가의 신체 드로잉이라는 작업 방식에 크게 매료되었고, 이 개념을 가지고 연극을 만들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이왕에 현대 미술을 소재로 연극을 쓰게 되었으니 일반 대중들에게는 낯선 미술의 개념이나 미술 시장에 대해서도 조금 소개를 하면 의미가 있겠다고 판단을 하였다.
연극 「유산 게임」의 세트는 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개념미술 작가인 윤동희 작가가 미술 감독으로 참여하여 디자인 했다. 연극에서 가장 중요한 세트이자 소품은 백화수 화백이 남긴 유작이다. 이 그림도 윤동희 작가가 그렸다. 연극 내에서는 이 작품이 신체 드로잉 방식으로 그려졌다고 설정 되어 있다. 이건용 작가는 캔버스 옆에 서서 자신의 팔 길이만큼 붓을 휘둘러 흡사 하트처럼 보이는 작품들을 만들고 있다. 연극에서는 몸을 컴퍼스처럼 사용하여 원을 그리는 방식으로 조금 변형 하였지만 신체가 가진 한계만큼 어떤 모양을 그린다는 개념은 달라지지 않았다. 사실 일반 대중이 현대 개념 미술 작품을 보게 되면 ‘저런 건 나도 그릴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 단순하게 보이는 그림 속에 작가가 평생 고민해 온 철학이 녹아 있다. 연극에서는 자녀들이 작품의 해석을 위해 노력하면서 미술 속에 담긴 개념과 고민들을 관객들에게 소개하게 된다.

이건용 선생님 자택에서
올해 공연에는 특별히 우리 지역의 미술작가님들의 실제 작품을 연극의 소품으로 활용하고 그 작품세계를 간단하게 소개하는 기획을 하였다. 극 중 백화수의 딸인 백두리가 미술 작가인 친구의 작업실을 방문하는 장면이 있는데 거기에 실제 미술작가의 작품을 소품으로 활용한 것이다. 류주희, 박철호, 권기자, 장준석 등 총 8분의 작가 분들이 참여해 주셨다. 평소 교류하기 어려운 공연과 전시의 예술가들이 서로의 작업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작은 창구를 만들어내는 기회가 되지 않았나 자평해본다.
1) 권기자 작가님 | 2) 대표님과 김승현 작가님 | 3) 류쥬희 작가님
우리 공연을 본 관객들이 현대 미술에 대해서 전과 다른 흥미를 가지게 된다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이 작품을 만들었다. 왜냐하면 현대 미술이 가진 장점들이 우리에게 주는 좋은 영향들이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공연 쪽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현대미술로부터 받은 영향이 적지 않다. 새로운 시도에 가치를 부여하고 그 작가만의 특별한 아이덴티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는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하는 데 좋은 이정표가 되어 주었다. 시장이나 평단이 알아봐주지 않아도 일평생 묵묵하게 자신의 예술세계를 지켜 오신 작가님들의 모습에서는 어떤 구도자의 숭고함도 엿볼 수 있었다.
좌) 작업실 장면. 장준석 작가 | 우) 커튼콜하는 류채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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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지역에서 이런 시도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장르간의 협업이나 콜라보가 더 나은 방향이라거나 더 수준 높은 방식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공연 일을 하면 할수록 예술이 어떤 장르로 분화되어 있기 보다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엄격하게 장르를 구분하는 것이 오히려 부자연스러운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장르간의 경계가 사라져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인위적인 구분이 하나의 장애물이 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다. 더 많은 협업의 결과물들을 만나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