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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리뷰 #문학
지금 이 순간 내 곁에 있는 사람, ‘가족’에 대하여
김혜진의 『딸에 대하여』
강건해 / 계명대 문예창작학과 강사
지난달 말, 코로나19 상황과 미국 대통령의 대선 불복 사건 등 국내외 빅 이슈들이 뉴스를 장악한 가운데 한 방송인의 출산 소식이 이목을 집중시켰다. 사람들은 남편 없이 정자 기증으로 이뤄진 방송인 사유리의 임신과 출산, 그리고 앞으로 그녀가 이루게 될 가족의 형태에 주목했다.

어머니와 자녀만으로 구성된 가족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가족은 대부분 아버지의 부재나 상실을 전제로 하는 것으로, 그들의 공백은 어떠한 형태로든 가족 내에 잔존하며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방송인 사유리의 비혼 출산은 우리가 지금까지 봐온 가족의 형태와는 다르다. 그녀와 아들로 구성된 가족에게 아버지의 자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아버지는 생물학적 유전자를 제공한 기능적 역할 이상의 의미가 없다. 사유리와 그녀의 아들이 만든 가족은 지금까지 우리 통념 속에 규범처럼 자리하고 있는 ‘가족’의 형태와 의미에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김혜진의 소설 『딸에 대하여』는 제35회 신동엽문학상 수상작이다. 작가는 201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소설 「치킨 런」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2013년 『중앙역』으로 중앙장편문학상을 받았다. 여성 서사를 밀도 있게 다룬 『딸에 대하여』는 『82년생 김지영』 이후 다시 한번 여성의 이야기로 담론을 끌어냈다. 하지만 『딸에 대하여』는 여성과 퀴어라는 문제에 머물지 않고, 이들이 이루는 가족의 문제로 서사를 확장한다. 『딸에 대하여』는 우리가 알면서도 언급하기 꺼리는 ‘가족’의 형태와 의미에 대해 담담하게 질문한다.

주인공인 화자는 요양보호사로 일하는데, 그녀는 자신이 돌보는 환자들의 마지막을 지켜보며 그들의 살아온 과거와 현재를 연결 짓는 데 익숙하다. 그녀는 현재 자신의 삶을 둘러싼 모든 것을 지금까지 스스로 내린 선택의 결과물이라고 여기고 받아들인다. “내가 선택했으므로 내 것이 된 것들, 그것이 지금의 나”라고 믿는 그녀가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하나가 바로 그녀의 딸이다.

그녀의 딸은 여자를 좋아하고 여자와 함께 살고 있다. 그녀는 “다른 부모들은 평생 생각할 이유도, 필요도 없는 그런 문제를 던져 주고, 어디 이걸 한번 넘어서 보라는 식으로 다그치고 닦달하는” 딸에게서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삶이 부정당하는 느낌을 받는다. 그녀는 공부를 많이 한 자신의 딸이 “배우고 배우다가 배울 필요가 없는 것, 배우지 말아야 할 것까지 배워버린” 끝에 세상의 규범을 거부하고, 세상과 불화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성 정체성 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 지위마저도 불안정한 딸은 동성 연인과 함께 그녀의 집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그녀와 딸, 그리고 ‘그 애’와의 한 불편한 동거가 시작된다.

그녀는 남자를 만나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엄마가 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일에서 벗어나 있는 여성의 삶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너희가 가족이 될 수 있어?
어떻게 될 수 있어?
혼인 신고를 할 수 있어?
자식을 낳을 수 있어?”

“엄마 같은 사람들이 못 하게
막고 있다고는 생각 안 해?”

그녀는 사회에서 용인되지 않은 삶을 고집하느라 자꾸만 배제되어 가는 딸이 불안하고 두렵지만, 딸에게 진심을 전하지 못한다. 딸의 시선은 사회의 부조리와 폭력에 맞서느라 늘 외부를 향해 있고, 그러한 딸을 위태롭게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곁을 지키는 사람은 늘 ‘그 애’다. 그녀는 사려 깊고 다정한 ‘그 애’의 태도가 가족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선을 긋지만, 자꾸만 ‘그 애’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대화를 나누고 싶어진다.

그녀는 요양원에서 무연고 환자 ‘젠’을 돌보며 정서적 친밀감을 느낀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젠’을 집으로 데리고 와 마지막을 배웅하고 유가족이 되어 장례를 치르는 일련의 과정을 말없이 함께 지키는 사람 역시 딸이 아니라 ‘그 애’다. 그녀와 ‘그 애’ 그리고 ‘젠’이 함께하는 시간은 따뜻하고 희생적이며 배려로 가득하지만, 그들은 ‘가족’이 아니다. 그녀는 ‘지금 이 순간 내 곁에 있는 사람이 가장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면서도, 그들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것만큼은 용납하지 못한다. 평범하게 살 수 있는 삶을 놓아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딸에 대하여』는 혈연을 중심으로 한 가족관계를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몸이 아닌 마음을 나누어 가진 사람들 역시 가족일 수도 있지 않느냐고 묻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