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예술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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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예술의 힘 #중·장년 예술인
빈 국립음악예술대학교 한국인 최초 종신교수
피아니스트 이은주
황인옥 / 대구신문 기자
인간이 동물과 다름을 증명하는 종적 특징 중의 하나가 있다면 ‘꿈’을 가진다는 것이다. 인간은 꿈을 실현하는 과정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고 행복을 느낀다. 꿈은 생존 이상의 가치이며, 자아실현의 최종 목적지다. 대구 출신 피아니스트이자 오페라코치인 이은주(40)는 꿈을 현실로 만든 주인공이다. 그녀는 지난 8월 음악가라면 선망해 마지않는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 종신교수로 임명되며 인생의 새로운 장을 활짝 열었다. 그녀의 공식 직책은 부교수이며 본과 부교수 임용은 한국인으로서는 그녀가 최초다.
빈 국립음악예술대학교(이하 빈 국립음대)는 오스트리아 빈에 위치한 세계적인 명성의 국립 예술 대학교다. 뉴욕의 줄리아드 음대와 함께 세계 1, 2위를 다투는 음악의 성지와도 같은 대학으로, 해마다 세계 곳곳의 음악영재들이 빈 국립음대로 모여들며 그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세계적인 음악대학에 진학하는 것도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만큼 힘든 일임을 감안하면, 이 교수의 종신교수 임명의 의미는 짐작되고도 남는다. 이는 그녀의 성취에 찬사를 쏟아내는 이유다.
이 교수는 지난 6월에 공개채용 3단계에 걸친 심사과정에서 8명의 심사위원으로부터 모든 심사에서 최고점을 받으며 35명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종신교수로 낙점됐다. 도대체 그녀의 무엇이 빈 국립음대의 까다로운 심사기준을 통과하고 기라성 같은 경쟁자를 물리치며 최고점의 신뢰를 획득하도록 이끌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 그녀의 이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교수는 행보를 거듭할수록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그녀는 1995년 대구 경북예술고등학교 재학 중 유학길에 올라 오스트리아 마르가레텐(margareten) 음악학교에 재입학 하였다. 그리고 2006년 빈 시립음대 피아노과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2011년 빈 시립음대를 오페라 코치 석사 심사위원 만장일치 최고점으로 졸업했다. 이후 2013년 빈 국립음대에서 오페라 코치 최고 연주자 과정을 취득했다.
행보마다 최고의 타이틀을 놓치지 않았던 그녀만의 특별한 강점을 묻는 질문에는 그녀는 의외로 원론적인 답을 내놓았다. 바로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그녀는 “성실하게 자신과의 싸움을 잘 이겨낼 수 있다면 좋은 음악가로 성장하며 보람을 느끼는 삶을 살 수 있다. 나 역시 치열하게 자신과의 싸움을 감당해 냈다”고 대답했다. “자신을 믿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정석의 힘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하는 대목이었다.

1817년 설립된 빈 국립음대는 음악과 공연 예술을 위한 종합 예술 대학이다. 현악기, 피아노, 성악, 고음악, 실내악, 작곡 및 음악 이론, 지휘, 기악·성악·반주·실내악 피아노 등의 다양한 전공과목과 뮤지컬 무대 음악, 음악 교육학, 기악학, 호흡법, 음악 치료, 재즈, 음악 및 사운드 엔지니어링, 일렉트로 어쿠스틱 미디어 음악, 컴퓨터 음악, 전자 미디어, 현대 음악을 위한 타악기 등의 선택강좌를 운영하고 있다.
이 교수는 그 중에서도 빈 국립음대 지휘과 피아노 과목을 가르치게 된다. 빈 국립음대 지휘과는 빈 국립음대에 속한 커리큘럼 중에서도 세계 최고의 명성을 자랑한다. 빈 국립음대 지휘과가 배출한 구스타프 말러, 한스 스바로프스키, 아르투르 니키슈, 헤르베르트 폰 카라 얀, 클라우디오 아바도,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마리스 얀손스, 주빈 메타, 키릴 페트렌코 등 세계적인 지휘자들의 이름만 들어도 그 명성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사실 음악 전공자가 아니라면 피아노과가 아닌 지휘과 피아노는 생소할 수 있다. 혹자는 지휘과 피아노 과목을 음악대학의 피아노 전공보다 후순위로 보는 시각이 없지 않지만 이는 잘못된 편견이다. 빈 국립음대 지휘과 피아노 과목은 여느 음악대학의 피아노과 수업과 커리큘럼이 다르지 않을뿐더러, 어떤 면에서는 더 많은 분야를 연마를 요구받는다. 피아노를 통해 오페라, 교향곡, 실내악 등 많은 작품들을 분석하고, 내면화해야 하는 커리큘럼들을 마스터해야 한다. 이 교수는 지휘과 학생들에게 피아노 작품이라는 미시적인 작품 해석을 넘어서는 거시적인 이론과 지식을 가르친다. 작품에 담긴 작곡가의 의도부터 오페라, 교향곡, 실내악 등을 아우르며 보다 통합적인 시각을 기르도록 교육한다.
이 교수가 이처럼 까다로운 지휘과 피아노 교수로 발탁되고, 학생들에게 전방위적인 음악교육을 할 수 있게 한 기반은 그녀의 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에 있다. 그녀는 학부에서 피아노를 전공하고 오페라 코치로 석사와 최고연주자과정을 졸업했다. 피아노에만 집중할 경우 좀 더 빠른 시간 안에 승부수를 띄울 수 있지만 그녀는 조급해하지 않고 전방위적인 역량을 갖추는데 시간을 더 할애했다. 이러한 선택에는 음악적인 깊이와 완성도를 향한 그녀의 남다른 애착이 숨어 있다.

피아노를 전공하고 오페라 코칭으로까지 음악적 영역을 확장한 데는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 대학 지도교수 중의 한 분이 그녀에게 “한국인이 왜 외국 음악을 배우려 하느냐?”는 질문을 했고, 그 질문을 곱씹으면서 서양음악의 깊이를 재발견하게 되면서 오페라 코칭으로 석사와 박사 졸업까지 하게 되었다.
음악적 완성도와 확장성을 향한 이 교수의 철학은 본지와의 서면인터뷰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그녀는 “피아노만 공부하기에 음악은 재밌는 분야가 정말 다양하게 존재하였고, 그래서 피아노를 더 깊이 있게 연주할 수 있는 공부가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다 오페라 코칭을 선택하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이 교수가 길러내는 제자들은 미래의 지휘계를 짊어질 동량들이다. 그들 중에는 세계적인 지휘자들도 다수 배출 될 것이다. 이 교수는 좋은 지휘자를 배출하는 일에 교육자로서의 사활을 걸고 있다. 그녀는 좋은 지휘자가 가져야 할 자질로 음악적인 기량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기술적인 역량은 기본이며, 그것에 인간적인 미덕까지 요구한다. 이 교수는 인간적인 자질 중의 하나로 “겸손”을 꼽았다. 특히 지휘자에게 ‘겸손’은 좋은 지휘자가 갖추어야 할 최고의 미덕으로 생각했다. 수많은 연주자들과 협업하며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갈등과 충돌을 원만하게 해결하고 음악적인 완성도를 이끌기 위해 지휘자가 갖춰야할 덕목으로 ‘포용성’, 즉 ‘겸손’을 바라본 것이다. 그녀는 음악적인 자질과 인품을 겸비한 지휘자를 양성하는데 교육자로서의 사명을 다할 계획이다.
이 교수의 현재의 넘사벽 위치를 인지하면 그녀의 드라마틱한 피아노 입문 스토리 하나쯤은 있을 것으로 지레 짐작하기 마련이다. 일찍부터 천재적인 음악적 소질을 보였다든가, 남다른 피아노 사랑이 있었다든가 하는 스토리 말이다. 하지만 그녀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의외로 평범했다. 6살 무렵, 유치원 친구가 피아노 치는 모습을 보고 그 또래의 친구들이 유행처럼 피아노 교습소를 찾았듯, 그녀도 그런 수순을 따랐다. 그렇더라도 고등학교 재학 중에 유학을 결심한 걸 보면 우연으로 시작한 피아노가 필연이 되었을 개연성은 충분해 보인다.

처음 유학을 염두에 두고 유학지를 선택할 당시에는 러시아가 유력지로 거론되었다. 그러나 치안 문제로 오스트리아 빈으로 방향을 틀었다. 유럽 대부분의 지역이 음악적으로 의미 있는 장소들이지만 빈은 음악사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 중의 하나라는 점도 고려 대상이 되었다.

그녀는 교육자이자 연주자의 길을 병행하고 있다. 현재 비엔나에서 소규모 앙상블 팀으로 활동하고 있고, 여러 오케스트라와 협연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올해와 내년에 다수의 연주회가 계획되었지만 코로나 19 상황으로 잠정 연기된 상태지만 일상이 회복되면 다시 연주자로 무대를 누빌 계획이다. 국내에서도 여러 차례 무대에 올랐다. 향후 코로나 19가 종식되면 국내에서 더 많은 연주 행보를 이어가겠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특히 고향인 대구에서 학생들을 위한 마스터 클래스 진행이나 합동 연주회 등을 함께 진행하고 싶다는 바람을 피력하며, 대구에 대한 진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빈 국립음대 학생이 되는 것만 해도 가문의 영광인데, 그 대학의 종신교수로 재직한다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이다. 코로나 19로 세계가 꼼짝없이 갇힌 상태에서 대구에 날아든 그녀의 낭보는 대구음악계에 잔잔한 기쁨을 선사하고 있다. 모두가 환호하는 결실이지만 정작 이 교수는 “빈 국립음대 종신 교수 선임이 인생의 완성은 아니다”라며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피아노를 시작하고 지금까지 끊임없는 노력의 시간들로 점철되었듯이, 종신 교수가 된 지금도 지금까지 그래왔듯 여전히 묵묵하게 최선을 다해 음악인의 길을 걸어가겠다는 의미였다.

마지막으로 “수많은 음악가들이 선망해 마지않는 위치에 서 있는 당신은 행복합니까?”라는 상투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행복하다”고 했지만 그녀가 생각하는 행복의 조건은 좀 달랐다. “음악이 삶 그 자체이며, 행복의 조건인데 현재 내 삶에 음악이 상존하고, 그 음악을 즐기며, 그것에 감사하며 살고 있으니 행복하다”는 논리였다. 역시 그녀는 천상 음악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