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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3
아이와 함께 자라며 일하며
김수경 / 국악밴드 나릿 대표
조명이 켜지고 관객과 마주하고 전하는 첫 인사는 언제나 설렌다. 무대에서의 긴장감은 관객의 박수와 함께 보람과 희열로 녹아내린다. 무대에서 나를 확인하고 느끼고 또 나를 찾으며 지금껏 성장해 왔다. 소리를 시작한지 어느덧 20여년이 흘렀고 학생에서 소리꾼으로, 사회인으로 지금은 한 단체의 대표가 되었다. 차근차근 나의 조각을 빚어가며 문득 멈추고 싶을 때나 마음에 어둠만이 남은 듯 느껴질 때, 무력하게 혼자 남은 듯 할 때마다 무대의 빛은 나의 길을 비춰주었고 관객과의 만남에서 얻는 응원과 감사는 나에게 또 다른 동기가 되고 무한한 용기가 되었다.

천방지축 철부지 마냥 어릴 줄만 알았던 시간은 흐르고 흘러 소리꾼 김수경으로서의 삶은 계속 되고 있지만, 지금의 나는 보다 많은 이름과 역할을 가지게 되었다. 결혼과 임신, 출산과 육아가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상황이 되고 나의 어려움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누군가의 아내, 어느 집의 며느리가 되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그로인해 새로운 역할과 책임을 입고 다시 예술가로서 사회로 복귀하면 나는 또 다른 이름을 만나게 된다. 일하는 엄마. 바로 워킹맘이다.

성인이 되기도 전에 생활전선에 뛰어들게 되며 살아내기 급급했던 터라 아기를 낳고는 육아에 전념하며 잠시 쉬어보리라, 재충전의 시간을 가져보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갓 태어난 딸을 돌보느라 제대로 잠도 못자며 느꼈다. 휴식을 가진다는 건 나의 착각이었다는 것을.
엄마가 되어 초인적 힘을 발휘하는 일은 집 안에 머무른다 하여 결코 쉬는 일이 될 수 없었고 체력적 한계뿐만 아니라 심적, 정신적 한계를 거듭 넘고 넘는 마치 수련과 단련의 시간과 같다는 것을 미처 몰랐다. 내 속으로 낳은 내 아기를 키우며 이렇게 서럽고 답답할 일인가. 딸아이가 예쁘고 세상을 다 가진 듯 한 감동과는 별개로 나의 욕심과 부족함으로 아기도, 집도, 나의 일도 모두 미완성인 채로 멈추어 있구나. 모든 것이 내 탓이구나. 하고 밤마다 자책하고 자책했던 때가 있었다.

글을 쓰며 다시금 짙은 서글픔이 차오르는 이유는 필자 뿐 만 아니라 아이를 낳아 기르며 옅어져 가는 스스로를 끌어안고 고군분투하는 여성들 모두 같은 심정이지 않을까. 처음 경험하는 일들로 하여금 방향을 잃고 어떻게 해서든 길을 찾기 위해 이곳저곳 문을 두드리지만 실망과 좌절의 책임은 고스란히 스스로에게 돌리고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구 날뛰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안심하며 용기를 낼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이 가장 어렵고, 가장 필요했다. 사회적 제도와 정책이 수박 겉핥기식이 아닌 아이 엄마의 피부에 와 닿고 아이를 양육하려는 가정 깊이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수립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출산,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것이 처음인 엄마의 지친 몸과 마음을 알아주고 토닥여 힘껏 안아줄 수 있는 연대의 손길과 창구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래서 제안을 하고 싶다.
첫 번째, 예술가 엄마에게 육아휴직 제도를 보장해주시리라.
예술가임을 증명하여 예술 근로자로서 받을 수 있는 기본적인 혜택을 받는 것조차 쉽지 않지만 제안의 수용이 가능한 방법을 꼭 찾아주셨으면 하고 간곡히 부탁드린다.
자녀 양육에 현실적인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스스로 예술가임을 잊지 않을 수 있는, 그야말로 돌아갈 방향을 기억할 수 있는 끈이 될 것이다. 그 끈은 곧 엄마의 자존감이 되고 용기가 되고 동력이 될 것이다.

두 번째, 예술가 엄마가 아이를 돌보며 일할 수 있는 공동육아기관이 생겼으면 한다. 엄마인 동시에 예술 선생님이 되고, 선생님인 동시에 창작자 혹은 공연자가 되고 공연자인 동시에 엄마일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지면 좋을 것 같다. 엄마에게는 사회로의 복귀 문턱을 낮추는 기회가 될 것이고, 자녀와 함께 할 수 있어 안심될 것이다. 또한 밤늦은 시간 연습과 작업 일정을 소화하며 하루 일과를 직장인과 다르게 써야하는 예술가의 자녀를 돌봐주는 곳이 없어 곤란을 겪는 일도 해소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이는 자연스럽게 수준 높은 예술을 접하며 예술적 소양을 익히게 되고 일하는 엄마, 아빠의 모습을 보며 가족과 성역할에 대한 긍정적 사고와 열린 정서 형성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예술가 부모들도 서로의 입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공동 육아를 통해 의지할 수 있는 마음의 연대가 생기지 않을까. 나아가 자유로운 예술 공유 시스템 구축을 통해 세대를 불문하고 시민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예술기반 공유 공간으로의 자리매김을 기대한다.

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옛말이 있다.
우리 모두는 아이의 미래를 책임지는 교육동체라는 뜻일 것이며, 실제로 아이가 크는 것을 보면 눈 뜨고 일어나 보고 듣고 만나는 모든 환경으로부터 생각지도 못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온 마을이 나서야 할 일을 개인의 역할, 한 가정의 책임으로 감당하기엔 분명 부모로서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아이는 어른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말이 있다. 행복한 어른 안에서 스스로 행복을 찾는 아이로 자라고, 먹구름 뒤에도 해가 비친다는 믿음을 가진 어른 안에서 무지개가 뜨는 이유는 깨치는 아이가 자랄 것이다.
마을엔 아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엄마가 있고 아빠가 있다.
행복한 엄마 아빠의 눈으로 아이를 비출 수 있는, 웃는 엄마 아빠의 얼굴로 아이의 내일을 그릴 수 있는 대구가 되었으면 한다. 엄마와 아빠의 마음을 헤아려 응원하는 대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