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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3
4차 산업혁명과 음악 산업 트렌드 변화
글_권오성 대중음악평론가
1. 들어가기
냉전시대 독일연방공화국(서독)의 수도였던 본(Bonn)은 베토벤의 고향이다. 본에서는 매년 9월이면 베토벤 축제가 열린다. 베토벤의 생가를 찾는 행렬이 이어지고 구시청사 인근은 베토벤이 현재의 장(場)에 살아있는 듯 생기로 넘친다.
독일 본에서 열리는 베토벤 페스티벌 (출처 : Germany Travel Guides)

맥주와 소시지 굽는 냄새를 쫓다 보면 다양한 모습의 베토벤 모형을 만난다. 거의 매년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단 모양새는 바뀐다. 이게 재미있다. 그때 그때 음악 트렌드를 적절히 보여준다. 고전 이미지의 베토벤부터 일렉트릭 기타를 맨 베토벤, 디제잉을 하는 베토벤까지 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열 맞춰 늘어놓은 모습은 18세기 이후 음악사를 보는 듯하다. 베토벤은 서양 음악가 가운데 거의 처음으로 작품으로 돈을 번 사람이다. 이 전까지의 음악가는 귀족의 후원을 받거나 교회 등에 소속되었지만, 베토벤은 출판 산업이 본격화되면서 악보 인세로 꽤 많은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베토벤은 1차 산업혁명이 음악계에 미친 수혜를 가장 먼저 입은 음악가다.

2. 1차 산업혁명과 브루조아 계급의 문화

18세기 중엽에 시작된 1차 산업혁명은 음악계에 3가지 영향을 끼친다. 음악 생산은 여전히 중간 계급의 몫이었지만 소비는 왕족과 귀족, 교회에서 브루주아로 대상이 확대된다. 프랑스 혁명과 산업혁명으로 지위를 확보한 브루주아는 자신들의 계급을 상징하는 콘텐츠로 고전음악을 선택한다. 멘델스존(Jakob Ludwig Felix Mendelssohn)은 79년 동안 누구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바흐(Johann Sebastian Bach)를 부활시켰다. 고전음악은 이후 2차 산업혁명 시대까지 음악 산업의 중심에 자리한다. 1차 산업혁명이 가져온 또 다른 변화는 베토벤의 경우에서 보듯 악보 유통 시장을 본격화한다. 녹음 기술이 발명되기 전까지 음악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유통 시장은 악보 시장이었다. 작곡가들은 후원에 기대지 않고 자신의 작품을 생산할 수 있었다.

19세기 생산된 피아노 (출처 : The Grand Piano by on Emaze)
음악가들에게 고전음악과 악보 출판 시장이 새로운 모양새였다면 산업에서 혁신은 피아노 산업의 호황이다. 당시 피아노 산업은 지금의 스마트폰 시장에 비견 될 만큼 거대 산업이었다. 제국의 확장으로 저렴하고 질 좋은 목재 수급이 원활했고 철강 산업의 발전으로 견고한 몸체와 좋은 울림의 현을 갖게 된다. 유럽과 신대륙 그리고 새롭게 개척한 아시아 시장에서 그랜드 피아노는 연간 5만 대 이상의 판매를 기록했다. 피아노는 고전음악과 함께 브루주아의 문화와 교양을 상징하는 도구가 된다.
3. 2차 산업혁명과 레코드 산업

1차 산업혁명이 증기기관에 의해 가능했다면 2차 산업혁명을 견인한 전기기술은 음악계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이른바 레코드 산업의 태동은 음악을 산업으로 온전히 자리하게 한다. 시작은 음반 산업이 아닌 축음기 산업에 집중되었다. 1877년 에디슨에 의해 발명된 포노그래프(phonograph)는 그보다 20년이나 앞선 프랑스의 포노토그라프(Phonautograph)에 재생 기능을 추가한다. 전화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에디슨은 소리의 기록보다 재생 곧 말하는 기계에 관심이 있었다. 포노그래프는 1889년부터 양산 체제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때의 포노그래프는 음악을 위한 기계가 아니었다. 소리의 기록과 재생이 가능한 사무용 기계였다.

토마스 에디슨과 포노그래프 (출처 : Newly Discovered Thomas Edison 1877 Phonograph Recording)
축음기 발명이 본격적인 음악 산업을 견인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축음기를 통해 음악을 재생하는 아이디어가 나오면서 음악 콘텐츠는 산업으로 진화한다. 사실 최초의 음반을 기획했을 때 음악 산업이 거대해질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않았다.

최초의 음반을 녹음한 엔리코 카루소
(출처 : Le società fonografiche)
1902년 4월 11일, 이탈리아 밀라노 호텔 306호실에서는 당시로는 신인이었던 테너 가수 엔리코 카루소(Enrico Caruso)가 역사적인 음반 녹음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직까지 마이크가 발명되기 전이어서 집음 나팔에 대고 2시간 동안 아리아 10곡을 녹음했다. 이 날 녹음으로 카루소가 받은 돈은 100파운드였다. 앨범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무려 1만 5천 파운드의 판매량을 올린다. 최초의 음반은 영국 그라모폰사의 녹음 책임자 가이스버그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하지만 그라모폰사의 수뇌부는 이를 반대한다. 음악을 축음기로 듣겠다는 발상도 불편했고 산업으로서의 성공에 대해서는 지극히 비판적이었다. 하지만 음반은 대성공을 거두었고 축음기 판매 증가로 이어지면서 음반 산업은 20세기를 상징하는 문화 산업이 된다. 뒤이어 마이크와 증폭 장치 등이 발명되면서 전기 기술은 음반 산업뿐만 아니라 공연 산업의 발전으로 이어진다. 특히 재즈를 비롯한 대중음악의 발전이 두드러졌고 일렉트릭 기타의 등장으로 흑인 음악이 보편적인 대중음악으로 등극한다.
흑인 커뮤니티에서나 소비되던 알앤비(Rhythm and Blues)는 로큰롤로 진화했다. 로큰롤의 등장은 음반 소비 세대를 성인에서 청소년으로 바꾸었다. 청소년들은 가정 내 축음기의 주도권이 없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커뮤니티 공간인 카페테리아에서 쥬크박스를 통해 음악을 소비했다. 쥬크박스는 히트넘버 2곡 정도 담긴 싱글 음반 시장을 본격화했다. 청소년 또는 청년들이 음악 소비에 참여하면서 음반 시장은 다변화되고 거대 산업으로 도약한다.
4. 3차 산업혁명과 음악 생산의 다변화
음악은 듣는 콘텐츠라는 상식을 깨는 사건이 1981년 8월 1일 시작된다. 미국 케이블 채널 M-TV는 24시간 뮤직비디오를 방송하는 채널을 개국한다. 「Video Killed The Radio Star」를 개국 첫 곡으로 방송한 것은 상징적인 의미다. M-TV 개국은 뉴 미디어 시대를 열었다.
뉴미디어 시대를 주도한 음악은 뉴웨이브였다. 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의 시대로 이행은 음악 산업에 또 다른 변화를 가져온다. 전통적인 콘텐츠인 음반은 LP에서 CD로 디지털화되었으며 영상 정보를 담은 LD, DVD 등의 미디어가 음악 산업에 편입된다.

초기 신디사이저, 무그사이저
(출처 : The Official Moog Synthesizer Appreciation Page)

3차 산업혁명의 화두는 컴퓨터 그리고 디지털이다. 음악 생산과 소비 형태도 컴퓨터를 중심으로 한 디지털 제작 환경이 일반화된다. 미디(MIDI, Musical Instrument Digital Interface) 표준 규약이 나오면서 컴퓨터의 시퀀싱 프로그램과 신디사이저를 연결하여 일렉트로닉 음악이 일상화된다. 초기에는 소리 합성을 통한 신디사이저 음원에 의존하던 방식에서 샘플링, 하드디스크 레코딩 등으로 진화한다. 이는 컴퓨터 기술의 발전으로 가능했다. 컴퓨터 한 대로 음악 제작이 가능해 지면서 음악 생산은 자본의 종속에서 벗어난다. 이른바 인디 음악의 등장은 랩탑 혁명이라고 불리면서 노트북 한 대로 생산과 유통을 가능하게 했다. 소비자로서도 네트워크에 연결된 컴퓨터 한 대로 생산된 거의 모든 음악에 접근할 수 있어졌다. 월드와이드웹의 대중화와 초고속 인터넷망은 음악 콘텐츠 시장 자체를 변화시킨다. CD는 사양길에 들어가고 그 자리를 디지털 음원이 대체한다. 넵스터 등을 통한 불법 다운로드 문제가 한때의 고민거리였지만 이는 애플 등을 중심으로 플랫폼 시장을 본격화하면서 해소된다. 이제 음악 소비에 있어서 인터넷은 절대적인 지위에 오른다.

5. 4차 산업혁명과 음악 트렌드 변화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변화한 음악 시장은 스마트 기기의 발전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애플과 구글 등 글로벌 IT 기업들은 아이튠즈나 유튜브 등의 플랫폼을 통해 음악 소비의 중심에 선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으로 대변되는 시기 음악 트렌드를 예측하는 일은 쉽지 않다. 4차 산업혁명은 현재 진행형이며 이전의 산업혁명을 견인한 증기기관, 전기, 컴퓨터처럼 명쾌한 동인이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 등 변화의 동인이 다양하다는 점에서 예측을 어렵게 한다. 하지만 시장의 변화를 따라가다 보면 대강의 그림이 그려지는데 음악 시장은 오히려 콘텐츠의 중요성이 부각 될 것으로 예측된다. 다만 고전적인 콘텐츠 시장과 다른 점은 고객이 콘텐츠를 호출한다는 점이다.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IoT), 크라우딩 서비스 환경에서 음악 콘텐츠는 컴퓨터와 컴퓨터 간의 기술적 연결을 넘어서 기호(taste)와 기호(preference)의 연결로 진화한다. 특히 사물인터넷은 인간의 오감을 데이터로 분석하고 서비스를 연결하는 방식이 될 것이며 이는 생활 속에서 콘텐츠 소비를 보편화할 것이다.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이 결합한 아마존 에코 (출처 : www.amazon.co.uk)

마이뮤직테이스트(mymusictaste.com)에서는 SMSE(Search, Make, Spread, Enjoy)방식을 통해 새로운 음악 콘텐츠 소비를 제안했다. 크라우드 소싱을 통해 아티스트를 직접 호출하는 이 방식은 전 세계 32개 도시에서 80회 이상의 콘서트를 실제 열었다. 대략 음악 시장의 규모는 500억 달러 수준이다. 가운데 260억 달러가 공연 시장이다. 하지만 공연 시장은 티켓 판매를 예측하기 힘든 불확실성을 지니고 있으며 실제 티켓 판매 부진으로 공연이 취소되는 일이 허다하다. 하지만 소비자가 크라우드 소싱을 통해 아티스트를 직접 아티스트와 티켓 타입을 선택하고 캠페인을 공유하는 방식을 진행하면서 공연은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며 불확실성을 상당 부분 제거하게 된다.

생산자의 입장에서 오리지널 콘텐츠의 유통이 중요하게 대두할 것이다. 독특하며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내지 않으면 시장에서 누구도 주목하지 않을 것이며 오리지널 콘텐츠 유통 시장에 진입하기도 힘들게 된다. 아마존과 훌루, 유튜브 등의 서비스 사업자는 이미 오리지널 콘텐츠 확보와 유통으로 전환했다. 넷플릭스 또한 마찬가지다. 이들 사업자는 기본적으로 플랫폼 사업자였다. 이들의 등장은 콘텐츠 사업자가 중심이던 음악 시장을 플랫폼 사업자 주도로 변화시켰다. 하지만 이들이 오리지널 콘텐츠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콘텐츠 사업의 중요성이 다시 대두할 것이다. 하지만 사물인터넷과 인공지능의 결합을 통한 음악 서비스를 이미 하고 있거나 준비하고 있는 기업은 소비자의 호명 때문에 데이터가 처리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예컨대 아마존 에코는 유튜브 등 영상 서비스에 뺏긴 음악 소비 시장을 긍정적으로 만들었으며 구글홈 등의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이런 서비스는 대개 소비자가 인공지능에 호명을 함으로써 인공지능이 그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곧 음악도 브랜드 인지도가 있어야 호명의 대상이 된다.

6. 맺음말

4차 산업혁명의 시대는 예측하기 힘든 현재 진행형의 모습이다. 비록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 크라우드 서비스 등으로 대표되지만 어떤 소프트 파워가 나타날지 예측하기 힘들다. 음악에 있어서 4차 산업혁명은 영상에 밀린 음악이 자기 자리를 찾을 수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또한, 음악 제작이 간소화되고 소프트웨어에 의존하면서 누구나 음악 콘텐츠를 생산할 기회가 생길 것이다. 가요방에서 노래 한 곡을 부르는 행위는 오락에 지나지 않지만 이를 크라우드에 올리고 유통이 된다면 산업 영역에 들어간다. 생산과 소비, 오락과 산업의 경계는 모호해질 것이다.

또한, 대형 마트가 진출하면서 동네 상권이 몰락하듯이 콘텐츠 유통은 글로벌화 되고 치열한 경쟁에 노출된다.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은 음악 콘텐츠 생산과 유통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소비자는 필요성과 편의성에 따라 시장의 기준을 바꿀 것이다.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일은 당연하다. 인프라와 플랫폼에 대한 투자에 집중하다 콘텐츠 경쟁력을 상실했던 과거의 전철을 답습하지 않기 위해서 4차 산업혁명 시대 콘텐츠에 대한 투자 집중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