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목차보기
Print Friendly, PDF & Email
기획특집 #2
4차 산업혁명 시대, 문화예술의 변화와 전망
글_이정미 대구경북연구원 부연구위원
미래사회가 가져올 변화
한국고용정보원은 미래 기술의 영향을 연구하는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의 칼 베네딕트 프레이(Carl Benedikt Frey)와 마이클 오즈번(Michael A. Osborne) 교수가 제안한 분석 모형을 활용하여 주요직업군 400여 개 중에서 인공지능과 로봇기술 등의 활용에 따라 자동화 대체 확률이 낮은 직업군을 발표하였다.
인간이 가진 다양한 능력 중에서 ‘지각과 조작’, ‘창의적 지능’과 ‘사회적 지능’이 필요한 직무는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을 쉽게 대체할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손이나 손가락을 사용하여 복잡한 구조의 부품을 조립하거나 정교한 작업을 해야 하거나, 기발한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는 창의성이 필요한 경우, 음악·무용·미술 등 ‘감성’에 기반을 둔 예술 분야의 직무와 상대의 반응을 파악하고 이해하거나 협상과 설득이 필요한 직무의 경우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을 대체할 가능성이 작다고 전망했다.
이러한 기준을 따르면 화가와 조각가, 사진작가, 작가, 지휘자, 작곡가, 연주자, 애니메이터, 무용가, 성악가, 감독 등 인간이 가진 독특한 ‘감성’과 ‘영감’에 기초한 문화예술 직업군이 인공지능과 로봇으로 대체하기 어려운 영역으로 분석되었다. 반면, 제품 조립원, 청원경찰, 조세행정사무원 등 상대적으로 직무가 정교하지 않은 동작을 반복 수행하거나 사람들과 ‘소통’하는 일이 적은 직업군의 경우,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을 대체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되었다.
이렇듯 미래사회에 중요한 직무능력으로 대두하는 ‘창의성’은 인간만이 지닌 고유의 능력일까? 혹은 인공지능과 로봇도 학습을 통해 창의성마저 습득하게 될 것인가?
인공지능과 로봇은 창의성을 습득할 수 있을까?

오늘날 인공지능은 글을 쓰고, 바둑을 두며, 음악을 작곡하고, 그림을 그린다. 미국의 소프트웨어 개발자 앤디 허드는 인공지능에 기존의 프렌즈 대본을 학습시킨 후에 새로운 에피소드를 작성하도록 했는데, 실제 프렌즈의 주인공들이 구사한 것과 유사한 유머코드와 원작과 유사한 수준의 대본을 만들어냈다. 또한, IBM이 개발한 인공지능 왓슨(Watson)은 세계 각국의 다양한 요리의 조리법을 학습한 후에 각 음식 재료 간의 조화와 사람들의 반응을 조합해 신메뉴를 개발해 냈다.

에디슨의 축음기 이전에는 라이브 연주만 들을 수 있어서 음악 감상은 일부 귀족 계층의 전유물이었으나, 레코딩 기술의 발명으로 저변이 확대되었고 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음악 태그 분류, 음악 채보와 작곡 등에 이미 인공지능이 사용되고 있으며, 이는 스마트폰을 통해 전 세계에 실시간으로 보급된다.
소니 컴퓨터 과학 연구소(Sony Computer Science Laboratory)가 개발한 인공지능 ‘플로우 머신즈(Flow Machines)’는 데이터베이스 ‘LSDB’에 저장된 13,000여곡을 학습한 후에, 사용자가 원하는 음악 스타일에 맞게 작곡을 한다. ‘대디스 카(Daddy’s Car)’와 ‘미스터쉐도우(Mr. Shadow)’는 유튜브에 공개된 바 있다.
예일대학교의 연구팀이 공동 개발한 인공지능 ‘쿨리타(Kulitta)’는 바흐(J. S. Bach)의 전곡을 학습한 후에 완성도가 매우 높은 바흐풍의 새로운 음악을 금방 작곡해 낸다. 또한, 미국의 조지아공과대학교의 연구진이 개발한 로봇 ‘사이먼(Simon)’은 머신러닝(Machine Learning)을 통해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학습한 후에 즉흥적인 재즈를 연주해 내고, 구글이 개발한 인공지능 ‘마젠타(Magenta)는 피아노곡을 작곡한다.

2016년 마이크로소프트, 네덜란드의 델프트공과대학(Technische Universiteit Delft)과 렘브란트미술관은 인공지능 ‘넥스트 렘브란트(The Next Rembrandt)’를 공동으로 개발하였다. 넥스트 렘브란트는 18개월간 렘브란트의 작품 346점을 분석한 후에 3D 프린터를 이용하여 렘브란트 작품의 느낌을 주는 초상화를 재현하였다.  또한, 구글의 ‘딥드림(Deep Dream)’은 컴퓨터가 마치 사람처럼 생각하고 배울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을 일컫는 ‘딥러닝(Deep Learning)’을 이용하여 작품을 만드는 코드를 공개하였으며,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웹사이트도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현상들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창의성마저 학습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예술의 가치를 묻다

이렇듯 인공지능은 학습을 바탕으로 음악을 채보하고 작곡하고 연주하며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아직은 인간과 같은 영감과 감성(즉, 인간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창작해내지 않지만, 인공지능이 다양한 영역에서 재현하고 있는 기술의 수준은 언젠가는 인간 고유의 것이라고 믿고 있는 창의적 영감과 감성마저도 학습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인간이 만들어 내는 예술과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작품 간의 차이는 무엇이며, 궁극적으로 창작의 본질은 과연 무엇이냐는 질문에 도달하게 된다.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예술의 순수성과 가치는 복제할 수 없는 고유의 예술품이 가진 ‘아우라(aura, 분위기 또는 신비감)’ 때문이라고 여겼는데, 이러한 희귀성과 고유성에 의한 아우라가 복제에 의한 대량 생산 때문에 사라지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즉, 예술의 가치는 바로 정통 예술품이 갖는 유일성과 희소성에 의한 것이라고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은 인간 최고의 목적인 행복을 성취하도록 돕는다’고 했으며, 성 빅토르의 후고(Hugh of Saint Victor)는 ‘예술이 인간 본성의 본래 모습을 회복하도록 돕는다’고 했다.

예술의 가치를 작품과 연주의 기술적 완성 정도로 판단한다면 아마도 인공지능이 인간보다도 더 정교하고 기술적 완성도가 높게 유명 작가의 화풍을 모방해내고 천재 음악가 스타일의 새로운 곡을 써내고 드라마 대본을 써낼지 모른다. 그러나 과연 그것은 예술적 가치가 있는 것인가?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작품과 연주에는 예술가의 고유한 감성과 영감, 예술가적 정신과 행복이 담겨있지 않으며 본래의 예술품이 갖는 아우라가 없다.  따라서 예술의 가치를 단지 기술적 완성도가 아닌 예술가적 영감과 감성에 의해 탄생한 것에 둔다면,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작품과 연주는 단지 기계적 학습 때문에 ‘제품’을 생산해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문화예술, 연대와 화합을 위한
다시 모두에서 던진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로 돌아가 보자.
예술과 문화가 고유의 가치를 가지게 되는 것은 시대적 상황 속에, 유한한 인간의 삶과 고심과 정신적·육체적 노동 속에, 새로운 가치와 철학과 아름다운 것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완성도가 높은 작품을 만들어낸다 하더라도 그 과정 안에 영감과 감성, 고심과 철학적 가치가 녹아있지 않는다면 그것은 인간의 예술적 영감과 구별되는 것이며, 창의적이지 않다.유추컨대 미래사회는 인간은 감성과 소통능력을 활용한 업무를, 인공지능과 로봇은 단순반복 업무를 수행하는 이원화의 시대로 접어들 것이며, 나아가 상호 협력하는 협업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다. 미래 시대에 문화예술이 가지는 의미는 인간의 고유한 미학적 감성과 영감, 창의력을 자극하여 인간 본성의 회복을 도움으로서 사회 안에서 개인과 집단 간의 다양한 층위의 협력(collaboration)과 소통(communication)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고 한다면 다양한 문화정책 중에서 지역주민이 일상 속에서 창작과 발표 등에 주체적으로 참여(participation)하는 자발적인 문화 활동을 통해 적극적으로 문화를 누리며 심미성을 발현하고 이웃과의 소통과 교류로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고자 하는 ‘생활문화진흥정책’이 미래 시대의 요구와 가깝게 맞닿아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생활 속의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이 인공지능과 산업혁명이 몰고 올 수 있는 ‘인간 소외’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인간의 본성을 회복하는 기제로 작동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생활 속 문화예술의 발전적 확산은 인간의 문화향유권인 동시에, 미래사회에 인간의 고유한 능력인 ‘창의력’과 심미성의 보존과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일일 것이다.

언젠가는 인공지능이 자의식을 갖게 되어 스스로 학습하고 생각하며 인간의 창의성에 근접하는 때가 올지도 모른다. 인간은 컴퓨터에 대한 보안과 윤리 가이드라인을 만들어낸 것과 같이 시대적 가치관에 따라 인공지능에 관한 법과 윤리적 규범을 만들어 인간 고유의 창의성을 보존할 방법을 모색할 것이다. 과연 인간은 인공지능에 ‘창의성’을 허용할 것인가?

2017년 오늘, 우리는 클라우스 슈밥(Klaus Schwab)이 “인간에게서 심장과 영혼을 앗아가고 인류를 로봇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다”고 한 기술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있다. 변화를 잘 수용하고 긍정적인 가능성을 최대화하여 새로운 문화부흥(Culture Renaissance)을 일으킬 수 있도록 시대 변화에 대응하는 문화예술정책을 다시 논해야 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