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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리뷰 #3
Local Dance Film의 창세기를 꿈꾸다
<대구시립무용단 제77회 정기공연 ‘존재 : 더 무비’>
김상목 / 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존재 : 더 무비’ 사진(1) (제공: 대구시립무용단)
1_ 강요된 Liveness의 시간
코로나19가 폭발한 2020년 2월 중순 이후 모든 게 변했다. 섣불리 ‘뉴-노멀 New-Normal’을 언급하기엔 시기상조이지만 우리에게 익숙했던 과거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모든 게 격변의 와중이지만 특히 다수 대중이 관람하는 것을 전제로 한 공연예술 분야가 겪는 강도는 형언하기 힘들 지경이다. 특히나 현장에서의 교감과 집단적 체험을 중시하는 연극과 무용 분야 충격의 강도는 타 장르와 비교해 더욱 절박할 것이라 생각된다. 물론 창작과 시연 형태가 다소 상이한 미술이나 영화 또한 대중에게 선보이는 방법 면에서 불특정 다수 대중이 특정한 공간에 진ㆍ출입해야 하는 공통점을 띄기에 비슷한 고충을 겪고 있지만 공연 예술 분야 종사자들은 올해 봄 이후 손발이 다 묶인 심정일 테다. 특히 오랜 세월 고수해온 ’관객과의 교감을 통한 공연의 완성‘이 성립할 수 없는 ’Liveness’의 시간은 현실적인 여러 문제들을 뛰어넘어 예술가들에게 절망과 좌절의 고통스러움을 드리우고, 자연히 암중모색의 시간이 도래한다. 본래 봄에 예정되었던 대구시립무용단 제77회 정기공연 ‘존재 : 더 무비’의 도전은 어떻게든 돌파구를 마련해보려는 소중한 실험의 선발주자라 하겠다.
풍정.각(風情.刻) 리얼타운, 2019 Film Still Image (Film by 송주원)
2_‘댄스 필름 Dance Film’이라는 존재와 접속하기
‘존재 : 더 무비’는 지역에서는 생소한 ‘댄스 필름 Dance Film’을 전면에 내세운 첫 시도라 소개했는데, 그렇다면 ‘댄스 필름’이란 뭐지? 라는 질문이 곧이어 들이닥치는 것은 당연하다.
탐구생활의 시작이다.
# 첫 번째 질문 : ‘춤’과 ‘무용’은 다른가?
해마다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수백 편씩 관람하지만 ‘Dance’를 소재로 한 작품이라 해도 ‘댄스 필름 Dance Film’이라는 개념을 특별히 염두에 두고 본 적은 부끄럽지만 없었다. “이 영화는 ‘춤’ 혹은 ‘무용’을 중요하게 활용했군!” 정도의 인식에 머무른 게 솔직한 고백이다. 그리고 ‘댄스 필름’이라는 명칭을 접해도 그런 공연실황 다큐멘터리 정도로 분류해 왔었다. 사실 해당 분야 종사자가 아닌 일반 대중에게는 아마 ‘춤’과 ‘무용’의 구분도 모호한 개념이지 않을까? ‘춤’이라면 힙합 장르와 함께 친숙해진 스트릿 댄스나 클럽 댄스를, ‘무용’이라면 발레의 이미지가 자연스레 떠오를 것이다. 영어 단어로 별개의 구분이 없는 것으로 볼 때 좀 더 예술적 비중이나 고려가 강한 층위가 ‘무용’, 일상에서 실용적으로 보다 흔히 접하게 되는 게 광의의 ‘춤’으로 분류되는 것으로 보인다. 일단 사회 통념상 ‘예술’ 중심성이 강한 춤들 – 발레(고전무용), 현대무용, 전통(한국)무용 같은 – 을 ‘무용’으로 별도 표현하기로 한다. 유튜브만 검색해 봐도 수많은 프로/아마추어 댄서들이 기량을 뽐내는 숱한 댄스 실연 동영상을 볼 수 있는 현실에서 ‘존재 : 더 무비’는 과연 어떤 차별성을 선보이기에 ‘댄스 필름’임을 강조하는 걸까?
유월, 2019 Film Still Image (Film by 이병윤)
# 두 번째 질문 : 춤이 들어가면 몽땅 ‘댄스 필름’인가?
춤이 강조되지만 나름대로 스토리텔링 구조를 취하는 아이돌 그룹의 뮤직비디오와 ‘댄스 필름’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 지점은 개개인의 판단에 따라 상이하겠으나, ‘춤’과 ‘무용’을 구분하는 기준을 따른다면 ‘무용’에 속하는 Dance 분야를 영화의 주된 소재나 배경으로 활용하는 작업이 크게는 그 범주에 속할 테다. (유튜브 영상과 ‘영화’의 구분 또한 여전히 논쟁거리다) 그렇다면 무대공연을 기록해 공연장이 아닌 공간에서 관람하게 해주는 실황 다큐멘터리가 ‘댄스 필름’인가? 픽션 형식을 취하지만 무용이 주가 되는 극영화는? 다양한 장르와 융ㆍ복합하며 ‘실험영화 experimental’ 계열로 통칭되는 유형은 어디로 묶어야 할까? ‘댄스 필름’은 무용+영화의 속성을 기본적으로 띄기에, 영화 장르가 그 분류에 난항을 겪는 문제를 고스란히 확대 재생산한다. (그 분류는 이번에 논할 핵심이 아니기에) 이 글에서는 무용+영화 속성을 가진 부위는 전부 ‘댄스 필름’으로 호칭해도 무방하단 생각이다. 그렇다면 ‘존재 : 더 무비’는 어떤 ‘댄스 필름’일까?
‘존재 : 더 무비’ 사진(2) (제공: 대구시립무용단)
3_‘존재 : 더 무비’와의 근접조우
# ‘존재 : 더 무비’, 공개되다
2020년 8월 16일(일) 오전 11시, 두류공원 옆 대구문화예술회관 팔공홀에 마련된 시사회에서 ‘존재 : 더 무비’의 실체를 처음 확인할 수 있었다. 영화 상영 전(통상적으론 영화 상영 후에 마련되는) 관객과의 대화(GV: Guest Visit) 시간을 가졌고, 제작 핵심이라 할 대구시립무용단의 김성용 예술감독, 김득중 촬영감독, 서영완 음악감독과 무용수들이 함께 질의응답을 진행했다. 영화를 보지 않은 이들에게 질문을 청하면 어찌하나? 대개 영화제 등에선 영화 상영 전 간단한 무대 인사를, 상영 후 본격적으로 관객과의 대화를 치르게 마련이라 관련 경험자들에겐 퍽 생소한 풍경이었다. 어쩌면 ‘댄스 필름’이라는 이종교배 장르의 특성일지도? (대중 친화적 경향과는 분별되는) 현대 문화예술이 ‘개념예술’ 성격을 강하게 띠면서 관객에게 제작 취지와 감상 포인트를 사전에 해설하는 시간으로 GV를 상정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꽤나 자세한 사전정보가 제공되었고, 이제 관람 전 각자의 기대 속에 ‘상상 속 댄스 필름’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2020.8.16. 시사회 현장_필자 촬영
※ 당일 오후에 진행된 일반관객 대상 상영도 동일하게 상영 전 GV가 이뤄졌다.
조명이 꺼지고 코로나19 창궐이 아니었다면 실제 무용단의 공연 무대가 되었을 팔공홀 스크린에서 약 50여 분 동안 ‘존재 : 더 무비’가 상영되었다. 상영시간 기준 분류로는 단편과 장편의 경계에 선 시간 동안 이어진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졌다. 사전에 공언한 대로 ‘존재 : 더 무비’는 정형화된 이야기 설정보다는 무용 자체의 선과 움직임을 따라가며 관객이 느끼게 하는 방식을 취했고, 여남 무용수의 듀엣부터 점점 확대되어가는 군무의 형태로, 사이에 단락을 나누는 효과를 부수적으로 추구한 독무가 삽입되는 점층법을 구사했다. 명확한 스토리 라인은 없지만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어떤’ 감정을 느끼게 한다. 코로나19로 억눌린 무용수들의 열망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어서 빨리 일상성을 회복하고픈 욕망과 만나는 접점이 특히 중후반부 이후 두 세 차례 확인되는 순간이 있었고, 통상적인 공연에서라면 풋 워킹을 방해할 만큼 흐드러진 마무리의 종이꽃 순간은 가슴이 벅차오르기도 했다.
‘존재 : 더 무비’ 사진(3) (제공: 대구시립무용단)
서사 전개에 익숙한 이들에게 추상적 표현으로 1시간 가까운 영화 관람은 쉽지 않은 과업인데, ‘존재 : 더 무비’의 진행은 큰 무리 없이 마지막까지 끌고 가는 힘이 약하지 않았다. 단, 음악이나 카메라 워킹 등에서 영화적 효과가 가미되었지만 ‘공연’의 성격이 보다 진하게 느껴지긴 했다.
# ‘존재 : 더 무비’가 놓인 자리
뤼미에르 형제가 ‘최초의 영화’로 통칭되는 <열차의 도착>을 1895년에 공개한 이후, 한참 후발주자인 영화는 선배 예술 장르들을 영상과 소리로 담는 작업을 거듭해 왔다. 자연히 특정 시공간에 진입하는 수고와 비용을 치러야만 향유할 수 있던 음악회나 무용 공연의 영화화는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이사도라 던컨에 의해 고전무용의 정형성에서 벗어나려는 현대 무용이 창안되면서 일각에선 적극적으로 이런 융ㆍ복합에 뛰어들었고 1940년대에 ‘댄스 필름’ 장르의 정의를 확립한 마야 데런 이후 서구에선 광범위한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실험영화 영역에 흔히 포함되는 ‘스크린 댄스 Screen Dance’의 경우 대중에겐 생소해도 국내외 영화제들에서 종종 접할 만큼 끊이지 않고 다양한 작품이 제작될 정도다. 극영화에선 영화의 소재로 무용이 활용되는 측면이 강하고, 공연 실황은 다큐멘터리 범주에 흔히 포함된다면 ’스크린 댄스‘는 단편 분량에 MTV 뮤직비디오의 예술적 비전 추구에 가까워 보이는 다양하고 파격적인 시도가 가미되어 통상적인 ’공연실황‘과는 구분되는, 명칭 그대로 극장이건 안방이건 공연장이 아닌 환경에서의 감상을 상정하는 형태로 볼 수 있겠다.
마야 데런(Maya Deren)
<카메라를 위한 안무 연구(A Study in Choreography for Camera)>(1945)
실체를 확인한 ‘존재 : 더 무비’는 초창기 댄스 필름의 원형에 가까워 보였다. 원래 시립무용단의 77번째 정기 공연으로 기획하던 내용을 영상작업에 맞게 일정부분 수정한 비전이 아닐까 싶을 만큼. 즉 ‘영화’적 요소를 가미했지만 아직은 공연 실황의 다큐멘터리 버전에 가까워 보인다. 근래 국내 영화제에서 관람했던 ‘댄스 필름’으로 분류되는 작업들보다는 발레나 뮤지컬의 영화화 유형에 보다 친화성이 느껴진다. ‘댄스 필름’의 여러 갈래 유형들은 각각의 장단점이 있게 마련인데, ‘존재 : 더 무비’의 경우 영화화된 버전이 실제 관객 앞에서 라이브로 시연되는 공연과 차별화된 개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가 숙제로 남을 것이다.

영화화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지만 올해 6월에 온라인 상영된 국립현대무용단의 <비욘드 블랙> 공연에 비해 봐도 ‘존재 : 더 무비’는 우직할 만큼 별도의 소품이나 세트 장치를 거의 활용하지 않았는데 정공법 방식, 즉 공연 자체의 순도로 승부하는 스타일로 보인다. 다른 영화적 장치를 활용하지 않는 대신 빔 벤더스의 <피나 Pina, 2011>처럼 3D 효과의 적극 활용 등 비대면 공연영상의 제약을 뛰어넘으려는 모색이 추가되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개인적으로 3D 영화의 효용을 피부로 느낀 건 다른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가 아니라 <피나>일 만큼 스크린을 뚫고 나올 듯 현대무용의 향연은 충격적이던 기억이 뇌리에 남을 정도이니. 반면 국내 영화제에서 근래 선보이는 단편 위주의 댄스 필름들에 비해 장편에 ‘가까운’ 상영분량은 극장 개봉이나 TV 상영 조건에 보다 부합되는 이점이 있고, 타 장르와의 혼합이나 실험적 요소보다 발레나 뮤지컬 공연의 현대무용 비전에 가까운 접근성도 유리한 포인트라 할 수 있겠다.

피나 Pina, 2011 Film Poster Image
4_‘로컬 Local’ 댄스 필름의 가능성
무엇보다 ‘존재 : 더 무비’는 서울공화국이라 불릴 만큼 극단적인 수도권 집중의 한국 사회에서 드물게 제작된 지역-로컬 영화이다. 그것도 심지어 ‘댄스 필름’으로! 지역에선 도전 자체가 성과일 정도로 열악한 현실에서 일정한 수준 이상의 결과물이 완성되었음은 자랑해도 좋을 일이다. 이제 영화에서 ‘포스트 프로덕션’ 단계에 속하는 상영과 배급 등을 통한 성과 확대와 함께 일회성에 그치지 않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투자가 절실하다. ‘첫술에 배부르랴!’ 싶지만 첫술이 과히 나쁘지 않은 솜씨다. 공연에 예산이 들어가는데 영화화 작업에도 이 시국에 중복투자라고 푸념할 시선이 분명 존재할 것이다. 콘텐츠가 중요하다고 수사학으로만 강조할 게 아니라 위기일수록 미래를 선점할 모험적 투자가 빛을 발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극장에서 OTT 시장으로 주 수요층이 중심이동중인 영화 환경으로 볼 때나, Liveness의 위기를 극복해야 할 과제에 직면한 공연예술계의 악조건을 고려하거나 ‘존재 : 더 무비’의 시도는 계속되어야 증명될 성질의 것이다.
‘존재 : 더 무비’ 사진(4) (제공: 대구시립무용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