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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일
이나리 / 계명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박사
소설가 이나리
– 들어가며
안녕하세요. 이나리입니다. 저는 2014년 문학동네신인상 소설부문 수상으로 등단하여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현재는 대학원 박사 과정과 작품 활동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학부와 석사, 박사 과정 모두 계명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서 수학했습니다.
등단작 「오른쪽」을 비롯하여, 「타조」, 「완벽한 농담」, 「비타민」, 「바퀴벌레」, 「달콤한 집」, 「모두의 친절」 등을 문예지에 발표하는 것으로 소설가로서의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현재는 발표한 소설을 엮어 한 권의 작품집으로 발간하기 위해 준비 중입니다.
저는 수 년 간 지역 사회에 머무르며 활동하는 소설가입니다. 그에 따른 이야기를 전해보려 합니다. 이야기하기에 앞서, 소설을 쓴다는 건 지극히 개인적인 작업입니다. 그래서 ‘이나리’라는 사람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를 말씀드리려 합니다. 이야기의 테마는 숫자로 정해보았습니다.
문장웹진에 발표한 소설 「비타민」을 녹음하는 중. 문장웹진에는 소설과 함께 작가가 직접 녹음한 오디오 버전도 함께 올린다.
– 첫 번째 이야기, 2014
앞서 잠시 언급했다시피, 저는 2014년에 등단했습니다. 소설가가 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등단이 영향력 있는 제도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문예창작학과의 과정 안에서 등단을 목표로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문학동네 신인상은 소설, 시, 평론의 부문에서 각각 신인상을 선발합니다. 그 중에서 소설 부문에 투고된 작품의 수는 천여 편에 달합니다. 천여 편의 작품이 경쟁하는 거죠. 그 중에서 단 한 편만 선정됩니다. 저는 그 해 1등이 되었습니다.

살면서 1등을 누려본 적은 별로 없어요. 공부를 뛰어나게 잘하지도 않았고,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으로 공부 외에 다른 활동을 한 적도 거의 없었거든요. 남들은 쉽게 하는 초등학교 운동회 달리기조차 1등을 해본 적이 없거든요. 그렇다고 꼴찌를 한 적도 없어요. 차라리 꼴찌였으면 뒤에서 1등이라는 말이라도 할 수 있었을텐데. 저는 항상 중간쯤이었죠. 그건 어딘가 어중간한 위치였어요.

당선된 공모전은 처음 시도한 도전이었습니다. 첫 번째 도전에서 1등을 한 셈이죠. 만약 도전하지 않았다면 아직도 저는 습작생일 겁니다. 더 빨리 도전했다면 더 빨리 당선되었을지도 모르고요. 저는 1등이 도전의 결과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 시도를 선점해야만 원하는 결과를 얻는다는 걸 배웠죠. 내 인생의 중요한 무언가에서 첫 번째 도전을 완수했다는 것. 그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아주 어릴 때부터 작가가 되기를 꿈꾸어 왔습니다. 2014년은 저에게 오래된 꿈이 이루어지던 순간이었죠. 이렇듯 2014년은 꿈의 종착이자 새로운 시작이 된 해였습니다.

좌) 2014년 문학동네 당선 때의 표지 / 우) 2014년 12월 시상식. 수상소감 말하는 중
– 두 번째 이야기, 8
2016년 여름, 6개월간 안동에서 창작 활동을 진행했습니다. 경상북도문화콘텐츠진흥원의 주최로 지역 예술가들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는 시범 사업에 선발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안동 일직이라는 지역에서 입주 작가로 6개월 간 소설 창작에 몰두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썼던 소설의 넘버가 숫자 8입니다. 최근에 작품집을 준비하게 되면서 제 소설들의 순서를 생각했거든요. 변동 가능성이 크지만 잠정적으로는 여덟 번째로 표기를 해 두었습니다.

당시에 대구에서 강의를 하고 있던 터라, 대구와 안동을 오가면서 수없이 유턴지점 표시를 보았어요. 그 발상이 반영된 소설입니다. 유턴지점 표시를 떠올리면 숫자 8이 먼저 떠오르더라고요. 숫자 8을 그리다보면 되돌아가는 획이 겹치게 되니까요.

경상북도의 지원으로 입주 작가 생활은 풍요로웠습니다. 작품 활동에 몰입하기 좋은 환경이었어요. 무척 조용하고 자연 경관도 평화로웠습니다. 제가 입주한 곳은 두 명의 작가가 독채로 각각 생활하도록 공간이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저는 소설 작가이고 그 분은 시나리오 작가여서 서로 다른 분야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되었던 점도 무척 좋았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해당 사업은 현재 종료되었습니다. 수도권과 비교한다면 이와 같은 성격의 지원 사업은 상당히 부족한 실정입니다. 시범적으로 운영되고 지속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점이 가장 아쉬워요. 특히 미술, 음악 등의 다른 예술 활동에 비해 문학 관련 지원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역을 거점으로 활동하기에 힘든 점 중에 하나라고 생각해요. 좀 더 다양하고 구체적인 지원 활동이 있다면 훨씬 더 힘이 날 것 같습니다.

– 세 번째 이야기, 35
작가가 되려면 다양한 경험을 쌓아야 한다, 는 말은 이미 흔한 말이 되었죠. 그렇지만 결국 가장 핵심이 되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2019년에 몇 개월간 독립영화 제작에 참여했습니다. 취미 삼아 듣던 시나리오 수업에서 만난 사람들과 함께 했던 작업이었어요. 우리 모두 영화 제작에 초보였기 때문에 제작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어요. 예산도 인력도 모두 부족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래도 그 불편하고 힘든 과정이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총 두 편의 단편영화를 제작했어요. 첫 번째 영화는 10분짜리 단편 영화로, 제작팀 모두 초보자라 연습이라는 생각으로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촬영했습니다. 이는 예천스마트폰영화제 응모작으로 제작했습니다. 이때는 전문 배우 없이 제작팀 안에서 찍은 터라 제가 배우로 활약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연기를 한 셈이죠. 물론 표정도 어색하고 발성도 분명하지 않은 엉터리 연기였습니다. 그래도 잠시나마 배우 이나리가 되어 많은 경험을 했습니다.

첫 번째 영화 촬영 때. 내가 배우였다
두 번째 영화는 29분짜리 단편 영화로 전문 배우를 기용하여 성심껏 제작했습니다. 저는 이때 스크립터로 참여했습니다. 스크립터는 영화의 씬과 컷을 기록하여 편집에 반영될 수 있도록 조망하는 역할이었습니다. 처음 해보는 작업이어서 어려운 점도 많았지만 평범한 관객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선을 얻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 영화는 얼마 전 제21회 대구단편영화제의 신작전에 상영되었습니다.

요즘에는 필름을 사용하지 않지만, 35mm 필름은 영화용 필름의 대표적인 규격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35mm 필름은 실제로 영화 필름을 보지 못한 이들도 쉽게 연상되는 대표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특정 개념이 특정 이미지로 환원된다는 건 무척 특별한 일이죠. 2019년에 제가 겪은 많은 경험과 느낌들 또한 제 안에 대표 이미지로 남아 있습니다.

저는 요즘 그 이미지를 소설로 쓰려 노력하고 있어요. 이때의 경험과 느낌들이 지금 준비하는 장편 소설에 많은 영감을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좌) 2019년 두 번째 영화 촬영 당시 모습. 스크립터로 분하고 있을 때 / 우) 2019년 두 번째 영화 제작 시. 배우들과 제작팀 단체 사진
– 마무리하며
요즘은 저의 첫 번째 소설집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을 걸고 나오는 첫 번째 책이라 무척 설렙니다.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는 등산을 갑니다. 동네에 있는 작은 산도 가고, 100대 명산 등반을 인증하려 천 미터가 넘는 산을 오르기도 합니다.
제일 최근 포항 내연산 등반한 사진. 소설이 안 풀릴 때는 등산을 한다
생각이 정리되면 집보다는 근처 카페에서 작업을 합니다. 잘 될 때도 있고, 잘 되지 않을 때도 있지만 잘 되려 항상 노력합니다. 글을 쓴다는 건 너무나도 개인적인 작업이라 혼자 있을 때가 많아요. 든든한 동료도, 짜증나는 훼방꾼도 모두 나 자신이죠.
학생들에게 소설창작 강의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열정을 가진 습작생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을 선별하고 전달하는 일 또한 꽤나 즐겁습니다. 항상 마음이 바쁘고 시끄럽지만 매일이 특별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저의 본업은 소설을 쓰는 일이라는 걸 잊지 않고 살아가려 항상 노력합니다.
‘내가 사는 도시는 더위로 유명하다’ 라고 수상 소감에 기재한 적이 있습니다. 그 더위가 내 마음 속에서 더 오래 타올랐으면 좋겠습니다.
평소 작업 모습. 조용한 카페를 찾아서 소설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