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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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문화도시,
대구 문화역량 높일 호기
글_황숙희 대구시립예술단 홍보마케팅
지난 2월 18일 오후 1시 교토시 헤이안신궁 인근 롬시어터(ROHM Theater) 메인홀. 객석을 가득 메운 1천700여 명의 관객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2017 동아시아 문화도시’ 교토 개막식을 찾은 일본인들과 중국 창사와 대한민국 대구의 사절단들이 그 주요 관객들이다. 그들은 한·중·일 3국의 문화적 매력을 한자리에서 경험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교토 개막식이 열렸던 ROHM시어터 객석
‘동아시아 문화도시’는 지난 2012년 5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제4회 한·중·일 문화 장관회의’에서 비롯됐다. 각국의 문화장관들은 3국의 오래된 갈등과 반목을 도시 간 문화교류와 협력으로 풀자는데 합의했다. 이후 매년 각국의 문화를 대표하는 도시 한 곳을 선정해 1년 동안 상호 교류행사를 개최해왔다. 지난해 8월 3국은 올해의 문화교류 도시로 일본 교토, 중국 창사와 함께 한국에서는 대구가 선정됐다. 2017년 2월 18일, 조금은 흐린 날씨, 이곳 교토에서 그 첫 시작을 알리는 개막식이 시작된다.

객석 앞쪽에 나란히 자리한 권영진 대구시장과 카도카와 교토시장, 진중 창사 부시장 등 각국 대표단의 표정에는 옅은 미소가 흘렀다. 아직 걷히지 않은 막 뒤에서 기다리던 공연출연자들도 손에 땀을 쥐긴 마찬가지였다. 지금 함께 서 있는 우리는 대구는 물론,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사절단의 자격으로 무대를 지키고 있다.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러나 문화사절단이라는 사명감은 공연팀의 어깨를 무겁게 내리눌렀다. 공연 도중 실수는 하지 않을까. 낯선 전통문화를 만난 관객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긴장과 기대가 뒤섞였다. 현지 공연장 사정으로 만족할 만큼 리허설을 하지 못한 점은 불안감을 더욱 키웠다. 마음이 급하면 시간은 더욱 빠르게 흐른다. 이윽고 무대가 환하게 밝아졌다. 이제 시작이다.

공감과 소통 이룬 문화교류 공연
개막식은 교토시 교향악단의 현악 앙상블로 성대한 막을 열었다. 이어지는 개막선언과 한·중·일 문화교류공연. 우리는 교류공연의 마지막 순서인 덕분에 일본과 중국 대표단의 공연을 먼저 감상할 수 있었다.
주최 측인 교토시가 가장 먼저 무대에 올랐다. 교토예술센터가 선보인 공연은 전통가무극인 ‘노(能)-田村(noh play-TAMURA)’이다. ‘댕댕댕’ 종소리가 울리고, 무표정한 얼굴의 배우가 노래를 부르며 무용을 하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배우는 발바닥을 마루에 살짝살짝 스치며 걸었고, 간간이 발을 구르자 마루에서 공명음이 퍼졌다. 공연 내내 마치 꿈속을 헤매는 듯 몽환적인 소리와 몸짓이 이어졌다. 무대 위의 노가쿠(能樂)와 영상은 부드럽게 조화를 이뤘다.
14세기에 시작된 노(能)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직업연극이다. 교토는 노가 처음 생겨난 곳 중 하나다. 1천200여 년간 일본의 수도였던 교토의 매력을 가장 절묘하게 보여주는 주제인 셈이다. 특히 이번 공연은 90분이던 공연 시간을 20분으로 줄이되, 무대 위의 노가쿠와 그림, 영상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꿈과 현실을 왕래하는 무대작품으로 재탄생시켰다. 다만 일본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면 조금은 지루할 수도 있겠다는 느낌도 들었다.
다음은 중국 대표단의 순서였다. 중국 후난성 창사시는 소수민족들이 모여 사는 다문화사회다. 이날 공연을 준비한 창사시 가무극원은 60년의 역사를 지녔으며 무용극과 오페라, 뮤지컬, 예술 무대 등 많은 창작과 연출, 공연을 해왔다고 한다. 첫 무대는 소수민족 ‘동족’의 민속춤 ‘다가두예’였다. 다가두예는 동족의 전투무용으로 ‘노래하며 춤을 춥시다’라는 뜻이다. 이어 옛 무덤에서 출토된 토용을 바탕으로 창작된 무용 ‘채도용’이 이어졌다. 화려한 피리 소리와 몸짓은 중국의 매력을 단숨에 느끼게 했다. 또 창사를 흐르는 유양하의 웅대함과 아름다움, 창사시민의 열정과 미래를 향한 동경을 표현하는 전통민요 ‘유양하’가 이어졌다. 후난성 지방의 전통극인 화고회가 울리며 관객들의 귀를 사로잡는가 하면, 중국의 소리라 할 수 있는 현악기인 비파와 이호(二胡) 합주는 중국 전통음악의 색다른 매력을 한껏 뽐냈다.
1. 교토 개막식 리허설 전 스탭회의 2. 교토 개막식 리허설 모습 3. 교토 개막식 리허설 무대
기다리던 대구의 순서가 돌아왔다. 공연문화 중심도시의 진면목을 보여줄 차례였다. 피날레를 맡은 우리 공연팀이 준비한 무대의 주제는 ‘전통문화와 현대문화의 어울림’. 뮤지컬배우 장은주가 뮤지컬 레미제라블 중 ‘I dreamed a dream’을 부르기 시작하자 관객들이 자세를 고쳐앉기 시작했다. 노래가 끝나자 객석은 힘찬 박수와 환호로 가득 찼다. 한껏 달궈진 무대는 뮤지컬배우 박지훈이 장은주와 함께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중에서 ‘Take me as I am’을 열연하자 분위기는 더욱 고조됐다. 앞선 두 나라의 공연에서는 볼 수 없었던 환호였다. 이어 오페라 갈라로 테너 노성훈이 투란도트의 ‘공주는 잠 못 이루고(Nessun Dorma)’를, 소프라노 마혜선이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중에서 ‘밤의 여왕 아리아(The Queen of the Night Aria)를 들려주며 교토시민들의 우레같은 박수를 이끌어냈다. 무대는 사물놀이&비보잉 공연으로 절정으로 치달았다. 꽹과리와 징, 북, 장구, 태평소는 언어와 국경을 뛰어넘어 교토시민들의 심장을 두드렸다. 브롱스댄스팀의 현란한 몸짓이 펼쳐질 때마다 객석에서는 탄성과 환호가 터져 나왔다.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갈채는 공연이 끝난 뒤에도 한동안 이어졌다. 권영진 대구시장이 무대 뒤로 뛰어들어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우리 사절단의 가슴도 뜨거운 기운으로 먹먹해졌다. 그렇게 3국의 문화사절단이 함께하는 무대는 막을 내렸다.
문화예술에 기반 둔 지역발전 모델로 키워야
행사가 끝난 후에도 무대 뒤편에 모인 출연진과 스태프들은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함께 무대에 섰던 한·중·일 3국 사절단은 뜨거운 인사를 나누며 손을 맞잡았다. 말은 잘 통하지 않았지만 세 나라의 오랜 갈등과 반목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한·중·일 3국의 문화를 한자리에서 경험하며 공감과 소통을 이루기 위한 ‘동아시아 문화교류’의 목표는 무대 뒤에서 이미 이룬 셈이다. 각자의 나라에서 노래하고 춤추며 문화적 토양을 이뤄온 문화인들의 동질감이 더욱 작용했을 것이다. 함께 어우러지는 각국 문화사절단을 바라보며 고단했던 지난 2개월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문화사절단이 본격적으로 꾸려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2월부터이다. 대구시 문화예술정책과와 엑스코, 대구시립예술단의 유기적인 협조가 절실했다. 돌발 변수도 많았다. 참가자들의 일정과 숙소, 항공편을 챙기고, 교토시와 수시로 연락하며 각종 공연 준비 사항들을 면밀하게 요청해야 했다. 어려움은 있었지만, 교토 개막식은 성공리에 마무리됐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일본 교토 개막식의 흥분이 가라앉기도 전에 오는 4월 19일 열리는 중국 후난성 창사시 개막식의 항공편 일정이 확정됐다. 중국 창사시는 후난성의 성도로 3천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인구는 704만 명으로 대구의 2.5배에 이르고, 전자와 기계, 방직 등이 발달한 종합공업 도시다. 또 5월 12일에는 3국 도시 대표단이 참석하는 대구 개막식이 열린다. 숨돌릴 틈 없이 교류 일정이 계속되는 것이다.
교토 개막식 문화사절단 공연후 기념 촬영
지속적인 교류 확대로 대구의 문화역량 높여야
‘동아시아 문화도시’ 사업은 대구의 문화 역량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좋은 기회다. 문화예술도시인 대구는 공연, 전시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이 골고루 발달해 있다. 수준 높은 전통문화와 근현대 문화도 도시 전체에 자리 잡고 있다.

교토 개막식 공식행사 3개도시 축사
교토와 공통분모도 적지 않다. 교토 개막식이 열린 롬 씨어터는 지난해 1월 옛 교토문화회관을 리모델링한 최신식 공연장이다. 이곳은 국제 규모의 공연을 열 수 있는 2천 석의 메인홀과 중극장인 700석 규모의 사우스홀, 소규모 공연과 리허설 등이 가능한 200석 규모의 북홀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 밖에도 파크 플라자와 서점, 카페, 레스토랑 등 다양한 부대시설도 갖춘 게 특징이다. 확 달라진 롬 씨어터를 보며 낡고 노후된 대구문화예술회관이 떠올랐다. 대구문화예술회관과 함께 대표적인 노후 시설이었던 대구시민회관은 지난 2013년 국제적 수준의 고품격 전문 콘서트홀인 대구콘서트하우스로 탈바꿈했다. 그러나 1990년에 개관한 대구문화예술회관은 건립된 지 27년째를 맞으면서
해외문화교류의 교두보가 되기 위한 국제적인 수준에 턱없이 못 미치는 것이 현실이다. 앞으로 지속적인 문화교류가 이어지려면 낙후된 대구문화예술회관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도 고민이 필요하다. 2018년 대규모의 리모델링을 앞둔 대구문화예술회관이 성공적인 재개관과 함께 대구문화예술의 중심기관으로 그 역할을 이어 나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교토가 전통문화의 원형을 어떻게 지켜왔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1천200여 년간 일본의 수도였던 교토는 도시 전체가 문화유산이자 일본 문화의 뿌리 역할을 하고 있다. 인구 147만 명의 교토는 전통경관을 잘 보존하면서도 도시 발전을 이끌어왔다. 교토의 보존정책은 대부분 지자체의 강요가 아닌, 주민들의 자발적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이는 근대문화가 산재한 대구가 문화 원형을 보존하려면 시민들의 인식도 함께 바꿔야 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동아시아 문화도시 선정 사업의 본질은 문화예술의 교류가 중심이 되어야 할 것이다. 3개 도시의 문화예술 및 인력이 서로 교류하고 소통함으로써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 또한, 문화적 동질감을 확인함으로써 문화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 근본 취지다.
이러한 문화도시사업은 문화예술에 기반을 둔 지역발전 모델로 자리 잡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지역의 문화자원과 창조성을 활용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 동아시아 문화도시 사업으로 인연을 맺은 대구와 교토, 창사시가 향후 구체적인 문화교류 프로그램들을 구상하고 교류를 지속한다면 새로운 시민 축제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