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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리뷰 #2
대구예술발전소 기획전시 <각·색(각각의 색)>展
임상우 / 대구예술발전소 예술감독
– 색으로 보는 비구상
영국에 세계적인 미술관인 테이트갤러리가 있다. 이해하기 어려운 현대미술 작품을 다수 전시하고 있는 갤러리 안에는 “현대미술은 바로 이런 거야”라고 말하는 것 같다. 전시되어 있는 많은 작품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현대미술로 가득 차 있다. 아마도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비구상 작품 때문일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물론 눈에만 보이는 것으로 작품을 해석하거나 감상한다면 다른 차원이겠지만, 보이는 것 안에 보이지 않는 많은 것들을 찾아내기란 보통 사람들 입장에서는 쉽지 않다.
2020년 대구예술발전소의 첫 기획전 ‘각각의 색 展’은 김미경, 박정현, 서지현, 소영란, 신소연, 원선금, 유주희, 윤종주, 정은지, 정희경, 10명의 모든 작품들이 보이지 않는 무언가로 가득 찬 작품들을 선보인다. 이것은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예술여행이다. 그래도 일관된 하나의 힌트가 주어졌다. 바로 ‘색(色)’이다. 각각이 가지고 있는 색, ‘각각(各各)의 색(色)’이다. 색은 사람이 사물을 인지하는 중요한 시각적 요소 중의 하나다. 색을 통해 얻어진 자극은 그 형태나 질감 등의 정보를 통해 해석하고 판단한다. 색은 다양한 캐릭터를 상징하고 설명하기도 한다. 그 색의 힌트를 가지고 우리는 작품 안에 숨어 있는 방대한 이야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색(色)의 역사
1704년 뉴턴의 광학(Opticks)이 발표되기 전 2000년 동안 색에 관해서는 철학자의 영역이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세상의 모든 중심은 인간이라고 생각했고 물질은 단순한 존재로서 의미만을 부여했다. 따라서 모든 주체는 ‘인간의 의식’이고 색에 대한 생각도 물체가 색을 가진 것이 아닌 눈에서 안광이 나가 물체를 더듬어 색을 느끼는 것이라 주장했다.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에 반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의식을 떠나 물질은 그 자체로 존재하고, 색은 물체가 가진 고유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물체가 가진 고유한 색’이란 것이다. 철학의 영역에서 빛과 색을 과학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사람은 우선 데카르트가 있다. 그는 빛과 색에 대한 설명을 “프리즘을 통과할 때 무지갯빛이 생기는 것은 빛 자체 때문이 아니라 프리즘의 재질이 지닌 특수한 성질로 인한 것” 이라고 주장했다. 이 모든 것은 천재 물리학자 뉴턴이 1665년 케임브리지를 졸업하던 해, 흑사병이 영국 전역을 뒤덮어 고향으로 돌아가 빛과 색채에 관한 연구를 시작하며 바뀌게 된다. 당시 사람들은 빛에는 색채가 없다고 믿었다. 뉴턴은 두 개의 프리즘을 가지고 한 개의 프리즘을 통해 나온 무지갯빛 중에서 한 가지 색을 선택해 다른 프리즘에 통과시켰을 때 다른 색이 나온다면 프리즘의 영향일 것이고, 본래의 색이 나오면 프리즘과 관계없는 빛 자체의 속성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백광색 안에 다양한 단색광들이 내포되어 있음을 증명한 것이다. 즉, 빛이라는 무광색은 7가지 단색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반면 괴테는 뉴턴의 이론을 정면으로 부정했다. 그는 ‘색채론’을 발표하며 백색광이 7가지 색의결합이 아닌 빛은 그 자체가 통일된 실체이고 눈에 의해 지각되는 색을 기초로 하여 본래 색은 자연과 육안 즉, 객관과 주관의 상호관계로서 외부 빛의 자극에 의해 눈 내부에 머무르고 있던 빛이 눈을 일깨워 생기는 생리학적 현상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과학적·철학적 색의 이론에서 화가들에게는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역사적으로 황금색은 황제의 색이었고 신성함과 화려함을 나타냈다. 그러다보니 성화에는 금색을 많이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르네상스 시대에는 황금색보다 파란색이 더 귀하였기 때문에 파란색은 특별한 표현을 할 때만 쓰였다. 그 외에도 화가들은 색을 유지하기 위해 템페라기법을 사용하기도 하고 피카소의 색의 변화까지 색에 관한 화가들의 일화는 많다.
현대미술에서 앙리 마티스(1869~1954)의 작품 ‘모자를 쓴 여인(1905)은 색에 대한 우리의 관념을 완전히 바꾼 작품이다.
앙리 마티스 – 모자를 쓴 여인 (출처_printerest)
인물의 얼굴피부를 빨강, 초록, 노란색이 범벅이 되어버린 색으로 표현했다. 물론 모자나 부채, 의상도 유사한 색으로 채색되어 있다. 당시는 이 작품에 대해 “고통스러울 정도로 현란하다”라는 혹평일색 이었다. 모델이었던 그의 아내조차도 혹평에 동조했다. 우리는 색에 대한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 물론 색채를 광학으로만 접근할 수는 없다. 색이 가지고 있는, 그리고 색으로 인한 효과도 다양하게 나타난다. 19세기 말 형태심리학까지 이어지는 색에 관한 논점은 뇌에서 시각정보를 어떻게 인지되는지, 그것이 이미지 형성을 어떻게 하는지 까지 연구로 이어진다. 현대의 색은 이미지를 만들고 인지하는 브랜드의 상징까지 다양하게 구현되고 있다. 얼마 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새로 탄생한 정당이 당의 상징 색이 오렌지냐 주홍이냐 다투는 사태가 있었다. 당을 상징하는 색은 그만큼 민감하고 유권자들에게 전달하는 이미지를 만드는 중요한 작업이기 때문에 색을 차지하려고 싸우기까지 했다.
– 여성작가 10인의 ‘색의 향연’
현대미술은 데생보다 비구상(추상) 작품과 색에 집중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단색화가 대표적인 예다. 한국작가 작품 중에서도 최근 가장 비싸게 거래되는 작품들은 형태를 알 수 없는 비구상에 단색화 일색이다. 대구예술발전소에서 비구상, 여류작가, 색을 중요하게 작업하는 작가 10명을 선정해 기획전을 열게 된 이유도 이 시대 다양한 색을 가지고 작업을 하는 작가들의 예술세계를 한자리서 보고자한 것이다. 한국에서 여성작가로 활동하는 것은 다른 어떤 사회활동 보다 어렵고 고단한 길이다. 이번 전시는 예술가의 삶, 현실과 이상에 대한 그들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들려주는 전시이며, 끊임없이 현실세계를 관찰하고 자기 자신을 관조해 형성된 그들의 예술세계와 철학을 통해 창조해 낸 작품들을 소개한다. 작가들은 사회적으로 규정된 역할의 틀, 제한된 환경에서도 자신만의 리듬을 만들고 엄청난 자발성과 몰입, 엄격한 루틴, 스스로와 맺는 원칙을 가지고 내면으로 집중해 자신만의 독자적인 색을 구축했다.

원선금 작가는 설치작로서 현대사회의 소비문화에서 파생된 폐 포장지를 재료로 사용해 작품을 만든다. 특히 의자를 매개체로 작업하는데 의자는 양면성을 강조한다. 편안함과 권위의 상징이기도 하다. 폐 포장지에 인쇄된 상표, 화려한 색상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원선금_재생된 권위_가변설치_사탕포장지, 화장품 포장재, 나무의자, 락카스프레이, LED조명-2020
신소연 작가는 대상에 대한 본질을 찾으며 비구상 작업을 한다. 존재의 생(生)과 멸(滅) 사이에 오는 유(有)·무(無)의 변화에 관심을 갖고 이를 색의 관계적 사유로 통찰한 작업이다. 인간의 존재에 당체, 본체에 대한 고민을 통한 작업으로서 물질화돼 펼쳐지는 실체가 있는 모든 현상을 색으로 표현한다.
좌) 신소연- untitled 162X130.3cm 2EA stonepowder,Hanji,acrylic 2019
우) <신소연2-untitled 162X130.3cm stonepowder,Hanji,acrylic 2019
유주희 작가의 색은 감성 그 자체이며 공감이고 빛이다. 색은 일종의 언어로서 표현 수단이고 감상하는 이로 하여금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게 한다. 색과 이미지의 관계는 시각적인 충돌과 진동을 만들어 내며, 스퀴지로 밀어낸 물성의 우연적 색상혼합, 그 자체가 흔적으로 시각화된다.
유주희 Repetition-Trace of Meditation-20-2-10
윤종주 작가의 작품은 색을 담은 액체를 부어 그것이 마르고 시간이 지나며 그 깊이와 자신만의 형체와 공간을 만들어낸 것이다. 색채는 깊이감과 여백을 통해 어떤 명상을 전달한다. 비움으로 채워지는 화면,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층위의 결들을 소중하게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윤종주, cherish the time-space, 162X130, ink,medium, acrylic color on canvas, 2018
박정현 작가의 ‘0.917’ 작품은 물 밑에 숨겨져 있는 91.7%의 빙산을 의미한다. 현대인은 그만큼을 숨기고, 8.3%만 드러내는 불완전한 소통을 한다. 작가는 그것을 단색으로 표현한다. 작가가 디자인한 가구는 불편함과 편함이 공존하고 있다. 디자인도 아닌 예술작품도 아닌 모호한, 정체성을 잃은 작품이다.
박정현-보지 못하는 것들 T-able_가변크기_혼합재료_2019
정은주 작가의 ‘색면(色面)회화’ 작업을 한다. 주로 테트리스 시리즈로서 영상과 캔버스 회화작품을 선보인다. 각각의 형태들이 각기 다른 색을 가지되 동일계열의 색으로 화면을 채우면서 시간의 개입을 적극적으로 구체화 한다.
정은주_Tetris 5_162.2×130.3cm_Acrylic on canvas_2011 / 정은주_Tetris 2_162.2×130.3cm_Acrylic on canvas_2011
김미경 작가의 작품은 살아있는 자연의 순환 같은 것이 인간의 삶을 축소한, 또는 확대한 시점에 따라 반복되는 부분을 표현한다. 생명의 존재감 경외를 말하고자 하며 색감을 보고, 보는 시선에 따라 꽃잎도 되고 자연도 되는 작품이다. 무엇이 보이든 그 안에 살아있는 생명이 들어있어 보는 이가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김미경-Symphony of the Sprit 162×130 Pigment & Oil on Canvas 2016
소영란 작가의 플로팅 시리즈는 유형하고 떠다니는 뭔가를 경계로 표현한 것으로서, 두려움을 극복하는 자의적 선택의 자유로움이다. 보는 그대로 해석이 다르게 나올 수도 있고 그것 자체도 작품의 해석이 될 수 있다. 무엇을 설명하기 보다는 무엇을 느끼느냐가 중요하다.
좌) 소영란_Floating_162x130cm_oil on canvas_2019
우) 소영란_Floating_614x162cm_oil on canvas_2019
정희경 작가는 빛이 우리에게 아름답게 묵상하는 것을 표현한다. 치유와 소망의 빛을 내는 작품으로 빛은 깨달음과 지혜다. 빛은 밝고 기쁘고 희망을 말한다. 즉, 내면의 빛과 내면의 깨달음을 의미한다. 작가는 최대한 많은 색을 쓰기 위해 노력한다. 모든 색은 다른 색과 함께 할 때 영향을 받고 색의 역할도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좌) 정희경 Whispering Light 19111-100P(162.2cmx112.1cm)-Acrylic on Canvas-2019년
우) 정희경-Whispering Light 16021-10F(53.0×45.5)
서지현 작가는 설치작품을 주로 작업한다. 공허함에서 출발해 장식적인 요소와 패턴 반복을 통해 본인의 감성과 감정을 중심으로 자유로운 표현을 모색한다. 회화와 입체의 만남을 모색하고 색과 형태, 공간의 어울림을 표현한다.
좌) 서지현_마음으로부터(Heartfully)_가변설치_mixed media on wood sculpture_2018
우) 서지현_마음으로부터(Heartfully)_53x45cm 12EA_mixed media on wood canvas_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