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리뷰

목차보기
문화리뷰
Print Friendly, PDF & Email
문화리뷰 #1
Human Desire at Artspace Lumos
황인옥 / 대구신문 기자
지금부터 한 남자로부터 시작된 시공을 초월한 인연이 어떻게 현대인들과 만나 깊은 교감을 나누게 되는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유물이 사진작가에 의해 발견되고, 작곡가가 그 사진에 대한 감상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이어지고 이어지는 인연의 고리에 대한 이야기이다.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이 하나의 주제로 필연으로 만나는 조금은 특별한 인연에 대한 이야기이다.

첫 인연은 세찬 비바람이 몰아치는 어느 여름날의 중년 남자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사진작가 윤길중이다. 남자는 빗속을 뚫고 차를 몰아 산을 오른다. 무덤 앞을 지키는 문인상과 인연을 맺기 위해서이다. 문인상은 영생에 대한 염원을 담아 망자의 무덤 앞에 세웠던 석상이다. 말 그대로 문관(文官)의 모습을 만든 석상인데 석인, 문석, 문석인(文石人), 문관석인, 의관석인(衣冠石人), 관대석인(冠帶石人) 등으로 불렸다. 왕릉에서부터 세우기 시작하여 사대부 무덤, 그리고 조선 후기에 와서는 낮은 벼슬아치 무덤에서, 나중에는 일반 서민의 무덤에까지 세워졌다.

윤 작가는 말쑥한 신사의 가르마를 닮은 잘 닦여진 등산로를 제쳐두고, 험한 풀숲을 헤치며 산을 오른다. 몇 백 년이 흐르면서 자손에게 마저 잊혀진, 오래된 무덤을 지키는 문인상을 찾기 위해서다. 비오는 날 산속을 헤매는 그를 보고 사람들은 ‘귀신같다’며 기인취급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비가 내리면 오르던 산도 내려와야 하는데, 그는 왜 비바람이 세차게 몰아치는 험한 날에 산을 올라야만 했을까? 이유는 간명하다. 비에 젖은 문인상에서 특별한 감성을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몇 백 년이 흐른 석상에서 윤 작가가 발견하려고 했던 주제를 알기 위해 우리는 문인상의 역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문인상은 그야말로 영생을 기원하는 인간의 욕망에 대한 현실태(現實態)다. 역사 이래 인류 최대 과제이자 고정불변의 진리인 ‘욕망’에 대한 상징적인 징표인 것이다. 따라서 윤 작가 작업의 주제는 ‘인간의 욕망’으로 압축될 수 있다. 그는 문인상을 매개로 추상적인 인간의 욕망을 가시화한다.

그가 문인상과 첫 인연을 맺는 의식은 문인상을 쓸고 닦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석상 표면을 쓸고 닦으며 켜켜이 쌓였던 세월의 무게를 걷어낸다. 마침내 석상의 얼굴이 말쑥하게 드러나면 작가는 석상에게 말을 건넨다. 그가 서 있는 묘의 주인이 누구이며, 망자는 어느 시대를 살다 갔는지, 그의 삶은 어떠하였는지에 대한 질문들이 끝없이 오고간다. 이어지는 대화 속에서 둘 간의 영적 교감이 최고조에 달하는 순간, 카메라 셔터가 번쩍인다. 작가는 그렇게 1700여장에 가까운 석인상을 찾아내 사진으로 담아내었고, ‘인간의 욕망(Human Desire)’ 시리즈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두 번째 인연은 햇살 좋은 어느 봄날인 지난 2월, 대구 도심의 모던한 갤러리인 아트스페이스 루모스에서 시작된다. 윤길중이 촬영한 사진들이 전시장에 걸렸다. 300년 전 무덤 앞에 터를 잡은 이후 첫 세상 나들이를 하는 순간이자 석상이 새로운 인연들과 만날 채비를 끝내는 시점이었다. 죽은 자의 긴 잠을 지키다 산 자들의 공간에서 생기를 머금게 되었지만, 여전히 문인상의 입술에서 핏기를 찾기는 어렵다. 비록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특별한 외출을 감행하였지만 자발적인 외출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무덤을 지켰던 300년의 무게는 여전히 무거웠고, 그의 입술에는 긴 침묵이 가득했다. 누가 억겁의 침묵을 깨우고 석상에게 찬란한 아침을 선물할 수 있을까?
지난달 9일, 문인상의 새로운 인연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석상과의 세 번째 인연이었다. 벽면에 걸린 문인상, 문인상의 세상 밖 외출을 도모한 윤길중 작가와 석상 사진을 감상하기 위해 들른 관람객, 그리고 작곡가 권은실의 만남이다. 작곡가가 관람자 중의 한 사람으로 참석하였다면 특별한 만남으로 언급할 것도 없겠지만, 이날 권은실은 문인상과 좀 더 특별한 인연으로 초청되었다. 권은실이 어느 날 문득 아트스페이스 루모스에 걸린 문인상 사진에서 강한 영감을 받으면서 ‘인간의 욕망’이라는 창작곡으로 만들었고, 이날 영감을 받았던 석상 앞에서 창작곡을 연주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말하자면 이날 공연이 석상에게 바치는 헌정 연주회이자 석상의 침묵을 깨트리는 거룩한 의식이었던 것이다.

이날 석상을 둘러싼 인연들이 한 자리에 모인 계기는 갤러리 아트스페이스 루모스가 전시 기간 중에 마련한 ‘작가와의 대화’ 프로그램이었다. 이날 윤 작가는 참석자들에게 그가 문인상을 촬영하게 된 이유와 문인상 촬영을 둘러싼 에피소드 그리고 석상에 담아내고자 했던 메시지들을 소개하였다.

이날 1부 ‘작가와의 대화’가 잔잔한 감동으로 갈무리되자 천개의 석상 사진을 모아놓은 대형 사진 작품 앞에 25현 가야금이 놓여졌다. 마침내 헌정 연주회가 시작된 것이다. 가야금 연주자 엄윤숙의 손가락이 25현을 쓸어내리자 조용하던 공간에 회오리가 일었다. 순식간에 맑고 화창하던 기운이 폭풍으로 변했다. 분위기가 전환되자 검정 한복을 입은 소리꾼 오영지가 ‘인간의 욕망’이라는 가사를 읊조리며 객석에서 무대로 향하였다. 찰나의 순간을 살다가는 인간의 한(恨)이 그녀의 가슴에서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번에는 서민기의 생황과 정혜진의 클라리넷이 가세하며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국악기가 중심을 잡고, 서양악기가 그 뒤를 받쳐주는 형국이었다. 그러자 과거와 현대, 동양과 서양이 한 공간에서 뒤엉키고, 시간과 공간의 경계가 허물어져 갔다.
사진작가 윤길중의 작품을 음악으로 창작한 작곡가 권은실은 윤 작가의 작품에서 느낀 감상을 모노톤을 음색에 적용시켜 모노포니(단선율적), 즉 완전 1도나 완전 8도 그리고 완전 4·5도로 수직적인 화성을 주요한 재료로 사용하였다고 밝혔다. 또한 작품의 모티브가 석상이라 형식적인 면은 전통 국악의 5음계를 음의 재료로 사용하고, 정서적인 면은 석상을 통한 우리 선조들의 염원(삶의 욕망)을 표현하였다고도 밝혔다.

석상에 새긴 선조들의 욕망과 윤 작가가 사진에 담아낸 인간의 욕망, 그리고 작곡가 권은실이 표현한 삶의 욕망이 하나의 공간에서 어우러지자 내면 깊숙이 잠재되어 있던 ‘욕망들’이 스멀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굳게 닫혔던 문인상의 입술이 열리고, 긴 침묵이 마침내 깨어졌다. 석상에 온기가 돌자 사진 속 석상이 성큼성큼 현실세계로 걸어 나왔다. 그리고는 관람객들의 가슴을 뜨겁게 끌어안았다. “괜찮아. 내가 너희들의 욕망을 위로해 줄께”라고 위무하는 것 같았다. 유물을 매개로 현생 인류와 과거 인류가 시공을 뛰어넘어 영혼으로 교감하고 소통하는 순간이었다. 그러자 연주자와 객석 그리고 석상이 하나가 되어 광활한 우주로 빨려 들어갔다.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 신비로운 경험은 사실은 음악이 일으킨 화학반응에 의한 착시였다. 사진가가 긴 잠에 빠져있는 석상을 깨우고, 작곡가가 음악으로 석상의 긴 침묵을 깨트리면서 들숨과 날숨처럼 호흡을 주고받은 결과였다.

바야흐로 융·복합 시대다. 과학과 예술이 만나고, 인간과 로봇이 협업한다. 융·복합은 감성의 밀도를 높이고, 기술의 진보를 이끈다. 이번 아트스페이스 루모스에서 진행한 사진과 음악의 만남은 융·복합의 전형처럼 다가왔다. 전시된 작품이 타 장르인 음악과 만나며 장르의 확장과 감성의 깊이가 더해졌다. 찰나의 순간에 허공에 흩어지는 음악, 움직임이 없는 이미지의 시각화인 사진이 가지는 단점이 완벽하게 보완되었다. 사진이 음악을 만나자 사진에서 역동적인 기운이, 음악에서 시각적인 이미지가 어른거렸다. 매체의 장점은 더욱 심화되고 단점은 타 장르의 장점으로 보완되는, 상호보완의 관계가 형성되었다. 이것은 인연들이 만든 힘이자 선물이었다.

사진과 음악의 만남에서 또 다른 융·복합도 포착되었다. 현생 인류와 과거 초월적 존재와의 만남이다. 현생 인류가 과거의 유물을 매개로 과거 인류와 만나고, 인류 공통의 주제인 ‘욕망’을 시공을 초월해 들여다보게 되었다. 시간의 확장이자 주제의 심화였다. 인간은 현재에서 한 발짝 뒤로 가거나 앞으로 나아가는데 두려움을 느낀다. 비교적 좁은 시간의 틀 속에 있을 때 안정감을 느끼지만 그 틀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불안함을 느낀다. 흔히 미래를 생각할 때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라는 이유도 작용하겠지만 인식의 틀이 좁은 탓도 없지 않다. 하지만 만약 인간이 시간에 대한 개념을 확장할 수만 있다면 더 큰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아트스페이스 루모스의 사진과 음악이 함께하는 이번 행사에서 시공을 초월하는 다양한 개념들의 확장들을 경험하였다면 지나친 비약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