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예술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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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예술의 힘 – 청년예술인
그룹 아나키스트
김학용 / 그룹 아나키스트 대표
2017년도에 처음으로 결성된 그룹 아나키스트는 현재 대구에서 활동하고 있는 춤추는 단체입니다.
그룹 아나키스트 대표 김학용
기존에 알고 있던 극장 공연이 아닌, 보다 대중적이고 현장성을 가진 무용 공연이 하고 싶어 ‘무용 버스킹’이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렸습니다. 예전부터 잘 알고 지내왔고 마음이 잘 맞는 친구들과 함께 무용 버스킹을 시작한 것이, 곧 그룹아나키스트의 시작이였습니다.

저희 팀은 저 포함 총 6명으로 현대무용, 재즈, 힙합, 탭댄스, 한국무용, 발레 등 다양한 장르의 댄서들이 함께하고 있고, 배우와 보컬 기획 작곡 극작 등 공연 전반에 필요한 예술가들과 함께 협업하며 성장해 나가고 있는 단체입니다.

처음 그룹아나키스트를 결성했을 때 팀명에 대해서 아나키스트가 가진 사전적 의미 로 인해 많은 분들이 의아해하셨고 좋은 시선으로만 봐주시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사실 아나키스트가 가진 사전적 의미(사전적 의미:무정부주의자를 가르키는 말)를 담고 지은 것은 아닙니다. 어렸을 적 독립운동을 소재로 한 한국영화 ‘아나키스트’를 보고 굉장히 강한 인상을 받았고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아나키스트란 단어를 기억하고 있었는데 제가 생각하는 춤의 방향성과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인 것 같아 그룹 아나키스트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춤이라는 큰 대주제 속에서 다양한 방식의 움직임을 장르라는 타이틀에 가둬두지 말자”라는 의미로 그룹아나키스트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그룹아나키스트는 처음부터 현재까지 별 탈 없이 성장해왔던 것 같습니다. 저희끼리의 사이가 좋은 점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욕심이 없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무용에 대한 인식, 그리고 ‘우리 팀이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까’ 라는 것에 대한 의문들이 큰 욕심을 가지게 되지 않은 이유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무용이라는 장르가 해석과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움이 따르다 보니, 과연 춤이라는 또 다른 언어를 어떻게 풀어내야 대중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곧 숙제와도 같았습니다. 그래서 10만원짜리 중국산 무선앰프 하나를 무작정 들고 동성로에 나가서 거리 공연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거리공연(버스킹)을 하면서 많은 에피소드가 있었지만, 그 중에서 아직 생생하게 기억나는 일이 있습니다. 거리공연의 특성상 미리 자리를 정해두고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팀의 공연이 진행되고 있는 등 현장 상황에 따라 변동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저희 팀은 보통 거리 공연이 있는 날에는 2시간 전에 미리 가서 자리를 맡아두는 편입니다. 그 날도 어김없이 한 시간정도 지켜보다가 공연을 시작할까 싶어 앰프랑 노트북을 연결하려고 하는데, 어떤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자 두 명이 제 바로 앞에서 악기와 앰프를 설치하려고 하길래 정중히 물었습니다. “제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한 시간 정도면 공연이 끝나니 조금만 기다려 주실 수 있겠냐.”라는 물음에 본인들이 먼저 대기하고 있었고 아무도 없어서 앰프 챙기러 다녀온 거라며, 되려 버스킹 몇 년 차인지, 팀 이름은 무엇인지 되물었습니다. 지금은 그저 웃으며 회상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 당시에는 왜 그렇게 화가 났던지. 저희도 그 버스킹 팀 밑에 자리를 깔고 공연을 시작했습니다. 무용 버스킹의 특성상 공간도 넓게 쓰고 현장 반응도 좋기 때문에 감사하게도 40분이 넘는 공연 레퍼토리를 끝까지 봐주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아직도 그 친구들의 표정이 기억에 생생합니다.

이 외에도 저희가 버스킹을 하는 중에 누군가 저희 짐을 뒤져 지갑을 도둑맞은 적도, 버스킹 중 술에 잔뜩 취한 아저씨가 난입하셔서 같이 춤을 춘 적도, 버스킹 끝나고 울먹거리시며 고생 많았다고 오만원권 한 장을 쥐여주시던 할아버지, 버스킹 중간 중간 마실 것들을 사다 주시는 분들, 이 밖에도 정말 감사하고 감동적인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은 저희 버스킹 최다 관람 횟수를 기록하신 멋진 어머님 아버님인 것 같습니다. 두 분은 봉산에서 사진관을 운영 중이신데, 우연히 버스킹을 보시고는 다음 공연 때는 어린 딸과 아들과 함께, 그 다음 공연엔 부모님과 함께, 그 다음 공연엔 친구분들과 함께 저희 공연을 지켜봐주셨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저희가 먼저 찾아가 인사를 드렸는데 “우리 아이들에게 이런 감동적인 순간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감사하다”며 웃어주셨던 미소가 아직도 가슴 깊이 남아있습니다.

무용 버스킹을 하며 느낀 가장 큰 매력은, 춤이라는 장르 자체가 오롯이 몸으로 이야기를 전달해야 하다 보니 바로바로 느껴지는 반응과 그 반응들로 인해 더 몰입을 할 수 있게 되는 현장감이 아닐까 합니다. 극장에서 가질 수 있는 몰입도와 집중력이랑은 조금 다름의 희열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버스킹 얘기가 주를 이룰 만큼 그룹 아나키스트에게 있어 버스킹은 큰 의미로 새겨져 있습니다. 거리에서 춤을 추며 가까운 곳에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고 와 닿음을 주고받음으로 인해 춤에 대한 본질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시멘트 바닥에서 맨발로 공연할 수 있는 것 또한 저만의 소통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버스킹으로 인해 저희 팀이 완성되었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성을 찾을 수 있었으며 한 가지의 길이 아닌 더 넓고 다양한 길로 뻗어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저희 그룹 아나키스트는 올해도 활동 3년차에 접어들었습니다.
주변 분들은 ‘아직 그거밖에 안됐어?’라곤 하시는데, 요즘은 저도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지나지 않았단 점에 오히려 안도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쫓기듯 앞만 보고 달려왔던 3년의 시간을 맞이하는 지금에서야 천천히 뒤를 돌아볼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버스킹을 하면서 생긴 수입을 조금씩 모으고, 팀원들이 각자 사비를 보태서 2018년도에는 처음으로 정기 공연을 진행했습니다. 거리 공연으로 대중적인 이야기를 들려드렸기에, 극장에 초대해 저희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첫 공연에 많은 분들이 오시지는 않았지만, 감사하게도 저희 버스킹 공연을 통해 관심을 가지고 찾아와주신 분들도 계셨습니다. 그렇게 무사히 첫 공연을 잘 끝내고, 같은 해 다른 소극장에서 2회의 정기 공연을 추가로 진행할 수 있게 되었고, 저희의 이야기가 조금씩 늘어가고 있다는 점에 감사한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그 이후에도 여러 페스티벌과 공연을 하며 연습실도 생겼고, 저희 팀의 보완점과 발전 가능성에 대해서도 공부하는 시간들이 점점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저희 팀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색깔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드릴 수도 있어야 하며, 저희의 이야기 또한 들려드릴 수 있는 이야기꾼 같은 색깔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춤을 추는 사람으로서 움직임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여러 이야기를 전해드리기 위해 노력합니다.

아직 무용이라는 장르에 있어 대중성은 어려울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춤이라는 본질적 행위로 많은 분들에게 감동과 감명을 드리고 싶은 것이 그룹 아나키스트의 이유이자 목표입니다. 언젠가 영화 한편을 보러 가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공연장에서 뵐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