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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3
포스트 코로나 시대, 영화계의 변화와 대응
서성희 / 대구경북영화영상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5월 26일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인해 지난달 극장 전체 관객 수가 지난해 동기(1334만 명) 대비 93% 급감한 97만 명을 기록했다. 한국 영화산업 매출의 76%를 담당하는 극장이 유례없는 위기를 맞자 작품 투자 심사가 멈춰지고 제작·배급 일정이 혼선을 빚는 등 업계 전체가 연쇄 충격을 받았다. 반대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소비되던 OTT(Over the Top·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서비스가 일종의 ‘뉴노멀’로 자리 잡으면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 영화계 판도가 어떻게 바뀔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는 한국 영화산업은 그저 버티고 있다. 버티면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2020년 2월 18일, 31번 확진자
<기생충> 아카데미 새 역사를 쓰다
2020년 2월 10일(한국시간)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기생충>은 국제장편영화상을 포함해 각본상, 감독상, 작품상까지 수상하는 이변을 일으켰다. 당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그의 수상 소식을 뿌듯해하고 자랑스러워하는 분위기였고, 봉준호 감독의 고향인 대구도 영화에 대한 관심과 열기가 급격하게 팽창하고 있었다.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2월 18일, 대구에서 31번 확진자가 나오면서 폭풍같이 몰아치던 영화에 대한 관심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그때 대구는 모든 것이 멈춰버렸다. 대구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도 2월 20일부터 잠정 휴관에 들어갔다. 오 년을 운영하면서 어떤 모진 세파에도 하루 이상 휴관한 적이 없었는데, “오오극장이 시민의 안전을 위해 잠정 휴관합니다. 다시 뵙는 날까지 건강히 지내십시오. 그리고 대구시민 여러분, 힘내세요.”라는 글을 SNS에 올리는데 목이 메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다녀간 CGV부천역점은 긴급 자체 방역을 실시했다
잦아들 줄 알았던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급속도로 전파되고 있었고, 2월 23일 정부는 위기 경보를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격상했으며 대응 체계 대폭 강화를 선포했다. 그동안 여타의 국가적 재난이나 위기 상황 속에서도 극장만큼은 큰 차질 없이 운영되어왔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직격탄을 맞은 극장의 불황이 향후 영화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코로나19가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2월 극장가는 최저 관객수를 기록했다.

한국 영화산업의 전체 매출 가운데 극장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76%에 이른다. 다시 말해 극장이 흔들리면 영화산업 전체가 휘청거릴 수 있다. 먼 훗날 돌이켜보면, 코로나19가 영화인들에게 가장 큰 상처를 남긴 것 중 하나는 영화를 극장에서 관람하는 체험이 위협받았던 기억일 것이다.

전 세계 영화 산업 휘청
코로나19로 중국 극장 40% 폐업 위기, 1분기 수입 88% 하락
상영 중단 뒤 파산 위기에 처한 미국 최대 극장 체인 AMC
2020년 3월 11일, 세계보건기구(WHO)가 마침내 코로나19를 팬데믹으로 선언했다. 코로나19의 영향은 한국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전 세계 영화 산업을 휘청거리게 했다. 바이러스의 최초 발생지인 중국은 7만 개 이상의 극장이 휴관했으며 개봉 예정이던 자국 영화와 외화들도 개봉을 미뤘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수입인 17억 6000만 달러(한화 약 2조 829억 원)에 비해 수익이 무려 1/400 이상으로 감소했다. 유럽에서 가장 많은 확진자가 발생한 이탈리아도 2월 박스오피스 성적이 전년도 대비 70% 이상 줄었다. 개봉을 준비하던 할리우드의 텐트폴 영화들도 차례차례 개봉을 연기했고, 심지어 제작이 진행 중인 작품들도 제작을 중단했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10명 이상 모임 자제 권고”에 따라 미국 1, 2위 멀티플렉스 체인인 AMC와 리갈시네마가 3월 17일(현지시각)부터 무기한 영업 중단에 들어갔다.
국내·외 영화제 대부분 연기 혹은 취소
영화제도 멈췄다. 코로나19 사태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국내외 영화제들이 일제히 연기되거나 취소됐다. 3월 26일 열릴 예정이던 인디다큐페스티발2020은 두 달을 미뤘다. 4월 개막을 목표로 준비를 마친 울주세계산악영화제는 무려 6개월 뒤인 10월 23일로 개막 날짜를 바꿨다. 코로나19 여파로 한 차례 연기되어 5월 28일 개막한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는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자 ‘무관객 영화제’로 운영되었다.
제73회 칸국제영화제 코로나19로 무산
한국 밖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뉴욕의 봄을 알리는 트라이베카영화제는 개막 일정을 잠정 연기했다. 매년 3월 바이어와 세일즈 관계자들의 눈치작전이 시작되는 홍콩필름마트는 처음으로 8월로 변경됐다. 당초 5월 12일부터 23일까지로 예정되었던 2020 제73회 칸국제영화제는 코로나19 여파로 사실상 무산되었고, 영화제 필름마켓만 6월 22일부터 26일까지 온라인으로 개최된다.
OTT가 관객의 습관을 바꾸다
사라질지도 모르는 것은 영화가 아니라 ‘영화를 보러 가는 일’이다. 사람들이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일 또한 크게 줄어들었다. 반면 넷플릭스 등 OTT나 IPTV를 통해 집에서 혼자 영화를 보는 경험은 많이 늘었다.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 넷플릭스는 코로나19로 경영 위기를 겪기는커녕 되레 호황을 누리는 대표적인 ‘언택트’ 업체가 되었다. 다른 무엇도 아닌 신종 감염병으로 이렇게 영화 보기의 주류 행태가 빠르게 달라질 줄은 예상치 못한 일이다. 물론 감염병의 위기는 언젠가는 멈추거나 잦아들 것이다. 그때 관객의 관람 패턴이 돌아올까?
전 세계 미디어 환경을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는 ‘넷플릭스’
물론 영화 관람 형태의 ‘뉴노멀(New Normal)’의 징후는 코로나19 이전부터 엿보였다. OTT가 극장 대체재 역할을 하면서 영화 제작은 블록버스터 위주로 빠르게 재편되는 중이었다. 코로나19라는 변수가 더해진 상황에서 영화사들과 극장은 관객의 발길을 붙들기 위해 스타 감독이 연출하고, 스타 배우가 대거 출연하는 블록버스터에 더 몰두할 수밖에 없다. 이후 신인 감독이나 신인 배우가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는 더더욱 어려워지게 됐다.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2000)가 흥행 실패하고도 두 번째 영화 <살인의 추억>(2003)을 만들 수 있었던 봉준호 감독의 사례는 그저 과거에나 있었던 일이 될 공산이 크다.
영화 만드는 사람들이 배제된 지원 정책
코로나19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아 영진위는 대책위원회를 만들어 대책을 내놓았지만, 356명의 영화인은 5월 22일 ‘영진위 코로나19 정책에 대한 범영화인의 요구’ 성명서를 통해 “영진위 대책이 대기업 지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중소업체, 프리랜서 영화인에 대해 직접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에 대한 지원을 외면하지 말라”고 발표했다.

현장의 상황은 심각하게 변하고 있었다. 촬영이 중단되거나 지연되는 상황이 부지기수고, 어렵게 촬영을 이어가는 스태프들도 코로나19의 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관객이 극장을 찾지 않고, 영화 제작이 중단되고, 수많은 영화산업 종사자들이 일터를 잃을 위기에 처한 2020년 봄은 한국영화 100년의 역사 가운데서도 가장 엄혹한 시절로 기억될 것이다.

대구 달서문화재단은 코로나19로 위축된 지역 영화·영상인 위해 ‘예술人 희망in 달서’ 시네마 프로젝트 진행
그러나 정부가 발표했던 휴업수당의 지원은 영화 현장에는 소용이 없었다. 촬영단계에 고용되는 대다수 스태프들의 경우는 계약도 하기 전에 영화의 연기를 통보받게 되어 휴업수당 요건조차 되지 못한다. 기약 없는 연기는 생계의 우려로 이어졌다. 사회안전망의 하나로 실업에 대한 공적 부조 수단인 고용보험제도는 영화 스태프와 같은 단속적인 고용형태는 고려되지 않았으며 문화예술과 특수고용노동의 경우 사회안전망의 대상에서 제외되어 왔다. 지원 정책에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배제되어 있다. 갑작스럽게 일자리를 잃고 올 한 해를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망연해 있는 이들의 상황이 고려되어야 한다.
독립영화계 역시 사각지대에 놓였다
시장을 보이지 않는 손에 맡겨두기만 해도 될까. 산업의 장기적 발전을 위해선 재능 있는 약자 보호가 필요하다. 영화산업의 풀뿌리인 독립영화와 예술영화 등 작은 영화가 지속적으로 만들어지고 상영돼야 한다. 불과 몇 달 전 ‘포스트 봉준호’를 말하며 영화 다양성을 강조했고, 건강한 영화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긴급 자금 지원을 넘어 코로나19 이후를 대비하는 영화 정책을 고민해야 할 때다.

영국, 프랑스, 독일과 같은 해외의 경우 위기에 취약한 독립예술영화 개봉작이나 전용관, 프리랜서들을 중심으로 기금이 나눠지는데 반해,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조치가 선행되지 않았다.
기업 위주의 지원이 이뤄지고 있어 독립영화인들이 해당되지 않는 사례가 많다. 영화라는 업종 자체의 특징, 독립영화계의 특수성을 고려한 지원이 필요하다. 독립영화가 가진 사회적 가치를 고려해 왜 공공의 차원에서 독립영화계를 지키고 연대해야 하는지 좀 더 고민해야 한다.

좌) 대구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 우) CGV여의도 언택트시네마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은 지속적인 생활 방역을 통해 ‘안전한 영화 관람 경험’을 관객에게 제공한다면 서서히 관객이 다시 찾아올 거라 희망한다. 그러나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비대면(언택트) 시스템으로 운영을 전환하는 것과 달리, 독립예술영화 전용관들은 각 극장마다 독특한 색깔을 가지고 친밀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무산시키지 않으면서 안전한 관람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해 나가야 한다. 또한, 독립예술영화 전용관 외부적으로 치열한 플랫폼 전쟁에서 온라인 스트리밍과는 다른 영화적 경험을 어떻게 제공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힘겨운 생존 몸부림을 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