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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리뷰 #4
대구의 아버지와 아들 이야기,
희곡 『알리바이 연대기』
김윤미 / 극작가, 계명대교수
가끔 서울에서 대구까지 공연을 보러 오는 지인들의 연락을 받을 때가 있다. 계명아트홀에서 공연되는 대형 뮤지컬 공연을 보기 위해서 그들은 대구로 온다.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공연단이 서울보다 대구에서 먼저 공연을 오픈했기 때문이다. 이는 대구의 뮤지컬 관람객 층이 그만큼 두텁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대구에는 봉산문화회관이나 수성아트홀 등 공연장이 비교적 많은 편이다. 소극장이 밀집되어 있는 대명동과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쉽지만 극장의 숫자가 빈약하지 않다. 만약 대구의 대극장과 소극장이 서울의 대학로처럼, 혹은 미국의 브로드웨이처럼 한 곳에 밀집되어 있다면 어떨까 생각할 때가 있다. 무조건 그 거리에 가면 대극장이든 소극장이든 공연이 이루어지는 곳. 뮤지컬 관람객도 소극장 관람객도 분리되지 않고 다양한 공연을 볼 수 있는 그런 거리.
대구에는 오래 연기한 배우들도 많다. 대구연극제 심사에 참여했던 서울의 한 심사위원은 대구연극제 참가 공연단의 연극을 관람하면서 깜짝 놀란다고 한다. 연기력이 무르익은 배우가 대구에는 참 많다는 것이다. 만약 서울에 있었다면 영화나 드라마 캐스팅담당자에 의해 벌써 낚아채졌을 배우들이라는 것이다. 배우에게 무명의 시간은 그들의 연기를 숙성시키는 단련의 시간인 셈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대구에는 화려한 극장을 찾는 관람객은 많지만, 좁은 소극장의 지하 계단을 내려가는 관객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공연계가 흥행이 검증된 작품을 선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가 우리 이야기를 발굴하는데 소홀히 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서 있는 곳에서 늘 소외를 경험해야 할지도 모른다. 대구의 풍성한 공연장과 배우들, 그리고 뛰어난 연출가는 많지만, 부족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대구의 목소리다. 대구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런데 밖에서 바라보는 대구의 색은 하나로 보인다.

김재엽의 희곡 「알리바이 연대기」는 대구를 그리고 있다. 아니, 대구에서 살았던 아버지의 진실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그 진실은 아버지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비밀 속에 숨어있었다. 죽기 전에 아버지는 작가인 김재엽에게 그 비밀을 말한다. 만약 진실을 사람들이 불편하게 여기는 것이고 누구나 알면서도 드러내지 않았던 사실이라면 어떻게 될까. 그래서 그 진실을 외면하기 위해 집단이 알리바이를 꾸민다면 어떻게 될까. 대구의 태극기 부대 아버지들을 불편하게 만들지도 모르는 김재엽의 희곡 「알리바이 연대기」는 그래서 지금 다시 읽혀져야 할 때인지도 모른다.
김재엽의 희곡 「알리바이 연대기」는 다큐멘터리 극이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작가 김재엽이 실제 아버지와 형을 이 작품 속에 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3년이라는 시점에서 작가 김재엽은 아버지와 형, 그리고 자신의 삶에 영향을 준 대통령도 호명하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과 같은 고향출신인 아버지, 대학시절 전두환 대통령과 같은 동네에 자취를 했던 작가. 그들의 삶은 그들과 가까이 살았던 대통령의 영향력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알리바이 연대기」는 2013년 공연 후 동아연극상 작품상과 희곡상 등 수많은 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김재엽 본인과 그의 가족에 대한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해방 전 일본 오사카, 대구, 서울을 오가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이다. 생존을 위해 저항하지도 현실에 완전히 적응하지도 않은 경계인으로 산 아버지는 임종 전에 작가에게 탈영병이었음을 고백한다. 큰아버지의 충고로 휴전 후 바로 군에 자진 입대한 아버지는 포병장교 대위로 제대하는데 그곳에서 별을 달았던 박정희를 보았다고 증언한다. 김재엽은 가족의 연대기를 진솔하게 드러내면서 그가 처한 사회적 상황을 「알리바이 연대기」에서 구체적인 년도를 밝히면서 그려나간다.

김재엽은 “정치적인 것은 가장 개인적인 것이고 가장 사소한 것”에서 출발한다는 68혁명 당시 페미니즘 운동의 구호를 예로 들어 작품서문에 밝히고 있다.
「알리바이 연대기」의 무대는 대구에서 출발한다. 대구라는 도시가 연상시키는 정치적 표상에 대해 김재엽은 아버지와 형을 통해 작은 시도를 했다고 할 수 있다. 자전거를 타고 퇴근할 때 마다 대구시청과 대구역 굴다리의 헌책방에 들려 책을 사 모으는 아버지. 그렇게 모은 책은 아버지 사후에 경북대학교 도서관에 태용문고로 기증되는데 그 옆에는 동향인 박정희의 문서가 나란히 전시된다. 김재엽은 이 장면을 실제 사진으로 무대배경에 사용한다. 김재엽은 아버지의 삶에서 박정희와 장준하를 현실과 이상으로 배치한다. 아버지의 삶에서 박정희의 존재는 그가 외면했던 부끄러운 진실과 닿아있다. 아버지가 살기 위해 탈영하고 자진복귀 했듯이 박정희도 남로당을 밀고하고 살아남은 것으로 아버지는 증언하고 있다.

대구를 작품 속에 그리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대구는 하나의 색만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여 지고 있기 때문이다. 작열하는 여름을 상징하는 분지의 도시, 군인출신 대통령을 세 명이나 배출한 도시. 대구는 분명 대한민국 역사에서 소외된 도시가 아니었다. 김재엽 작가가 작품 제목에 ‘알리바이’라는 용어를 쓴 것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아버지 세대와 아들 세대로 이어지는 직접적인 체험을 통해 여전히 진실에 근거하지 않은 국가와 정치권력의 실체를 파악해보려 한다고 밝힌다.

그는 「알리바이 연대기」 서문에서 “우리의 아버지들, 우리의 형들, 우리들은 각자의 시대에서 어떤 대통령들을 어떤 특정한 삶의 순간에 만나게 되었을까?” 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은 각자의 시대에서 또 어떤 대통령들을 만나면서 살아가게 될까?” 그래서 “우리의 인생은 또 어떻게 변했고, 또 어떻게 변해갈까?” 라는 질문을 던진다.
김재엽 작가의 질문에 대한 답은 「알리바이 연대기」라는 작품에 나와 있다. 1930년 오사카 출신의 아버지 김태용이 1946년 고향 선산에서 만나게 되는 박정희, 1964년 대구 동구 신천동에서 태어난 형 김재진의 삶에 영향을 끼친 전두환, 1973년 1월 대구 중구 동인동에서 태어난 김재엽 작가 본인의 대학생활에 영향을 미친 김영삼, 김대중. 이렇듯 이 작품의 연대기를 구성하고 있는 것은 TK를 배경으로 하는 세 부자와 대통령의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TK를 배경으로 하는 남성가부장제의 서사가 바로 「알리바이 연대기」라고 할 수 있다.

「알리바이 연대기」에는 재미있는 장면이 하나 있다. 명절날 조선일보만 보는 큰아버지와 동아일보만 보는 아버지의 만남이다. 그들은 ‘왔나? 왔습니다. 별일 없제? 별일 없습니다’라는 건조한 단답형 인사를 나누고 기억나지 않는 제사의례를 서로 물어가며 치른다. 그리고 각자 신문을 보다가 큰아버지는 아버지에게 친근하게 말한다.

  • 큰아버지니 신문 봤제? 중앙정보부에서 작성한 신상기록 말이다.
    김대중이 그거 순 빨갱이라 카더라
  • 아버지어째서요?
  • 큰아버지6.25때 보도연맹에 가입해가 예비검속 때 잡히가 총살대상이었다꼬
    (생략)
  • 아버지그래 따지면, 박정희도 마찬가집니다. 박정희는 자기 형 따라 남로당 간부였는데요.
    우리 어릴 때 구미에서 다 봤잖아요
  • 큰아버지(서서히 화를 내며) 김대중이 얘기하는데 박대통령 얘기가 와 나오노?
  • 아버지(맞서며) 여기에 다 나와 있어요 인제 세상 사람들 다 알 겁니다.

아버지가 자기가 보던 신문을 큰아버지에게 내민다.
큰아버지는 자기가 보던 신문을 잠시 내려놓고 아버지의 신문을 슬쩍 쳐다본다.

  • 큰아버지(언성을 높이며 핀잔을 준다) 니 뭐 그런 거 보노?
정치에 대한 형제의 소소한 분쟁은 아버지가 가져온 한국계 엔카 가수의 테이프를 틀면서 화해에 이른다. 김재엽 작가는 큰아버지에 대해서도 따뜻한 시선을 보여준다. 한국사에서 대구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주인의식을 가진 시민들로 이뤄진 도시이다. 국채보상운동을 시작한 대구시민의 공공의식은 코로나19를 이겨내는 자세에도 녹아있다. 이제 소소하고 다양한 대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를 원한다면 그 첫 시도로 김재엽의 희곡 「알리바이 연대기」를 낭독하면 좋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