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리뷰

목차보기
문화리뷰
Print Friendly, PDF & Email
문화리뷰 #2
사건으로서의 풍경
유은경 / 대구미술관 학예연구사
2019년 이인성미술상 수상 전시로 공성훈: 사건으로서의 풍경이 개최되었다.(대구미술관/2019. 11. 5.~2020. 1. 12.) 공성훈 작가는 회화, 영상, 설치 등 다양한 시각 매체를 넘나들며 시대성과 예술 본질에 대한 고민과 자아성찰을 드러내는 다양한 예술실험을 거듭해왔다. 그는 서양화로 작업을 시작했지만 멀티슬라이드 프로젝션의 개념적인 설치 작업을 발표하며 주목받은 바 있으며, 1998년부터 지금까지 회화 작업을 통해 익숙한 일상을 다룬 풍경화에 집중해오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는 그가 생각하는 미술의 정의가 사고를 물질화시키는 하나의 활동이라 보고, 표현과 재현이 자유로운 회화야말로 사고와 행위의 과정을 동시에 보여줄 수 있는 매체라는 점을 깨닫게 된 데에서 찾을 수 있다.
2018년, 제19회 이인성 미술상 선정위원회는 공성훈 작가의 회화 작품들이 한국의 풍경에 대한 새로운 차원의 접근과 풍경 속에서 인간의 길을 통찰하는 작가의 관점이 시대성과 접점을 이룬다는 점을 높게 평가하여 수상자로 선정하였다. 그리고 2019년 11월에 이인성미술상의 수상 전시로 개최된 이번 전시는 회화의 동시대성과 가능성이라는 큰 프레임 안에서 특정한 장소의 재현적인 풍경이 아닌 사건으로서의 풍경화를 다루며‘회화 매체 내에서의 혁신’이라는 평가를 받아온 작가의 작품을 다층적으로 살펴보고자 기획되었다.
대구미술관 공성훈_사건으로서의 풍경 전시 전경 1
전시의 제목‘사건으로서의 풍경’은 지난 20년 이상 지속해온 그의 작업 전반을 아우르는 화두로 설명할 수 있다. 그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특정한 장소의 경치나 목가적인 자연의 풍경이 아닌 그가 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삶 속에서 부딪히는 일상, 즉 현장의 풍경을 오직 그만의‘방법’을 통해 독특한 분위기를 담아내고 있다. 그는 우리가 쉽게 마주하는 풍경들을 카메라에 담고 이를 토대로 대상들을 하나의 화면에 새롭게 재구성하여 우리의 삶과 연관된 상징주의적인 리얼리티를 구축해나가고 있다. 또한 그의 작품은 보는 이로 하여금 심리적인 불안감을 주는‘사건’으로서의 풍경을 다루고 있는데, 이는 하나의 화면 속에서 특정한 사건이 벌어지고 있진 않지만 어떤 사건이 임박했을 때나 혹은 사건이 벌어지고 난 이후의 정서를 작품을 통해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는 대구미술관의 2, 3전시실에서 개최되었는데, 회화 60여점과 카메라 옵스큐라의 대형 설치 작품으로 나눠볼 수 있으며, 지난 20년 동안 작가가 회화의 본질을 탐구해 나가는 과정과 회화 전반을 살펴볼 수 있는 밀도 있는 작품들로 구성되었다. 먼저 2전시실은 벽제의 밤/교외, 신도시/접경지역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전시되었고, 3전시실에는 제주의 바다와 숲을 다룬 최근 작업들까지 함께 구성하여 작품의 소재가 점층적으로 조금씩 확장되는 과정 또한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대구미술관 공성훈_사건으로서의 풍경 전시 전경 2
먼저 2전시실의 세 번째 공간에서 살펴본‘벽제의 밤’은 그가 1998년, 벽제라는 서울 근교의 변두리로 근거지를 옮기면서 농가의 마당에 있던 12마리의 식육견들을 소재로 그린 작품들로 구성되었다. 이 공간에 전시된 <개> 연작들은 하나의 화면에 어두운 밤, 조명 아래에 개가 중심에 배치되어 하나의 연극무대가 연상되기도 하는데, 이는 불안한 작가의 삶, 또는 우리의 삶을 투영하듯 작가만의 시선과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공성훈 개, Acrylicl on Canvas, 227.3×181.8cm, MMCA Collection
그는 이른 새벽 또는 늦은 귀갓길에 보았던 동네 농가 마당의 밤풍경에서 시야를 조금 더 넓혀, 벽제의 화장터나 기념비, 모텔 등이 집결되어있는 여러 장소를 돌아다니면서 보았던 늦은 밤풍경들을 작가 특유의 색감과 정교하고 섬세한 화면의 레이어로 담아냈으며, 이러한 점들은 그의 회화가 가지는 독보적인 특징들을 살펴볼 수 있게끔 한다. 2전시실의 두 번째 공간에는‘교외, 신도시’를 그린 작품들이 전시되었다. 여기에는 우리나라의 현대화 과정에서 무분별한 도시의 발전과 모순된 현상들, 위성도시의 지역적 특성과 은유가 깃든 교외 풍경들을 담고 있다. 이 공간에 전시된 작품들은 주로 호수, 공원, 조경 등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아닌 근린자연들을 소재로 하여 그가 산책을 하거나 차로 이동하면서 마주친 장면들을 재구성하여, 사회 구조를 바라보는 그만의 시선과 풍자를 내포하는 작품들로 구성되었다.
대구미술관 공성훈_사건으로서의 풍경 전시 전경 3
그리고 2전시실의 첫 번째 공간에는 그의 시야가 좀 더 확장된 형태로 전개되며, 한국의 자연 풍경들, 주로 바닷가의 풍경인‘접경지역’을 다룬 작품들을 소개한다. 이 공간에는 좀 더 장대하고 역동적인 자연의 모습을 화면에 담고 있는데, 거친 붓질로 표현되어 있는 바다와 하늘, 파도의 풍경들은 드라마틱하면서 광활한 자연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으며, 때때로 작품 속에 한없이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작가 자신의 뒷모습을 아주 작은 형상으로 등장시키기도 한다. 그는 거대한 자연 풍경 작업들을 통해 부조리한 사회 구조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본인의 심정을 고스란히 그만의 회화적 방법론으로 풀어내고 있다.
공성훈 바닷가의 남자 2018 Oil on Canvas 116.8×80.3cm
그리고 3전시실에는 그가 ‘제주’를 여행하면서 최근까지 작업했던 바다와 절벽, 숲을 소재로 작업한 작품들로 구성되었다. 그는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불안감이 펼쳐져 있는 것 같다고 설명한 바 있는데,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불안한 정서를 거대한 바다, 파도, 숲의 모습처럼 우리에게 풍경화라는 익숙한 장르를 통해서 제시하고 있다. 그의 작품들을 처음 마주했을 때는 한 장의 사진을 보는 것처럼, 단순하게 어떤 장소를 정교하게 재현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흔히 보았던 일상의 풍경과는 이질적이고 낯선 화면을 구성하고 있다. 이는 작가만의 왜곡이나 시선, 그리고 원근감과 빛을 이용하여 사진과는 다른 드라마틱한 화면을 구축해나가는데, 작품에 등장하는 특정한 장면이나 장소를 떠나서 작가가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내용들은 그 의미가 숨겨져 있으며, 부조리한 현실에 대해 거리를 유지하면서 그만의 소신을 회화적 언어로 발현해 나가고 있다.
대구미술관 공성훈_사건으로서의 풍경 전시 전경 4
더불어 이 전시에서는 2, 3전시실을 잇는 공간에‘카메라 옵스큐라’설치 작업을 함께 선보였다. 이 작품은 관람객이 대규모로 제작된 카메라의 내부에 들어가서 작가가 수공으로 제작한 아크릴 렌즈에 의해 벽면으로 투사된 영상, 즉 3전시실의 풍경을 볼 수 있도록 제작된 것이다. 이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과 비춰진 것의 관계를 대조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작가가 오랜 시간 고민했던 리얼리티의 개념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체험의 계기를 제공하고자 마련되었다. 이 작품이 1993년, 개인전에 처음 소개되었을 때는 카메라방과 거울 방이라는 두 개의 설치 작품, 「완벽한 리얼리티, 완벽한 평면성을 위한 프로젝트」라는 제목이었으며, 이번 전시에서는 카메라 방을 다시 선보이게 되었다. 작가에게 리얼리티 개념은 우리나라의 민중미술이나 리얼리즘 계통의 예술 운동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다루었던 화두였으며, 평면성이라는 것은 모더니즘 회화, 추상미술에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개념이었다. 작가가 대학생이었을 당시, 1980년대에 그는 중요한 두 미술운동을 가지고 종합적으로 완벽한 작품을 만들겠다는 농담과 비판의식이 담긴 설치 작업들을 제작했었고, 현재까지도 그의 신념은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다. 그는 거울방과 카메라 방이라는 설치 작업을 통해서 보여주고자 했던 의도 그대로,‘거울처럼 현실을 반영하고, 렌즈와 같이 파고드는’그런 작가가 되기를 바라왔으며 현재까지도 그 신념 그대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작가는 국내의 여러 장소들을 카메라에 담고, 그 자료들을 바탕으로 그가 밟았던 장소, 공기와 흙, 날씨 등의 수많은 대상들을 해석하고 재구성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하나의 완성된 작품이자 우리에게는 낯선 풍경, 즉‘사건’을 제시한다. 공성훈 작가의 20여 년간 지속해 온 회화 전반과 카메라 옵스큐라 설치 작품으로 구성되었던 이번 전시가 회화라는 전통 매체가 지니는 독특한 감각성과 촉각성, 자유로운 표현의 영역, 그리고 공성훈 작가의 호소력 짙은 작품들이 주는 진실한 힘과 노력의 결과물들을 공감할 수 있었던 점은 분명하다. 그리고 현재에도 일상에 부딪히며 경험한 것들을 작업으로 진행 중인 공성훈 작가의‘회화적 회화’다름 아닌 수많은 행위와 사고의 축적이 담길 새로운 사건으로서의 풍경이 기대되는 점 또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