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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리뷰 #1
화가의 고향, 대구
(2019 대구미술관 이인성특별전)
김나현 / 대구미술관 학예연구사
이인성, 39년의 짧은 인생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전업 작가로서 ‘한국 근대 유화 베스트 10’에 당당히 1위로 선정된 「경주의 산곡에서」(1935)와 같이 한국의 근대 회화가 발전할 수 있도록 바탕이 되어준 수많은 명작을 남긴 작가. 그는 살아생전에 ‘조선의 지보 至寶’라는 타이틀을 얻을 정도로 당대에 그 실력을 인정받고 상당한 유명세를 가졌던 작가이다. 하지만 그러한 실정에 비하면 오늘날 그의 위상이 저평가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접할 수 있다. 그가 떠난 후 7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이인성을 어떤 인물로 논할 수 있을까?

미술인들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화가 이인성의 전시를 준비하며 실은 상당한 고민에 빠졌었다. 과연 대중들은 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하는 의문에서부터 시작된 고민이었다. 통상적으로 대구미술관에서는 미술 전문인을 대학 이상의 미술 전문 분야에 몸담고 있는 자들로 본다. 그런데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만난 상당수의 미술 전문인들은 이인성의 이름과 주요 작품 두어점을 아는 정도가 많았고 그가 한국 근대미술사에서 중요하게 언급되는 이유나 작품이 지닌 의의에 대해서는 선명하게 알지 못하였다. 또한 다수의 지역인들이나 대중들은 「가을 어느 날」(1934), 「사과나무」(1942) 등과 같이 유명한 작품은 알고 있지만 그 작가가 누군지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인성은 근대기의 거장으로 인정받아왔으며 그 이름에서 오는 아우라만으로도 전시가 가능하여 유작전이 처음 열렸던 1954년부터 현재까지 대부분의 전시 주제나 명제가 이인성 그 자체였다. 더구나 그가 적었던 글은 어록이 되고, 그가 살았던 일대기는 연극이나 발레, 뮤지컬 등의 공연으로 확장되고 있는 것이 오늘이다. 실정이 이렇다보니 전시 기획에 있어 중요하게 고려해야할 부분은 좀 더 그에 대해 깊이 있게 공감하고 생각할 수 있는 배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

이인성LEE In-sung_사과나무 Apple Tree_91×116.5cm_1942_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대구미술관 소장(대구 명덕초등학교 기탁작품)
따라서 한 예술가를 이해하기 위해 그가 살았던 시대와 그 시대 속의 예술가의 삶 그리고 그런 예술가에게 고향이 지닌 가치와 대구의 근대미술을 맥락화 하고자 ‘화가의 고향, 대구’라는 전시 주제를 정하였다.
이인성은 십대부터 남다른 작품 활동으로 두각을 나타내었지만 젊은 나이에 생을 다하였기에 일상의 매순간이 극적이었다. 그래서 그러한 일상적 장면들과 작품을 연결하는 작품 설명을 출품작 전체에 덧붙여 작품이 지닌 내적의미를 심층적으로 읽어낼 수 있도록 준비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그가 바라보았던 국가와 고향에 대한 시선을 소개하며 그것을 오롯이 쏟아내었던 화폭의 두터운 층위를 자연스럽게 들여다 볼 수 있도록 기획하였다.

전시의 도입은 풍경화로, 이인성이 나고 자라며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즐겼던 사생의 배경이 되어준 대구와 그 근교를 바라본 풍토적 고향을 볼 수 있다. 그는 태어나서부터 일제강점기의 어두운 시대상황을 견뎌야 했고, 세계적으로 감도는 전쟁의 기류 속에서도 창작혼을 불태우며 우리의 향토색을 연구했다. 16살이 되던 해인 1927년에는 대구 최초의 한국인 종합예술단체였던 영과회에 가입하여 최연소 나이로 활동을 시작하였고, 1931년에는 대구 지역의 유지들과 선후배 그리고 경북여자고등학교의 교장이었던 시라가 주키치의 지원을 받아 일본으로 유학갈 수 있었다. 일본에서는 킹크레용이라 불리는 오오사마상회에서 낮에는 일을 하고(일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인성의 그림 실력을 인정한 오오사마 상회의 사장은 작업에만 전념하도록 해주었다고 한다.) 야간에는 태평양 미술학교를 다녔는데, 고향 사람들의 격려와 지원이 헛되지 않도록 작업에만 전념하였다.

이인성특별전 화가의 고향, 대구 전시 전경 ‘풍토적 고향’
당시 국내에서는 최고의 미술상으로 불리던 조선미술전람회가 있었는데 이인성은 「제8회 조선미술전람회」(1929)에서 첫 입선을 수상한 후 마지막 전람회였던 「제23회 조선미술전람회」(1944)까지 16년간 한해도 거르지 않고 성실히 작품을 출품하며 그 실력을 꾸준히 인정받았다. 특히 유학생활이 시작된 1931년부터는 6회 연속 특선 이상의 상을 수상하며 1935년에는 최고상인 창덕궁상을 수상하고, 1937년에는 추천 작가에 선정된다. 방학이 되면 일본의 화우들과 대구를 찾아 조선의 자연을 그리기도 하고, 국내·외를 오가며 타국에서 바라본 조국과 서양화에 대한 남다른 의식을 형성하였다. 그 결과 어두운 시대상황을 예술적 향토애로 승화한 다수의 걸작을 남길 수 있었다.

1935년에는 인생의 큰 전환점이었던 결혼으로 사랑하는 아내 김옥순과 딸 애향을 얻었고 행복으로 가득 찬 가족에 대한 사랑은 다수의 인물화로 귀결된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더해지는 일본의 식민통치와 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온 국가에 감돌았던 전쟁의 기운에 연이은 자식들의 죽음과 설상가상으로 결혼생활 6년 만에 아내까지 병사로 잃고, 시대적으로나 개인사적으로나 극복하기 힘든 슬픔과 고뇌의 시간을 감내해야만 했다. 불운했던 시기에는 객관적 대상에만 몰두할 수 있는 실내화나 정물화에 집중했었다. 이인성의 정물화는 적은 수로 제한된 기물을 다루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특징은 특정 대상에 몰입하며 심리적 요인을 극복하려는 태도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이인성에게 인물화와 정물화는 예술가의 애틋한 심경이 투영된 정신적 고향인 셈이다.

이인성특별전 화가의 고향, 대구 전시 전경 ‘정신적 고향’
덧붙여 이인성에게 화실은 인생의 희로애락과 창작혼을 녹여내는 중요한 공간이었다. 그의 화실은 인생의 큰 전환점과 맞물려 이동하였고, 거주하였던 도시와 화실의 공간에 따라 변화하는 작품 경향을 살펴볼 수 있었다. 따라서 그가 거쳐 갔던 당시 화실의 사진과 그 곳에서 그려진 주요 작품을 볼 수 있는 아카이브 공간을 마련하였다. 화실은 크게 세 군데로 나누어 소개한다. 첫 번째 화실은 1931년부터 1934년까지 자신만의 개성을 확고히 다지던 시기로 일본의 오오사마 상회 내 화실이었으며, 두 번째 화실은 1935년부터 1942년까지 행복한 결혼생활과 더불어 문화계에서 다방면으로 활발히 활동하던 때의 남산병원 내 3층 화실이다. 마지막으로 1942년부터 1944년까지 해방을 염원하며 가족사로부터 비롯된 슬픔을 극복하던 삼덕동 화실은 일상생활과 작업의 병행이 시작된 곳이다. 1945년 해방 이후에는 교사로서의 새로운 시작을 위해 대구 생활을 정리하고 경성으로 이사하였고, 그 곳에서 역시 별다른 작업실을 구하지 않고 집에서 그림을 그렸으나, 그의 유작글 신경향에 기고된 ‘화방수필-흰 벽’을 보면 과거와 같이 흰 벽이 넓게 펼쳐진 작업실을 간절히 원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마지막 비운이 자택이었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그의 인생에서 화실은 개인의 사적공간을 넘어선 창작혼의 근원지였다.
이인성특별전 화가의 고향, 대구 아카이브 전경
당시 이인성의 예술에 대한 관심은 미술과 함께 시와 음악, 무용 등 다방면에 있었다. 그 흔적으로는 시인 윤복진의 동요집 「물새발자욱」과 다양한 동시의 삽화와 표지 제작에 참여하였던 점과 1937년 ‘아르스(ARS) 다방’을 직접 운영하며 예술인들이 모여 창작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지하였던 점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작가의 면모를 간접적으로나마 전달하고자 이번 전시에서는 2017년과 2019년 두 차례에 걸쳐 ‘카페 아루스’라는 제목으로 진행되었던 대구시티발레단의 공연 일부를 편집한 영상을 다큐멘터리로 상영하였다. 공연에는 총 9점의 작품이 소개되는데, 전시에 출품되지 않은 작품도 포함하여 색다른 감상 포인트를 제공하였다.
이인성특별전 화가의 고향, 대구 전시 전경 ‘대구시티발레단의 2019 카페아루스(ARS) 공연 편집 영상’
<이인성특별전 화가의 고향, 대구>는 2020년 맞이하는 이인성미술상 운영 20주년을 앞두고, 이인성을 기리며 그의 예술성을 계승하자는 취지에서 마련되었다. 전시를 통해 한 예술가가 살았던 시대와 삶, 그리고 그 삶 속에서 작품이 지닌 의미와 현재까지 이어지는 문화적 흐름까지 연결하였다. 그가 가졌던 향토에 대한 서정적이고 서사적인 이면을 보며 우리의 역사 속에 이렇게 고귀한 예술가가 있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생각 할 수 있는 기회였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