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예술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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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예술의 힘 – 청년 예술가
시작하는 마음에 대해
– 중편영화 「입문반」 제작기
김현정 / 영화감독
영화를 만드는 창작자로 입문한 지 어느 덧 8년 차가 되었다. 7년 전, 20대 끝자락의 나는 하고 싶은 일도, 잘하는 일도 없는 늘 지기만 하던 사람이었다. 늦은 나이에 시나리오를 써보겠다고 다짐한 것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지는 못했다. 괜히 헛물만 켜는 일이 될까봐. 나는 그저 시나리오를 쓰는 일이 당시 답답한 상황과 감정을 풀어내는 창구가 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입문반」은 원래 「이방인」이라는 제목으로 5년 전에 썼던 시나리오였다. 「이방인」을 쓰기 이전에, 시나리오 공부를 시작하고 처음 2년 동안은 그저 남들과 달랐으면 하는 마음으로 괴상하고 재미도 없는 시나리오를 잔뜩 썼었다. 하지만 그렇게 써나간 이야기들은 타인뿐 아니라 스스로도 전혀 만족시킬 수 없었다. 그 후로 나는 내가 왜 시나리오를 쓰고 싶었던 것인지, 그 이유에 대해 다시 곰곰이 생각해봤다. 사실 살풀이하듯 내 마음 속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은 이유가 가장 컸었다. 하지만 어느 샌가 전문적이고 유능한 작가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며 그 이유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나는 타인보다 자신을 먼저 만족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아주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내가 잘 알고 있는 감정과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써보기로 마음을 먹었고, 그 이후 「이방인」이라는 제목의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이방인」은 7년 전 내가 처음 시나리오를 공부하기 위해 다녔던 서울에 있는 모 시나리오 사설 아카데미를 배경으로 빌려왔다. 당시 일주일에 한 번씩 대구와 서울을 왕복 하며 시나리오를 공부하는 것이 굉장히 즐겁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서울이라는 도시와 그 곳에 속한 사람들에게 묘한 거리감을 느꼈다. 하지만 당시에는 내가 느낀 감정이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고, 시간이 흘러서야 그 때의 ‘소외감’이라는 결핍된 감정과 마주할 수 있었다.

초고는 빠르게 쓰였다. 시나리오에 묘사된 여러 상황과 감정들이 내 자신과 그리 멀지 않았기에 무척 몰입하면서 써나갔다. 초고가 완성된 이후에는 이야기가 그 자체로써 매력적일 수 있도록 이야기의 핵심 요소를 신경 쓰며 시나리오를 수정했다. 특히 이야기의 중심 사건이자 타인과의 관계에 얽매인 인물이 겪을 수밖에 없는 역설적 상황을 설정하는 것에 가장 애를 썼다. 「이방인」의 주인공인 가영은 자신에게 먼저 다가와 준 동료인 민정이란 인물에 서서히 마음을 열지만, 민정은 가영을 옭아매는 상황을 만들게 된다. 하지만 타인과의 관계에 결핍이 있는 가영은 민정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보다는 타인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스스로 갇혀 버린다. 이렇듯 자신의 욕망과 그에 반하는 주변 상황에 처한 인물의 행동과 감정을 설정하는데 주력했다.

「입문반」 스틸컷
여러 번의 수정 끝에 완성된 시나리오는 꽤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만족일 뿐이었다. 누군가는 단편 시나리오로써 길이가 너무 길다고 했고, 누군가에겐 소재 자체가 흥미롭지 못하다고도 했다. 시나리오에 대한 혹평을 반영하듯, 이후 「이방인」의 시나리오로 제출한 제작지원 사업에 수없이 탈락했다. 간신히 서류가 통과하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피칭해야 했던 제작지원 사업에도 결과적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이방인」에 대한 자신감은 바닥을 쳤다.

결국 「이방인」의 시나리오는 잠시 접어둘 수밖에 없었다. 이후 2016년에 단편영화 「나만 없는 집」을 먼저 제작했고 그 다음 해 영화제 등에서 먼저 소개가 되었다. 「나만 없는 집」은 영화제와 관객들의 호의적인 반응이 내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나는 「나만 없는 집」을 통해 영화로 관객과 소통하는 것의 즐거움과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의 책임감 같은 것을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방인」을 꼭 만들어야겠다는 이상한 오기가 생겼다. 나는 다시 「이방인」 시나리오를 2017년에 협성문화재단에서 진행한 제작지원 사업에 제출을 했고, 마지막으로 시도한 제작지원 사업 이후 1년 만에 서류가 통과됐다. 당시 면접을 봤던 심사위원들의 호불호는 컸었지만 이 영화의 완성된 모습이 궁금하다고 하셨고, 결과적으로 제작지원에 통과하게 되었다. 「이방인」의 초고를 쓴 후 꼬박 3년째가 되던 해였다.

「은하 비디오」, 「나만 없는 집」이라는 단편영화로 크고 작은 성과들이 있었지만 「이방인」에 대한 부담감이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앞선 두 작품은 영화에 대해 전혀 모르던 내가, 무언가 알아가는 재미를 빠져서 만든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이방인」은 제작 준비를 하며 내가 주변의 반응에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게다가 앞선 두 작품은 시대극이고 영화적 콘셉트가 매우 강한 작품이었으나, 「이방인」은 현대극에 드라마적 요소가 강한 작품이기에, 전작과의 ‘차이’가 어쩌면 이 영화를 실패하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내비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나 스스로도 그런 마음으로 인해 무언가 다르게 할 수 있을만한 방안도 없었다. 그저 해왔던 대로 할 수밖에.

2018년 5월을 촬영 예정일로 잡아놓고, 약 두 달 반부터 본격적인 프리 프로덕션을 계획했다. 「이방인」은 캐스팅과 연기가 무조건 일 순위라고 생각했다. 지금껏 시대극을 하며 미술이나 시대 고증에 절반 이상을 신경 썼다면, 이번 영화는 이야기와 연기를 주안점으로 삼고 싶었다. 그래서 「이방인」이라는 영화를 상상하며 매칭 되는 배우를 먼저 발견하고선 프리 프로덕션 기간 이전이지만 일단 캐스팅부터 진행했다. 「이방인」의 주요 캐릭터는 주인공 가영 역과 함께 동료인 민정, 호준, 지민 역으로 총 네 명이었다. 완성된 영화에서 민정과 호준 역을 맡아준 김해나, 고유준 배우는 이전에 봤던 독립영화에서 혼자 마음에 둔 배우들이었고, 2017년 12월 서울독립영화제 기간 동안 먼저 섭외를 진행했다. 다행히 두 배우는 흔쾌히 출연을 승낙해주었고, 그들이 이 영화에 마음을 담아준 소중한 시작이 결국 영화를 끝까지 완성하는데 큰 원동력이 되었다.

주연인 가영 역을 맡아준 한혜지 배우는 같은 기간 서울독립영화제의 뒤풀이 장소에서 처음 만나게 되었는데 사실 그때는 가영 역으로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다 2018년 봄에 프리 프로덕션을 진행하며 가영 역에 오디션을 별도로 진행했는데, 그때 한혜지 배우가 오디션에 지원해주었고 그녀와 다시 만나게 되었다. 내가 혜지 배우를 처음 봤을 때 가영 역으로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이유는 가영 역은 의기소침하고 자신감이 떨어지는 역할이었고 그런 캐릭터의 특성이 혜지 배우와는 매우 동떨어져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디션을 진행하고 혜지 배우와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그가 갖고 있는 그림자를 유심히 관찰했다. 그러면서 나는 이제껏 가영 역에 전형적인 스테레오 타입의 배우를 찾고 있었던 게 아닐까라는 의구심이 들면서, 오히려 가영을 상상하기 힘든 혜지 배우가 연기하는 가영이가 궁금해졌다. 혜지 배우를 가영 역으로 부탁한 것은 사실 나에게도 내 성격에 반하는 모험 같은 일이었다. 최종적으로 혜지 배우에게 가영 역을 부탁하며, 나와 혜지배우는 도저히 어디로 갈지 알 수 없는 이 영화를 최선을 다해 함께 만들어보자고 약속했다.

캐스팅은 대구와 서울, 두 지역을 중심으로 진행했다. 앞서 3명의 주요 인물 외 지민 역의 박지원 배우 또한 서울에서 진행한 오디션에서 만나게 되었다. 당시 박지원 배우는 연극 작업만 해왔고 영화는 한 번도 출연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박지원 배우는 경험의 부족을 뛰어넘을 만큼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나는 배우들이 가진 개성과 매력에 대해 생각하면서도, 모든 배우가 함께 했을 때의 합을 상상해보았다. 각자가 개성이 강해 무언가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재미있는 조합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한혜지, 김해나, 고유준, 박지원 배우까지 작품에 함께 하게 되었다.

「이방인」은 처음부터 끝까지 연기에 매달릴 생각이었다. 두 달 반가량의 프리 프로덕션을 계획하면서 연기 연습을 무조건 일순위로 두겠다고 마음먹었다. 일주일에 한 번, 서울에 연습실을 잡아서 네 명의 배우와 함께 연기 연습을 했다. 대본을 읽는 리딩에서 동작과 대사를 함께 하는 리허설까지, 꽤 많은 횟수로 만났던 것 같다. 단편 영화 기준으로는 상당한 연습량이었다. 어쩌면 고지식하다고 생각될 수 있는 이러한 방식이 어떤 배우에게는 무척 불만스러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연습을 하면 할수록 시나리오를 뛰어넘는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왔고, 나는 배우들과 함께 영화를 더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었다.

이전의 작품들은 시대극이었기 때문에 공간과 소품 미술에 너무나 많은 공을 들여야 했지만 「이방인」은 상대적으로 미술에 훨씬 수월했다. 독립영화는 제한된 자본의 특성상 세트 제작보다는 실제 존재하는 공간을 섭외하는 로케이션 방식으로 진행을 하는데 「이방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는 대부분의 공간을 직접 확인하고 결정해야 직성이 풀리는 타입이라 이번에도 대부분의 로케이션을 직접 다녔다. 「이방인」의 시나리오는 대구-서울을 왕복하는 인물의 이야기이지만 현실적인 이유로 ‘서울’로 설정된 공간을 포함해 대부분의 공간을 대구에서 섭외했다. 로케이션 섭외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과 장소로 찾아가 섭외를 진행한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 겪을수록 참 무모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번에도 다행히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고, 무사히 로케이션 섭외를 마칠 수 있었다.

연기와 장소 섭외 이후로는 보조 출연자 캐스팅, 의상, 콘티 작업 등 크고 작은 업무들이 줄을 이었다. 영화 촬영을 할 때마다 느끼는 점이지만, 영화의 준비는 촬영 날을 못박아두지 않으면 끝도 없이 이어진다. 완성된 작품이 나오기 전까지는 무엇이 정답이라고 할 수 없기에 끝도 없는 고민이 이어지고 그러면서도 늘 무언가 부족한 마음이 든다.

캐스팅과 연기, 공간 그리고 시나리오. 이 세 요소는 영화 제작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므로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고민을 했다. 그러면서 내가 하는 선택들이 무언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도 늘 함께 따라왔다. 그런 마음의 짐을 안고서 촬영 날을 맞이했다. 2018년 5월, 총 8회 차의 촬영 기간으로 진행됐다. 중간에 예상치 못하게 비가 온 날도 있었지만 그런 상황은 상황대로 비가 오는 설정으로 바꿔서 촬영을 했다. 많은 연습으로 만나온 배우들의 합은 굉장히 좋았고, 그들의 연기를 모니터로 지켜보면서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촬영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이전에 해왔던 촬영 현장들에선 사실 ‘괴롭다’라는 생각을 많이 하곤 했는데, 「이방인」의 촬영 현장은 이렇게 즐거워도 괜찮은 건지 걱정이 될 정도로 행복한 기억이 많다.

통상 영화제에서는 40분 이하의 작품들을 단편으로, 60분 이상의 작품은 장편으로 규정짓고 그 사이의 영화들을 받아주는 영화제는 극히 드물다. 「이방인」은 사실 시나리오 단계부터 40분을 애매하게 넘길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었다. 주변에서는 이야기를 더 줄이던가, 아예 더 늘려서 장편을 만들라고 했다. 나또한 그런 생각과 시도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방인」을 처음 기획할 때부터 장편이 아닌 단편 규모의 이야기라고 판단했고, 반대로 이야기 속 사건을 더 축소시켜버리면 이야기의 매력을 이도저도 아닌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러닝 타임에 대한 판단을 보류한 채 완성된 시나리오를 가지고 촬영을 마쳤고, 곧이어 후반 작업이 이어졌다. 처음엔 3개월의 순서 편집을 예상했지만 편집 기간은 그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거의 8개월 이상의 기간 동안 순서 편집만 했다. 벌써 세 번째로 작품을 함께 하게 된 원창재 편집 기사님은 나의 많은 고민을 고스란히 안아 주셨다. 편집이 완성본에 가까워지면서 결국 40분을 넘긴 러닝 타임이 되었고 이는 제출할 수 있는 영화제가 극히 제한될 것이라는 걸 의미했다. 나는 혼자 40분 이하의 버전을 만들어 보기도 하고 주변의 여러 조언을 구했지만 더 좋은 방법은 보이지 않았다. 우물쭈물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고민만 하고 있을 무렵, 원창재 기사님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최선을 다해 담는 것이 더 중요할 것 같다는 말씀을 해주셨고, 결국 우려를 껴안고서 50분의 영화로 편집을 마쳤다.

이후 전주에서 후반제작지원작으로 선정이 되어 정성환 기사님과 사운드 믹싱을 진행했다. 그리고 색 보정은 친한 동료이자 동생인 전상진 군에게 부탁했다. 전상진 군은 늘 그렇듯 최상의 결과물을 만들어 주었다. 엔딩 음악은 별도의 작곡을 시도하다가 잘 되지 않아 고민 끝에 처음 레퍼런스로 정했던 곡의 저작권을 구입, 영화에 넣으며 최종적으로 영화가 완성했다. 순서편집 8개월을 포함하여 1년이 넘는 기간이었다.

50분의 러닝 타임으로 낼 수 있는 영화제는 10곳이 채 안됐다. 사실 한 편의 영화를 세상에 잘 알릴 수 있는 창구는 영화제가 가장 대표적이다. 추후 공동체 상영이나 기획 상영이 가능하긴 하지만, 우선 각 지역을 대표하는 영화제에 영화가 선정되었다는 것은 그것만으로 큰 의미가 부여 되고 영화를 주목하게 하는 힘을 얻을 수 있기에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이번 영화는 제출할 수 있는 영화제가 극히 제한되어 있음을 감안해, 많은 영화제에 선정되기 보다는 단 한군데의 영화제에서라도 제대로 소개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내 예상보다 더 좋지 않았다. 이미 영화를 완성한지 꽤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한 해가 다 갈 때까지 제출한 영화제에선 전혀 소식이 없었다. 이토록 오래 품어온 작품이 영화제에 소개도 못 되고 그냥 묻힐 수도 있다는 생각에 참 답답했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작품을 만들면서 해왔던 수많은 선택에 대해 얼마나 곱씹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면서 「이방인」이라는 작품의 제목을 「입문반」으로 바꾸었고, 내가 할 수 있는 여지 안에서 작품을 조금씩 손보며 무작정 기다렸다.

「이방인」이라는 작품의 제목을 「입문반」으로 바꾼 지 꼬박 3개월 뒤인 2019년 11월, 그토록 기다렸던 영화제에서 소식을 전해왔다. 전북독립영화제에 「입문반」이 경쟁작으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사실 그것만으로 나에게는 너무나 큰 경사였는데, 감사하게도 영화제 말미에 우수상에 해당되는 다부진상까지 받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한 번 2019월 12월, 한해의 마지막 영화제로 대표되는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입문반」이 경쟁작으로 선정됐다. 게다가 서울독립영화제에서는 배우상과 함께 전체 작품 중 대상을 받게 된 놀라운 상황이 벌어졌다. 한 해의 끝자락에서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누렸다.

「입문반」은 이야기를 구상하고, 영화를 완성하고, 그것이 세상에 소개될 때까지의 시간이 유난히 오래 걸렸던 작품이었다. 그리고 「입문반」은 영화를 시작했을 때의 나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느리고 서투르면서도 잘해보고 싶은 욕심이 앞섰던 나. 그 당시 현실과 이상과의 먼 간극으로 자꾸 실수하면서 아파했던 경험들이 영화의 과정과 결과물 곳곳에 담아있다.

「입문반」 스틸컷
앞으로 또 다른 작품을 시작하게 된다면 나는 여전히 헤맬 것이다. 새로운 작품을 시작할 때마다 어려움과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점점 더 커질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이렇게 느리고 모자란 사람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를 완성하기 위해 헤매는 과정에서 그토록 두려운 시작을 넘어서고야 만다는 걸 안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그만큼 간절한 마음도 없다. 시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입문반」이라는 영화와 이 영화의 웃픈(?) 제작기가 누군가에겐 소소한 위로가 되어주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