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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오오극장 2주년 기념 행사와
지역 독립영화, 청년 영화 전망
글_서성희 대구경북영화영상협동조합 이사장
오오극장의 의미
“단단한 씨앗은 긴 가뭄을 만나도 때가 되면 반드시 싹을 틔운다”
대구는 우리나라에서 4번째로 큰 영화 소비도시이다. 영화진흥위원회의 통계에 따르면, 2015년 한국의 경우 1인당 연간 평균 영화 관람횟수가 4.22회다. 대구는 4.99회로 최고 5.9회인 서울, 광주, 대전에 이어 4위다. 이 관람횟수는 싱가포르(3.9회), 미국(3.6회)보다 앞서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 볼 수 있다. 이 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한국영화의 경이로운 기록은 멀티플렉스를 기반으로 한다. 연간 2억 명이 넘는 관객 수를 기록하는 한국영화의 산업 측면에서 멀티플렉스가 가지는 의미는 중요하다. 하지만 영화 다양성의 측면에서 보면 개선의 여지가 있는 제도임이 분명하다.

한국영화산업은 1998년 국내 최초 멀티플렉스인 강변CGV를 시작으로 투자, 제작, 배급과 상영을 수직 통합한 대기업을 중심으로 재편된다. 이후 대기업을 끼지 못하거나 홍보·마케팅비를 마련하지 못한 작지만 좋은 영화들은 개봉관조차 잡지 못하는 문제점이 불거져 나왔다. 자율 공정경쟁의 기초를 만들려는 수많은 움직임이 있었고 지속해서 개선되고 있지만, 멀티플렉스와 대기업의 수직계열화를 기저로 한 문화로서의 영화 배급에 대한 고민은 쉽게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이 한국영화의 현주소다.

대구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
이런 현실 속에서 대구는 한 해 약 40여 편의 독립다큐멘터리, 단편영화가 만들어지고, 디지털 환경의 변화에 따라 단편에서 중·장편으로 시간과 작품 수가 늘어나는 추세다. 그러나 관객과 만날 수 있는 공간이 전혀 없다는 사실은 열정 하나로 버티는 지역 영화인들의 열정을 좀 먹는 짙은 그림자로 작용해 왔다. 이 걸림돌에 좌초된 지역의 청년 영화인들은 대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멀티플렉스를 기반으로 하는 영화산업의 겉모습만 보는 이들에게 독립영화관 건립은 사막의 피라미드 위에 모래 하나 올려놓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창조적 생산과 소비라는 유통 구조가 절실한 대구경북의 영화인들과 문화 다양성이 절박한 활동가들에게 독립영화전용관이란 숙원 사업으로 품어온 희망의 씨앗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오랜 기다림은 2015년 2월 11일,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으로 싹을 틔우게 되었다. 대구시민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뜻있는 분들이 오오극장의 55개의 좌석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며 기부한 돈으로 영화관은 만들어졌고, 이후 ‘대구경북영화영상협동조합’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개관 2주년을 맞은 오오극장의 역할
“다른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 신경 쓰지 마라.
더 나은 당신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매일 당신의 기록을 깨뜨려라”

오오극장 개관 2주년 특별전 포스터
오오극장의 설립 의미를 되짚어 보면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하나,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을 통해 영화문화의 다양성을 확대하고 이 공간을 통해 영화 제작 활성화에 기여한다. 둘, 지역영화 배급과 상영 구조의 안정화를 통해 지역 영화를 수용할 기회를 확대한다. 셋, 서울을 제외한 최초의 지역독립영화전용관 설립을 계기로 모범사례를 발굴하고 정책적 확산 모델을 구축한다.

영화관의 본질은 무엇인가. 어떤 이에게는 엔터테인먼트이자, 삶의 쉼터이기도 하다. 그러나 어떤 이에게는 자신의 예술적 결과물을 상영할 수 있는 생업의 공간이기도 하다. 지역의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의 설립은 단지 독립영화를 상영하는 공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제작·배급·상영의 지역적 자생구조를 구축하고 지역 영화제작을 활성화하는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확신하며 시작한 사업이었다.

영화는 표준화된 제조시설이 아닌 창조인력이 결집하여 생산되는 프로젝트형 결과물이다. 창조인력이 수도권을 구심점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하면 지역은 영원히 생산 없는 소비도시로 남을 수밖에 없다.

느리게나마 자생적인 생산의 가능성을 증명해내는 프로젝트가 지속해서 이어져야, 그것이 구심점이 되어 사람이 모여들고 프로젝트가 프로젝트를 낳는 구심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현재 대구경북 지역에 영화 관련 학과들은 모두 없어진 상황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취업으로 학과의 존폐를 결정하면서 영화학과는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영화제작은 맞춤형 취업 교육이 아니라, 오랜 기간 인문적 소양과 영화적 전문 지식이 함께 길러져야 생산에 참여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고도의 종합예술 분야이다. 취미반이 아니라 영화제작전문가를 양성할 수 있는 교육이 대구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구는 영화 소비 도시라는 오명에서 영원히 탈출할 수 없을 것이다.
대구에서 만들어진 독립단편 감독과의 만남
결과적으로 대구경북의 제도권이 손을 놓아버린 영화 교육이 이제 오오극장의 몫으로 남게 되었다. 역사적으로도 거리로 내몰렸던 영화광들이 프랑스의 누벨바그 시대를 열었던 힘은 앙리 랑글루아가 만든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 좋은 영화를 보고, 영화에 관한 지식을 배우며, 토론할 수 있는 극장이라는 공간의 힘이었다. 경제적인 이유로 영화교육을 포기한 대구경북 지역에서 미래의 영화인을 키워낼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은 좋은 영화를 함께 보고, 영화에 대한 지식을 쌓고, 토론을 할 수 있는 공간의 힘을 오오극장이 발휘하는 것이고 믿는다. 영화로 꿈을 키워가려는 젊은이들이 떠나지 않고 머물러 있는 도시, 떠났던 청년들이 다시 돌아오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 오오극장은 젊은이들에게 더 많은 정보와 참여를 제공하는 영화 전문 공간으로 거듭나야 한다.
오오극장과 청년·독립영화의 전망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일반적으로 멀티플렉스 상영관의 평균 객석점유율이 33% 정도 된다. 독립영화를 주로 상영해야 하는 오오극장의 객석점유율은 개관 당시 목표치를 넘어서 2016년 한 해 만 명이 넘는 관객이 극장을 찾았다. 하지만 극장 운영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객석 점유율이 조금 더 높아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독립영화가 많이 나와야 관객을 늘릴 수 있다. 독립영화 전용관이니까 새로운 창작자가 새로운 영화를 내놔야 극장도 잘 운영된다.

무엇보다 의미를 두는 것은 대구에서 제작되는 독립영화를 개봉하고 상영하는 데 있다. 그런 의미에서 대구에서 만든 유지영 감독의 장편독립영화 「수성못」이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본선 진출작으로 선정되어, 2017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본상을 두고 경합을 벌이게 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대구에서 제작된 단편영화 두 편도 본선 경쟁에 진출해 있다. 머지않아 오오극장에서 만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지금은 대구 영화인들이 극장을 중심으로 삼삼오오 모여 다양한 가능성을 실현하려는 단계이지만, 그들의 에너지를 응축하고 있는 오오극장은 그들의 무한한 성장을 위한 발판이 될 것이다.

오오극장 개관 2주년 특별전에 참여해 삼삼다방을 가득 메운 관객들
또 하나의 에너지는 남다른 오오극장만의 관객 에너지이다. 오오극장은 앞서 말했듯이 ‘대구경북영화영상협동조합’에서 운영한다. 이 협동조합은 생산자인 독립영화 감독과 소비자인 관객이 모두 주인이 되어 꾸려가는 극장 운영을 지향하고 있다. 생산과 소비를 함께 하는 생비자(prosumer)와 후원자가 더불어 참여해 책임감을 가지고 리스크를 분산하면서 운영할 수 있다는 장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지금까지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관객들이 오오극장이라는 공간을 통해 스스로 동아리를 만들고, 스터디를 진행하고, 따로 프로그램을 짜서 극장 내 또 다른 다양성 영화 상영을 활성화하는 현상은 오오극장의 또 다른 성과이자 앞으로 밝은 전망을 예상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오오극장에 남겨진 숙제는 안정적인 극장 수익과 함께 안정적인 재원 조성이다. 지원사업에만 매달리기는 너무 불투명한 변수가 많다. 최근의 블랙리스트 사건에서 볼 수 있듯 국고 지원에는 정치적 편향의 위협이 있고, 한정된 후원자에 의존할 경우 불확실성에 시달려야 하므로 예술단체의 정체성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서 최대한 다양한 개인과 기관으로부터 재원을 조성하기 위한 체계적이고 전문화된 시도를 해야 한다는 새로운 과제가 오오극장 앞에 놓여 있다. 분명한 것은 상영 수익과 다양한 창구를 통해 조성된 재원이 지역에서 선순환될 때 지역이 발전하고 지역주민의 삶의 질이 높은 문화도시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뜻을 함께하는 많은 분과 멀리 내다보며 가는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과 청년·독립영화의 앞날은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