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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1
레트로(Retro) & 뉴트로(New-tro)
신혜정 / 달성군 도시과 도시디자인팀장
언제부터인지 레트로(Retro)란 말이 자주 나온다. 과거의 감성을 끌어내어 자극을 주는 레트로, 여기에 현대인의 감각과 감성을 더한 뉴트로(New-tro)의 공간들을 우리는 지켜보면서 즐거워한다. 과거의 음악이나 공간을 만날 때 가끔 지나간 시간에 대한 그리움이 생긴다. 그 시절 유행하던 디자인과 공간들은 나도 모르게 설레는 미소를 짓게 한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에서 지친 현대인의 마음을 달래는 공간들이 많이 생겼다. 그러한 공간들은 버려지지 않고 오래 간직된 느낌을 받아 마음을 훈훈하게 해준다. 방적공장이 시민예술촌이 되고, 신발공장이 카페가 되더니 새로 짓는 카페도 공장 형으로 지어진다. 이러한 카페는 장소에 개의치 않고 소문을 듣고 가보면 커피 향보다 먼저 먹음직스러운 다양한 빵이 유혹을 한다. 카페의 커피는 의도치 않게 맛있는 빵과 세트가 되어 버린 듯하다. 바다가 보이는 전망, 강이 보이는 전망, 산이 보이는 전망, 요즘은 논이 펼쳐진 논 전망까지 좋은 카페들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 복잡한 도시 중심 보다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 자리를 잡아 찾아다니는 재미를 솔솔 하게 해준다. 일본 도쿄에서도 서너 시간 걸려 어렵게 찾아간 다케오 시립도서관은 인구 5만이였던 지역을 100만의 관광객이 몰려들게 한 저력이 있는 곳이다. 책 읽는 도서관 내부에서 유명한 S브랜드 커피 향을 맡으면서 귀퉁이에서 꽃꽂이를 배우는 사람을 보게 된 조금은 색다른 장소였다.
다케오시립도서관
최근 도시마다 공공도서관을 멋지게 건립하는 곳이 많다. 싱가포르의 오차드 라이브러리는 내부에 다양한 형태의 휴식공간이 조성 되어 있고 마치 전시장을 방불케 하는 곡선의 책장들은 색다른 매력을 뿜어낸다. 또한 필요한 책들 앞에서 편안하게 읽을 수 있도록 의자들이 배치되어 있다. 다케오 시립도서관이나 싱가포르의 오차드 라이브러리의 공통점은 라이프 스타일의 배치와 구성이다. 우리의 공공도서관을 생각하면 딱딱한 공간에 아주 조용히 책을 읽어야 하고, 책을 골라 들고 의자가 있는 곳까지 조용히 이동해야 한다. 아직은 가보지는 않았지만 대만 베이터우의 베이터우 공립도서관은 아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으로 이름난 곳이다. 녹색 건축도서관으로 재활용이 가능한 나무와 철재로 지어졌다고 한다. 태양광 에너지의 활용과 빗물을 활용한 시스템 등이 유명한 건물로 이름 그대로 녹색 건축물이다.
이렇게 공공도서관이 시민들에게 호응을 얻고 관광객 유치를 하는 곳들은 건축물 외관이 우리가 상상하는 기존의 공공건축물 같지 않다는 공통점이 있다. 딱딱하고 네모반듯한 책방의 기능에 충실한 건축물과는 다른 외관이나 건축물 재료, 야간 경관조명, 사람의 동선과 감정을 고려한 계획에서 지어진 것들이 많다. 그 나라의 기후와 정서에 맞도록 지어진 것은 물론이고 현대인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도록 배치와 동선이 계획되어 진다. 여행이라는 것도 그저 유명한 곳을 다니는 것 보다 내 삶에 도움이 되거나 내 정서에 맞는 그런 곳들을 찾아다니면 여행의 즐거움을 배로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나는 이런 장소들을 만날 때 행복해짐을 느낀다. 부산 수영구 고려제강을 다녀왔을 때도 같은 느낌 이였다. 지금은 공장들이 어떻게 변모하였는지 또 다시 한번 찾아가 보고 싶어진다. 우리나라 최초의 예술, 섬유 등 색다른 서점을 만든다고 하였는데 구성이 되었는지 궁금하다.

고려제강은 공장으로 사용하던 공간들을 복합문화공간으로 시민들에게 제공하였다. 지역에서 성공한 기업이 지역민들에 대한 보답으로 재개발이 아닌 노후 된 공장을 문화공간으로 새롭게 재탄생 시켰다는 말에 감동을 받았었다. 도시가 확장되고 고려제강 공장부지에 아파트나 고층건물이 줄줄이 들어서서 문화재생의 방향이 달라질 것을 우려하여 40년간 임대를 계약했다고 한다. 지역에 대한 사랑이 묻어나는 말 이였다. 상점들도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전체 콘셉트에 맞게 전략적으로 입점을 시켰다. 공장에 쓰던 녹슨 자재들을 그대로 활용한 인테리어는 색다른 모습을 자아냈다. 가느다란 쇠파이프가 파티션이 되고 의자가 되고 테이블이 되어 있었다. 진한 커피 향과 함께 공간에서 느낄 수 있는 옛것의 향기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것 같다. 맛 좋고 향 좋은 커피원두를 늘 찾으러 다니고 있다는 커피숍 김용덕 사장님의 마인드도 색다르다. 커피는 문화다! 커피가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지 알기위해 미술사, 건축사, 세계사 공부를 해야 한다고 한다.

좌)부산 고려제강, 우)부산 고려제강 카페
좋은 장소에는 특별한 사람이 존재 한다. 또 한분의 지역사랑에 빠진 사람이 생각난다. 서울 필동의 새로운 골목길 문화를 만든 스트리트 뮤지엄의 박동현 대표이다. 대부분의 골목길 활성화 사업은 관에서 주도적으로 보수하고 디자인하고 꾸미고 한다. 지역주민과는 상관없이 진행이 된다. 필동의 스트리트 뮤지엄은 비영리 전시공간으로 필동과 남산골한옥마을 일대에 예술이 있는 문화공간으로 만들어져 있다. 누가 어떤 생각으로 이렇게 구성하게 되었는지 궁금해 하지 않을 수 없어 여기도 새벽 첫 기차를 타고 쫓아 올라간 기억이 있다. 경남 산청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상경하여 안 해 본 일이 없을 정도로 막노동에 중국집 배달원까지 밥벌이를 위해서는 온갖 궂은일을 다하였다고 한다. 폐지를 줍다 발견한 만화책을 보고 애니메이터의 일을 시작하여 충무로에서 광고 일로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한다. 필동에 사옥을 마련하고 본인을 돌아볼 시간을 가지니 본인을 있게 한 후미진 이 골목길에 예술로 채워 주민들에게 보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예술작품을 보고 싶어도 돈이 없어 미술관에 들어가지 못했던 옛 기억에서 누구나 문턱 없이 예술작품을 일상에서 만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분의 의도이다.
문화예술 놀이터 스트리트 뮤지엄은 골목에 사는 주민과 함께 자투리공간을 활용하여 갤러리를 만들었고 지금은 유명한 화가에서부터 설치미술가들이 스스로 몰려들어 빈틈없이 전시를 하고 있다. 한사람의 생각이 거리문화가 달라진 것이다.
서울 스트리트 뮤지엄
방적공장을 시민 예술촌으로 변모시켜 많은 관광객이 모여들게 한 가나자와를 소개할까 한다. 가나자와에는 금이 생산되지 않지만 가나자와는 금박으로 유명한 도시다. 1g의 금을 0.0001mm의 두께로 늘리는 금박기술로 일본에서 소비되는 99%를 가나자와에서 생산되고 있다고 한다. 거리에 판매되는 많은 제품들이 황금빛을 내며 번쩍이고 있다. 금 아이스크림, 금 카스테라, 금 골프공 등 금박으로 만든 화려한 제품들이 관광객을 유혹한다. 전국의 금이 가나자와에서 모여서 금박공예품으로 탄생된다.
가나자와 금박상품
가나자와의 또 하나 유명한 장소인 시민예술촌은 100년 된 방적공장을 문화공간으로 리모델링한 곳으로 시민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고 다양한 창작활동이 가능한 장소이다. 드라마공방, 오픈스페이스, 뮤직공방, 아트공방의 5개 공방으로 구성되어 음악, 연극, 공연, 전시, 연습실 등 다양한 공간이 만들어져 있어 취미를 즐기는 일반인들은 물론 전문성이 있는 예술인들도 찾고 있는 곳이다. 단순히 먹고 즐기는 장소가 아니라 사람들이 직접 자기가 가진 재능을 뽐내기도 하고 배워갈 수 있는 다양한 체험이 가능한 문화공간으로 많은 관광객들을 유치하고 있다.
가나자와 시민예술촌
세월의 흐름에 따라 노후화되는 공간들을 지우기보다는 과거의 역사를 품은 현재의 모습으로 발전시키는 것들, 지역만의 특별한 문화적 색채를 디자인하여 다시 젊어지는 도시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지난 시간의 흔적을 지우지 않는 것, 도시의 역사와 문화, 물리적 자산과 정신적 자산이 현재 도시의 경쟁력이 되고 매력이 되고 있다. 이것은 도시의 색이 된다.

마지막 사례는 일본의 경관조성지구인 이와세 문화예술촌이다. 공가재생의 선도 사례지로 유명하다. 이와세 지구는 예로부터 항구도시로 번영하였으나 지리적 여건상 푄현상으로 인해 약 1,000호의 가옥 중 650호가 소실되었다. 이와세 예술촌 마찌즈쿠리(근린재생)를 시작한 사람은 마스다 주조점(酒造店)과 이와세마찌즈쿠리(주)를 경영하는 마스다(桝田)씨이다. 해체 직전인 선박화물용 창고와 당근저장고를 구입하여 주점(판매점), 메밀요리점, 유리공방, 도예공방 등으로 구성된 건물로 개축하였다. 이후 북륙은행, 목공소 등의 공가재생으로 토야마 국제 직예학원(기술 및 예술 전문학원)과의 인턴십 등을 진행하면서 지역을 살리기 위해 여러 가지 재생방향을 실행에 옮겼다. 영국에 유학을 하면서 점차 지역에 대한 애착심으로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서 마을재생에 힘을 쓰고 있다고 했다. 이렇듯 성공한 도시의 장소에는 반드시 특별한 사람이 존재한다. 그 사람은 바로 지역사랑에 빠진 사람이다. 그 지역에 사는 사람의 마음을 읽어 만들어진 공간은 실패하지 않는다. 이렇듯 과거의 정서를 현재에 공유하자고 하는 현대인의 바람이 요즘의 트랜드를 만들었지 않았을까? 도시가 가진 시간의 흔적을 지우지 않고 현재의 문화를 접목시켜 공존하고자 하는 것이 우리가 원하는 정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