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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공감 – 릴레이기고 #2
Trauma Trickster
장미 / 작가
지난해 대구문화재단에서 지원하는 ‘국제레지던시프로그램’에 선정되어 2018년 5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독일 베를린에서 지냈다. 그곳에서 작업을 하기 위한 공간을 구하기 전까지 우연한 기회에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시리아에서 온 작가 카말(Kamal)의 작업실을 잠시 동안 함께 쓰게 되었다.

Studios ID는 베를린 Genslerstraße13-13a에 위치한 270개의 아틀리에를 보유한 임대 창작공간인데, 바로 이곳에 그의 작업실이 있다. 내가 그의 작업실 한 켠에서 지내던 그 기간에, 그는 독일을 중심으로 그리스, 오스트리아 등의 나라에서 지내고 있는 난민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었고, 마침 나 역시도 새터민과 난민에 대한 이야기에 관심이 많던 터라 그와의 대화를 통해 많은 영감을 받았다.

Kamal’s studio
“난민 중 어느 누구도 정확히 어딘가를 가면 좋겠다고 계획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때문에 그 나라로 가는 것이지. 여전히 고향을 그리워하면서 말이야. 고향을 영원히 떠나고 싶은 사람들이 있을까?.”
I have three names, 2019 _ mixed media _ 65 x 45 x 35 cm
베를린으로 떠나기 전 나는 지인에게 작업을 위한 인터뷰를 위해 서울에 살고 있는 새터민 친구들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렇게 소개받은 L은 처음 만났을 때 나도 모르게 나온 “정말 한국인 같아요.”라는 무례한 반응에도 밝게 웃으면서 자신이 어떻게 도와주면 되는지 물어보았다. (L은 고등학생 때 남쪽으로 왔고 현재 나이는 28살이다.) 태어나서 처음 일기를 써본다는 L은 여름을 거쳐 가을 동안 꾸준히 쓴 일기를 베를린으로 보내주었는데 L이 보내준 그 일기는 가끔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L의 친구가 북한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그 연인 가족의 반대로 인해 이별을 하게 된 소식을 전하며 L 또한 남의 일 같지 않다며 슬픔에 잠겨 있기도 했다. L이 보내준 일기장의 내용 중 번역된 몇 가지는 베를린에서 열렸던 나의 개인전을 방문한 관람객이 직접 읽을 수 있도록 설치가 되었다.
day, month, year, 2019_ wood, paper and mixed media _ variable size
What was on your mind when you were crossing the river?
I wish I could…..
두 번째로 소개 받은 H는 미술대학으로 진학하고 싶어서 19살 때 강을 건넜다. 어느 날 H에게 그 강, 두만강을 건널 때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물어보았다. 그는 장가도 못 가고 이렇게 죽는구나, 연애를 해봤다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고 했다. 그래서 그 강을 건너온 지금은 연애를 해 보았냐고 물어봤더니 결혼하는 게 강 건너는 것보다 어려운 것 같다는 H의 말에 함께 공감하며 웃을 수밖에 없었지만 무어라 정의 내리기 쉽지 않은 복잡한 감정이 생겼다. 어쩌면 나는 H가 북쪽에서 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특별한 다른 것을 더 기대한 것인지 모른다.
1/3200, 2019_ mixed media _variable size
a 대구에서 전시 풍경 , b 베를린 전시실 전경 , c작품 부분 이미지
North Korea and South Korea
사실 나는 새터민에 대한 작업을 계속해왔던 작가는 아니다.
하지만 탈북민들에 대한 관심은 10년이 넘도록 지속되었다.
2007 년 캄보디아에서 봉사활동을 하며1년을 보내던 어느 날 내가 지내고 있는 센터로 두 명의 남녀가 방문을 했었다.
처음 그들과 마주했을 때 한눈에 봐도 어색한 옷차림과 특유의 억양이 북한 사람들인가? 싶었는데 역시 그러했다.
어떻게 캄보디아까지 오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한국에서 북한의 상황을 들었던 것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그때부터 북한의 소식을 최대한 관심 갖고 뉴스를 보기 시작 했던 것 같다.
Trauma Trickster, 2019_ 베를린 전시실 전경
베를린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난민과 탈북 하게 된 친구들에 대한 작품을 통해 나는 인권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단지 그 누구도 자신의 나라를 선택하고 태어난 사람은 없기 때문에 생긴 것과 문화, 환경은 다르겠지만 우리는 다 같은 마음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것을 작품으로 담아내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이기 때문에 사랑을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당신과 같은 사람이라는 것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싶었다.
Trauma Trickster, 2019_ 베를린 전시실 전경
베를린에서 지내는 동안 과거의 아픔들을 잊지 않으려는 독일인들의 노력이 베를린이라는 도시를 만들게 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레지던스 집 앞바닥에는 죽은 유대인들을 기념하는 동판들이 그들이 살았던 집 앞마다 있었고, 창문으로 내려다보면 동독과 서독의 무너진 담벼락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동독과 서독을 오가는 길 위에서 문득 생각했다. 머지않은 어느 날, 한국에서도 새삼스럽고 특별한 경험이 일상으로 다가올 수 있기를.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기획자, 컬렉터, 작가들과 만나는 기회를 만들어 주시고 좋은 작업을 하도록 배려해 주신 대구문화재단과 Diskurs Berlin에 감사드린다.
베를린에서의 경험과, 개인전은 작가로써 한층 더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기에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작가가 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