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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문학의 현주소
정지창 / 문학평론, 전 영남대 교수
10월문학이란 10월항쟁을 형상화한 문학이다. 따라서 10월문학을 말하려면 먼저 10월항쟁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10월항쟁이란 “해방 직후 미군정이 친일 관리를 고용하고 토지개혁을 지연하며 식량 공출을 강압적으로 시행하자, 이에 불만을 가진 민간인과 일부 좌익 세력이 경찰과 행정당국에 맞서면서 발생한 사건”(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2010)이다. 1946년 10월 1일 대구에서 시작하여 12월 중순까지 남한 전역 73개 시·군에서 농민들이 중심이 되어 항쟁을 벌여 그 규모에서 동학농민혁명이나 3·1운동에 버금갈 정도로 전국적이었다. 박정희 전대통령의 형인 박상희를 비롯한 관련자들과 그 가족들은 1950년의 한국전쟁 전후까지 계속 학살되었다.(김상숙, 『10월항쟁』, 2016)

항쟁의 직접적인 발단은 10월 1일 오전에 벌어진 여성과 어린이를 중심으로 한 빈민 1천여 명의 기아시위였다. 이들은 “배고파 못살겠다. 쌀을 달라!”고 외치면서 대구부청(시청)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이날 오후에는 대구역 광장에서 파업 노동자들의 시위 도중 경찰의 발포로 노동자 1명이 숨졌고, 이에 분노한 노동자, 학생, 청년, 공무원, 의사 등 시민들이 10월 2일 대대적인 시위에 나섰다. 이날 오후에는 빈민과 기층 민중이 경찰서를 습격하고 경찰관과 관리를 살해하고 친일파의 집을 공격하고 약탈했다. 자연발생적이고 비조직적인 폭동으로 폭발한 대구의 시민항쟁은 미군정의 계엄령 선포와 군경 투입으로 몇 시간 만에 진압되었다.

그러나 대구의 항쟁은 도화선이 되어 경북지역의 농민 봉기로 폭발하였고, 10월 2일부터 6일까지 22개 군에서 연인원 77만여 명이 참여했다. 영천에서는 10월 2일부터 5일까지 15만여 명의 군민 가운데 연인원 5∼6만 명이 참여하여 대구를 제외하고는 참가 인원수와 참가율이 가장 높았다.
항쟁 직후 대구 시민과 미군 대표들로 구성된 조미공동소요대책위는 군정의 양곡 공출과 식량 배급 정책의 오류, 경찰의 자의적이고 잔악하고 부적절한 양곡 공출 방식, 피난민 유입으로 인한 실업과 주택난과 식량난을 원인으로 꼽았다. 브루스 커밍스는 『한국전쟁의 기원』(1986)에서 10월항쟁이 농민들의 민란과 비슷한 ‘추수폭동’이라고 보았다. 농민들이 총이 아닌 농기구를 들고 떼를 지어 경찰을 공격했고, 봉화나 북, 통신원 등 원시적인 통신 방법을 사용하였으며, 경찰, 군수, 지주, 마름 가운데 악질 친일분자들을 골라 습격했고, 지방 관서를 점거하면 미곡 수집문서를 우선적으로 파괴했다는 점을 그 근거로 들었다.
10월항쟁의 후유증과 피해자는 사건 이후에 더욱 확대되었다. 특히 한국전쟁 발발 직후에 대구형무소 수감자 1,400명을 포함해 좌익 전향자(보도연맹원)와 그 가족들이 적법한 재판 없이 대구 인근의 가창골과 경산 코발트 광산 등지에서 3,800명 이상 학살되었다.
김상숙은 대구·경북에서 1만4,000∼1만 6,000명이 죽은 것으로 추산하는데, 4·19 이후 결성된 대구피학살자유족회에서는 약 3만 명이 희생되었다고 주장했다.

10월항쟁이 일어난 지 67년이 지난 2013년 10월 1일 대구 YMCA 강당에서 제1회 10월문학제가 열렸다. 해마다 가창댐 수변공원에서 치러지는 10월항쟁유족회의 추모식에 참석한 지역의 작가들이 6·25 전쟁 전후의 집단학살사건과 10월항쟁의 실체를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고희림, 정대호, 이철산, 이정연, 송광근 시인을 중심으로 한 10월문학회가 보도연맹 집단학살지인 가창댐 인근 골짜기와 경산 코발트광산, 대구 시내의 10월항쟁 현장, 영천의 10월항쟁 유적지 등을 답사하고 유족들의 증언을 듣는 ’10월항쟁 바로 알기’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매년 10월문학제를 열고 있다.

고희림의 시집 『인간의 문제』(2013)는 10월항쟁을 다룬 이 지역 최초의 시집이다. 여기 수록된 13편의 시에서 시인은 모든 문학적 기교와 수사법을 거부하고 대구와 경북, 경남의 10월항쟁 유족들의 구술 증언을 사실 그대로 기술하고 있다.

영천의 시인 이중기는 2014년 장편서사시 『10월』을 내놓았다. 이 시집은 영천 지역의 10월항쟁을 역사기록과 증언을 통해 폭넓게 형상화하고 있는데, 주목할 만한 것은 10월항쟁의 원인이 된 쌀 품귀 현상이 일본으로의 밀수출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미군정의 묵인 아래 쌀이 부족한 일본에 남한의 쌀을 대량 밀반출함으로써 풍년이 든 남한에 기근이 닥쳐 결국 10월항쟁의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조선 쌀 오백만 섬 가져왔다고/ 아사히 신문이 그 사실을 털어놓았지/ 그러니까 붉은 여우와 하-지가 밀수츨을 한 거야/ 좀 더 솔직히 표현하자면/ 맥아더 명령이라고 해야 옳은 말이겠지만”

10월항쟁 70주년인 2016년에는 이하석의 『천둥의 뿌리』와 이중기의 『영천아리랑』, 고희림의 『대가리』와 『가창골 학살』 등 4권의 시집이 잇달아 출간되었다. 『천둥의 뿌리』는 지역 원로시인인 이하석이 대구 지역 10월항쟁의 경과와 유족들의 고통을 탁월하게 형상화한 역작으로 14회(2017년) 육사문학상을 받았다. 제1회 작가정신문학상을 받은 이중기의 『영천아리랑』은 『10월』의 후속편으로 영천의 10월항쟁 주역들과 피해자들을 중심으로 각양각색의 인물들을 생동감 있게 그려냈다. 고희림의 시집 『대가리』는 국가폭력을 정면으로 다룬 「대가리」 연작으로 주목을 받았고, 『가창골 학살』은 가창골과 청도의 학살 피해자 유가족들과 10월 유족회 회원들의 구술증언을 채록하여 기록시의 새 경지를 개척했다.

6·25 전후에 학살된 민간인은 백만 명이 넘고, 그중에는 이념갈등과 상관없는 어린아이와 부녀자, 칠팔십 노인들도 많다. 지금까지 김원일의 『겨울 골짜기』(1987)와 황석영의 『손님』(2007), 조갑상의 『밤의 눈』(2012)이 각기 경남 거창과 황해도 신천, 경남 진영의 학살사건을 소설형식으로 담아냈다. 제주 4·3 항쟁은 김석범의 『화산도』와 현기영의 『순이 삼촌』, 광주 5월항쟁은 한강의 『소년이 온다』, 임철우의 『봄날』 같은 장편소설로 형상화되었다. 그렇지만 10월항쟁을 다룬 소설은 나오지 않고 있다.

경산 코발트 광산 학살사건과 관련해서는 전국시사만화가협회와 유족회가 함께 참여한 『아!』(2008)와 이재갑의 사진집 『잃어버린 기억』(2008)이 출간되었다. 그러나 4·3항쟁을 주제로 한 강요배의 연작 그림 『동백꽃 지다』(1992)에 비견할 만한 10월항쟁 역사기록화를 시도한 화가는 없다. 그것은 표현의 자유나 블랙리스트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 즉 우리 지역의 문제를 나의 문제로 절실하게 받아들이고, 이웃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공감하는 능력, 즉 예술가적 공감력의 문제인 것 같다. 무엇보다 작가들의 자기검열과 관심의 부족이 원인일 것이다.

광주항쟁을 다룬 영화로는 「꽃잎」(장선우 감독, 1996), 「화려한 휴가」(김지훈 감독, 2007), 「택시운전사」(장훈 감독, 2017)이 많은 관객을 동원했고, 제주 4·3항쟁을 다룬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 2」(오멸 감독, 2013) 같은 영화도 관객들의 호응을 얻었다. 그렇다면 10월항쟁을 다룬 영화가 제작, 상영될 날은 언제일까? 시보다는 소설이, 소설보다는 영화가 다수 대중의 인식을 바꾸고 역사적 진실을 알리는 데 효과적인 매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10월항쟁은 단순히 1946년 대구·경북지역에서 일어난 일회적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국가폭력에 의한 민간인 학살과 그 진상 규명, 연좌제에 의한 유족들의 대를 이은 고통까지 포함된 문제라는 점에서 4·3항쟁과 5월항쟁, 최근의 세월호 사건까지 연결된다. 10월항쟁 유족들은 국가폭력에 의해 세 번 죽임을 당했다고 말한다. 첫 번째 죽임은 한국전쟁 전후의 학살이요, 두 번째 죽임은 5·16쿠데타 이후에 유족회를 해산하고 유족회 간부들을 구속하여 처벌한 것이고, 세 번째 죽임은 유가족들을 빨갱이로 몰아 연좌제로 묶어 불가촉천민 취급한 것이라고 한다. 이에 따라 10월문학도 지역의 한계를 뛰어넘어 4·3문학이나 5월문학과 연결되고, 이러한 문제의식을 공유한 전국의 작가들이 매년 10월문학제에 동참하고 있는 것은 고마우면서도 당연한 일이다.

* 이 글은 『작가정신』 2017년 하반기호(39호)에 실린 졸고 「10월항쟁의 시적 형상화」를 대폭 수정·보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