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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10월문학제
– 대구에서 일어났던 해방공간 최초의 항쟁, 10월항쟁을 기억하고 기록하다
이철산 / 시인, 10월 문학회
– ’10월문학제’라고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대구에서 열리는 ’10월문학제’라고 들어본 적 있습니까? 한번 쯤 들어본 듯 귀에 낯설지 않을 겁니다. 지방마다 서로 경쟁하듯이 축제가 열리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대구에서도 지자체의 특색과 이야기를 담아 많은 축제를 열고 있습니다.
대구에서 10월이면 10월문학제가 열립니다. 올해로 7년째 행사를 열었습니다. 대구시민들이 스스로 만들었습니다.
10월문학제를 제대로 알고 싶다면 먼저 알아야 할 역사가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 혹, 대구 10월항쟁을 아시나요?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 중에 ‘그래 잘 알지.’ 선뜻 말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겁니다. 대구 10월항쟁은 해방이 되던 이듬해인 1946년 10월 1일 대구에서 일어났습니다. 대구에서 시작된 항쟁은 전국으로 번졌습니다. 대구 10월항쟁은 일제의 강점에서 해방된 후 한반도에서 일어난 최초의 민중항쟁입니다. 동학농민항쟁과 3․1만세운동과 더불어 근현대 3대 민중항쟁이라 말합니다. 시대에 따라 인민항쟁이라 불리다가, 민중항쟁으로 불렸던 거대한 민초들의 항쟁입니다.
10월 문학제(출처: 대구경북 작가회의)
– 대구 10월항쟁은 어떻게 일어났습니까?
대구 10월항쟁은 1946년 10월 1일 대구역 옆 한 건물 앞에서 수 백 명의 노동자들과 경찰이 충돌하면서 처음 일어났습니다. 해방된 조국에서 노동자들과 경찰이 무력충돌을 하다니 선뜻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자, 미군정은 한반도에 대한 일방적인 권력 재편성을 실시합니다. 미군정을 실시합니다. 하지만 이미 한반도에는 해외에서 여러 경로를 거쳐 모여든 민족지도자들이 있었습니다. 독립을 위해 싸웠던 독립군들입니다. 민족지도자들은 자주적인 민족해방공동체들을 서둘러 건설했습니다. 미군정이 한반도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성숙된 우리 민족의 자주적인 해방공동체들이 존재하고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미군정은 우리 해방공동체의 역할과 존재를 인정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해방공동체는 미군정과 많은 갈등을 겪게 됩니다.
민족주의자, 항일독립 투사, 민족 지식인, 각 지역의 민족지도자 등 친일세력만 빼고 모두 참여했던 것이 해방공동체입니다. 미군정은 일제 통치 구조와 친일세력을 다시 권력유지를 위한 손발로 내세웁니다. 우리 해방공동체와 친일세력을 다시 등용한 미군정의 갈등이 거대한 민중항쟁을 불러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가장 직접적인 사건은 미군정의 식량정책이 불러온 사회 불안과 혼란이라 하겠습니다. 1945년 한반도는 대풍년이었지만, 미군정의 식량자유시장제도의 실시로 쌀값은 40배 폭등하고 품귀현상이 일어납니다. 또 이어지는 강제 식량배급과 강제 수집제를 선포하며 강제수집과 배급을 실시합니다. 이 과정에서 미군정은 친일경찰과 친일관료들을 앞세워 무자비로 공권력을 행사합니다. 관료들의 악랄한 횡포와 폭력은 일제강점기를 넘어섰습니다.
해방된 조국은 대혼란에 빠집니다. 설상가상으로 대구에는 콜레라가 발생하고 외지로 통하는 교통이 막혀 버려 굶어죽는 사람들이 속출하게 됩니다.

그해 3월부터 쌀을 달라고 요구하는 굶주린 시민들과 총파업을 시작한 노동자들이 경찰과 충돌하면서 수십 명이 사살당하는 참사가 일어납니다. 대구 10월항쟁의 시작입니다.
삼덕동을 중심으로 학원가에서 학생들이 가장 먼저 일어났습니다. 분노한 중․고등학생들이 희생된 노동자의 시체를 메고 거리로 나왔고, 경찰서를 포위하고 경찰을 무장해제 시키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성난 민중들은 친일 경찰과 친일 지주 및 고리채 부자들의 집을 습격 합니다. 달성공원에서 빼앗은 물건을 모아놓고 빈민들에게 나주어 주었다고 합니다. 해방구가 연출된 겁니다. 하지만 해방구는 오래 가지 못합니다. 다음날 미 전술군이 탱크를 몰고 대구 경찰서를 접수하면서 급박하게 돌아가던 상황은 진정되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항쟁은 이미 대구를 넘어서고 있었습니다. 대구 10월항쟁은 경북으로, 전국으로 들불처럼 무섭게 번졌습니다.
대구 10월항쟁으로 얼마나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는지 정확하게 모릅니다. 10월 1일에서 2일 이틀 동안 대구에서 희생된 사람은 26명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경북에는 10명의 경찰을 포함 모두 100여명, 전국적으로는 1천여 명이 희생됐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1960년 전국유족회가 직접 조사한 결과, 한국전쟁을 전후해 무려 110만여 명(경북 33만여 명)이 불법으로 학살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특히 대구의 경우 1만여 명이 학살된 가창골을 비롯, 경산 코발트 광산 등 모두 16개 학살터에서 3만여 명이 학살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결국 10월항쟁은 일제강점기의 사회 정치구조가 해방과 더불어 변화되지 못한 상황에서 자신의 이해를 관철 시키려던 미군정과 그들의 후원을 받은 친일 관료들과 친일 경찰 등 친일세력에 대한 저항이었고, 식량정책과 생활난에 대한 민중의 항거였습니다. 나아가 10월항쟁은 일제강점기부터 이어지던 민족해방 투쟁의 정신과 해방이후 새로운 자주독립 국가를 세우려는 민중들의 염원이 담긴 사회변혁운동이었습니다.
조국 해방은 되었지만, 완전한 해방을 원했던 민족자주 해방공동체와 미군정에 의해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친일세력 간의 필연의 항쟁이 바로 대구 10월항쟁이었던 겁니다.

– 10월문학제는 어떻게 태어났습니까?
대구 10월항쟁은 해방 후 우리민족 스스로의 해방공동체 운동이었으며, 민주주의 운동이었습니다. 생존권 운동이었고, 하나 된 조국을 갈망했던 통일운동이었습니다.
“한국전쟁을 전후해서 일어난 민간인 학살의 뿌리는 바로 10월 항쟁입니다. 10월 항쟁 참가자들이 국민보도연맹에 가입하고, 전쟁 때 무참하게 학살된 것입니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의 잘못을 국가권력에 묻기 위해 그 뿌리인 10월항쟁의 진상 규명과 역사적 복원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피학살 유족회와 10월항쟁 유족회의 말씀이 10월문학제의 출발입니다.
10월문학제 영천아라리 공연(출처: 대구경북 작가회의)
10월문학제는 이렇게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2010년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로부터 진실규명 결정이 내려지면서 10월항쟁 추모제를 시작하게 됩니다. 10월항쟁 추모제를 함께 준비했던 예술가들이 10월문학제를 준비하기 시작합니다.

10월문학제를 준비하던 사람들은 ’10월항쟁 바로보기’행사를 시작합니다. 먼저 대구 10월항쟁의 역사적 복원을 위해, 10월항쟁 약사 구술강의를 준비했습니다.(2013년 4월 27일)
지워지고 뒤틀린 역사를 복원하기 위해, 유족 증언을 준비했습니다.(2013년 5월 11일)
대구시내(2013년 6월16일)를 중심으로 현장 답사를 했고, 대구인근 지역인 영천과 경산코발트광산(2013년 6월2일)을 중심으로 알려진 학살터를 찾아내고 답사를 했고 증언을 듣고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시민 대 토론회를 개최했습니다.(2013년 7월 22일)

역사의 진실을 복원하고 찾아내고 기록하려는 사람들이 모여서 ’10월항쟁 바로보기’를 시작했습니다. 대구경북작가회의 작가들이 뜻을 모았고, 대구지역에서 활동하는 연극 미술 음악 등 많은 장르 예술가들이 뜻을 모았고,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지역 원로 선생님들의 후원으로 첫 발걸음을 내딛었습니다. 마침내 대구시민들과 함께하는 ’10월문학제’가 세상에 나옵니다.

– ’10월문학제’는 어떤 행사입니까?
10월항쟁을 복원하고 기억하고 기록하기 위하여 전문 연구자를 모시고 세미나를 엽니다.
10월항쟁을 재해석하는 시극을 전문극단이 공연합니다.
전국에서 모인 시인들의 자작시 낭송을 합니다.
대구 10월항쟁의 발걸음을 따라 항쟁을 재현합니다.
10월항쟁이후 일어난 민간인 학살터를 순례합니다.

전국의 작가들이 참여하는 작품으로 매년 시첩을 발간하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요약합니다.
10월문학제 행사 포스터(출처: 대구경북 작가회의)

제1회 10월문학제

  • ‘새들의 길, 사람의 길’
  • 2013년 10월 1일 화요일 오후6시
  • 대구YMCA 3층 대강당

제2회 10월문학제

  • 2014년 10월1일 늦은 2시 국체보상공원 세미나실(2.28공원내)
  • 지역작가초청 세미나
  • 본행사 2.28공원 야외무대

제3회 10월문학제

  • ‘밥꽃’
  • 2015년 10월3일 토요일 늦은 3시
  • 함께 사는 세상

제4회 10월문학제

  • ‘천둥의 뿌리’
  • 2016년 10월1일 토요일 오후7시
  • 2.28기념 중앙공원 청소년광장

제5회 10월문학제

  • ’10월항쟁의 조약돌’
  • 2017년 9월29일 토요일 오후 7시
  • 2.28기념 중앙공원

제6회 10월문학제

  •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
  • 2018년 9월29일 오후 3시30분
  • 대구문학관

제7회 10월문학제

  • ‘달도하나 해도하나’
  • 2019년 10월 5일 토요일 늦은 4시
  • 대구문학관
10월문학제 발행 시첩(출처: 대구경북 작가회의)
10월문학제는 대구와 대구사람들과 대구의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가장 소중하게 여겼던 대구의 역사를 복원하고 있습니다. 대구에는 평화와 민주주의를 넘어 조국의 하나된 통일을 갈망했던 역사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구에는 전국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역사가 있습니다.
10월문학제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