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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2
‘거리’를 찾아 헤매는 시민에서,
‘거리’를 직접 만드는 시민으로
심재신 / 누리라프로젝트 대표
※ 이 글의 제목에서 말하는 ‘거리’는 사람이나 차가 많이 다니는 길을 뜻하는 것이 아닌 <내용이 될 만한 재료>라는 뜻에 가깝습니다. 주로 즐길거리, 놀거리, 먹거리 등으로 쓰이며 이 글에서 계속 언급될’거리(문화거리)’는 <문화적인 내용이 될 만한 재료, 요소, 활동 등>을 아우르는 뜻으로 이해해주시면 좋겠습니다.
– 시민 문화를 만들어가는 사람들, 시민문화분과 라운드테이블로 모이다
저는 대구경북 지역에 사는 2030 세대의 고민’거리’들을 바탕으로 함께 이야기해보는 대화모임이나 무대를 기획하는 청년기획공동체 누리라프로젝트의 대표 심재신입니다. 그러면서 대구라는 도시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활동들에 참여하고 민감하게 기록하는 일을 좋아해 글로 남기고 싶은’거리’들을 찾는 활동가입니다. 시민문화분과 라운드테이블을 통해 <문화도시>와 <시민문화>라는 단어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참여하게 된 계기는 다양한 중간지원조직과 시민활동가들이 함께하는 모임에서 뭔가 재밌는’거리’가 만들어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전부였습니다. 아파트 어머니들끼리 모여 도서관을 만들고 아이들을 위한 교육공동체를 운영하는 분, 청소년 교육 기관에서 일하시는 분, 청년센터·사회적경제지원센터·마을만들기지원센터·도시재생지원센터 등 다양한 시민활동을 장려하는 중간지원조직에서 근무하시는 분들, 그리고 누리라프로젝트처럼 다양한 시민구성원과 함께 향유할 ‘거리’들을 만들어나가는 여러 단체 대표들께서 함께해주셨습니다.

회의하는 자리라기보다는 서로 새로운 분들을 만나고 저마다 하시는 일들을 공유하며 활동하면서 부딪친 한계들을 나누는 대화모임에 가까웠습니다. <문화도시>, <시민문화>에 대한 정의부터 우리의 활동 목적과 내용을 정리하기가 무척 어려웠지만 여러 번 모여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한 가지 공감한 것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찾고 있는 문화’거리’와 대구라는 도시에서 펼쳐지는 문화’거리’들이 매칭이 잘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대구 시민들은 어떤 ‘거리’를 원하는 것일지 궁금해졌고, 생생하고 다양한 대답들을 듣기 위해 어떠한 조건이나 기준 없이 선착순으로 대화모임을 만들어보게 되었습니다.

– 단순한 이야기’거리’에서 문화’거리’로 키워가는 과정
평소 해보고 싶었던 기획 혹은 대화를 하고 그 내용을 기록 하면 식사비와 진행비를 사례로 제공하여 10가지 주제로 약 100여명의 시민이 저마다의 공간에서 대화모임을 진행했습니다. 참여하신 시민들이 원하는 ‘거리’들은 개인적으로 제가 가깝게 느낀 주제도 있고 생소하게 느낀 주제도 있었습니다. <대구 데이트 코스, 대구 관광지>, <청소년들과 함께할 수 있는 문화 활동>, <인디음악과 페미니즘> 등이었는데 각 모임별로 진행한 것으로 끝내지 않고 10가지 주제의 대화모임 참가자가 소금창고라는 공간에 모여 각 주제별로 어떤 ‘거리’가 필요한지 나눠봤습니다. 그러면서 대구에 대한 쓴 소리, 좋은 소리 모두 나왔습니다. 대구는 대표 브랜드인 ‘Colorful Daegu’를 비롯해 ‘유네스코 음악창의도시’, ‘동아시아 문화도시’ 등의 타이틀을 바탕으로 이미 문화’거리’가 충분한 문화도시라는 것을 대내외에 어필하고 있지만 정작 많은 사람들이 쉽게 공감하지 못합니다. 대구에 사는 시민들조차 대구라는 도시집단이 다양한 문화를 수용하지 못한다거나 보수적이고 무뚝뚝하고 유연하지 못하다는 인식이 팽배합니다. 그러나 저는 대구에 재밌고 매력적인 사람이 많다는 것을 제가 경험한 다양한 활동을 통해서도 그리고 앞서 소개한 대화모임에서도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대화모임을 더욱 확장해 ‘다색다감한 사람들과 문화가 있는 세 끼, 삼시색끼’라는 타이틀로 각각 원하는 키워드를 통해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과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관계 맺고 만들고 싶었던 문화’거리’들을 만들어나가는 모임을 기획했습니다. <고민매칭>, <생활창작>, <청소년>, <나눔실천기획>, <술 한잔>, <인디음악>, <어른 그림책>, <혼 여행>, <문화예술 일거리>, <청년과 쉐워하우스> 라는 10가지 주제로 각각 대화모임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리고 각 모임에서 공유한 이야기들을 다섯 주제씩 모여 대구의 두 거리(길거리)에 나눠서 월드카페 형식의 ‘삼시색끼 골목대화방’을 진행했습니다. 경북대학교 서문 골목 그리고 서성로 수제화 골목 음악감상실, 커뮤니티 공간, 식당, 카페 등을 섭외하여 각 다섯 공간 총 열 곳에서 모임이 진행되었습니다. 대화 모임을 운영한 사람, 참여한 사람 경계를 허물고 모두가 삼시색끼 대화모임과 골목대화방을 통해’대구에 이런 곳(공간)도, 이런 사람들(시민, 활동가), 이런 움직임(문화도시)도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삼시색끼 골목대화방(서성로) : 대구 중구 서성로(수제화골목)에서 열린 삼시색끼 골목대화방에서 참가자들이 인디음악 주제에 대한 이야기 내용을 나누면서 대구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의 영상을 함께 감상하고 있다. (출처_심재신)
– 대구문화도시 사업추진단을 통해 나만 알기 아까운 사람들을 만나다
저는 시민문화분과 활동뿐만 아니라 문화도시 대구 사업 전반을 고민하는 사업추진단으로도 활동했습니다. 공공, 문화산업, 시민문화, 인디자립, 전문예술 다섯 가지 분과로 이루어진 사업 추진단은 각 분과별 활동뿐만 아니라 협력점을 찾고 연계하면서 문화도시 대구를 만들어가고자 했습니다. 다른 분과의 구성원들은 제가 접해보지 못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스트릿 댄스, 연극, 무용, 밴드음악, 공연, 문화시설 운영, 행정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분들이 모여 문화도시 사업을 바라보는 시선도 저마다 다르고 사용하는 언어도 다르고 원하는 것도 달라 소통하는 데에 엄청 힘들었습니다. 추진단 회의는 기본 3-4시간을 훌쩍 넘었고 각 분과별 구성원이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여과 없이 각자의 언어로 이야기하다보면 사업을 진행하기 위한 회의라기보다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에 가까웠습니다. 처음에는 답답했지만 지금은 다른 분과 구성원들의 언어나 문화도시에 대한 시선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그들이 어떤 역량을 가지고 있고 어떤 환경에 처해있는지, 어떤 사람을 만나고 문화’거리’들을 공유하고 싶은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 분들을 통해 다양한 문화’거리’들을 알게 되면서 저만 알기에는 아깝다,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고 생각했고 올해 11월에 열린 문화도시 대구 성과 공유회 속 부대행사로 <나만 알기 아까운 사람 어워드>를 진행했습니다. 이 어워드는 ‘이 사람은 나만 알기에는 아까울 정도로 대구가 문화도시가 되는 데에 기여하는 사람, 칭찬해주고 싶은 사람’이라고 생각한 분들이 직접 추천하여 상 이름도 지어서 시상하는 행사로 문화적 역량, 활동내용의 우열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추천하고 추천 받은 사람들의 관계를 돈독히 할 뿐만 아니라 몰랐던 사람들을 알아가는 네트워킹의 장을 지향합니다. 진행하면서 기억에 남는 시상자와 수상자가 있습니다. 대구의 한 기획사가 소속 가수를 추천했고 소속 가수는 누가 추천한지 모르고 있다가 본인의 기획사 대표가 추천한 줄 알고 함께 고생하는 것에 대해 여러 감정이 복받쳤는지 울기도 했습니다. 지켜보는 사람들이 모두 격려의 박수를 치는 훈훈한 분위기였습니다. 저는 이번 어워드를 계기로 유명한 SM, YG, JYP 등과 같은 대형 기획사가 전부가 아니라 대구에도 다양한 기획사가 있고 그 기획사 소속 아티스트들의 노래, 작품들을 알고 듣게 되었습니다.
나만 알기 아까운 사람 어워드 : 대구 북구 고성동 공장을 리모델링하여 만든 카페 빌리웍스에서 열린 문화도시대구 성과공유회 속 <나만 알기 아까운 사람 어워드>가 진행되기 전 수상자들의 포스터들을 한 시민이 관심 있게 보고 있다. (출처 : 심재신)
– 끌리는 학교, 대구N끌리지
위의 활동들을 통해서 제가 느낀 대구는 충분히 매력적인 사람과 매력적인 공간이 많은 매력적인 도시임에도 그 매력을 서로 모르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웠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저마다의 매력을 인지하고 그 매력을 더욱 가치 있게 키울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거리’를 찾아 헤매던 시민들이 스스로 자신이 원하는 즐길거리, 놀거리, 생각할 거리를 만드는 매력적인 시민이 되고 그러한 시민들이 모여 매력적인 도시를 만들어나가는 장의 필요성을 공감한 사람들과 함께 매력적인 사람 – 공간 – 기획을 잇는 ‘끌리는 학교, 대구N끌리지’를 만들었습니다. ‘끌리지’는 영어 칼리지(College) +’끌리다’의 합성어이며 앞에 붙은 ‘대구N’은 <대구에는~>, , , 이라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대구N끌리지>를 기획·운영하는 사람인 ‘끌라보레이터’는 협력하는 사람(Collaborator) +’끌리다’의 합성어로 주부, 취준생, 고등학생, 자영업자, 창작자, 직장인, 예술가 등 나이·성별·직업을 초월해 대구시민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게 열어두었습니다. 주변 이웃의 잠재력, 매력적인 공간을 연결하고 싶은 아이디어가 샘솟는 사람, 규제나 평가에서 벗어나 자신이 추구하는 창작활동을 가까운 이웃·친구들과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을 모집하여 총 17팀의 끌라보레이터가 네 차례의 워크숍에 참여하였고’대구N끌리지’를 기획·운영하고 있습니다. 치매 어르신들과 훌라 춤을 춘다거나, 골목을 정원으로 만들기 위한 가드닝 수업, 전통 술에 대해 이해하고 함께 만들어보는 수업, 버려진 인형들로 인형극을 진행해보는 수업, 가깝지만 가보지 못한 대구의 여행지들을 함께 찾아다니는 수업, 어릴 적 읽었던 그림책을 다시 읽어보고 생각을 나누는 등 대구 곳곳의 ‘끌리소(끌리는 장소라는 뜻으로 대구N끌리지가 열리는 공간)’에서 다채로운 문화’거리’들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또 끌라보레이터들은 자신이 아는 것을 단순 전달하는 강사가 아니라 참여한 사람들과 함께 즐기는 ‘거리’를 바탕으로 공동체를 이끌어나가는 이웃이며 자신의 끌리지에 더 많은 사람을 동원하려고 애쓰거나 다른 끌라보레이터와 경쟁하는 것이 아닌 다른 끌리지에 참여하기도 하고 진정 즐기고 교류하면서 서로의 매력에 끌리는 이웃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대구N끌리지 원대아트마켓 전통공예 : 대구로컬여행을 기획·운영하는 김지은님이 서구 비산동의 옛 슈퍼마켓을 리모델링한 공간 원대아트마켓에서 열린 전통공예 끌리지에 참가한 뒤 끌라보레이터 오픈채팅방에 즐거웠다고 후기를 남기며 함께 공유한 사진 (출처_끌라보레이터 김지은)
– ‘거리’를 찾아 헤매는 시민에서, ‘거리’를 만드는 시민으로
2018년부터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문화도시 사업 전반에 참여하면서 저 역시 뮤지컬, 콘서트, 공연, 축제, 평생학습 등의 키워드로 대구에서 제공되는 ‘거리’들을 찾아 헤매고 소비만 하는 시민에서, 일상을 더욱 즐겁게 누리기 위해 다양한 문화’거리’들을 직접 만들어가는 재미를 경험한 시민이 되었습니다. 문화도시 사업을 통해 대구가 정말 매력적인 도시임을 확인함과 동시에 어떤 특별한 ‘거리’가 있어야 즐거운 도시가 아닌 우리 삶에 가장 가까운 ‘일상’이 즐거운 도시, 이웃과 함께 행복을 나누는 도시가 된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시민이 ‘문화도시 대구’를 느끼고 일상의 즐거움을 함께 만드는 이웃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끌라보레이터들과 단체 사진 : 대구N끌리지를 기획·운영하는 끌라보레이터들, 그들의 기획을 도와준 코디/스태프들과 마지막 워크숍을 마치고 함께 한 사진. 저마다 슬리퍼 신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자신의 동네(슬세권)를 재밌게 만들자는 의미에서 실내화 가방을 기념품으로 제공하였다. (사진제공 : 대구N끌리지 촬영감독 – 박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