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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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2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만드는 문화도시 대구
신동호 / 사|인문사회연구소장
“진정으로 무엇인가를 발견하는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 것이다”
–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
우리 도시는, 시민의 삶과 일상은 문화도시를 통해 ‘새로운 눈’을 가질 수 있을까. 햇살 아래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이웃과 인사를 나누고, 산책하듯 갈 수 있는 공간에서 문화적 경험을 하고, 느리고 소박한 시간의 흐름을 음미하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삶의 리듬을 만들어갈 수 있을까. 마르셀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얘기한 ‘보리수차에 적신 마들렌조각을 먹을 때 느끼는, 비물질적이지만 보다 집요하고 충실한 냄새와 맛의 일상’을 꿈꾸어 볼 수 있을까.
협치의 소중한 경험, 법정 문화도시 예비 지정과정
2015년 지역문화진흥법에 근거한 문화특화지역사업(문화도시 예비사업)을 시작으로 우리 도시는 문화도시사업을 시작했으며, 2018년 12월에 법정 문화도시 예비지정(전국 10개 도시)을 받았고, 올해 말 최종 법정 문화도시 최종 심사를 앞두고 있다. 지난 5년간 ‘대명공연거리’ 조성에 중점을 둔 예비사업을 시작으로 2017년부터 법정 문화도시 조성계획을 마련하기 위해 보다 포괄적인 생태계 논의가 시작되었다. 우리 도시의 문화적 자원과 잠재력을 분석하고, 문화생태계를 조사하는 가운데 공공-전문예술-인디자립-시민문화-문화산업분과 영역의 자율적인 생태계 모임들이 만들어지고, 논의 과정을 거쳐 각 분과영역이 추천한 간사들로 ‘대구문화도시추진단’이 꾸려지고, 추진단과 대구시와 대구문화재단이 ‘문화도시협의체’라는 협치의 거버넌스를 이루어 사업을 추진해왔다.
분절, 고립, 배타적이었던 문화생태계의 공론화
바라보는 관점도, ‘사용하는 언어도 다르다’는 만남의 시작은 서걱거리고 불안정했다. ‘시민력을 바탕으로 대안적인 사회생태계를 만들자’는 문화도시 정책에 대한 이해의 어려움도 있었지만 그간 분절되고 고립적이며, 더러는 배타적이기까지 했던 문화생태계들의 만남의 방식과 언어는 부유하는 구름같은 것이었다. 그만큼 생태계는 균열되어 있었고, 지원사업에 길들여져 있었으며, 협력의 경험이 부족했고, 서로를 잘 알지 못했다. 우리 도시가 추진해온 문화정책사업을 기반으로 문화도시의 콘셉트로 만들어가려는 행정의 욕망을 내려놓기도 싶지 않았다.
수많은 라운드테이블과 회의를 통해 차이를 드러내고 서로의 욕망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수용하는 태도가 생겼으며, 공모와 경쟁의 방식이 아니라 ‘하고싶은 것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협력기획 방식의 일들이 벌어지고, ‘이미 있는 것을 이어가는’, 사람-활동-장소를 연결하는 그물망 생태계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생태계가 직면한 각종 이슈들에 대한 매뉴얼이 만들어지고, 정책화를 위한 콜로키엄과 포럼들이 열렸으며, 민간생태계의 이해와 요구를 기반으로 한 문화도시 콘셉트들이 도출되면서 행정의 욕망들은 순치되어갔다. 늦은 밤, 새벽까지 함께 논의하고 방안을 도출하는 ‘행정과 민간의 동행의 경험’은 뭉클함이었다.
문화도시에서 ‘문화’의 의미
필자는 간혹 문화도시, 문화적 도시재생에서 말하는 ‘문화의 의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 ‘우리를 사람으로 살 수 있게 하는 모든 것’이라고 답하곤 했다. 문화를 끊임없이 장르예술 혹은 문화예술로 환원하는 입장을 경계하고, ‘삶의 문화’, ‘문화적인 일상’, ‘문화적인 과정’의 중요성을 드러내며, 아울러 문화가 삶이나 일상의 시공간과 분리되거나 다른 차원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는 바람이었다. 그러므로 문화도시에서 ‘문화’의 의미는 ‘우리의 삶, 우리의 일상, 우리 도시에서 무엇을 회복하고 전환해야 보다 나은 삶의 조건들을 만들어갈 수 있을까’에 대한 물음으로 가닿게 된다.
‘새로운 리듬을 만드는’ 문화도시라는 비전
문화도시 조성계획을 짜면서 당사자 위킹그룹, 전문가 워킹그룹을 통해 많은 논의들이 있어왔다. 당사자 워킹그룹의 논의는 중구난방이었고 서툴렀으며 신뢰가 부족했고 과연 우리가 이루려는 것이 무엇일까에 대한 반문의 연속이었다. 전문가 워킹그룹은 철학적이고 가치지향적이었으며, 우리 도시 내부 욕구와 외부 전문가들의 지향은 혼선을 빚었다.
그러한 질문과 고민 속에서 리듬을 잃어버린 시간(시간의 향기 : 한병철), 리듬을 잃어버린 공간, 리듬을 잃어버린 삶을 회복(리듬분석 : 앙리 르페브르)하는, 분절적이고 고립적이고 배제적이었던 사람-활동-장소를 연결해 그물망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새로운 리듬을 만드는 문화도시 대구’라는 비전이 만들어졌으며, ‘새로운 리듬’은 공연문화도시를 추진해왔던 우리 도시의 문화적 정체성과 맞닿아 있기도 하다.
‘리듬을 잃어버린 시간’, ‘리듬을 잃어버린 도시’라는 문제의식은 다양한 개념과 콘셉트로 변주되었다. 도시 내에서 새로운 리듬 요소를 발견하고(리듬의 발견), 개인적, 사적 차원의 리듬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공동체적, 공적인 차원의 관계리듬을 생성하며(리듬의 생성), 나아가 이러한 문화리듬이 복지, 교육, 관광, 콘텐츠, 경제/산업 등 인접 분야로 파급되고 새로운 리듬으로 변주되어(리듬의 변주) 영역간 네트워크-가치창출을 통해 사회효과 발현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방향성을 설정했다.
이미 존재하고 있는 도시 내의 다양한 주체들을 발굴, 연결하고, 당사자주도형 활동과 콘텐츠, 다양한 도시공간을 문화적 장소화함으로써 ‘일상의 리듬’, ‘관계의 리듬’, ‘문화의 리듬’을 회복하고 이를 통해 다양한 사회효과를 발현하고자 했다. 이는 전환도시, 전환사회라는 철학적 사유나 마음생태-사회생태-자연상태의 회복이라는 에코소피(Eco-sophy)적 지향과도 맞닿아 있다.
도시를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
예비지정된 법정 문화도시 중 유일한 광역으로서 도시를 덩어리로 보는 관점에서 생활권‧문화권으로 바라보는 관점으로의 전환이 필요했다. 도시를 덩어리로 보는 행정, 정치, 경제적 관점에 따라 문화적 장소감이 상실되고, 도시확산(spill over) 현상의 가속화로 확산(외부)과 동시에 분절화(내부) 되었으며, 시공간적으로 압축되어 편의성은 증진된 반면 삶과 일상은 저하되는 현실에서 도시를 행정, 정치적으로 구분하면서 생기는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고 작은 시도와 실험이 가능한 장소로서 생활권(Living Sphere)에 주목하고, 생활권 생태계라는 세밀한 단위로 사람-활동-장소를 발굴하고 연결하여 새로운 도시문화 생태계를 만들어내고자 함이었다. 이를 위해 대구의 생활권을 인구 2만~6만, 걸어서 갈 수 있는 약 3km 이내를 기준으로 50개로 나누고, 도시재생사업(61개소), 문화마을(4개소), 문화적도시재생(1개소), 기타 구/군 문화거리 조성 및 마을 조성사업을 생활권과 연계하고자 했다.
아울러 이는 삶의 양식을 지역, 계층별로 규정지어 인식하는 것을 벗어나 삶의 소수성과 개별성, 개개인의 존엄함에 주목하는 관점이기도 하다.
다양한 주체의 발굴과 연결
조성계획 과정에서 확보가능한 2,600여개의 생태계 주체들을 공공-전문예술-인디자립-시민문화-문화산업영역으로 나누어 분석한 결과, 인디자립 및 시민문화영역의 활동 주체들이 70%에 이르렀지만 대체로 제도권 바깥이라 볼 수 있는 4-5섹터에 위치한 주체들이 전체의 60%에 이르렀다. 인디자립, 시민문화영역이 우리 도시의 문화활동을 만들어 가는 중요 주체였지만 이들은 제도권 바깥에 존재하고 있었으며, 이들은 서로가 서로를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들의 활동은 분절적이고 고립적이었으며, 생활권 기반 혹은 장소성 기반 활동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었다. 따라서 예비사업 기간 동안 라운드테이블, 네트워크 파티, 파일럿 프로그램 등을 통해 인디자립, 시민문화와 더불어 우리 도시에 존재하는 각 영역의 다양한 주체들의 DB를 구축하고 연결했으며, 4,800여 주체를 발굴하고 연결해 지속적인 자율 생태계 형성하고자 했다.
플랫폼사업으로서 문화도시, 도시브랜드로서 문화도시
문화도시를 문화-예술, 경제/산업-교육/복지 등 도시의 다양한 분야와 전후방산업을 연계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플랫폼으로서, 국내외 도시들과 호흡하며 도시 브랜드를 만들어 가는 플랫폼으로서 자리매김하고자 했다.
문화도시경영체 형성 및 거버넌스 기반 구축
광역-기초 및 시 부서간 협업모델 구축을 위해 광역-구/군 문화도시 협약을 하고 시-구/군 T/F와 ‘나른한 오후’라는 부서간 T/F를 지속적으로 운영해왔다.
아울러 각 영역별 라운드테이블 등을 통해 자율적으로 추천한 간사들로 상향식(Bottom-up), 민간 거버넌스 주도의 ‘문화도시추진단’을 구성하고, 시민참여 거버넌스 실현을 위해 시민참여단 45명(분과별 추천 25명, 일반시민 20명)이 참여하는 문화도시위원회(100인 이내, 여성 44.3%, 20-30대 32.9%) 구성했으며, 문화도시추진단과 수평적 협치구조이자 플랫폼으로서 문화도시센터(대구문화재단 문화도시본부)를 설립해 더 유연하고 개방적이며 협력적인, 수직적 관계가 아닌 수평적 협치 관계인, 조정이 아닌 협업을 지향하는 협력모델을 만들었다.
각 영역별 이슈들
광역-기초재단의 정책 연계 및 기초재단의 역할 강화, 문화도시사업과 대구광역시 및 문화재단의 각종 문화사업간 유기적 연계 및 통합적 정책 수립 도모, 당사자주도형 생태계 지원(공모 방식을 넘어 협력·공유의 관점) 및 생테계·문화예술계 제안형 사업 지원 확대, 생활문화-문화예술교육-평생학습-마을문화활동 정책의 유기적 연계 및 생활권·문화권 통합플랫폼 구축, 문화예술 현장의 본원적 활동을 활성화하고 행정적 낭비,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무정산 사업 확대 및 문화예술 관련 종사자에 대한 인식개선 정책 구축은 공공과 행정이 다양한 민간 생태계와 더불어 지속적으로 논의해가고 설정해야 할 정책 어젠다들로 정리되었다.
모든 공간과 사람, 세대와 계층을 아우르는 ‘끌리는 학교, 대구N끌리지’의 본격적이고 종합적인 실행, 대구형 문화산업 협업생태계 구축, 예술의 사회적 가치 형성, 도시의 인디자립문화 및 서브컬처에 대한 문화적 가치 확산(ST:art)은 향후 문화도시가 지향해야 할 사업의 가치이자 방향으로 설정되었다.
새로운 도시전략으로서 문화도시
생태계, 유기성, 장소성, 거버넌스들로 문화도시를 수사적으로 치장하고 있지나 않나, 어쩌면 정신의 중세를 살고있는 관료들의 또 다른 성장 패러다임의 하나로 전락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들이 있다. 그러므로 문화도시를 추진하는 우리의 사유는 보다 근본적이어야 한다. ‘문화도시를 어떻게’보다는 ‘문화도시를 왜’가 더욱 중요하다.
문화도시는 위기의 지역사회를 ‘재전유(reappropriation)’하는 지역발전전략으로서 문화적 관점의 통합적 도시 발전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방법이다. 문화가 경제, 생태, 도시 공간, 교육, 복지 등 여타 사회 부문과 결합해서 새로운 발전모델을 창출해야 한다(지금종)
많은 경우, 지역(도시) 재생 프로젝트의 부작용은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배제의 확산이었다. 문화도시 또한 성장 패러다임의 관점일 경우 마찬가지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많은 도시 프로젝트가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을 가속화했듯이 문화도시 또한 아직 그러한 우려의 바깥에 있지는 않다. 이는 문화도시의 비전이나 이를 추진하는 과정이 도시의 유기성, 탄력성, 다양성을 높이는 문화전략이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이슈와 스타성을 만드는 개별 프로젝트에 문화도시 전략이 존재해서는 안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문화적 장소화 전략을 통해 공공공간을 만들어 가는 프로젝트가 사람과 활동을 연결하는 유기적인 그물망 생태계를 만드는 데 있지 않고 장소의 기능성을 만드는 단편적인 프로젝트로 흘러서는 안된다. 동시대성을 넘어 지역적 삶의 대안 가치 실천하고, 마음생태-사회생태-자연생태를 아우르는 생태계(Eco-sophy) 회복으로 나아가는 문화도시이기를 바래본다.
문화도시는 도시의 역사문화적 맥락과 시민의 삶, 공공과 민간, 문화예술이 연결되는, 삶의 생태계를 재구축하는 문화적 실천이어야 한다. ‘아래로부터 촉발되는 창조성이 사회적, 공간적으로 망을 형성해가도록 하는 체계’로서 공동체를 위한 친환경적인 구조여야 한다(마크 스턴 &수잔 세이퍼트).
문화도시에서는 원래 존재하는 생활공간, 근린생활권이, 이웃들이 ‘문화적인 허브’가 되어야 하며, 문화도시 추진과정은 도시가 이미 품고 있는 역사문화, 사람, 활동 등 다양한 문화적 자산과 잠재력을 연결하고, 공론화하는 도시 내적 경험을 강하게 촉발하는 과정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