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극 공연의 기회가 되기를 바라며
사진_대구연극협회
프리미어스테이지에 처음 선보인 작품은 극단 동성로의 <연>이다. 이 작품은 죽은 자들 중에 선택받은 자가 이승의 생을 다시 경험한다는 독특한 설정을 기반으로 한다. 이승이 아닌 저승이라는 공간과 연결된 인간의 삶을 그린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연극의 상징적 특성을 부각했다. 극의 몇몇 부분에서 검은 복장으로 한국 무용과 같은 행위 예술을 보여주는 배우들은 마치 인간의 내면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주인공의 삶이 이 작품의 주제에 나타난 존재론적 질문에 합당한지는 의문스럽다. 만약 이러한 인물의 삶을 통해 절대자의 ‘선택’과 삶의 근원적 ‘고통’을 이야기하고자 했다면, 그에 대한 설득이 연극 자체로 이루어져야 했을 것이다.
이야기는 그가 보도한 TV 프로그램 때문에 여배우가 이사를 한 후, 의도치 않게 그 집에 기문의 가족들이 이사를 하면서 발생한다. 마을 사람들은 기문을 유명한 저널리스트로 추앙하면서 그와 그 가족의 사생활에 지대한 관심을 보인다. 수시로 사진을 찍고, 집 안을 관찰하며, 쓰레기통에서 개인 정보를 수집하는 등의 장면들은, 기문이 말했던 ‘알권리’가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특히 이 과정에서 마을 사람들의 과장되고 기계적인 모습은 극의 주제적인 측면을 연극적인 부각하는 효과를 보인다. 그런데도 이 작품이 작가의 변처럼 “진짜 ‘공인’이 어떤 이들을 의미하는지.” 고민케 하지는 못한다.
관객을 통해 ‘진짜 공인’과 ‘진짜 알권리’에 대한 고민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이미 그 고민이 극중에 전제되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작품은 기문 및 변심한 후배와 같은 황색 저널리스트들을 사생활을 침해하는 마을 사람들과 같은 방식으로 둔다. 이는 자칫 공공성을 띤 보도와 일반인의 사생활 침해를 같은 수준에서 비판한다는 관객들의 오해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극단 에테르의 꿈이 공연한 <무좀>은 다른 작품들에 비해 관객들이 가장 편하게 접할 수 있는 작품이다. 사실적 재현을 중심으로 한 무대 장치와 가족 중심의 이야기 전개는 관객들이 가장 쉽게 호응할 수 있는 연극적 구성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특히 무좀이라는 전염성 질병을 통해 가족 구성원들의 유대를 그려내는 방식은 극중 주제를 전달하는 데 효과적인 방식이었다.
극단 예전의 <광대>는 현대 사회의 문제로 등장한 스마일증후군에 대한 이야기를 연극적으로 풀어내는 작품이었다. 특히 스마일증후군이라는 병을 웃음을 파는 광대라는 직업과 연관시킨 설정은 극적 상황을 전달하기에 효과적이다. 이는 광대가 등장하는 공연으로 이어지면서 하나의 무대 위에 다른 볼거리를 관객들에게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또한 휘담의 절망적인 상황과 관련하여 가면을 쓴 인물들이 등장하여 보여주는 몸짓은 인물의 내면 혹은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도 좋았다.
나아가 휘담이 비슷한 처지인 영빈에 비해서도 할 말을 못 하는 답답한 캐릭터로 그려지는데 그 이유나 이전 이야기는 보이지 않는다. 만약 휘담의 성격에 대한 설득력을 높이지 못한다면, 그의 일이 특별한 개인의 문제로 이해될 수도 있어 보였다.
극단 종이로 만든 배의 <지상의 낙원>은 어느 미래의 ‘낙원실버시티’라는 흥미로운 시공간을 통해 연극적 재미를 높였다. 특히 향기 없는 꽃, 날지 못하는 새, 3 천 년 된 씨앗과 같은 상징적 요소들과 실버시티와 감옥, 청년과 노인, 시민과 근로자 등 많은 대립적 요소들을 배치하여 극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의미 부여가 가능했다는 점에서 신선하고 좋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러한 다양한 연극적 요소들이 하나의 극적 갈등을 향해 모이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지금의 극적 전개에서, 도시를 벗어나려는 딸의 욕망은 사건의 발단처럼 보이지만 딸과 신차원이 도시의 진실을 밝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도시의 진실은 저절로 밝혀지고 두 사람은 이 진실을 목격하는 상황에 가깝다고 하겠다. 따라서 극에 대한 병렬적 구성과 주인공의 목격자로서의 배치가 의도된 설정이 아니라면, 자칫 극이 지루하게 보이거나 생명 공학의 윤리성 문제와 같은 주제가 더 부각될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이제까지 프리미어스테이지에 올라온 5편의 작품에 관해 아쉬운 점을 부각시켜 돌아보았다. 5편의 작품들은 나름의 색깔과 장점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부족함을 더욱 부각시키는 이유는 아쉬움을 통한 기대감에 대한 표현이리라. 프리미어스테이지는 대한민국연극제를 단순한 경연이 아닌 연극 발전의 디딤돌로 만들 수 있기에 의미가 있다. 그러나 모든 창작극이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기회비용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필요해 보인다.
프리미어스테이지라는 창작극 지원 사업이 일회적이어서는 안 되며, 좋은 창작극이 단번에 완성될 수 없다면 기다림도 필요하다. 그 기다림이 작품 선정에 달려있다고 하겠다. 그러니 한국연극의 발전에 도움이 될 창작극에 대한 고민과 그 과정을 보다 빛나게 할 투명성이 함께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이를 위해 연극과 관련된 다양한 주체들이 협력하여 프리미어스테이지를 연극 창작의 좋은 기회로 만들어 나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