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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프리미어스테이지,
창작극 공연의 기회가 되기를 바라며
글_이승현 경북대학교 시간강사
사진_대구연극협회
2017년 올해 제2회 대한민국연극제가 대구에서 열린다. 이제까지 서울과 기타 지역에서 나누어져 치르던 연극제를 하나로 통합한 이후 두 번째 열리는 행사이다. 그 중 프리미어스테이지는 대한민국연극제를 맞아 대구연극협회가 창작연극 육성을 목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사업이라고 한다. 작년 처음 응모된 작품만 44편이나 되었다니, 전국 연극인들의 호응을 짐작할 수 있다. 거기다 2월 쇼케이스는 지난해 11월 대본심사와 12월 낭독극 심사에 이어 열린다고 하여 내심 기대가 되었다.
제 2회 대한민국연극제 프리미어스테이지, 극단 동성로 <연>
이런 기대가 단순히 ‘좋은 공연을 볼 수 있다’는 가능성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창작극을 지원한다’는 그 취지가 어떤 결과물로 나타날지가 더 궁금했다. 기실 창작극에 대한 연극인들의 고민은 무대극 중심의 연극이 도입된 이후로 항상 있었던 문제다. 그러니 대한민국연극제를 통해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시도 자체가 의미 있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그 시도가 가지는 의미만큼 아직 더 발전했으면 하는 아쉬움도 함께 엿볼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 프리미어스테이지에 대한 이야기가 필요하다.

프리미어스테이지에 처음 선보인 작품은 극단 동성로의 <연>이다. 이 작품은 죽은 자들 중에 선택받은 자가 이승의 생을 다시 경험한다는 독특한 설정을 기반으로 한다. 이승이 아닌 저승이라는 공간과 연결된 인간의 삶을 그린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연극의 상징적 특성을 부각했다. 극의 몇몇 부분에서 검은 복장으로 한국 무용과 같은 행위 예술을 보여주는 배우들은 마치 인간의 내면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였다.

극단 동성로 <연> 장면
그러나 다른 사건의 장면들이 선험적 세계에 대한 연극적 표현으로 이해되지는 않았다. 무대 위의 사건에 대한 의미적 이해는 사건의 전개 자체로 전달된다기보다는 저승사자를 연상시키는 인물들의 설명을 통해 채워지고 있었다. 더 큰 고민은 작품이 보여주는 주제적 측면이 작품의 설정과 잘 어울리는가 하는 부분이었다. ‘그분’이라는 보이지 않는 절대자의 존재와 인간의 삶을 고통으로 정의 내리는 철학적 관점보다 주인공이 처한 상황은 비일상적이었다. 사건은 어릴 때 버려진 주인공이 조직폭력배가 되고 보스의 애인을 좋아했다가 살해당한다는 줄거리를 따라간다.

그러나 이러한 주인공의 삶이 이 작품의 주제에 나타난 존재론적 질문에 합당한지는 의문스럽다. 만약 이러한 인물의 삶을 통해 절대자의 ‘선택’과 삶의 근원적 ‘고통’을 이야기하고자 했다면, 그에 대한 설득이 연극 자체로 이루어져야 했을 것이다.

극단 소소한 일상, <각다귀들> 장면
극단 소소한 일상의 <각다귀들>은 황색 저널리즘을 통한 사생활 폭로의 문제를 연극적으로 잘 표현한 작품이다. 극의 주인공인 기문은 유명 시사프로그램의 PD이자 진행자로, 유명 여배우의 섹스 동영상과 같은 자극적인 소재를 ‘알권리’라는 이름으로 파헤치는 황색 저널리즘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야기는 그가 보도한 TV 프로그램 때문에 여배우가 이사를 한 후, 의도치 않게 그 집에 기문의 가족들이 이사를 하면서 발생한다. 마을 사람들은 기문을 유명한 저널리스트로 추앙하면서 그와 그 가족의 사생활에 지대한 관심을 보인다. 수시로 사진을 찍고, 집 안을 관찰하며, 쓰레기통에서 개인 정보를 수집하는 등의 장면들은, 기문이 말했던 ‘알권리’가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특히 이 과정에서 마을 사람들의 과장되고 기계적인 모습은 극의 주제적인 측면을 연극적인 부각하는 효과를 보인다. 그런데도 이 작품이 작가의 변처럼 “진짜 ‘공인’이 어떤 이들을 의미하는지.” 고민케 하지는 못한다.

관객을 통해 ‘진짜 공인’과 ‘진짜 알권리’에 대한 고민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이미 그 고민이 극중에 전제되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작품은 기문 및 변심한 후배와 같은 황색 저널리스트들을 사생활을 침해하는 마을 사람들과 같은 방식으로 둔다. 이는 자칫 공공성을 띤 보도와 일반인의 사생활 침해를 같은 수준에서 비판한다는 관객들의 오해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극단 에테르의 꿈이 공연한 <무좀>은 다른 작품들에 비해 관객들이 가장 편하게 접할 수 있는 작품이다. 사실적 재현을 중심으로 한 무대 장치와 가족 중심의 이야기 전개는 관객들이 가장 쉽게 호응할 수 있는 연극적 구성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특히 무좀이라는 전염성 질병을 통해 가족 구성원들의 유대를 그려내는 방식은 극중 주제를 전달하는 데 효과적인 방식이었다.

극단 에테르의 꿈 <무좀> 장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시적·통시적으로 다양하게 얽힌 갈등들에 비해 이를 관통하는 이해와 해결은 부족했다. 전체 이야기는 2남인 상만이 아버지가 살던 집을 허물고 펜션을 지으려는 와중에 첫째인 길남이 이를 알게 되고 서로 부딪치면서 전개된다. 그러나 부가적인 갈등 양상이 너무 많이 제시된다. 전쟁으로 비유되는 길만의 처와 상만의 처가 보여주는 갈등은 그 이유도 드러나지 않은 채 이미 오래전부터 지속하여 왔다. 또한, 길만은 3남인 영만을 학생 운동을 하고 전라도 여자와 결혼했다는 이유로 ‘빨갱이’라 부른다. 길만과 준식, 상만과 준태의 부자 관계에 나타나는 미묘한 대립들도 극중에 계속 부각된다.
극단 에테르의 꿈 <무좀> 장면
형제간에 그리고 세대 간에 이렇게 다양한 대립들이 존재하지만, 극은 준식의 외침 이후 갑자기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곳곳에 아버지 경태의 혼이 해설자로 등장하지만, 왜 그의 입을 통해 무대에서 분리된 채 그 세대가 설명되어야 하는지는 이해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 작품은 가족의 근원적 유대 자체를 강조하는 듯했다.

극단 예전의 <광대>는 현대 사회의 문제로 등장한 스마일증후군에 대한 이야기를 연극적으로 풀어내는 작품이었다. 특히 스마일증후군이라는 병을 웃음을 파는 광대라는 직업과 연관시킨 설정은 극적 상황을 전달하기에 효과적이다. 이는 광대가 등장하는 공연으로 이어지면서 하나의 무대 위에 다른 볼거리를 관객들에게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또한 휘담의 절망적인 상황과 관련하여 가면을 쓴 인물들이 등장하여 보여주는 몸짓은 인물의 내면 혹은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도 좋았다.

극단 예전 <광대> 장면
그러나 주제적 측면을 사회적인 차원으로 끌고 나가는 정도가 아쉬웠다. 관계의 차원에서 볼 때 휘담과 유정 사이에서 유정이 더 적극적으로 애정을 표현한다. 상황을 생각했을 때 휘담의 반응이 이해는 되지만, 유정이 왜 휘담에게 더 사랑을 표현하는지에 대한 사건이 발생한 이전 상황에 대한 설명이 부재하다. 이는 유정이 어머니의 뜻에 따라 휘담을 떠나게 되는 상황에서도 설득력을 높이는데 필요하다. 주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콜센터의 문제를 통해 주제적인 의미를 배가시키기 위해서도 휘담과 유정의 관계에 대한 의미부여는 필요해 보인다.
나아가 휘담이 비슷한 처지인 영빈에 비해서도 할 말을 못 하는 답답한 캐릭터로 그려지는데 그 이유나 이전 이야기는 보이지 않는다. 만약 휘담의 성격에 대한 설득력을 높이지 못한다면, 그의 일이 특별한 개인의 문제로 이해될 수도 있어 보였다.

극단 종이로 만든 배의 <지상의 낙원>은 어느 미래의 ‘낙원실버시티’라는 흥미로운 시공간을 통해 연극적 재미를 높였다. 특히 향기 없는 꽃, 날지 못하는 새, 3 천 년 된 씨앗과 같은 상징적 요소들과 실버시티와 감옥, 청년과 노인, 시민과 근로자 등 많은 대립적 요소들을 배치하여 극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의미 부여가 가능했다는 점에서 신선하고 좋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러한 다양한 연극적 요소들이 하나의 극적 갈등을 향해 모이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극단 종이로 만든 배 <지상의 낙원> 장면
극의 마지막에 딸은 시장부인을 재생시키기 위한 실험체였음이 밝혀지고, 사라졌던 털보와 그의 부인이 뇌 이식을 통해 실종된 젊은이의 몸을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러나 낙원실버시티의 이러한 진실이 아버지나 원장과 대립하는 신차원이나 딸을 통해 드러나는 극적 갈등의 결과물로 보이지는 않는다. 만약 다양한 대립과 갈등들이 병렬적으로 연결된 구조를 원했다면, 이야기의 구성은 달라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극적 전개에서, 도시를 벗어나려는 딸의 욕망은 사건의 발단처럼 보이지만 딸과 신차원이 도시의 진실을 밝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도시의 진실은 저절로 밝혀지고 두 사람은 이 진실을 목격하는 상황에 가깝다고 하겠다. 따라서 극에 대한 병렬적 구성과 주인공의 목격자로서의 배치가 의도된 설정이 아니라면, 자칫 극이 지루하게 보이거나 생명 공학의 윤리성 문제와 같은 주제가 더 부각될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이제까지 프리미어스테이지에 올라온 5편의 작품에 관해 아쉬운 점을 부각시켜 돌아보았다. 5편의 작품들은 나름의 색깔과 장점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부족함을 더욱 부각시키는 이유는 아쉬움을 통한 기대감에 대한 표현이리라. 프리미어스테이지는 대한민국연극제를 단순한 경연이 아닌 연극 발전의 디딤돌로 만들 수 있기에 의미가 있다. 그러나 모든 창작극이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기회비용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필요해 보인다.
프리미어스테이지라는 창작극 지원 사업이 일회적이어서는 안 되며, 좋은 창작극이 단번에 완성될 수 없다면 기다림도 필요하다. 그 기다림이 작품 선정에 달려있다고 하겠다. 그러니 한국연극의 발전에 도움이 될 창작극에 대한 고민과 그 과정을 보다 빛나게 할 투명성이 함께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이를 위해 연극과 관련된 다양한 주체들이 협력하여 프리미어스테이지를 연극 창작의 좋은 기회로 만들어 나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