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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나노 세포를 가진 족속
정훈교 / (사)한국문화예술관광진흥원 이사장
두 시집을 마주하며 서로 결이 다른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첫 번째 시집은 『하염없이 낮은 지붕』(천년의 시작, 2019)이고 또 한 권은 『누가 입을 데리고 갔다』(문학과지성사, 2019)이다. 마침 두 시인 모두 대구에 적(籍)을 두고 있다. 지난 계절에 받아 들고는 세세히 읽지는 못하고, 눈으로만 두어 번 읽었다. 가을 문턱에 들어 청탁을 받고, 그 많은 시집 중에서 두 시집을 다시 꺼내 읽는다.
<김용락 ‘하염없이 낮은 지붕’ 시집 표지>
『하염없이 낮은 지붕』은 김용락 시인, 『누가 입을 데리고 갔다』는 박미란 시인이 펴냈다. 2017년 대구경북작가회의 30주년 행사에서 당시 지회장이었던 김용락 시인은 보수의 심장이라 불리는 대구에서 작가회의 회원이 되는 순간 이 지역과 다름(사회적⋅문화적)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현재까지 논란이 되고 있는 성주 사드 문제에 대해서도 지역 주민들과 함께 반대 투쟁을 해오며 지역과 역사적 현장에서 시와 삶의 궤적을 함께 하고 있는 시인이다. 현재는 서울 상암동 소재 (재)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박미란, ‘누가 입을 데리고 갔다’ 시집 표지>
반면 박미란 시인은 다소 다른 지점에 서 있다. 시인은 강원도 태백 황지에서 태어났으며, 계명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199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첫 시집을 등단 20년 만인 2014년에 펴냈다. 오랫동안 간호사로 근무하면서도 시에 대한 열정만큼은 놓지 않았다. 그리고 2019년 올해 봄, 두 번째 시집으로 독자를 만나고 있다. 두 시인에게 배우고 느끼는 바가 커서 짧게나마 이력을 소개한다. 한 사람은 수십 년 동안 지역문제와 역사 현장에서 치열하게 살아오고 있고, 또 한 사람은 현실적인 문제와 시인으로서의 삶을 진지하게 살아내고 있다. 박미란 시인의 경우 등단을 한 지 한참이나 지나, 첫 시집을 펴냈다는 이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20년 정도의 시간을 지나오면, 현실적인 문제에 밀려 포기하거나 아예 저 편으로 사라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는 20년의 시간을 견뎌냈고, 2019년 오늘 우리와 마주하고 있다. 이런 배경적 서술이 불필요하지 않냐 반문하는 이도 있겠지만, 예술가의 삶이 작품과 결코 동떨어져 있지 않다. 심지어 필자는 더 나가 삶의 태도와 작품이 가까울수록 훌륭한 예술가라고 생각한다. 예술가의 작품에는 그 자신의 예술 세계와 삶의 철학이 투영되기 마련이다. 물론 간혹 위선적인 자들도 있긴 하다. 어찌 되었든 이제 작품 속으로 들어가 보자.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북쪽으로 1500km 떨어진 러시아 접경
그래서 전기도 러시아 전기를 끌어다 쓴다는
절전한다고 오전 4시간을
예고 없이 정전을 해 사람을 놀라게 하는

(중략)

오브스주州의 주도 울란곰은
멀리 설산을 배경으로
동화 속의 집들처럼 빨강 파랑
낮은 지붕들로 작은 마을을 이루고 있다

저렇게 하염없이 지붕 낮은 집에는
분명 이 세상엣 가장 착한 사람들이
살 거라는 믿음을 주는 울란곰

(중략)

– 김용락 시, 「오브스주州 주도 울란곰」 중에서

김용락의 시는 늘 그의 삶 속에서, 그리고 그가 걷는 현장 속에서 길어 올린다. 이 시 또한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원장으로서 몽골 시골 마을에 작은 도서관을 지어주는 여정에 있다. 흡사 우리나라 1960~70년대 시골 마을을 읽고 있는 느낌마저 드는 것은 시골 출신인 그의 서정적 태생에 기인한 것은 아닐까. 차갑고 냉정한 현실을 목도하고도 비관하거나 낙담하기 보다는, 작고 여린 시선으로 이들의 하염없이 낮은 지붕을 어루만져주고 있다. 낡고 어두운 곳, 여리고 아픈 곳을 비추는 따뜻한 눈이야말로 진정 배워야 할 시인의 눈이다.

KBS 대구방송국 앞
참가자미 횟집에서
소주를 마시는 늦은 초여름 밤
난데없이 매미가 식당 방 안에 뛰어들었다
모두들 깜짝 놀라 매미를 쳐다보는데
“매미는 물지 않는다
다만 울 뿐이다”라고 이하석 선배 시인이
시적으로 말했다
그렇다
시인도 남을 거칠게 물지 않는다
다만 스스로가 슬퍼 깊게 울 뿐이다

– 김용락 시, 「매미」 전문

이하석 시인의 말을 가벼이 흘려버리지 않고, 기어코 시를 길어 올리는 시인의 감수성과 따듯한 시선에 다시 한 번 놀란다. 모두가 현실 속 매미를 어쩌지 못하고 있을 때, 한 시인이 던진 말이나 그것을 받아 적어 한 편의 시를 쓴 시인이나 모두 예민한 족속이긴 하다. 시인은 대개 여리고 여려서 남을 거칠게 물기 보다는 내내 제 홀로 속울음을 만들어 내는 족속이다. 밥을 먹다가도, 소주를 마시는 현실 속에서도 기어이 시인임을 자각하는 슬프고 아픈 족속. 시인의 눈은 역시나 약하고 여린 것에 머물러야 한다. 화려하고 주목 받는 곳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앞다퉈 뛰어 들고 있다. 외면 받고 어두운 곳에 정신적 똬리를 틀고, 정진하는 자들이 시인이 아닌가 싶다. 가을 초입에 알싸한 서정을 온 몸으로 들이킨 듯한 시이다.

반면 박미란의 서정은 결이 조금 다르다. 첫 시집을 지나 5년 만에 펴낸 두 번째 시집, 『누가 입을 데리고 갔다』를 보자.

동백은 집중하며 떨어진다
무엇이든 내리막이 중요하니까

물의 온도, 바람의 온도, 저 달의 온도

언젠가 두고 갈 것들이다

꽃보다 내가 먼저 시들 테지
뿌리가 얼기 전에, 하루가 절박하기 전에 숨을 불어 넣자

어디로 가고 있나
한 쌍의 남녀가 긴 망설임 끝에 헤어졌다

피부색은 각자 다른데 이별하는 방식은 모두 같아

온도를 재는 일과 그것을 지키는 일이 부디 꽃 밖에서도 이루어졌으면

– 박미란 시, 「동백」 전문

동백이 탁, 떨어질 때 사람들은 미처 듣지 못하겠지만 우주는 한 생의 이력을 크고도 고스란히 다 들었을 것이다. 누구나 한 때는 꽃이었고, 또 어느 한 때는 이별로 져야 한다. 그러니 이별의 시간이 오기 전에 치열하게 절박하게 살아내자고 하는 것이다. 시인이 20년 만에 시집을 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이 절박함일 것이다.
「동백」이라는 한 편의 시에서 삶의 자세를 배우고, 이별의 방식과 죽음을 대하는 태도마저 배우고 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서 시인의 세포는 분명, 일반인의 세포보다 더 미세한 나노(Nano)로 이루어져 있을 것이다.

모든 게 잘 보일 때가 있다

이른 새벽, 거기 매달렸던 사람의 얼굴에 핏기 가셨다 멀쩡한 정신일 수 없어 나무도 그 사람에게 보내는 걸까

울음은 혼자 우는 걸까

잎새의 마지막 떨림,
간신히 중심을 잡으려 했지만

나무가 잘려 나갔다

더 이상 힘들지 않도록 밑둥치를 감싸주었다 나무는 나무여서 그 자리에 있었던 게 아니었다

– 박미란 시, 「그 집 앞 나무」 전문

가을이다. 청춘의 계절을 지나 황혼으로 접어드는 나무가 있다고 치자. 사람이나 나무나 모두 나무라고 불러도 좋다. ‘모든 게 잘’ 보이는 때, 그것은 바로 죽음을 눈앞에 둔 때가 아닐까 싶다. 뿌리마저 위태로워 몸 하나도 지탱하지 못하는 때, 아기를 낳은 몸도, 생계를 책임졌던 무게도 종국에는 모두 허물어지거나 내려놓아야 한다. 묵묵히 계절을 이겨내고 겨우 밑둥치 하나 남아, 마지막 생을 담담히 보내는 때. ‘나무는 나무여서 그 자리에 있었던 게 아니었’듯 우리도 우리가 태어나서 태어난 게 아니다. 이른 새벽, 세상에 들어와 어느 황혼에 이르러 떠나야 하는 때가 바로 이 가을인 것이다.

김용락 시의 매미처럼 혼자 울면서, 간신히 중심 잡으려 마지막 떨림으로 세상을 내려놓은 그 어느 때를 읽는다. 이 가을에 나무와 같은 나를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