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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판타지 메이커스
패션과 예술展
글_강효연 누스페어 동시대미술연구소 대표
사진_대구미술관
<판타지 메이커스>, 판타지를 만드는 사람들, 전시명이 말하듯 전시장 내, 대부분의 작품들은 작가들만의 표현방법(독특한 의상의 사용)으로 환상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래서 얼핏 화려하고 꿈같은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겠으나 필자에겐 너무도 심리적이고 감성적인 성향의 작품들로 채워져 있음에 흥미로웠다.
<판타지 메이커스>전 대구미술관 어미홀
판타지의 이면, 내면의 세계
작가 김주연은 지금까지 옷, 의자, 신문 등 일상 속 사물에서 식물이 자라는 표현방식으로 인간 내면의 성숙의 과정을 보여주는 ‘이숙(異熟)의 공간’1)을 설치미술로 제시해 왔다. 특히 이번 전시에 소개된 「존재의 가벼움」 사진연작은 이전 작품의 연장선으로 의상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좀 더 적극적으로 ‘이숙’의 공간을 연출한다. 2000년대 초, 많은 작가들은 일상에 의미를 담아 작품으로 표현했고, 김주연은 그녀의 여성성이 반영된 일상의 대표적인 사물들을 식물과 접목해 하이브리드한 작품들을 소개해 왔다.
김주연 「존재의 가벼움III (The Lightness of beingIII)」 Pigmentprint 108x144cm 2016
일상의 공간은 아주 평범한 장소이지만 한국 여성에게 일상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노동의 공간이며 인내를 요하는 특별한 곳이기도 하다. 결혼할 때는 화려한 순백의 드레스를 입지만 이후에 입게 되는 평범한 옷들을 통해 더욱 본인의 존재를 확인하게 된다. 그러나 그 옷에서 풀, 식물이 자라고 그 형태가 변화될 때에 본래의 기능은 상실하게 된다. 세속적인 삶과 모든 세속적인 추구, 물질의 무의미함으로 대변되는 의상이 식물의 개입으로 생(生)과 사(死)의 시간차를 좀 더 극명하게 드러내게 된다. 이는 사물의 수명보다 식물을 통한 생과 사의 시간차를 좀 더 단축시킴으로써 만들어진 바니타스(Vanitas)를 의미한다. 삶과 죽음, 생성과 소멸, 사랑과 이별로 얽히고설킨 인생사가 눈앞에 펼쳐질 때 밀려오는 두려움과 허망함을 작가는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단순히 재현의 방식에서 벗어나 주어진 환경에서 순응하면서도 자연의 힘, 싹을 틔우는 식물의 번식력 그리고 자연스럽게 소멸해가는 작업과정은 판타지로 가장된 인간 내면의 세계를 아주 진지하게 제시하고 있음이다.
판타지를 가장한 페르소나2)
대영제국, 유수한 전통과 그 전통이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는 나라 영국, 나는 그래서 영국인이 되려 한다. 마치 어린아이가 엄마의 옷을 입고, 엄마의 화장을 하고, “엄마가 되기 위한 그 시도”를 하듯이 나는 그렇게 치장/변장을 한다.3) _배찬효
배찬효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은 죄 (Existing in Costume – Crime of Flying in the sky with bamboo)」 C-print 153x102cm 2016
영국 유학시절, 배찬효는 그 곳에서 문화와 언어의 장벽을 느끼고 스스로 이방인임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를 극본하기 위한 작업으로 ‘영국 귀부인 되기’식의 사진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작가는 중세 여인의 모습을 하고, 얼굴엔 하얀 분을 바르고 귀부인처럼 당당하게 사진 속 중앙에 서 있다. 허나 사진 속 주인공은 여성이 아닌 동양남성이다. 골격이 굵은 동양남성이 서양여인의 옷을 입고 있음에 어색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사진 속 상황을 특별하게 만든다. 그리고 감추지 않고 노골적으로 드러난 누렇고 커다란 동양 남자의 손, 감출 수 없는 그만의 특징이 두드러진다. 뭐랄까! 한편으론 사랑하는 엄마의 모습을 담고 싶어 하는 양아들의 모습처럼, 그러나 그렇게 될 수 없는 현실인 것 같아 애틋하다. 다른 한편으론 동양과 서양이란 문화의 차이 그리고 사진 속 실재와 허구가 공존하는 이미지를 통해 작가가 살아오면서 겪은 소외와 편견이라는 현실을 직시하도록 이끈다. 영국인들이나 대중들에게 알리는 작가만의 위트있는 퍼포먼스를 통해 가상적 현실의 재현 그리고 그의 심리적 갈등을 해소하는 식의 이중적 심리가 엿보인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배찬효의 또 다른 작품들(「의상 속 존재 – 신데렐라」, 「의상 속 존재 – 잠자는 숲속의 미녀」, 「의상 속 존재 – 라푼젤」, 「의상 속 존재 – 미녀와 야수」 등)을 보면 하나같이 어려움에 딛고 행복을 찾아가는 동화들을 주제로 하고 있다. 이곳에서 작가는 동화시리즈 속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 마법이 풀리길 기대하는 혹은 행복이 오길 기다리는 찰나를 연출하고 있다. 동화 속 ‘여주인공 되어보기’는 앞서 소개한 ‘영국 귀부인 되기’보다 더 약자와 강자, 선과 악에 이르는 사회구조와 현상을 심화시켰다.

‘영국 귀부인 되기’에서는 타국에서 경험한 인종적, 문화적 차이를 통해 알게 된 본인의 정체성, 자아 찾기의 시도했다면 최근작인 「의상 속 존재 – 마녀사냥」, 「의상 속 존재 –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은 죄」 등은 타자의 정체성을 소개한다. 서양에서 등장하는 마녀에 자신을 대입시키면서 사회문화적 인식의 틀을 비꼬는 식이다. 마녀라는 주제는 합리적인 서구 문명의 위선으로 대변되는, 다시 말해 자신과는 아주 많이 다른 타자를 대하는 서구의 비합리적인 태도를 보여주기에는 아주 적절한 대상이었다.

배찬효에게 의상은 무엇일까? 작가에게 의상은 한 국가의 전통과 문화, 신분 등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그 시대를 대변하고 있다고 파악했다. 그래서 모든 제목에 공통적으로 명기되어 있는 「의상 속 존재(Existing in Costume) …」처럼 그의 의상은 의상 속에 숨어있는 (눈에는 보이지 않는) 실체가 (현실에서는) 존재하고 있음을 내포하고 있다. 이렇듯 의상은 작가 본인의 복합적인 생각을 예술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다. 배찬효의 작품을 보노라면 동화 속 이야기, 영화 속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판타지의 세계를 제공한다. 허나 이는 판타지로 가장된 현실에 존재하는 다양한 페르소나들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옷이라는 욕망, 판타지 만들기
프로이트는 『햄릿』에 등장하는 폴로니우스의 대사를 빌어와 판타지를 ‘진리라는 잉어를 낚아 올리는 허구적인 미끼'(SE 23, 262)로 설명한다. 판타지는 무엇보다도 허구적인 ‘구성물’이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소망들이 성취되는 장소이자 양식(예술). 이것이 허구인 이유는 판타지 속 사건들이 객관적 사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4)
초대된 작가들 중에서 가장 허구적이고 판타지적인 작품을 만들어낸 이들로 조선희, 배준성, 이선규를 떠올릴 수 있겠다. 이들에게 옷은 무의식적 욕망을 표출하기 위한 오브제이자 심리적 대상이다. 이미 고충환이 지적한 것처럼 옷은 ‘페티시(fetish)’로 집착의 대상이자 숭배의 대상이 되어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방(명품백)은 여성의 대표적인 사치품이자 욕망의 대상이 되었다. 조선희의 「가방에 대한 100가지 단상」시리즈5)에서와 같이 가방이란 오브제는 모델과 동등한 위치에 놓여 ‘인격을 사물화(상품화)하려는 자본주의의 기획이 맞물린 욕망의 메커니즘’6)을 제시한다.
조선희 「가방에 대한 100가지 단상」시리즈 전시풍경
배준성의 「화가의 옷」시리즈에 등장하는 화려한 여인은 관람자가 보는 위치에 따라 누드로 변화되는 작품이다. 남성작가의 은밀한 욕망은 그림 속 여인의 옷을 벗기기도 하고 입히기도 하면서 보는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관음증(voyeurism)을 유도한다. 이어, 무협지에 등장하는 신이란 캐릭터를 형상화한 이선규의 작업 또한 초현실주의적 페티시, 바로 숭배의 대상으로써의 물신의 의미가 담긴 욕망으로 대치되어진다.
판타지 메이커스
미술관에 들어서면 바로 접하게 되는 어미홀에서 프랑스 출신의 피에르 파브르Pier Fabre의 설치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평소 바람이라는 자연의 힘을 이용한 조형물을 소개하는데 이번에는 모터의 동력을 이용해 수많은 선이 움직이는 환상적인 공간을 연출했다. 그러나 패션과 미술의 만남으로 연결하기엔 피상적으로 느껴지나 먼 타국에서 온 작가는 패션의 도시인 대구의 특징을 살려 대구에서 생산된 운동화 끈을 활용해 작품으로 구현했다. 그리고 어미홀을 가득 채우는 그의 작품은 관객의 참여와 동력의 힘으로 출렁이는 선들을 감상하게 한다. 무대의상, 영화의상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정경희는 무대에서 선보인 왕의 다양한 도포들과 광섬유를 이용한 의상을 무대에 설치했다. 이어, 김정혜의 텐트처럼 보이는 구조물은 스커트 형태를 구조화한 작업으로 관람객이 직접 참여하는 방식의 설치작품이다.
피에르 파브르Pier Fabre 「색 울림 Vibrant Colors」 Mixed media 4000(L)x1400(W)x1800(H)cm 2017
옷 또는 의복, 의상은 본래 사람이 몸 위에 입는 천이나 가죽 등으로 된 물건이다. 추위와 더위를 막고 몸을 보호하는 기능을 하며, 대부분 직물이나 가죽으로 만든다. 때론, 방한복, 잠수복, 방탄복, 갑옷 등과 같이 필요에 따라 다양한 기능을 갖춘 옷을 입기도 한다. 사회에 따라 성별, 종교, 관습, 신분에 따라 입는 옷이 구분되며, 옷은 문화적 상징의 기능을 갖는다. 현대에 와서 옷은 문화적 이유로 소비되는 상품의 성격을 지니게 되었고, 개성을 표현하기 위한 패션 상품으로 옷을 구입한다.

김정혜 「제 때의 한 땀 A Stitch in Time」Mixed media (120 x 100m x (h)150cm) x 2box 2017
그러나 예술가에게 옷은 옷의 기본적인 기능과는 다른 어떤 의미를 가진다. 환상을 가장한 내면의 세계를 표출되기도 하고, 옷이라는 매개체로 나를 표현하는 동시에 타인과 자신을 연결시키는 페르소나의 역할을 담당하기도 한다. 패션과 미술의 만남은 예술성과 대중성이 가미된 외연의 확장을 기대할 수도 있겠지만 이 전시의 묘미는 ‘옷’이라는 테마를 통해 미술과 패션의 미묘한 차이를 발견하는 것이 아닐까싶다.
특히, <판타지 메이커스, 패션과 예술>이란 제목을 통해 판타지를 추구하는 예술가들의 다양한 시선은 대중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두 장르의 출발, 즉 서로의 목적이 다르기에 전달하고자하는 내용이 다름을 비교하면서 관람한다면 아주 흥미로운 감상이 될 것이다.
  • 1)‘다른 형태로 성숙함’을 뜻하는 불교 용어
  • 2)페르소나(persona)는 심리학에서 타인에게 비치는 외적 성격을 나타내는 용어이다. 원래 페르소나는 그리스의 고대극에서 배우들이 쓰던 가면을 일컫는데 심리학적인 용어로 심리학자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이 만든 이론에 쓰이게 되는데 그는 인간은 천 개의 페르소나(가면)를 지니고 있어서 상황에 따라 적절한 페르소나를 쓰고 관계를 이루어 간다고 한다. 페르소나를 통해 개인은 생활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반영할 수 있고 자기 주변 세계와 상호관계를 성립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페르소나 안에서 자신의 고유한 심리구조와 사회적 요구 간의 타협점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에 개인이 사회적 요구에 적응할 수 있게 해 주는 매개체의 역할을 하게 된다. _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페르소나_(심리학)
  • 3)네오룩 2008년 11월 트렁크갤러리 배찬효 『Existing in Costume』展
    https://neolook.com/archives/20081106a
  • 4)[네이버 지식백과] 판타지 [Fantasy] (문학비평용어사전, 2006. 1. 30., 국학자료원)
  • 5)쟝 사를 드 까스텔바쟉의 100개의 가방 시리즈 중 7점이 출품됨
  • 6)『고충환 판타지 메이커스 패션과 예술』展 도록에 들어가는 비평문: 「패션과 패션, 정념과 양식이 열어놓는 판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