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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프리카의 문화마케팅, 새로운 장르 공공미술이 가능한가1)
이민정 / 큐레이터, 미술사

대프리카. 처음 접했던 순간 부연 설명도 필요 없이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던 이 기발한 단어가 이제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널리 사용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SNS를 중심으로 지나치게 더운 여름철의 대구를 아프리카 날씨에 빗댄 ‘대프리카(대구와 아프리카의 합성어)’라는 신조어가 확산되기 시작하더니, 2014년에는 본격적으로 신문과 뉴스에까지 등장하였고, 2016년 국립국어원의 개방형 사전인 ‘우리말샘’에 등재되기까지 했다. 대구의 폭염을 함축하면서 입에 착착 감기는 기가 막힌 조어가 아닐 수 없다.

불쾌하고 짜증을 유발하는 숨 막히는 찜통더위의 대명사 대구가 대프리카라는 다소 희화화된 별칭으로 더위를 극복하고 즐기는 유쾌한 도시로 이미지 메이킹되고 있다. ‘고담대구’로 일컬어졌던 과거를 생각하면 대구는 ‘대프리카’라는 명칭으로 도시 이미지 재고에 성공한듯하다. 이미 2014년부터 약 2년간의 언론보도와 대구시 관련 SNS 및 행정정보 자료 등 총 41만여 건의 빅데이터 분석결과 ‘더위’와 관련한 단어가 ‘탈출’, ‘경보’에서 ‘대프리카’, ‘치맥페스티벌’, ‘건강’ 등의 긍정적 이미지로 순화된 것이 확인된바 대구의 더위는 적극적인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2013년 시작되어 매해 7월 폭염 속에 치러지는’치맥페스티벌’은 단순히 먹고 마시는 행사에서 나아가 문화 경쟁력을 높이는 성공적인 축제로 자리매김하고 있고, 현대백화점 대구점은 지역밀착형 마케팅의 일환으로 폭염을 주제로 ‘대프리카 캠페인’을 5년째 이어오고 있다.

도1) 2017년 현대백화점 대구점에 설치된 달걀프라이, 녹아내린 라바콘 조형물.
비전공자로서 감히 마케팅을 논할 수는 없으나 언급한 두 프로젝트의 성공에는 SNS를 통한 마케팅이 뒷받침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특히 현대백화점 대구점이 2015년부터 진행한 ‘대프리카 캠페인’은 디자이너와의 협업으로 “대구의 무더위를 뜨거운 열정, 에너지라는 메시지로 전환한 디자인”의 티셔츠를 판매하며 시작되었고, 지금의 이벤트 형태는 2017년부터이다. 대구의 불볕더위에 라바콘이 녹은 사진, 대구의 가정집에서 바나나가 열린 사진(그러나 바나나와 유사한 모양의 파초인 것으로 밝혀졌다), 자동차 안에 둔 날달걀이 몇 시간 뒤 삶은 달걀이 되어버렸다는 사진 등 SNS에서 유행하던 이미지가 실제로 백화점 앞 광장과 외벽 등에 설치되면서 신선하고 재치 있는 아이디어의 조형물이 화제가 되었다. 2018년에는 손영복 작가의 “더위에 축 늘어지거나 달라붙는 현상을 극적으로 표현하는” 녹아내린 슬리퍼와 더위에 익은 달걀 프라이가 든 프라이팬이 선보였고,2) 2019년에는 녹아내리는 핸드백과 아이스크림 등의 작품을 설치하였다.3) 동시에 백화점 내 갤러리 H와 하늘정원에서는 STUDIO 1750(김영현, 손진희)의 전시가 진행되었으며, 특히 하늘정원에 설치된 「미로 파크-대프리카 정원」4)에서 관람객은 작품을 통한 놀이를 체험하며 불볕더위에도 작품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찍고, 해시태그(#)를 붙여 SNS에 업로드하는 이벤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이러한 해시태그 마케팅의 성공으로 현대백화점은 여름 내내 대구의’핫플레이스’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상 이것이 공공미술을 활용한 백화점의 문화마케팅 전략이라 할지라도 SNS에 일상을 기록하고 새로운 트렌드와 정보를 공유하는 SNS 문화가 관람객의 적극적인 작품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도2) 손영복,
작품의 훼손 방지와 원작자의 창작의도, 저작권의 보호를 위해 사진 촬영을 엄격히 금지했던 미술관과 박물관이 촬영을 허용하기 시작했고, 나아가 포토존을 설치하여 관람객의 촬영을 적극 권장하며 이를 홍보 수단으로 삼고 있다.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서 팝스타 비욘세와 제이지가 뮤직비디오를 촬영한 이후,5) 2018년 한 해 동안 처음으로 관람객 1,000만 명을 돌파하며 역대 최다 관람기록을 세웠다는 소식과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17점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Jay-Z and Beyonce at the Louvre’투어의 진행은 변화하는 미술관 마케팅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제는 미술관도 전통적인 관람의 공간에서 공유하고 즐기고 소통하는 장소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새로운 장르의 공공미술이 아닐까.
도3) 손영복,
도4) STUDIO 1750, <미로 파크-대프리카 정원>
일반적인 의미의 공공미술은 대중에게 공개된 장소에 설치 혹은 전시되어 누구나 감상하고 일상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미술을 뜻하지만, 2) 그 의미도 급속하게 바뀌고 있다. 서구의 공공미술은 시민의식의 성장과 궤를 같이하여 60년대 후반’건축 속의 미술’에서 출발하여 ‘공공장소에서의 미술’을 거쳐 80년대 후반’공공 공간으로서의 미술’ 내지 ‘도시계획 속의 미술’을 지나’공공적 관심사를 지닌 미술’ 혹은 ‘새로운 장르 공공미술(New Genre Public Art)’3) 이 본격화되는 과정을 겪었다. 최근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공공미술의 변모 양상은 이러한 진화의 경과를 압축적으로 반복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4) 그러나 동시대 한국의 공공미술에 대한 많은 재정적 지원과 학술논문, 관련 프로젝트, 보고서, 세미나 등의 방대한 자료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담론이나 개념이 정립되지는 않은듯하다. 미술사적 이해를 차치하고서라도 공공미술이 익숙하면서도 낯설고 막연한 이유가 한국 사회가 ‘공공성’ 자체에 대한 이해도가 낮고, 대다수의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행정적·제도적 차원에서 진행되기 때문일 것이다. 공공미술을 유명 외국 작가의 거대한 조각 작품, 기념비적 동상, 혹은 ‘건축물 미술작품 제도’ 일명 ‘퍼센트법’으로 의무화된 공원, 광장, 도로 등에 설치된 조형물, 벽화 등으로 떠올리게 되는 현실에서 오늘날 한국의 공공미술은 ‘건축 속의 미술’또는 ‘공공장소에서의 미술’에 머물러있는 듯하다. 점차 공공미술 저변 확대를 꾀하는 움직임이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등장하고, 공공미술의 핵심이 참여와 소통이라는 개념과 함께 확산된 담론이야말로 새로운 장르의 공공미술을 정의한다 할 수 있다.
도5) 루브르 박물관의 대표 소장품 ‘모나리자’ 앞에 서 있는 비욘세와 제이지.
2018년 대프리카 캠페인에서 공공미술에 대한 인식을 확인할 수 있는 사건이 발생했다. 대프리카 조형물이 통행에 방해가 되며, 더위를 부추긴다는 민원이 접수되면서 관할 구청인 중구청이 사전 협의와 신고 없이 조형물이 설치됐고, 건축법에서 정한 ‘공개공지’5)를 위반하였으므로 철거해야 한다는 공문을 백화점 측에 발송한 것이다. 이에 백화점은 관련 법령을 검토하지 못한 점을 인정하고 당초 일정보다 앞당겨 작품을 철거하였고, 올해는 공개공지 사용에 대한 사전 승인을 받은 뒤 작품을 설치하였다. 이 기사를 접하고 ‘서울로 7017’에 설치되었던 황지해 작가의 「슈즈트리」
에 대한 논쟁이 떠올랐다. 버려진 신발 3만 켤레를 재료로 만든 작품에 시민들의 반응은 극명히 엇갈려 각종 미디어와 SNS상에서 갑론을박이 오고갔다. 미술계에서 작품에 대한 논쟁이야 다반사지만, 일반인들 사이에서 공공미술에 대한 논쟁이 이처럼 활발했던 적은 없었던 듯했다. 참여와 개입은 동시대 공공미술의 주요 화두이다. 공공미술이 모든 이를 만족시킬 수는 없지만, 더위를 부추기며 보행에 지장을 준다는 민원이 제기되어 철거를 통보받았을 때, (물론 내부적인 논의가 있었을 것이고 결국 작품은 철거되었겠지만) 당초 유머러스한 발상으로 시작된 작품이었던 만큼 당장 철거하는 대신 정말 대프리카 조형물이 더위를 부추기는지, 실재로 통행에 불편을 야기하는지에 대한 단편적인 의견 개진일지라도 이에 대한 논쟁을 SNS 마케팅으로 활용하며 장난스런 도발을 해봤으면 어땠을까, 이 또한 공공미술을 즐기는 방법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도6) 황지해 <슈즈트리>
“아티스트와 콜라보레이션, 전시기획, 공공미술 등 다양한 아트 프로젝트를 통하여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고 예술을 후원합니다. 기업의 이미지와 정체성에 맞는 예술 협업과 전략을 제시합니다.”
유명 아트마케팅사의 소개문구이다. 오늘날 문화는 중요한 마케팅 수단이 되었다. 대프리카 이미지를 활용한 마케팅은 기업과 지역사회, 예술가의 협업으로 즐거움을 주고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은 것만으로도 큰 성과이지만, 다양한 문화마케팅으로 지속가능한 형태의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이어지기를 기대해본다. 대구의 가치를 높이는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 1)작가 수잔 레이시(Suzanne Lacy)의 『새로운 장르 공공미술:지형그리기(Mapping the Terrain: New Genre Public Art)』를 인용함.
  • 2)공공미술(Public Art)이란 용어는 영국의 미술행정가 존 윌렛(John Willett)의 1967년 저서 『도시 속의 미술(Art in a City)』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 3)수잔 레이시는 자신의 저서 『새로운 장르 공공미술:지형그리기』를 통해 공공미술은 폭넓고 다양한 관객과 함께, 그들의 삶과 직접 관계가 있는 쟁점에 관하여 대화하고 소통하기 위하여 전통적 또는 비전통적인 매체를 사용하는 모든 시각예술이자 ‘사회적 개입’이라고 정의하면서, ‘새로운 장르 공공미술’이라는 개념을 제시하였다.
  • 4)수잔 레이시, 『새로운 장르 공공미술:지형그리기』, 이영욱ㆍ김인규 역, 문화과학사, 2010, p.19.
  • 5)공개공지(Open Space for Public Purposes)란 쾌적한 지역 환경을 위해 사적인 대지 안에 조성토록 강제하는, 일반 대중에게 상시 개방되는 공적 공간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