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적으로는 농경시대라고 해도 괜찮을 산업화 이전에는 대구는 능금의 도시였다. 따라서 당시엔 대구하면 ‘능금’을 떠올렸다. 세월이 흐르고 기후가 변하면서 능금은 북부지역으로 그 주 생산지가 바뀌었다. 또 산업화 시대 대구는 섬유도시였다. 한때는 ‘밀라노 프로젝트’라고 하면서 이탈리아 밀라노와 결연을 맺고 패션 도시로 자리매김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브랜딩 작업에 성공하지 못했다. 대구를 섬유나 패션도시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산업 환경이 바뀌면서 대구는 자동차 제조 공장은 없고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도시가 되었다. 이런 변화는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 자유 경제의 질서에 따라 형성된 것이다. 이후 최근엔 대구가, 메디시티, 물산업의 도시, 로봇의 도시 등으로 브랜딩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런 계획은 시대 흐름에 따라 방향을 바로잡은 것으로 보인다. 과거의 농업 생산이나 제조업 등으로 미래 사회에 적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의료도시산업과 뇌 연구원, 물 산업, 로봇 산업 등은 시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일들이다.
문화 쪽으로 눈길을 돌려도 ‘대구’라고 하면 금방 떠오르는 문화가 무엇인가? 얼른 답하기가 쉽지 않다. 문화적 관점에서도 정치적, 산업적 측면에서 살펴본 것과 크게 다르지 않게 아쉬운 점이 많다. 문화의 핵이라고 할 수 있는 출판문화가 대구에서 일찍 싹텄지만 그것을 문화적으로 계승하지 못했다. “조선시대 인쇄술 발전과 지식계층 확대의 영향으로 지식 전파 매체로서 책의 중요성과 영향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컸고, 이러한 출판문화의 한 획을 담당한 곳이 지방감영”이었는데, (정재훈 외,『영영장판과 영남의 출판문화』, 경북대학교 출판부, 2017.) 경상감영에 소장되어있던 ‘영영장판(嶺營藏版)’과 달판 방각본 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그 유산을 현재로 이어오지 못했다.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하며 문학 활동을 했던 이상화 이육사 시인의 저항 정신, 소설가 현진건의 반일 정신 등은 대구문학의 특성을 저항 문학으로 자리매김할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이지만 그 또한 살리지 못했다. 그보다 6.25 전쟁 기 많은 문인들과 예술인들의 피난지였던 대구는 전쟁 기간 중 문화 예술의 수도였다. 그래서 한국 근대 문화 예술의 뿌리는 대구에 닿아 있다. 그것이 근대 예술의 출발 시기여서 영향이 컸다. 앞서 살핀 대로 문학이 그렇고, 음악이 그렇고 미술을 비롯한 시각 예술 분야, 무용, 연극, 영화, 다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느 분야 하나 그것을 계승하지 못하고 서울로 다 빼앗겼다. 정치가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문화도 서울 중심이다. 많은 사람이 서울에 살아서 서울 중심이 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문화는 사람의 수가 문제가 아니다. 그 문화의 특성을 잘 살려내고 전통을 계승하며 창조적으로 이어갈 수 있는 문화예술인들이 앞장서고 그런 문화를 즐기는 사람이 많은 지역이 그 분야의 중심 도시가 되어야 한다. 모든 예술 영역이 서울 중심이 되는 것은 국가 균형 발전이란 측면에서 아주 바람직하지 않다.
이제 대구는 음악이 문화 분야의 브랜드로 성숙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먼저 피아노가 들어온 도시가 대구이고, 6.25 전쟁 시 외국 언론이 폐허 속에서도 바흐의 음악이 흐르는 도시로 묘사했으며,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클래식 음악 감상실 ‘녹향’ 이 문을 연 곳도 대구다. 이 사실 만으로도 음악 창의 도시 선정의 이유로 부족하지 않다. 뿐만 아니라 축제의 도시로 불릴 만큼 많은 축제가 열리고 있는데, 음악 관련 축제만 해도, 대구 국제오페라 축제, 대구 뮤지컬 페스티발, 대구포크페스티발, 대구 국제 재즈 축제, 월드오케스트라 축제, 달성군이 주최하는 피아노 100대 콘서트 등 어느 도시에서도 감히 넘보지 못할 만큼 특색 있는 레퍼토리가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다. 이른바 브랜딩 되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음악 창의 도시가 되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을 나름대로 짚어보면, 무엇보다도 대구시가 창의도시 선정 후 밝힌 바대로 ‘음악 창의 센터’를 설립해 가입 도시 간 음악 산업 육성과 관련한 지식을 공유하고, 전문 인력 및 음악 자산을 교류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 센터에서 대구가 음악의 도시라고 하는 이미지를 각인시킬 수 있는 작업들을 추진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이미 있는 공연장들을 활용하여 상설 공연이 이루어져 대구에 가면 언제라도 훌륭한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국내외에 홍보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 창의를 집중시켜서 브랜딩 해야 한다.
대구를 음악으로 브랜딩하기 위해서는 음악 관련 축제뿐 아니라 대구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축제에 음악 콘텐츠가 들어가고 대구의 대표 축제라고 하는 컬러풀 축제에는 반드시 음악의 퍼레이드화를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대구하면 음악이 떠오르도록 해야 하는데 대구를 대표하는 축제에 음악이 없어서는 곤란한 일 아닌가. 관악대가 있는 각급 학교, 군이나 경찰 등 여러 유관 기관과의 협의와 유대 강화를 통해 초청 연주 또는 경연, 각종 문화센터 등의 시민 동아리 참여도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영국 에딘버러 국제 축제의 밀리터리 타투(Military Tattoo)를 참고해보면 분명 얻을 것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