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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가치를 높일 문화 브랜드는?
문무학 / 문학평론가
대구는 어떤 도시인가? 그걸 어찌 한 마디로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럼 ‘대구’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이런 질문들을 늘어놓는다면 대구 이외 지역의 사람들이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답할 수 있는 게 많다. 먼저 그 기록물이 201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 된 일제강점기 국채보상운동을 통한 자주정신, 2018년에야 겨우 국가기념일이 된 2.28학생운동을 통한 민주정신은 반드시 짚어야 할 일이다. 그래서 대구는 민주화의 도시라고 불릴 수 있는 자격이 충분히 있는 도시다. 그런데 대구는 그 이름을 거양하지 못했다.

산업적으로는 농경시대라고 해도 괜찮을 산업화 이전에는 대구는 능금의 도시였다. 따라서 당시엔 대구하면 ‘능금’을 떠올렸다. 세월이 흐르고 기후가 변하면서 능금은 북부지역으로 그 주 생산지가 바뀌었다. 또 산업화 시대 대구는 섬유도시였다. 한때는 ‘밀라노 프로젝트’라고 하면서 이탈리아 밀라노와 결연을 맺고 패션 도시로 자리매김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브랜딩 작업에 성공하지 못했다. 대구를 섬유나 패션도시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산업 환경이 바뀌면서 대구는 자동차 제조 공장은 없고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도시가 되었다. 이런 변화는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 자유 경제의 질서에 따라 형성된 것이다. 이후 최근엔 대구가, 메디시티, 물산업의 도시, 로봇의 도시 등으로 브랜딩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런 계획은 시대 흐름에 따라 방향을 바로잡은 것으로 보인다. 과거의 농업 생산이나 제조업 등으로 미래 사회에 적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의료도시산업과 뇌 연구원, 물 산업, 로봇 산업 등은 시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일들이다.

문화 쪽으로 눈길을 돌려도 ‘대구’라고 하면 금방 떠오르는 문화가 무엇인가? 얼른 답하기가 쉽지 않다. 문화적 관점에서도 정치적, 산업적 측면에서 살펴본 것과 크게 다르지 않게 아쉬운 점이 많다. 문화의 핵이라고 할 수 있는 출판문화가 대구에서 일찍 싹텄지만 그것을 문화적으로 계승하지 못했다. “조선시대 인쇄술 발전과 지식계층 확대의 영향으로 지식 전파 매체로서 책의 중요성과 영향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컸고, 이러한 출판문화의 한 획을 담당한 곳이 지방감영”이었는데, (정재훈 외,『영영장판과 영남의 출판문화』, 경북대학교 출판부, 2017.) 경상감영에 소장되어있던 ‘영영장판(嶺營藏版)’과 달판 방각본 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그 유산을 현재로 이어오지 못했다.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하며 문학 활동을 했던 이상화 이육사 시인의 저항 정신, 소설가 현진건의 반일 정신 등은 대구문학의 특성을 저항 문학으로 자리매김할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이지만 그 또한 살리지 못했다. 그보다 6.25 전쟁 기 많은 문인들과 예술인들의 피난지였던 대구는 전쟁 기간 중 문화 예술의 수도였다. 그래서 한국 근대 문화 예술의 뿌리는 대구에 닿아 있다. 그것이 근대 예술의 출발 시기여서 영향이 컸다. 앞서 살핀 대로 문학이 그렇고, 음악이 그렇고 미술을 비롯한 시각 예술 분야, 무용, 연극, 영화, 다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느 분야 하나 그것을 계승하지 못하고 서울로 다 빼앗겼다. 정치가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문화도 서울 중심이다. 많은 사람이 서울에 살아서 서울 중심이 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문화는 사람의 수가 문제가 아니다. 그 문화의 특성을 잘 살려내고 전통을 계승하며 창조적으로 이어갈 수 있는 문화예술인들이 앞장서고 그런 문화를 즐기는 사람이 많은 지역이 그 분야의 중심 도시가 되어야 한다. 모든 예술 영역이 서울 중심이 되는 것은 국가 균형 발전이란 측면에서 아주 바람직하지 않다.

이제 대구는 음악이 문화 분야의 브랜드로 성숙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먼저 피아노가 들어온 도시가 대구이고, 6.25 전쟁 시 외국 언론이 폐허 속에서도 바흐의 음악이 흐르는 도시로 묘사했으며,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클래식 음악 감상실 ‘녹향’ 이 문을 연 곳도 대구다. 이 사실 만으로도 음악 창의 도시 선정의 이유로 부족하지 않다. 뿐만 아니라 축제의 도시로 불릴 만큼 많은 축제가 열리고 있는데, 음악 관련 축제만 해도, 대구 국제오페라 축제, 대구 뮤지컬 페스티발, 대구포크페스티발, 대구 국제 재즈 축제, 월드오케스트라 축제, 달성군이 주최하는 피아노 100대 콘서트 등 어느 도시에서도 감히 넘보지 못할 만큼 특색 있는 레퍼토리가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다. 이른바 브랜딩 되고 있는 것이다.

대구의 문화 브랜드로 음악이 떠오르기까지의 화룡점정은 대구가 유네스코 지정 음악 창의 도시가 된 것이다. 유네스코 창의 도시 선정은 그리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다. 그걸 대구가 다 갖추었다는 말이다. 다양한 음악 장르의 활동과 음악 기반 시설과 관련 대학 및 인구가 많은 것도 창의 도시 선정의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오페라 하우스가 있는 도시, 거대한 야외 음악당이 있는 도시, 콘서트 전문 하우스가 있는 대구, 음악적 기반이 이만큼 단단한 도시를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출처. 유네스코창의도시 홈페이지
여기까지 오는 데도 많은 전문인들의 노력이 있었다. 그렇지만 창의 도시로 선정되는 것이 끝이 아니라 대구를 음악으로 브랜딩 하는 일의 진정한 시작은 지금부터다.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런데 2017년 10월 31일 음악 창의 도시로 선정된 이후, 무엇을 하고 있는가가 눈에 잘 뜨이지 않는다. 선정 후 창의 도시의 관계자들을 초청 포럼을 하고, ‘2021년 국제대중음악연구협회 국제학술대회(IASPM)’ 를 유치하는 성과를 올리긴 했지만, 대구의 음악을 문화 브랜드로 잡아 도시 이미지를 제고시킬 창의적인 일의 착수가 그리 활발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직 평가할 수 있는 시점이 아니지만 시작이 없으면 평가할 것도 없기 때문에 지레 걱정이 된다.

진정한 음악 창의 도시가 되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을 나름대로 짚어보면, 무엇보다도 대구시가 창의도시 선정 후 밝힌 바대로 ‘음악 창의 센터’를 설립해 가입 도시 간 음악 산업 육성과 관련한 지식을 공유하고, 전문 인력 및 음악 자산을 교류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 센터에서 대구가 음악의 도시라고 하는 이미지를 각인시킬 수 있는 작업들을 추진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이미 있는 공연장들을 활용하여 상설 공연이 이루어져 대구에 가면 언제라도 훌륭한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국내외에 홍보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 창의를 집중시켜서 브랜딩 해야 한다.

대구를 음악으로 브랜딩하기 위해서는 음악 관련 축제뿐 아니라 대구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축제에 음악 콘텐츠가 들어가고 대구의 대표 축제라고 하는 컬러풀 축제에는 반드시 음악의 퍼레이드화를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대구하면 음악이 떠오르도록 해야 하는데 대구를 대표하는 축제에 음악이 없어서는 곤란한 일 아닌가. 관악대가 있는 각급 학교, 군이나 경찰 등 여러 유관 기관과의 협의와 유대 강화를 통해 초청 연주 또는 경연, 각종 문화센터 등의 시민 동아리 참여도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영국 에딘버러 국제 축제의 밀리터리 타투(Military Tattoo)를 참고해보면 분명 얻을 것이 있을 것이다.

경계해야 할 것은 대구 예술에서 음악만이라는 생각에 빠지면 안 된다. 집중하긴 하되 대구 예술의 근본적인 문제는 모든 예술 문화의 서울 집중에서 벗어나는 일과, 지역 예술계의 균형을 찾는 일이 중요하다는 사실이 간과되면 안 된다. 음악 창의 도시를 앞세우기는 하지만 모든 장르의 예술 활동이 균형을 이룰 수 있어야 한다. 편식이 몸에 좋지 않듯이 한 도시의 문화가 일방적으로 편향되는 것은 도시의 건강한 성장에 결코 바람직한 일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음악 창의 도시로서의 대구가 할 일이 참으로 많겠지만, 그 초점은 대구와 대구의 음악인에 가 있어야 한다. 대구와 대구 시민이 간과되는 창의 도시는 창의라고 보기가 어렵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