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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공감 – 버스킹
오늘도 무사한 버스킹을 위하여
엄태현 / 오늘도 무사히 보컬
버스킹(busking)이란 무엇인가. 버스킹은 ‘통행인들에게 돈을 얻으며 길거리에서 연주하다’라는 뜻의 동사 ‘busk’에서 비롯된 단어로, 전 세계적으로는 비단 음악뿐만 아니라 댄스나 페인팅, 더 나아가서는 복장을 갖추고 분장을 한 채로 동상처럼 서 있는 스태츄 버스킹(Statue busking)까지도 포함한다.

하지만 한국, 특히 대구의 실상은 어떤가. 대중에게 버스킹이 뭐냐고 물으면 ‘길거리에서 (기타 치면서) 노래하는 것’이라 답하는 경우가 대다수일 만큼 대중의 버스킹에 대한 인식은 대중음악, 그중에서도 가창에 극히 편중되어 있다. 게다가 그중에서도 요즘 버스킹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반주(instrumental)를 틀어놓고 노래만 부르는 이른바 ‘MR 버스킹’이다. 이를 통해 손쉽게 유추할 수 있는 문제점이 바로 대구시가 그동안 해결하고자 부단히 노력했던 버스킹의 ‘장르적/형태적 다양성의 부재’이다.

그렇다면 왜 다양하지 못한가.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이른바 MR 버스커가 아닌 다른 장르나 형태의 버스커들은 거리로 잘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거리로 나오지 않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지 않다. 그들이 거리로 나오지 않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MR 버스커가 아닌 다른 장르나 형태의 버스커들이 거리로 잘 나오지 않는 이유 중 첫째로 꼽을 수 있는 건 단언컨대 ‘낮은 편의성’일 것이다.1) 구체적으로 MR 버스커는 마이크 한 대와 마이크 잭 그리고 앰프와 AUX 케이블만 있으면 충분히 버스킹이 가능하므로 편의성이 ‘매우 높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 기타 한대만 추가되어도 편의성이 ‘다소 낮다’고 볼 수 있는데, 하물며 장비를 옮기기 위해서 아주 높은 확률로 차량이 필요한 풀 밴드는 어떻겠는가. 게다가 필자가 음악 말고는 다른 분야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언급하는 것이 저어되지만, 음악이 아닌 다른 분야 역시 편의성이 낮을 것으로 생각한다.2)

그리고 일반적으로 예술은, 특히 공연의 형태를 취하는 예술이라면 예술 작품을 감상하고 누릴 사람이 없으면 큰 힘을 잃는다. 그런 의미에서 버스킹이라는 공연의 형태는 버스킹을 감상하고 누릴 관객의 이목을 어떻게 끌 것이고 어떻게 그것을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굉장히 중요하다. 대중의 관심을 얻고 유지할 수 있는 이러한 특성을 ‘대중성’이라고 한다면, ‘낮은 대중성’이 바로 MR 버스커가 아닌 다른 장르나 형태의 버스커들이 거리로 잘 나오지 않는 이유 중 두 번째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대중성의 높고 낮음이 나타나는가. 간단하다. 대중들의 선호가 편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중들의 선호는 왜 편중되어 있을까. 개인별로 차이는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사람은 새롭고 낯선 것보다는 익숙하고 친숙한 것에 끌리는 경향이 강하고, 이런 점은 음악에서, 특히 버스킹에서는 더 강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버스킹 콘텐츠를 구성할 때 대중성을 고려하지 않는 건 끔찍한 자충수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미 많은 버스커들이 대중성을 높이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다.3) 하지만 대중성을 높이는 노력의 난이도를 MR 버스커와 다른 버스커 사이에서 비교해보면 전자의 난이도가 압도적으로 낮다.4)

따라서 ‘편의성’과 ‘대중성’ 두 가지 면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한 MR 버스킹이 버스킹의 주류가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그에 따라 분명 버스킹 문화의 저변이 넓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MR 버스킹의 대중화는 전술한 ‘다양성의 부재’ 뿐만 아니라 여러 문제를 초래했고, 이런 문제들은 다양성의 부재를 해결하고자 했던 시도와 여러모로 얽혀있다. 그러므로 MR 버스킹의 대중화로 초래된 문제들이 다양성의 부재를 해결하고자 했던 시도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짚어보고, 지금까지와 앞으로의 시도에 대해서 논의하면서 글을 마치고자 한다.

MR 버스킹의 대중화가 초래한 문제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공해화’5)이고 다른 하나는 ‘질적 하락’이다. 대표적인 공해화의 사례로는 서울 홍대의 ‘걷기 싫은 거리’가 있다.6)

다른 하나의 문제인 ‘질적 하락’은 간단명료한 공해화와는 달리 다소 모호하다. 왜냐하면 버스킹의 질이라는 것이 꼭 실력에만 비례하는 게 아닌 데다가 실력이라는 개념은 애초에 주관적이고 취향에 큰 영향을 받기 때문에 질적 하락의 이유를 실력에서 찾을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부족한지 아닌지 판단하기 모호한 실력보다는 오히려 성의가 부족한지 아닌지로 질적 하락을 가늠해야 하지 않을까.7)

버스킹의 공해화와 질적 하락은 다양성의 부족이라는 문제와 합쳐지면서 필연적으로 시민들의 잦은 민원을 이끌어냈고, 민원에 대응해야만 하는 행정당국은 버스킹의 대중화로 인해 생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안을 논의하고 시범적으로 시행하기도 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버스킹 라이센스’ 제도와 ‘버스킹 존’의 설치 및 관리이다.

하지만 이 제도의 시행을 위해 고려해야 할 사항들은 매우 복잡하기 짝이 없다. 왜냐하면 두 제도의 핵심적인 공통 키워드는 ‘허가’와 ‘관리’인데, 이는 필연적으로 어떤 종류든 ‘경쟁’과 ‘평가’를 통하지 않을 수는 없고, 여기서 정말이지 많은 갈등이 생기기 때문이다.

실력을 평가 기준으로 삼는다? 앞서 말했듯 실력은 굉장히 모호하고 주관적이며 개인의 취향에 큰 영향을 받는 지표다. 게다가 신뢰도 0점의 남한 사회에서 전면적으로 정성적 평가를 시행한다는 건 공정성 논란을 스스로 불러일으키는 짓이다.

그럼 수치화할 수 있는 일정 횟수 이상의 공연 경력이나 앨범 발매 여부는 어떨까. 일정 횟수 이상의 공연 경력을 평가 기준으로 삼는 것은 언뜻 보면 굉장히 합리적이지만 사실 허점 투성이다. 왜냐하면 경력으로 삼을 수 있는 공연에 제한을 두지 않을 경우에는 얼마든지 공연경력을 조작할 수 있고, 반대로 어떤 식으로든 증명이 가능한 공연만 경력으로 삼을 수 있게 제한을 둔다면 버스킹을 처음 시작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겐 매우 불리할 것이기 때문이다.8)

관객들과의 소통이 상당히 중요한 공연이 버스킹이니 대중성이나 호응도를 기준으로 삼는다? 대중성이나 호응도가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을 측정할 방법을 정하는 것도 힘든 일인데다가, 대중성과 호응도가 무엇이든 결국 필자가 앞서 말한 ‘대중성’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할 테고 그러면 결국 MR 버스커들이 우세를 점해 다양성의 부족이라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된다. 게다가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말고도 적절한 지표들을 잘 배합해 모두가 만족할만한 기준을 만들었다 하더라도 문제는 여전히 많다.9)

지금까지 한 명의 버스커로서 대구에서 8년 이상 활동하면서 느끼고 고민했던 점들을 다소 두서없지만 풀어놓아 보았다. 분명히 필자가 미처 생각지 못하고 놓친 것들도 있을 것이고 잘못 생각한 것들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땅한 해결책이나 뚜렷한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그저 무엇이 문제라고 지적만 한 것 같아 조금 부끄럽다. 하지만 이런저런 민망함을 무릅쓰고 글을 쓴 것은, 버스킹 문화와 관련된 모든 문제와 고민이 굉장히 복잡하고 다양한 층위와 분야에서 얽혀 있기 때문에, 최대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숙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언급하고자 함이었다. 부디 현실적이면서도 알맞은 정책으로 예술가와 시민, 그리고 행정당국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버스킹 문화가 정착하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 1)필자가 생각하는 ‘편의성’이란 버스킹을 실제로 실행하기 위해서 고려하거나 준비해야 할 사항들이 많은지 쉬운지 그리고 어렵거나 쉬운지를 말한다. 버스킹을 위해 고려하거나 준비해야 할 사항들이 많고 어려우면 편의성이 낮고, 적고 쉬우면 편의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 2)연극과 연기를 예로 들어보면, 아무런 소품이나 무대장치 그리고 조명 없이도 한 편의 연극을 진행할 수는 있겠지만, 제반 사항이 전혀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보여줄 수 있는 연극의 레퍼토리는 극히 제한적일 것이다.
  • 3)음악을 콘텐츠로 삼는 대부분의 버스커들은 선곡표를 짤 때 대중적인 노래와 하고 싶은 노래를 적당한 비율로 섞는 편이고, 서문시장에서 매일 공연하는 댄스팀 ‘아트지’는 자신들의 기량을 훨씬 더 잘 보여줄 수 있지만 대중적이지 않은 음악보다, 딱 어울리지는 않지만 대중적인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심지어 트로트(!)에도 춘다.
  • 4)MR 버스커가 주력으로 삼는 버스킹 콘텐츠는 애초에 멜론 TOP 100인 데다가 대개는 혼자 공연을 하기에 편곡이나 합주를 위해 일정을 조절할 필요도 없을뿐더러 합주실 대여도 할 필요가 거의 없는 반면에 기타 연주를 하면서 노래하는 버스커나 풀 밴드 같은 경우에는 대중성을 높이기 위한 선곡 및 편곡 작업을 거쳐야 하는데, 그것을 위해서는 합주를 해야 하고 합주를 하려면 합주 일정을 조율하고 합주실을 대여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게다가 클래식이나 국악을 하는 버스커가 대중성을 높이려고 하면, 자신에게 잘 어울리지 않는 음악을 최대한 어울리게끔 편곡을 해야 하니 일단 편곡의 난이도 자체가 높고, 아무리 편곡을 해도 장르적 차이에서 오는 근본적인 간극을 메우기는 힘들다. 마치 연미복을 입고 봉산탈춤을 추는 셈이랄까.
  • 5)주요한 버스킹 장소에 향상된 출력의 장비를 가지고 너무 많은 버스커가 공연을 해서 결국 음악이 아니라 공해가 되어버리는 현상을 말한다. 유동 인구는 많은데 여유 공간은 좁은 곳에서 춤을 추거나 퍼포먼스를 하는 행위도 비슷한 맥락이다.
  • 6)본래는 ‘걷고 싶은 거리’이지만 공해화가 심해지면서 비꼬는 의미로 다르게 부르기 시작함.
  • 7)다른 버스커에 비해 편의성과 대중성을 쉽게 높일 수 있는 MR 버스커인데도 가사를 전혀 외우지 않고 휴대전화만을 보고 노래한다든지, 안무를 하는 것도 아니고 프리스타일을 하는 것도 아니라 아는 부분이 나올 때만 찔끔찔끔 춤을 춘다든지 하는 태도가 성의 없는 버스킹의 대표적인 사례다.
  • 8)게다가 이미 활동하고 있는 버스커나 인디뮤지션에게도 쉽지 않은 앨범 발매를 평가 기준으로 삼는다는 건 초심자들의 유입을 틀어막겠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 9)합격자의 T.O를 얼마나 할 것인지, 합격자의 T.O에 장르별로 차이를 줄 것인지, 차이를 준다면 그 비율은 어떻게 할 것인지, 버스킹 존의 설정을 구역(area)으로 할 것인지 지점(point)으로 할 것인지, 설정된 버스킹 존에서의 버스킹 신청을 어떻게 받고 관리할 것인지, 편의성이 낮은 버스커들을 위해 기본적인 음향 장비를 갖출 수 있는지, 만약 갖춘다면 장비를 어디에 보관할 것이고 어떻게 신청받을 것이며 누가 관리할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