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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공감 – 가심비
지갑아, 내 마음을 부탁해
이승주 / 서울문화재단 메세나팀 대리
인용하기 민망할 정도로 유명해진 이른바 ‘월클’1)인 BTS가 최근에 발표한 신곡 ‘작은 것들을 위한 시’2)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세계의 평화 (No way) / 거대한 질서 (No way) / 그저 널 지킬 거야 난”
「작은 것들을 위한 시」, 방탄소년단
커다란 담론보다는 바로 (나와) 내 곁에 있는 단 한 사람을 지켜준다는 메시지에 전 세계 팬들이 열광하고 있다. 지극히 사소하고 개인적인 것이 가장 소중하게 여겨지는 요즘, 현대인의 생활패턴을 정의하는 단어가 하나 있다. 바로 ‘가심비’다.

‘가심비’를 풀어 쓰면 ‘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 비율’이다. 심리적 만족감을 위해서 조금 더 비용을 지불하는 소비 형태를 의미한다. 객관적인 성능 보다는 주관적인 판단과 심리적 안정이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 가심비는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에서 선정한 2018년 소비 트렌드 중 하나로 선정됐다. 가심비와 더불어 선정된 키워드 중 몇 개를 보면 하나의 경향성을 발견할 수 있다.

키워드
소확행 작지만 확실한 행복으로, 사소하지만 작은 성취에 행복감을 느끼는 것
워라밸 Work & Life Balance의 약어로, 일과 개인의 삶을 확실히 구분하는 것
케렌시아 투우장의 소가 경기 전 홀로 숨을 고르는 공간을 의미하는 스페인어로, 나만의 개인적인 공간을 의미함.
(출처 : 『트렌드코리아 2018』, 김난도3) 외, 미래의창)
가심비를 비롯한 위 키워드에서 볼 수 있듯이 거창한것 보다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것에 대한 만족을 추구하는 현상을 엿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세계 평화보다 더 소중한 나의 마음의 평화를 추구하는 세태는 어디에서 왔을까? 여기에 대한 질문은 당장 포털 사이트에 ‘가심비’를 검색하면 수많은 분석이 나오기 때문에 전문적인 분석은 그들에게 맡기고 나의 개인적인 경험을 들어 주관적인 썰(?)을 풀어보려 한다.

나는 지금 비록 서울 시민의 세금으로 녹을 받고 있지만 난 대구 출신이다.4) 대구에서 상경해 결혼하기 전까지 약 7년 간 자취 생활을 했다. 한정된 예산으로 매달 월세와 생활비를 감당했어야 했다. 그러던 중 인터넷 포털과 각종 쇼핑 사이트에서 최저가 검색 기능이 생겼다. 이후 나의 쇼핑 생활은 가장 먼저 ‘낮은 가격순’을 세팅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가장 낮은 가격은 싼 게 비지떡이니 그다음 가격 언저리를 찾아 가장 싼 가격을 1 비싼 것을 10이라 했을 때 3~6 언저리에 있는 물품을 구입했던 것 같다. 이른바 ‘가성비 라이프’였다. 그러다 회의가 생겼다. 가성비는 결국 ‘가격 대비’라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것이고 그 전제는 결국 ‘이 정도 가격에 이만하면’이라는 자조를 감내해야 하는 것이었다. 고만고만한 제품은 작은 원룸에 쌓여만 갔다.

나와 2살 터울의 누나는 어릴 적부터 나와 소비패턴이 달랐다. 많은 것을 사지는 않았지만 반드시 좋은 것을 썼다. 내가 제도 1000 샤프를 쓰면서 매번 잃어버릴 때 누나는 제도 5000을 사서 중학교 내내 갖고 다녔고, 내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중소 브랜드의 MP3를 사서 듣다 친구가 망가뜨렸을 때 누나는 고고하게 아이리버의 삼각형 MP3 (소위 ‘프리즘’5))을 갖고 다녔다. 내가 아이리버에 기웃거리기 시작했을 때 누나는 신문물인 애플 아이팟으로 갈아탔다. 내가 ‘가성비’ 인생을 살 때 누나는 일찌감치 ‘가심비’를 추구하며 살았던 것 같다.

한 시대를 풍미한 아이리버 ‘프리즘’ (모델명 IFP-100)
출처 : 아이리버 공식 홈페이지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해서 ‘애플’의 제품을 접하게 되면서 IT 기기의 신세계를 맞이하게 되었다. 하나의 작품과도 같은 만듦새와 직관적인 인터페이스 그리고 “나는 애플을 쓴다.”라는 애플부심(?)까지. 내가 지금까지 가성비를 찾아 헤매면서 느끼지 못한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돈을 꽤 주었지만 ‘돈 값을 하는’ 경험을 했던 것이다. 애플의 뛰어난 상품성도 있었겠지만 마음을 사로잡은 바탕에는 그동안 가성비 찾다 실패한 기억의 누적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던 중에 페이스북을 비롯한 SNS가 일상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남의 삶을 엿보기 위해서는 ‘파도타기’를 해서 찾아가서 방명록에 글을 남겼어야 했다.(싸이월드) 그러나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달랐다. 그냥 내가 내 담벼락에 글을 남기면 그것은 외치는 소리가 되어 나와 관계 맺은 사람들의 뉴스피드(말 그대로 ‘새로운 소식news’을 꼬박꼬박 ‘채워feed’준다. SNS는 전시장의 기능이 되었고 내가 얼마나 행복하게 살고 있는지 보여줄 때마다 사람들이 보여주는 관심과 좋아요는 다시 내 심리를 만족시켰다.

점점 차별화가 필요했다. 어쩌다 공연이나 전시를 가게 되면 거기서만 살 수 있는 굿즈6)를 기웃거리게 되었고 국내에서 보기 힘들었던 뮤지션의 내한 공연이 열리게 되면 티켓팅을 위해 수강 신청하는 심정으로 서버 시간까지 체크해 가며 마음 졸이게 되었다.7)

나뿐 아니라 이런 해외 대형 아티스트의 내한 공연은 가심비 현상을 잘 보여준다. 최근 인터넷에서 ‘직장인 필독 소설’로 히트 친 장류진 작가의 소설 「일의 기쁨과 슬픔」8)에 보면 이런 현상을 잘 읽을 수 있다. 소설에서 해외 유명 피아니스트 초청과 관련한 해프닝이 나온다. 대형 아티스트 내한을 위한 국내 팬의 요청과 이에 부응하여 마케팅 포인트로 삼기 위한 노력.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웃픈 사연까지. 그리고 주인공은 소설의 끝을 또 다른 대형 아티스트인 조성진의 리사이틀 티켓팅을 기다리는 것으로 마무리 짓는다.

뮤지컬 또한 브로드웨이 오리지널팀을 섭외한다던가 최근 각광받기 시작한 컨템퍼러리 서커스인 「태양의 서커스」 등 굵직한 공연이 한국을 찾고 있다. 전시 분야도 마찬가지다. 최근 서울시립미술관은 데이비드 호크니전을 개최했고 DDP는 「알렉산드로 멘디니전」에 이어 「데이비드 호크니전」을 개최해서 화제를 모았다.

태양의 서커스, 쿠쟈
출처 : 태양의 서커스 공식 홈페이지(https://www.cirquedusoleil.com/kooza)
이와 함께 부상하는 또 하나의 콘텐츠는 바로 리뷰 콘텐츠다. 가심비를 위해 적지 않은 돈을 쓰는 만큼 실패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조금 일찍 경험하고 이에 대한 상세하고 맛깔나는 설명을 곁들인 후기들이 인기를 얻게 된다. 이러한 리뷰들은 그 자체로 콘텐츠의 속성이 있기 때문에 보다 빨리 이 콘텐츠의 주제를 선점하기 위한 경쟁도 벌어지게 된다. 최근에 서울 성수동에 개장한 블루보틀이나 강남에 깜짝 팝업 스토어를 연 인앤아웃 버거가 대표적인 예이다.
유튜브에 블루보틀 검색했을 때 가장 많이 나오는 콘텐츠는 성수점 방문
기이다(이미지 출처 : 유튜브 캡처)>
인앤아웃 버거 팝업스토어 오픈 시 줄을 선 사람들(이미지 출처 : 중앙일보)
현상으로 보면 이러할 진데 실제 문화예술 현장의 고민은 깊어진다. 가심비를 극대화하는 문화예술 소비 트렌드는 점점 대형화되고 화제성이 높은 아티스트 위주로 흘러가는 형국이다. 시민 향유의 측면에서 보면 좋은 것이 아니냐 물을 수 있지만 예술의 저변이라는 것은 단순히 대형 예술가를 초청하는 반짝 이벤트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예술 작품이 각종 유명세와 리뷰를 빌은 마케팅에 떠밀려 말 그대로 ‘소비’하는 대상이 될 때 가만히 시간과 노력을 들어 발견하는 예술의 기쁨이라는 것은 그만큼 찾기 힘들어지는 것은 아닐까 스스로 반성하듯 질문해 본다.

그리고 위에 언급한 전시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공공에서 운영하는 문화 공간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도 생각해 볼 문제다.9) 보다 다양하고 질 높은 콘텐츠를 누릴 권리가 시민에게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만 문화 정책이라는 것이 표심과 정치의 논리에 의해 휘둘리고 동원되어 온 역사에서 자유롭지 않아 왔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공공에서 문화정책을 펼치는 의사결정자들을 이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어 보인다.

지역과 수도권의 격차 또한 살펴볼 문제이다. 문화 향유의 수혜 또한 결국 수도권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면 문화 자본의 편중이 지역 간 차이를 더 벌리는 것은 아닐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마이너한 예술의 다양성이 가심비를 앞세운 마케팅 앞에 획일화되는 것 또한 생각해 볼 문제다.

비약일 수도 있지만 가심비의 시대는 결국 개인의 취향을 극단으로 밀어붙이고 여기 자본의 힘이 붙은 결과라고 본다. 문화예술에 있어 이러한 취향의 소비가 가심비의 형태를 띠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국가와 사회가 나의 안위를 보장한다는 환상이 무너지고 사회 구성원은 서로에 대한 적대감을 높인 채 지역, 계층, 세대 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내면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예술이 단지 개인의 만족을 채우는 것으로’만’ 그 역할이 끝난다면 예술에게 너무나 미안한 일이 될지도 모르겠다. 앞서 인용한 BTS의 노래가사를 다시 인용하자면 나의 만족에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작은 마음들이 모여 결국 세계의 평화를 이루게 되는 모습을 그리자면 너무 철없는 상상이려나.

  • 1)월드클래스(World class)
  • 2)제목부터 ‘작은 것’을 향해 있다.
  • 3)그 유명한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저자다. 현 서울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
  • 4)비산동의 서대구산부인과에서 태어나 범어동으로 이사 가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 5)정식 모델명은 IFP-100
  • 6)기분 탓일 수도 있는데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기념품’을 ‘굿즈’라 부르기 시작했다. 다른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LP 레코드판을 ‘바이닐’이라 부르기 시작한 것도 비슷한 시기였던 것 같다. 물론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 7)여기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이 바로 현대카드의 문화 사업이다. 이른바 ‘슈퍼콘서트’라 불리는 공연이다. 뭐 폴 메카트니를 내한시켰으니 이만한 가심비가 어디 있겠는가. (나는 아들 출산으로 못 갔다.)
  • 8)제21회 창비신인문학상 당선작 (2018년 가을호에 수록되어 있으며, 인터넷을 통해 공개되어 있다.(https://bit.ly/2RqwWSf)
  • 9)물론 자체 기획 프로젝트와 대관으로 진행된 프로젝트에 따라 이야기는 조금 달라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