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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공감 – 릴레이기고#1
Odes_송시
최요한 / 작가
카메라는 찰나를 날카롭게 현실로부터 오려낸다. 그리고 녀석은 흔히 말하는 사진이 된다. ‘카메라’라는 녀석은 지속적으로 움직이는 것들을 냉정하게 종이 위의 ‘상’이 되도록 돕는다.

내 앞에는 오래전에 찍은 사진이 놓여있다. 사진을 읽어보니 버스라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눅눅하게 습기로 가득한 것만 같은 색감에 오랜 시간을 겪은 것 같지 않아 보이는 버스의 손잡이가 보인다. 그리고 한 사람이 자리에 앉아있다. 인물 사이로 빛이 보인다. 아무래도 색감과는 달리 날씨는 좋았나 보다. 이 인물은 긴 머리카락을 가졌으며 몇 가닥의 머리카락이 손잡이와 얽혀있다. 왜 이 인물을 채집했을까? 시간을 가지고 고민해보아도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무엇인가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만 생각해본다. 기억은 사진 위에서 미끄러진다.

장마, #44, pigment pritn, 2017
나의 과거를 기억으로 남기기 위해서 사진이라는 녀석을 활용했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그러나 사진은 아무런 말이 없다. 나는 계속해서 그 사진 한 장에 충돌을 가하지만 돌아오는 진동이 없다. 마치 벽을 향해서 눈빛을 보내는 것. 그리고 벽에 남겨진 흔적만을 좇아가는 것. 그리고 무언가를 읽어내려고 노력하는 것이 전부인 것 같다.
장마, #12, pigment print, 2018
마치, 모래알 마냥 작은 기억의 파편을 가지고 사진의 면에 접촉해 본다. 너무나 작아서 하나의 면을 채우기가 힘들다. 물성이 없는 디지털 파일로 무언가를 만들어 냈는데 이미지를 품은 종이 한 장이 덩그러니 남았다. 그렇다면 나는 이 사진 한 장을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의 고민과 맞닿는 몇 개의 짧은 글들과 물음을 나열해보기로 했다.
1. 세상은, 군데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무언가를 발견해 낼 수 있다.
카메라가 발명되자 훨씬 짧은 시간에 그림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다양한 렌즈는 사람을 자리에 머물게 만들기도 한다. 쉽게, 아주 손쉽게 이미지를 소장할 수 있는 시대. 그것이 비록 숫자로 하드디스크에 계속 머물더라도.
2. 기존에 가지고 있는 외적 의미를 사진을 통해서, 그 대상이 가진 내면을 파악할 수 있을까? 사진은 날카롭게 단면을 채집하는 능력이 있다. 그 날카로움 속에서 또 다른 의미들을 끌어낼 수 있을까? 사라질 연약한 것들을 찍어내며 의미를 끌어내는 것이 대체 어떤 의미가 있을까. 대상을 조명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를 조명하는 것인가 대상을 조명하는 것인가.
3. 대상의 내면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더해야 할까? 아니면 덜어내야 할까?
무언가를 찍을 때 그 대상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거나 대상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기 위해 촬영하는 것은 아닌데. 언어로 설명되기 힘든 것 그리고 그것을 전달하는 것. 드러내려는 동시에 감추려는 연약한 행위.
4. 탄생한다는 것은 사라짐에 가까워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바라보는 행위를 지속했다.
5. 커피를 마시다 창을 통하여 밖을 보았다.
새 한 마리가 날아와서 부딪혀 아래로 떨어졌다.
6. 사진은 딱딱한 것들을 부드럽게 만들거나 명확한 것을 애매모호하게 만들며, 영역을 자유로이 넘나들었다.
7. 대상의 표면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 것, 잠재되어 있는 것들, 감춰진 의미들과 이미지 자체로서의 가능성.
8. 이른 아침 시간. 이 연못은 안개로 인하여 시야가 흐리다. 금방이라도 침몰할 것 같은 조그마한 배가 어렴풋이 보인다. 내가 촬영하고 싶어 할만한 이미지다. 사로잡혔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천천히 눈으로 뜯어보니, 군데군데 페인트가 벗겨져있고 벗겨진 페인트 사이로 과거에 이 배가 어느 색으로 칠해졌었는지 유추가 가능했다. 물을 가득 먹었는지 눅눅한 나무가 보인다. 배를 정박시킬 요량으로 달아놓은 낡은 줄은 왜 이리 병약해 보이는지. 이것들은 나에게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은 덧없는 이미지를 만들어 준다. 배를 발견한 위치로 향하여 배를 찍으려 하니 안개가 걷혀있다.
9. 나의 다양한 이미지들은 유추를 제공하고 무너질 것 같은 모호한 은유와 비유 외에 무엇을 더 건넬 수 있는가?
10. 사진이 매우 어려워졌다. 미술관과 온라인에서 접하게 되는 작업물들을 바라보면 나와는 거리가 멀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나는 앞으로 무엇을 보고 읽고 내뱉으려고 단면을 도려낼 것인가. 나는 지금의 내 방향에 자신이 없다. 하지만 꾸준히 내 언어를 뱉어보려는 고민.
장마, #09, pigment print, 2018
장마, #18, pigment print, 2017
장면 하나하나에 의미를 가지고 채집 행위를 벌인 것일까? 아니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며, 기억을 미끄러지는 기표로서의 과거에 관한 사진들은 기억을 남기기 위한 매개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다만 그 순간이 ‘존재했었음’이라는 의미를 내뱉는다. 기억을 소환하지 못하는 사진들을 면밀히 훑어보는 과정을 시작했다. 기억을 미끄러지는 사진들을 위해 이른 아침부터 집안 구석구석에서 인화된 사진들을 긁어모으고 외장하드를 열었다.
장마, #43, pigment print, 2016
바닥의 먼지를 닦으며 한 장씩 놓아두며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계속해서 사진에 튕겨져 내게 와 닿고, 모니터의 광선과 함께 뿜어져 나오는 사진은 빠르게 눈으로 다가온다. 그 누가 알 수가 있으랴만은 어쨌든 어쨌거나 우리 여기 한자리에 모였다.

사진이 가지는 매체적 속성은 오로지 날카롭게 현실을 잘라내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었지만, 재미있는 꼭지를 찾게 되었다. 오랜 시간을 돌고 돌아 찍어온 사진들을 바라보면 어느 한순간과 기억과의 불일치를 납작한 무언가로 만든다는 것이다. 의미의 유무를 판단하기를 보류해본다. 그 한순간에는 의미를 가지고 채집했지만 지금은 가치가 흐려지는 것.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장마, #22, pigment print, 2016
계속해서 사진을 바라보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집에서는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와 선풍기의 바람소리가 은은히 퍼지고 이웃집 아저씨가 맨션 앞의 화단 속 풀을 베는 소리가 가끔 정적을 깬다. 커피를 내리고 그저 그런 향을 맡으며 한 방울씩 떨어지는 액체를 바라보니 이미지로부터 받은 부담감 때문인지 확실히 눈의 피로도가 덜하다. 컵에 얼음을 넣고 차가운 물을 붓고 커피를 넣으며 휘휘 저어보는데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괜스레 고즈넉하다. 나그참파 향도 피우며 의자에 앉아 사진을 바라보니 사진이 가진 과거의 기억보다 현재의 분위기에 취해 과거에 내가 마주했었던 순간들이 마구마구 떠오른다.
장마, #25, pigment print, 2018
이제는 사진이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고, 사진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관해 고민했었던 기억, 순례길을 걸으면서 마주한 사람들에게 왜 이 힘든 길을 걷는지에 관해 물어보았던 기억, 말하지 못할 만큼 민망함으로 가득했던 시절에 대한 기억들. 대부분 민망했었던 기억들로 가득했다. 그 기억들이 스멀스멀 머리를 감싸는 것 같다. 그리고는 과거에 적어놓았던 글을 꺼내 본다. ‘결국 우리는 바다의 조개였다. 으스러지고, 멀어지며 그렇게 우리는 망각의 늪에서 서로를 잊어가겠지. 그렇게 잊어가겠지. 당연하다는 듯이. 그리고 이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듯이.’ 시간은 오후를 향해 달려간다. 모아져 있는 사진들 위로 빛이 쏟아진다. 시간을 가지고 바라보고 있으니 눈길을 끄는 몇몇 사진들이 보인다.

대체로 아스라한 것 그리고 곰팡이 냄새가 날 것만 같은 분위기와 공기를 담은 사진들이다. 대체로, 붙잡을 수 없는 대기 중의 무엇들을 반복적으로 채집했었나 보다. 빛과 공기 그리고 사물이 존재하는 그 순간을 놓치기 싫은 욕심이었던 걸까. 어쩌면 이 기록은 그 순간을 상실하는 것이 두려워서 만든 나의 욕망으로 인한 조그마한 묏자리이지 않을까.

진행해오던 작업들과 동떨어진 무엇들로 조금씩 정리가 되어간다. 분명 무엇인가를 말하고 싶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지만, 기존의 작업들과는 결이 다른 사진들이 모여지니 작업의 압박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서인 것만 같기도 하고 작업과 엮이지 않을 온도와 습도를 찍어보고 싶었던 것 같아 보이기도 하다.
장마, #16, pigment print, 2018
과거에 적어놓았던 글을 다시 한번 읽어보았다. 그리고는 글과 함께 놓아본다. 어느 사진이 이 글과 어울릴까. 아니면 어느 글이 이 사진과 어울릴까. 두 생각을 저울질하며, 기억 없는 사진들을 과거에 적어놓은 글과 엮어 보기 시작한다. 덤덤한 것, 말로 형용하기 힘들지만 어우러지는 것 그리고 서로의 방향으로 미끄러져 가지만 교차하는 지점이 있는 무엇들로.

본래의 시작점과 닮았지만 기억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미세한 파편들을 가지고 의미를 생산하는 것. 과거의 기억을 남기기 위해서 찍었지만, 기억은 사라진 사진을 가지고 가까운 과거 또는 먼 과거에 가졌었던, 여러 감정들을 틈틈이 적어놓은 메모와 사진과 엮는 행위를 시작해 보기로 한다. 모자이크 유리를 물감으로 하나하나 채우듯이 노트에 적어놓았던 글과 기억 없는 사진들로.

그렇다면 최요한은 사진과 글을 엮어서 ‘무엇을’ 바라보는가.
먼지가 내려앉은 낡은 창틀, 창틀 위 죽은 벌, 벌 옆의 바싹 마른 수건, 수건이 널린 색 빠진 줄, 줄을 매달았을 것이라 생각되는 허리가 굽은 할머니, 할머니가 사용하시는 오래된 거울, 거울이 반사하는 빛, 빛이 닿는 곰팡이 피어난 벽지. 엮고 이어서 도달하는 것은 매끈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장마, #48, pigment print, 2017
– 꾸준히 나의 무엇을 진행하기로 마음을 잡는 것이 지겨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