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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리뷰 – 전시
Home&Sweet home
이동민 / 미학, 대구미술관 학예연구사
어떤 건 이유 없이 정해지기도 한다. 유전자와 생김새가 그렇고, 가족이 그렇다. 가족은 문자 그대로 생물학적인 ‘피’를 나누었기에 몸속에 흐르는 피를 바꾸지 않는 한 가족을 바꿀 수는 없다. 가족들이 생활하는 집을 가정이라 정의할 수 있는데1) 이 가족과 가정 안에서는 세세히 알 수 없는, 행복함과 편안함 그리고 불편한 감정들이 동시에 존재한다. 그리고 2019년 현재, 1인 가구의 비율이 높아지고 결혼과 출산이 확실한 선택의 범위로 들어서며 가족, 가정, 집 이 세 단어의 연관관계와 단어가 가지는 함의의 범위는 다양해지고 넓어지고 있다.

어울아트센터에서 4월 23일부터 5월 18일까지 열린 은 가정의 달을 맞아 가정이라는 우리 삶 속 울타리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담은 전시이다. 단디움, 두루겨루, 노다웃, 정구은, 허병찬 작가가 참여한 이번 전시는 가족과 가정의 의미에 대해 다양한 시각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두 전시장에서 진행된 이 전시는 각기 다른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는데 갤러리 금호가 젊은 작가들 작품 위주의 새로운 가족과 가정형태에 대한 제안과 소고라면 갤러리 명봉은 가족에 대한 따뜻한 기억과 다문화 가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두루겨루, 두루박사의 홈 프로젝트, 2019, 혼합재료, 가변설치
단디움, 가족사진, 2019, Digital print, 190x210cm
먼저 갤러리 금호에서는 젊은 프로젝트 그룹인 두루겨루, 단디움, 노다웃의 작품이 설치되어 있었다. 프로젝트 그룹 두루겨루는 20대 후반, 30대 초반의 젊은 작가 3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번 전시 작품 <두루 박사의 홈 프로젝트>는 ‘완벽한 집’을 선사하는 프로젝트이다. 전시장 곳곳에는 집과 가족을 구성하는데 있어서 필요한 여러 질문이(“비 오는 날을 좋아하시나요?”, “함께 살고 싶은 사람이 있나요?”)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체 가구 수 대비 1인 가구수가 28.6%2)로 날로 늘어가고 있는 이때 가정과 가족이라는 개념보다는 온전한 휴식을 할 수 있는 ‘집’이라는 개념이 부상하고 직방, 다방 등 1인 가구를 위한 부동산 어플까지 출시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유일한 가족인 ‘나’를 어떤 집에서 돌볼 것인가는 중요한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만일 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면 우리는 빗소리와 비 오는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큰 유리창이 있는 집에서 살고 싶을 것이다.
노다웃(김나경, 우미란, 허태경), 안식처, 2019, Painting, 15,220x300mm
천천히 걸어 질문을 음미하고 원하는 집에 대해 생각을 하다 보면 노다웃과 단디움의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노다웃과 단디움의 작품은 서로 마주 보면서 각기 반대의 의미를 이야기하고 있어 흥미롭게 관람할 수 있었다. 먼저 노다웃은 전시장 벽면 가득 가로 15m, 세로 3m 크기의 주황색과 녹색의 숲을 그렸다. 이것은 자연의 온전함을 집에서도 느낄 수 있도록 마치 벽지처럼 기능했다. 색과 일정한 선이 주는 안정감은 전시장을 더욱 따뜻한 분위기로 만들어주었다. 그러나 노다웃의 편안함과는 다르게 단디움의 작품은 집 안에서 느껴지는 가족 간의 단절과 낯선 느낌을 이야기한다. 바쁜 생활에서 가족과 마주치는 시간이 줄어들고 집 안에서도 내 방이 아닌 다른 공간에 들어서면 낯선 느낌을 받기도 한다. 그러한 낯선 느낌을 팀 구성원들의 개인적 공간에서 연출한 사진과 텍스트로 함께 구성했다.
허병찬, 기억의 풍경, 애니메이션, 2분 29초
갤러리 금호에 전시된 허병찬, 정구은의 작품은 고향과 가족을 상기시킨다. 어머니의 시를 소재로 작업한 허병찬의 영상은 따스하고 그리운 것들을 담고 있다. 전쟁과 급격한 경제성장을 겪었던 세대에는 가족의 의미가 남달랐을 것이다. 변하지 않는 소중한 것들을 허병찬의 작업에서 만날 수 있었다. 정구은 작가의 <이중언어>는 ‘모국어’는 마치 집 같다고 했던 어느 소설가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모국어와 외국어로 말할 때의 얼굴을 반씩 교차 편집해서 미묘하게 달라지는 표정을 볼 수 있다. 다문화가정이 어색하지 않고, 문화, 경제, 사회 등 모든 것 분야에서 경계가 없어진지는 오래되었지만 내 집만큼 편안한 곳은 없다.
정구은, 이중언어, HD/Color/MP4, 10m
이 전시를 보고 나니 문득 지난 2월에 출간된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김하나, 황선우)라는 에세이가 떠올렸다. 사회에서 알게 된 1976년생, 1977년생 여자 2명이 원룸에서의 1인 가구생활을 청산하고 각자 대출을 받아 서울에서 30평대 아파트를 구입하여, 고양이 4마리와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화제가 되었다. 이것은 새로운 가족과 가정의 탄생이며, 아마 앞으로는 이러한 다채로운 가족 구성이 많아질 것이다.

‘집’은 언제나 돌아갈 곳이다. 낮 동안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밤이 되면 사람들은 집에 가서 잠자리에 든다. 많은 것들이 변해가고 있지만 그래도 변하지 않는 것은 집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일 것이다. 경계와 긴장을 풀고 편안히 있을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집이다. 전시는 ‘집’이라는 물리적 공간부터 그곳에 녹아있는 기억과 정서 등 여러 감정을 부드럽게 연결해 ‘즐거운 나의 집’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도록 했다.

  • 1)표준국어대사전
  • 2)통계청 인구 총 조사 수치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