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예술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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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예술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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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예술의 힘 – 아카이브
이기홍 지휘자 사진 아카이브
임언미, 대구문화편집장
– 이기홍 (1926∼2008) | 경북 영천 출생. 1950년 서울대 예대 음악부를 졸업했다. 1969년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악원에서 지휘를 전공했다. 1957년 대구현악회, 대구교향악단을 창단했고, 1963년 대구방송관현악단 창단, 1964∼1979년 대구시립교향악단 창단 및 초대 상임지휘자를 역임했다. 싱가폴 교향악단, 타이완교향악단을 객원 지휘했다. 1979∼1980년 부산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를 맡았고, 1980∼1997년 경성대학교 음악대학 교수를 역임했다. 1962년 경북문화상을 받았고 대구원로음악가회 회장과 고문을 역임했다.
경주중학교 재학 시절(좌측 뒤가 이기홍 선생)
부유한 어린 시절을 보낸 이기홍 선생은 중학교 시절 우연히 레코드판으로 들어본 바이올린의 음색에 반해서 클래식 음악에 매료됐다고 한다. 주말마다 레코드판을 사기 위해 주말마다 기차를 타고 대구까지 왕복하기도 했다고 한다.
1954년, 바이올린 연주자로 활동하던 시절, 계성학교 강당에서 피아니스트 이경희 선생과 협연
대구현악회 창단 준비 연습 사진(1957년 6월)
능인중 교사 시절이었기에 학교 강당 등지를 오가며 연습을 했다. 대구현악회 창단 공연 포스터는 능인중학교 동료 교사였던 화가 백태호가 손수 제작해줬다. 30장 한정으로 만들었었는데 이기홍 선생이 한 장을 보관하고 있었지만 선생이 작고한 뒤 찾아가보니 유실되고 없었다. 사진은 필자가 2002년 자택에서 촬영한 것이다.
1957년 12월 29일 키네마극장(현 한일극장 자리)에서 열린 대구교향악단 창단 연주 사진
1962년 불국사 앞마당에서 열린 제1회 신라문화제에 참가한 대구관현악단 공연 모습. 연주 후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위윈장과 기념 촬영한 사진을 이기홍 선생은 고이 간직하고 있었다.
1963년 2월 20일 KG홀(대구방송국 공개홀, 현 대구콘서트하우스)에서 열린 대구방송관현악단 창단연주회 사진
작곡가 안익태를 비롯해 지휘자 번스타인, 피아니스트 루빈스타인, 첼리스트 카잘스 등 세계 유명 연주자들의 축전이 쇄도했다. 이 축전 자료들 또한 이기홍 선생이 보관하고 있었으나 다 유실되고 몇 장 남지 않았다.
대구시립교향악단 창립공연 팸플릿 표지 사진(1964년 12월)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전신인 고려교향악단과 부산관현악단, KBS교향악단에 이어 국내 네 번째 교향악단으로 창단됐다. 포스터는 별도로 제작하지 않았다.
1969년 12월 오스트리아 빈 유학시절 한스 스바로브스키 교수와 함께 찍은 사진
대구시립교향악단을 창단하고 상임지휘를 맡은 지 2년째 되던 1969년 오스트리아로의 유학을 떠났다. 학창시절 익혔던 지식과 경험만으로는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것이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당시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악원에 동양인은 이기홍 선생과 일본인, 인도인 각 한 명 씩 뿐이었다고 한다.
1979년 부산시향 부임 첫 연주 후(왼쪽 두 번째부터 이기홍, 박인수, 이강숙, 이점희, 이보향)
1979년 대구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를 퇴임한 이기홍 선생은 곧바로 부산시립교향악단의 초청으로 2년간 상임지휘를 맡았다. 대구의 교향악 운동을 주도했던 선생의 역량을 높이 사 부산시향의 기틀을 마련하고자 그를 초청한 것이다. 이때의 부산행을 계기로 이기홍 선생은 부산 경성대학교에서 교직을 맡게 됐고 1997년까지 부산에서 후학을 길렀다.
<대구문화> 2002년 5월호 인물 인터뷰 준비(2002년 4월 북구 자택에서 촬영)
이기홍 선생은 인터뷰 차 만난 필자에게 대구현악회 창립공연 포스터에서부터 대구교향악단 창립 연주회 팸플릿, 대구방송관현악단 프로그램, 해외 유명 음악가들에게서 받은 축전 등 다양한 자료들을 펼쳐 보여주었다. 2018년 연말 그가 타계한 후, 2019년 2월 그의 자택을 다시 찾았을 때는 그 자료 대부분이 유실되고 없었다.
<대구문화> 2005년 2월호 원로예술인 인터뷰 준비(2005년 1월 5일 녹향음악감상실에서 촬영)
촬영을 약속한 날, 이기홍 선생은 두터운 바바리 코트 차림으로 녹향 문을 열고 들어섰다. 녹향 지기 이창수 옹과 친근한 인사를 나누며 자리에 앉은 그는 후배 음악인들에게 격려의 말을 남겼다. “많은 음악인과 음악 애호가들이 녹향을 찾았었는데……. 어려운 시절 좋은 벗이 되어주었어요. 대구시향 창단 당시만 해도 무척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꿈을 잃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예술가의 정신, 태도만은 잃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요즘 우리나라 경제가 많이 어렵다지요. 힘든 시절을 보내온 저로서는 후배 예술인들이 절대 꿈을 잃지 말기를 당부드립니다.”
2014년 11월 28일 대구시립교향악단 50주년 기념 연주회 관람을 위해 대구콘서트하우스를 찾은 이기홍 선생(대구시립교향악단 촬영)
이날 연주회장에서 모습을 보인 것을 마지막으로 선생은 작고할 때까지 바깥출입을 거의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