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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리뷰 – 음악
백건우에게 쇼팽은 무엇인가?
이정희 / 봉산문화회관 공연기획담당
쇼팽의 녹턴으로 돌아온 백건우
지난 4월 이 시대의 거장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쇼팽으로만 짜여진 프로그램을 가지고 봉산문화회관 가온홀 무대에 올랐다. 백건우는 지난해 통영의 한 스튜디오에서 쇼팽(Shopin)의 녹턴(Nocturnes, 야상곡) 전곡을 6년 만에 녹음했다.

1993년부터 지방공연을 진행하고 있는 백건우는 자신의 꿈은 문화생활을 어디든지 할 수 있게 되고 좋은 음악을 전달하는 것이 자신의 즐거움이고 책임감으로 생각하고 실천하고 있다. 이번에도 앨범 발매와 더불어 서울을 시작으로 백건우 피아노리사이틀 ‘백건우 & 쇼팽’으로 전국투어에 나섰다.

봉산문화회관 제공
관객과 함께 호흡하는 백건우
이번 리사이틀은 처음부터 끝까지 쇼팽작품으로만 프로그램을 구성하였다. 처음 오프닝은 ‘즉흥곡’으로 시작해서 야상곡 5번, 7번과 쇼팽의 생애 마지막 대작인 환상 폴로네이즈 그리고 야상곡 4번, 13번을 연주하고 인터미션을 가졌다.

은발의 신사가 무대를 걸어 나와 조용히 피아노 앞에 앉는다. 그리고 특별한 미동 없이 고개를 숙인 채 연주를 시작한다. 곡과 곡 사이에 틈을 주지 않는다. 공연 내내 그는 고개를 거의 들지 않고 한번 정도 고개를 들어 천장을 잠시 바라 볼뿐 다시 고개를 숙이고 연주를 한다. 특별히 몸의 움직임도 없다. 그의 연주는 평소 자신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말없이 겸손한 백건우와… 그러나 한 곡 한 곡 그의 손가락 움직임에 따라 쇼팽이 살아 숨 쉬는 듯한 곡에 대한 해석과 표현으로 관객은 그와 함께 호흡하는 듯했다.

특히, 야상곡 즉 Nocturnes을 연주하는 거장의 손끝을 통해 쇼팽이 왜 큰 홀에서 연주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으며, 작은 살롱 같은 곳에서 친구들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며 자신의 곡을 연주하였는지 알 것 같았다.
아마도 400석 규모의 작은 홀(봉산문화회관)이기에 이러한 느낌이 들지 않았나 라는 생각을 해본다.

백건우의 손끝에서 탄생한 녹턴은 다소 느린 템포로 아름다우면서 부담 없이 듣기에 좋은, 힘을 안 주어도 빛을 발휘하는 소리로 들렸기 때문이다.

백건우의 녹턴은 조국을 그리워하는 쇼팽의 그리움과 외로움, 슬픔 그리고 울분을 고스란히 표현해 내면서 백건우만의 여유로움에서 나올 수 있는 차분하고 침착함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녹턴은 줄리어드 시절부터 연주했던 참 좋은 곡인데 자신이 아직 이해를 못 했구나’라고 생각할 때가 많았다고 했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듯한 그 만의 녹턴은 쇼팽이 17세부터 사망 직전까지 생각날 때마다 써 내려가던 일기와 더불어 작곡했던 곡이기에 젊은 시절에는 녹턴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하지만 일흔이 넘은 백건우는 수많은 세월 속에서 그 누구보다도 완벽하게 쇼팽의 녹턴을 이해하지 않았나 라는 생각을 연주 내내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의 삶에서 묻어나는 농익은 연주는 객석에서는 숨소리조차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오로지 피아니스트 백건우만의 영혼을 사로잡는 듯했다.

환상 플로네이즈는 쇼팽의 마지막 대작으로 격렬하고 환상적인 아름다움 속에 쇼팽이 생애 후반에 견뎌내야 했던 외로움과 고통이 잘 녹아 있는 곡으로 가장 해석하기 어려운 곡이라고 했던 백건우가 연주 중 유일하게 고개를 들어 허공을 바라본 곡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허공을 바라보던 그의 평온한 표정과 특별한 움직임 없는 그의 연주는 평온한 듯했지만 객석으로 전달되는 소리는 아주 격정적으로 전해졌다.
이런 것이 백건우만의 연주가 아닌가 생각한다. 완벽하게 작곡가와 곡을 해석한 그만이 표현할 수 있는 연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으며, 연주 내내 그의 모습에 경이로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봉산문화회관 제공
마음을 울리는 쇼팽
2부에서는 분위기 전환을 위해 화려한 왈츠 3곡과 다시 야상곡 16번, 10번을 연주하고 마지막으로 발라드 1번으로 ‘백건우 & 쇼팽’의 대미를 장식했다.

쇼팽의 왈츠를 듣는 순간 쇼팽이 왜 피아노의 시인이라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왈츠와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쇼팽의 왈츠에는 그리운 추억과 이루지 못한 꿈들을 음악으로 표현하여 풍성한 화성과 선율을 통해 변화무쌍하게 변하는 작품 안에서도 우아하고 세련된 왈츠의 기품을 느낄 수 있다.
황홀함을 고조시키는 쇼팽의 왈츠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춤을 추기 위한 곡보다는 피아노를 연주하는 연주가와 음악을 감상하기 위한 왈츠 곡으로 유명하다. 춤을 출 수 있지만 다양한 템포의 변화로 춤을 추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쇼팽의 왈츠 중 가장 화려하고 무도곡적인 리듬을 보여주는 곡이 왈츠 중 최초로 출판된 대왈츠다.

연주의 마지막 곡인 발라드 1번은 서정적이면서 무겁고 장중한 느낌의 곡으로 치열하고 격정적인 전쟁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곡이다. 영화 ‘피아니스트’에 삽입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며 감동을 선사한 곡이기도 하다.
백건우는 자신이 10대에 치던 곡으로 언젠가는 다시 제대로 쳐보기 위해 이번 연주의 마지막 곡으로 넣었다고 한다.

백건우의 연주는 그의 일상 모습과도 너무나 닮아 있었다. 그의 모습과도 같이 평온하면서 꾸밈없는 연주는 객석에 있는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해져 마음을 감동시켰다.

백건우의 쇼팽과 녹턴은 가장 대표적인 곡이면서도 가장 해석하기 어려운 곡이다. 하지만 매 연주마다 백건우는 쇼팽과 녹턴을 관객들에게 쉽고 마음을 흔들 수 있게 연주하려 노력한다. 백건우는 다른 피아니스트들처럼 쇼맨십은 없지만 피아노건반과 그의 손끝으로 관객들을 매료시킨다.
백건우의 곡은 어떠한 감정일 때 들어도 이상하지 않다. 기쁠 때, 슬플 때, 외로울 때 들어도 곡과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었다. 한국에 백건우 같은 위대한 피아니스트가 있어 꽃처럼 아름답고 실크 같은 우아한 선율을 들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하고 우리 국민들 누구나 한 번은 그의 아름다운 연주를 들었으면 한다.

봉산문화회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