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예술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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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예술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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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예술의 힘 – 캐리커처 에세이
지휘자 이기홍, 그를 기리다
– 대구시립교향악단 창단과 발전의 선구자, 이기홍 –
최영애 / 음악칼럼리스트, 대가대 외래교수)
한 해를 마무리하며 어수선하게 세모(歲暮)를 보내던 지난해 12월 28일 대구시립교향악단을 창단하고 초대 상임지휘자를 역임했던 이기홍 선생이 영면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향년 93세로, 이미 많이 쇠약해지셔서 의식이 뚜렷하지 못하며 누워 지내신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지만 그래도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은 감추기 어려웠다. 특히 생전에 선생에 대한 글을 대구예총이 계간으로 발간하는『대구예술』에 기고했던 필자로서는 기사를 위해 선생을 만나 뵙고 인터뷰하던 기억이 떠올라 더욱 애석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올해는 1964년 이기홍 선생이 ‘대구현악회’를 모태로 대구시립교향악단을 창단한지 55년째 되는 해이다. 오늘날 대구시민들에게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있는 대구시립교향악단은 국내에서는 1957년 서울시향, 그리고 1962년 부산시향 창단 이후 전국에서 세 번째로 창단된 시립교향악단으로 어느새 반백년의 역사를 훌쩍 넘기고 있다.
대구시립교향악단의 창단은 1950년대 한국 전쟁 후 피폐되고 어수선한 대구의 현실 속에서도 아름다운 클래식 음악 연주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고 위로하려는 목적 아래 열심히 발로 뛴 한 음악인의 열정과 노력 덕분이었다. 당시의 국내 상황으로는 거의 불모지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던 대구에서 기악 합주 활동을 기획하고 앙상블을 조직해 연습을 하고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무대에 올려 공연을 이어 왔던 이기홍 선생의 선구자적 결단과 행동이 55년 역사의 대구시립교향악단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 점에 대해 대구의 음악인뿐만 아니라 대구시민 모두는 고마움과 존경을 표해야 할 것이다.

당시는 국민 모두에게 전쟁의 폐허를 재건하는 일이 최우선이었기에 문화·예술, 그리고 교육의 도시라 자부하면서도 ‘누군가는 하겠지’라며 시립교향악단 창단에 대해 외면한 채 세월을 보내다 보니 대내외적으로 문화나 교육적 측면에서 대구와 비교도 되지 않던 부산이 먼저 시립교향악단을 창단하게 되는 현실에 부닥쳤다. 사실 그때 무척 속이 상하고 음악가로서의 자존심도 무너졌다고 과거 인터뷰 당시 얘기하시던 선생의 모습이 떠오른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하시는 말씀이었음에도 그때의 굴욕(?)이 떠오른 듯이 속상해하시던 모습이 기억난다. 어쩌면 선생의 이런 오기와 결심이 결국 오늘날의 대구시립교향악단이 존재하게 되는 길로 이끌었던 것이리라.

이기홍 바이올린 독주 _ 피아노 이경희 / 계성학교 강당 1957 (손태룡 제공)
선생은 1926년 2월 5일 영천군 금호면 냉천동에서 3남 1녀 중 막내로 출생하셨다. 필자가 현재 진행하고 있는 대구음악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맡아 원로음악가들과의 인터뷰를 하다 보면 항상 느끼는 바이지만 원로 선생님들의 인생 이야기, 그 자체가 우리들에게는 마치 역사책 속의 등장인물 같은 삶처럼 와 닿는다.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유명 예술가들이 그저 가벼운 일화(逸話)처럼 툭툭 던져지는 것이다. 선생이 다녔던 금호초등학교 1학년 담임이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개인 동요집이라 할 수 있는『윤석중 동요집(신구서림, 1932)』을 낸 윤석중(1911 ∼ 2003)이었다. 또한 바로 위 형님은 일본 동양음악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하였고, 자형 역시 바이올린을 전공한 음악가였다. 아마 이런 집안 분위기와 음악적 환경이 어린 선생의 마음을 음악을 사랑하게 되는 길로 이끌었으리라 짐작하게 된다. 선생은 경주중학교 재학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다.1)

이후 바이올린 전공으로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 입학하여 바이올리니스트 양성식과 첼리스트 양성원의 아버지인 양해엽과 함께 박민종(1918∼2006) 선생을 사사하였다. 졸업 후 해군정훈음악대(악장 박민종)에서 활동하다 선생은 6・25전쟁으로 대구로 내려와 음악교사와 바이올린 개인지도를 하며 지내게 된다.

대구 현악회 창립준비 연습, 대구문화 2014. 11월(348호)
선생은 대구 지역에서는 1세대 바이올리니스트라고 볼 수 있으며 기악 앙상블을 포함해 오케스트라 운동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1956년 6월 자신의 바이올린 문하생을 중심으로 ‘대구현악회’를 조직해 청구대 강당에서 공연함으로써 지역 최초의 현악 앙상블 활동을 시작한다. 이 단체는 이듬해인 1957년 2군 군악대 관악주자들의 합류로 대구교향악단으로 확대됐으며, 1963년에는 대구KBS와의 협약으로 대구방송교향악단으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마침내 1964년에 대구시 당국과의 협의 끝에 대구시립교향악단으로 창단되어 초대 상임지휘자로 활동하게 되었다.2)

대학 시절 선생에게 직접 사사했던 한국음악문헌학회 손태룡 고문이 선생을 추억하며 쓴 어느 글에서 선생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중략)말수가 적은 선생님은 음악적 내용이 궁금하여 문의할 때마다 친절하게 낮은 목소리로 차분하게 말씀하시는 조용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큰소리로 꾸짖거나 지적하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중략)”3)
10여년이 지났지만 기사를 위해 인터뷰했던 필자가 기억하는 선생의 모습 역시 손태룡 고문의 묘사와 별반 틀리지 않는다. 특히 잊지 못할 부분은 잡지가 나오고 직접 전해드리지 못하고 우편으로 보내드렸더니 다시 전화를 주시면서 ‘기사가 너무 마음에 든다’며 굳이 식사를 대접해 주셨던 기억이 떠오른다. 사실 필자는 이런저런 기사나 원고를 자주 쓰는 편이지만 이렇게 직접 자신의 기분을 표현하며 칭찬을 해 주고 밥까지 사주는 사람은 흔치 않았다. 어쩌면 선생의 속 깊은 따뜻함을 직접 느낄 수 있었던 행운이 내게 찾아왔던 것이 아닐까 싶다.

힘들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 선생이 대구시립교향악단을 창단하고 연주를 이어가는 데에는 함께 했던 음악인들 외에도 늘 클래식 음악을 아끼고 사랑하는 대구시민들의 관심과 후원도 한몫을 했음 또한 기억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이는 대구현악회 창단 이후 연습과 공연, 그리고 기획에서 후원자 확보에 이르기까지 모두 직접 발로 뛰었던 선생의 열정과 노력이 후원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여기서 잠깐 선생과 필자의 지인이 얽힌 일화를 소개하며 대구시립교향악단 창단을 위한 선생의 뜨거웠던 마음을 가늠해 보려 한다.

필자가 소규모 살롱콘서트 기획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20여년 전 보이지 않게 관심과 후원을 아끼지 않던 대학 선배 부부가 있었다. 음악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선배 부부는 늘 첫 번째 청중이자 든든한 후원자였다.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던 부모님 덕분에 음악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얘기하던 선배였는데, 그녀의 아버지는 이기홍 선생이 기억하고 고마움을 표시하던 고 최영호 경북대 체육과 교수였다. 인터뷰 당시에도 특별히 고 최영호 교수를 거론하며 늘 잊지 않고 있다고 말하는 선생의 모습에서, 자신의 삶을 돌이켜보며 혼자 달려온 외로운 싸움이 아니었다고 기억할 수 있었던 그는 후회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휘자 이기홍을 검색하면 그의 지휘를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방대한 힘과 양감이 넘친 음향을 울리는 기량이 놀라우며 기복 있는 뉘앙스로 낭만을 노래해가는 음악성이 뛰어나다’라고. 여기에 빠지지 않고 부연되는 설명이 또한 ‘자신을 돌보지 않고 관현악 운동에 대단한 열의를 보여 주었다’이다. 바로 우리가, 대구의 음악인들이, 대구시향을 사랑하는 대구시민들이 지휘자 이기홍을 잊지 않아야 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올해가 가기 전에 지금의 대구시향이 터를 잡고 있는 대구콘서트하우스에서 그와 함께 대구시립교향악단에서 연주했던 음악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그를 추모하는 음악회를 열고 싶다. 아마 대구시향 관계자들이 준비하고 있는 걸로 안다.

잊혀지지 않는 삶, 누군가에게 기억될 수 있는 인생을 살다 간다는 것은 분명 훌륭한 그 무엇인가를 남긴 시간을 보냈다는 증거가 아닐까. 다가오는 2024년 대구 교향악의 역사를 정리하고 기록하는 아카이빙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대구시향의 60주년을 준비하면서 지휘자 이기홍은 대구시향을 아끼고 사랑하는 우리 모두에게 다시금 기억되고 사랑받게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 1)매일신문, 손태룡(한국음악문헌학회 고문), 「그립습니다, 대구현악회 이기홍선생님」, 2019. 2. 13일자
  • 2)상동
  • 3)상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