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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성로 어르신 문화 관찰기
김인혜 / 더 폴락 공동대표
대구 도심지에서 어르신들이 주로 이용하는 상가 밀집지는 북성로, 향촌동, 교동(이 글에서는 세 곳을 통칭하여 북성로 일대로 표기했다.)으로 분류가 무색하게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북성로와 향촌동에는 대보무궁화백화점에 위치한 무도장을 중심으로 댄스 교습소와 가격이 저렴한 식당과 술집, 오래된 다방 등이 밀집되어 있으며, 교동은 동아아울렛과 교동시장, 골목골목 빼곡히 들어선 옷가게를 중심으로 허기를 채울 먹거리들이 들어서 있다. 이곳을 주로 찾는 이들은 50대에서 80대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층이다.

이 일대에서 두드러진 어르신들의 놀이 문화는 아무래도 춤이다. 필자가 2014년 처음 북성로에 활동하기 시작한 건물의 2층이 리듬짝 교습소라는 이름의 장소였다. 거기서는 오후 12경부터 좁은 골목 가득히 쿵짝쿵짝하는 반주 소리가 울려 퍼졌다. 리듬짝 교습소는 매주 토요일에는 특별히 교습소로의 기능보다는 무도장이 되어 춤추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1층 천정을 크게 울렸다. ‘불타는 금요일’이 아닌 ‘불타는 토요일’. 차 한대가 겨우 지날 수 있을 정도로 좁고, 행인들이 지름길로 삼을 만한 위치도 아니었지만, 이 좁은 골목을 누비는 사람의 대부분이 이 교습소를 찾는 어르신들이었다. 현재 이 교습소는 문을 닫았지만, 여전히 향촌동 일대에는 리듬짝, 잔발 같은 간판을 내건 댄스교습소를 볼 수 있다. 그러니 이 골목에서 마주치는 멋진 패션의 어르신들은 어쩌면 댄스고수이실수도!

어르신들의 댄스 중심지는 향촌동 일대다. 그곳에는 무도장이 10여 곳 가량 밀집해 성업 중이며, 그 공간도 100평 이상의 규모로 운영되고 있어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입장료는 무료인 곳이 대부분이지만, 천 원 정도로 저렴한 입장료를 받는 곳도 있다. 무도장 내에는 커피숍이 입점해있고, 물품보관소, 흡연실, 대기실 등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밴드가 음악을 연주하는 날이 있기도 하고, 무도장에 상주하며 댄스를 교습해주는 강사가 따로 있는 곳도 있다. 이 생태에서 비롯된 댄스강습소가 있고, 회원들이 함께 무도장을 찾기도 한다. 주요한 무도장은 국제카바레, 대보성인텍, 신세계카바레 등으로 대구 최초 주상복합아파트로 건립된 대보무궁화백화점에 위치해 있어 그 일대에는 언제고 무도장을 찾는 화려하고 멋진 어르신들을 만날 수 있다. 그 중심에 있는 대보 무궁화 백화점(대보백화점 1978년, 무궁화백화점 1979년 건립)은 지하 2층, 지상 7층 높이 건물이다. 지하부터 4층까지는 상가 건물로 사용되고 있으며, 5층에서 7층까지는 주거지와 더불어 음식점, 커피숍, 목욕탕, 기원 등 다양한 업종의 상가들이 들어서 있다.

이 일대가 어르신들의 공간이 된 것은 북성로의 형성 배경과 관련이 있다. 북성로는 1906년 일제의 요구로 대구읍성 성벽을 허물고 신작로가 생기면서 근대 대구의 중심지가 되었다. 읍성이 사라진 자리에 포목점, 양복점, 곡물 등을 취급하는 일본인 상점이 들어섰고, 대구역과 가까워 자연스럽게 상업이 발달했다. 1934년에는 엘리베이터를 갖춘 대구 최대의 백화점인 미나까이 백화점이 들어섰고, 그뿐 아니라 몇몇의 대형 상가와 양장점들이 들어선 곳이었다. 또한 번화했던 시기 예술가의 사랑을 받은 다방 밀집지이기도 했다. 화가 이중섭이 은지화를 그렸던 백록다방, 시인 구상이 출판기념회를 열었던 꽃자리다방, 대구 최초의 그랜드피아노가 놓여 음악인들이 자주 찾던 백조다방이 있었던 문화의 거리였다. 대구 최초 극장 조선관, 영락관, 신흥관 등이 들어선 곳도, 1946년에 문을 연 우리나라 최초의 음악감상실인 녹향이 깃든 곳도 바로 이 일대이다. 비슷한 시기 한국가요의 맥을 이은 대구의 오리엔트레코드사가 문을 연 곳이기도 하다.

북성로 일대는 근대의 패션, 영화, 음악 등 문화의 중심지로 이른바 모던걸, 모던보이들의 공간이었던 셈이다. 1980년대 즈음 도심 개발축이 동성로로 이동하면서 북성로 일대는 구도심으로 뒤쳐졌다. 개발의 축이 비껴간 덕에 오래된 공간들이 고스란히 남았고, 젊은 시절 이곳을 찾아오시던 어르신들도 계속 발걸음을 할 수 있었다. 그곳은 친구들을 만나 밥을 먹고 커피도 한 잔하고, 저녁엔 술 한 잔 기울이며 교류하던 만남의 공간이었으며, 양복을 맞추고 수제화를 맞추고 필요한 옷을 사러 나오던 쇼핑의 공간이었다. 또 그곳은 음악감상실에 들러 음악을 감상하고, 영화를 보고, 무도장에서 춤을 추며 여가를 즐기기도 했던 곳이었기에 자연스럽게 어르신들의 문화가 형성되었다.

물가 상승에 따라 조금씩 가격이 오르긴 했지만 당시 가격에서 큰 변동 없이 유지하며 여전히 저렴한 식당과 술집, 수십 년 된 옛 다방들이 영업을 이어오고 있다. 술집을 겸한 이곳의 많은 식당에서는 국밥 한 그릇을 안주로 시켜 벗과 술을 한잔하기도 한다. 국수는 삼천 원 선에서, 정식과 국밥은 사천 원 선에서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저렴한 식당들이 곳곳에 있다. 그밖에도 육회나 전골, 생선회 같이 어르신들의 입맛을 겨냥한 식당들도 많다. 한 가지 재미있는 모습은 도수가 높은 술을 선호하시는 어르신들이 술을 마시는 방법인데, 2-30대들은 소주와 맥주를 2:8 정도로 폭탄주를 만들지만, 어르신들은 그 반대다. 그래서 어르신들이 자주 들르는 밥집에 가면 맥주의 노란빛만 살짝 도는 술잔이 앞에 놓여있곤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맥주 한잔만 따르고 소주를 맥주병에 섞기도 한다. 오래된 다방들도 곳곳에 위치해 있는데 모습은 비슷하다. 폭신한 쇼파가 놓여있고 각 테이블 간에는 낮은 칸막이들이 있다. 다방에서 필자는 차가운 음료를 자주 마셨지만, 어르신들의 테이블을 보면 여름에도 온음료가 더 인기인 듯 보였다.

그밖에도 경상감영공원 한켠에는 늘 장기판이 벌어진다. 장기판은 서너 곳 정도로 직접 두는 어르신들이 긴 벤치에 앉고, 그를 에워싸 훈수 두는 어르신들이 서서 관전하는 풍경이 매일 펼쳐진다. 그리고 공원 내 곳곳에 놓인 벤치에는 신나는 음악을 틀어놓고 혼자 혹은 함께 쉬고 있는 어르신들이 자주 보이고, 손을 꼬옥 잡은 어르신 커플들이 여기저기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도 볼 수 있다.
향촌동 쪽 수제화점들과 더불어 양장점, 수선집 등이 있지만, 어르신들의 패션 관련 상점들은 교동에 밀집해있다. 교동의 중심인 동아백화점은 저렴한 아울렛으로 변모했고, 그 일대 시장에는 어르신들의 패션을 주도하는 색색의 다양한 개성의 상점들이 도열해있다. 속옷, 운동화는 말할 것도 없으며, 개량한복, 세련된 스카프와 원피스, 밀리터리룩이나 청바지, 모자, 타이즈와 양말만 취급하는 곳 등 없는 것이 없다. 북성로에서 교동으로 건너가는 중앙대로에는 구제 옷가게들이 들어서 있다. 쇼핑을 하다 고픈 배를 간단히 채울 수 있도록 하는 빈대떡, 떡볶이, 납작만두 등 다채로운 노점들이 사이사이에 들어서 있다.

이곳으로 오가는 교통수단은 자가용, 버스, 지하철 등이 있지만, 주말에는 북성로 일대에 무료로 주차를 할 수 있어 자차를 이용하는 어르신들을 자주 볼 수 있다. 버스나 지하철 운임은 무료라서 가장 보편적인 교통수단이며, 경상감영공원과 대보무궁화백화점 쪽으로 오시니 중앙로역 3번, 4번 출구 쪽이 붐빈다. 북성로 일대는 어르신들의 활동 시간에 맞춰져 있는 관계로 일찍 문을 열고 닫는다. 그래서 점심 경부터 활기를 띠다 해질녘이 되면 점차 낮의 활기가 사라지고, 술집이나 노래방 등도 저녁 10시면 대부분 마감을 한다. 이곳에는 수제화 장인, 공구 장인, 시계 장인이 있는 곳이고, 동시에 맵시 있는 패션의 어르신들이 모여드는 장소이며, 여가생활과 패션, 저렴한 음식, 단골 다방, 친구와 사랑까지. 번성했던 시간이 고스란히 스며 오래된 멋이 깃든 공간들이 있고, 이와 함께 늙어 온 어르신들이 있는 곳, 북성로 일대의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