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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공감 – 릴레이기고#3
빛과 아스콘
김박현정 / 사진가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겼다.
(창세기 1장 3절)
– 시각의 시작
서양문화의 근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성경을 읽다 보면 오늘날 시각 문화에도 유효하게 적용되는 부분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성경의 첫 시작 부분인 창세기에는 하늘과 땅이 생긴 이후에 빛이 생겨났다고 기록되어있다. 하늘과 땅이 먼저 생겨났지만, 빛의 존재로 인해 비로소 하늘과 땅이 구별되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빛이 생김으로 인해 우리 또한 빛으로부터 하늘과 땅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 즉 시각을 얻게 되었다. 창세기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모든 것은 빛으로부터 나온다. 사진의 시작점 역시 빛이다.
빛으로 수평선과 지평선이 구분되는 모습을 촬영한 사진
– 어두운 방
사진의 공식적 시작은 1839년 다게레오 타입이 공식적인 특허를 받으면서 부터지만, 사진의 원리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다. 모든 것의 출발점과 함께 사진 역시 ‘빛’의 원리로부터 시작한다. 빛이 통하지 않는 어두운 방에 작은 구멍을 뚫으면 이 어두운 방 안에는 빛이 들어오게 되고, 함께 바깥의 풍경이 어두운 방 안에 거꾸로 비치는 신기한 현상이 발상하게 된다. 바로 카메라의 시초인 카메라 옵스큐라(어두운 방)의 원리다. 이 어두운 방의 현상을 아리스토텔레스(384~322 BC)가 이미 알고 있었고, 또한 우리나라에서도 사진이 발명되기 이전인 18세기에 다산 정약용 선생도 알고 있었다. 선생은 자신의 저서인 「여유당전서」에 카메라 옵스큐라를 ‘칠실파려안(漆室玻瓈眼)(칠실(漆室)은 어두운 방, 파려(玻瓈)는 유리, 렌즈, 안(眼)보다)으로 소개했다. 하지만 이때 까지만 해도 순간적인 영상에 지나지 않았다.
– 시각에서 이미지로
오래전 사진의 원리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존재했지만, 신기한 현상으로만 남아있었다. 1826년 조셉 니세포르 니엡스(Joseph Nicephore Niepce)가 ‘역청'(bitumen)을 이용해 상을 정착시키는 데에 성공했고 이어서 1839년 자크-망데 다게르(Louis Jacques Mandé Daguerre)가 다게레오 타입을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으면서 사진의 역사는 시작한다. 사진 역사의 출발과 함께 많은 변화가 생겨났다. 사진의 등장은 빛을 바라보는 인식 전환의 시작점이었다. 사진의 발명으로 더는 시각의 재현에 머무를 필요가 없게 되면서 인간의 시각 자체에 집중해 빛을 새롭게 인식하기 시작했다. 인상주의의 출발이었다. 1872년 클로드 모네(Claude Monet)의 회화는 대상을 재현하던 이전과는 다른 회화작업을 보여주고 있다. 단순한 대상의 재현의 아닌 눈의 시각작용에 의한 잔상과도 같은 효과를 보여줌으로써 표현으로 나아가게 된다. 사진은 빛 자체를 직면할 수 있게 했고, 여기에서 빛은 시각(본 것을 옮기는 것)에서 이미지(image, imagination)로 향하게 된다. 빛은 보는 것을 가능하게 하고, 상상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사진의 시작과 함께 빛의 방향 전환이 이루어졌다. 바깥에서 안으로 즉, 대상에서 눈으로 방향 전환이 일어난다. 마치 카메라 옵스큐라에서 바깥의 빛의 어두운 방을 향해 직진해 나아가는 것처럼 빛은 이제 우리의 눈을 향한다.
– 카메라와 눈
카메라와 눈은 비슷한 구조로 되어 있다. 비교해보면, 카메라의 렌즈는 눈의 수정체에 해당하고, 조리개는 홍채, 셔터는 눈꺼풀, 지지체(필름, 이미지센서)는 망막의 역할을 한다. 카메라 옵스큐라처럼 바깥의 빛이 어두운 방을 향해 직진하는 것처럼
이제 열린 우리의 눈(작은 구멍)을 통해 세상의 빛이 우리(옵스큐라)에게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 자체로 빛을 반영하는 카메라 옵스큐라가 된다.
– 이미지
빛에서 출발한 이미지는 빛에는 빛과 어둠이 있듯, 이중적 속성을 갖게 된다. 우선 이미지의 사전적 의미를 검색해보면,

1. (거울·카메라·화면 등에 나타난) 상[모습]
2. (마음속에 떠오르는) 영상[상/심상]
이미지는 1. 형상이 있는 이미지와 2. 형상이 없는 이미지로 나눌 수 있다. 전자는 말 그대로 대상을 재현하는 이미지, 대상이 있는 이미지이고 후자는 대상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보아왔던 것을 토대로 떠올리는 마음속의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사진은 빛에서 출발한 매체이므로 이 이중적 속성을 다 가지고 있다. 반드시 대상(피사체)이 있어야 사진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겠지만, 꼭 대상이 존재해야만 사진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포토그램’은 빛과 지지체만 있으면 얼마든지 이미지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카메라는 빛을 이용해 이미지를 만드는 도구로 본질적이고 보편적인 것에 가까이 닿아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은 1839년 발명되어 우리 앞에 나타났을 때, 혁신적이고, 혁명적인 것으로 여겨졌지만 빛의 관점에서 본다면 사실상 사진의 원리는 태초에 빛이 생겨났던 것처럼 우리가 눈치채지 못했을 뿐 늘 언제나 우리 곁에 있었다.
– 보편적 매체
1839년 ‘공식적으로’ 인정된 다게레오 타입이 아닌 1826년 조셉 니세포르 니엡스(Joseph Nicephore Niepce)가 자신의 집 창가에서 카메라 옵스큐라를 이용하여 만들어낸 ‘최초의 사진’으로 돌아가 보면 또 다른 단서를 얻을 수 있다. 니엡스가 최초로 상을 고정한 지지체는 ‘역청(bitumen)’으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아스팔트의 재료이다. 그리고 이 ‘역청’은 창세기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를 만드는 데 사용된 접착제이기도 하다. 니엡스가 ‘역청’을 지지체로 사용했던 것은 우연이었을까, 필연이었을까?
concreteprequel_A1,59.4×84.1cm,archival pigment print,2018
‘역청(bitumen)’은 다른 말로 아스팔트 콘크리트(아스콘)라고 부른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는 사진과 또 다른 유사점을 갖고 있다. 사진 매체가 가지고 있는 특징을, 아스팔트와 콘크리트가 또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초창기의 사진과 같이 아스팔트 콘크리트는 점성을 가진 액체 상태에서 시작해 고체로 굳기까지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때의 시간 동안의 외부 흔적의 개입이 물체에 그대로 새겨진다. 이러한 아스팔트 콘크리트의 특성에서 노출 시간이 긴 사진을 떠올릴 수 있다. 니엡스가 자신의 방에서 8시간 동안 빛에 노출시켜 사진 이미지를 얻은 과정과 굉장히 흡사하다. 그리고 대상의 흔적을 그대로 담아내는 아스팔트 콘크리트는 사진의 지표적 특징과 본질적으로 유사하다. 이렇게 사진과 아스팔트 콘크리트가 참 많이 닮아있다. 여기에서 이들이 ‘재료’가 아닌 ‘매체’로 기능할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빛과 어둠이 삶과 죽음을 내포하고 있는 것처럼 사진 역시 그 자체로 삶과 죽음을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아스팔트 콘크리트에서도 삶과 죽음을 엿볼 수 있다. 이제는 누구나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보편적 매체인 사진처럼 아스팔트 콘크리트도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보편적 매체라고 할 수 있다. 사진과 다르면서도 같은 ‘사진적 매체’로 전 세계 곳곳에 퍼져 있다.
대구사진비엔날레 국제젊은사진가전 <화법장치> 설치전경
공;간극 스케일그레이스케일 설치전경
김박현정- 최근 사진과 콘크리트의 유사관계와 사진매체에 대해 고민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