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리뷰

목차보기
문화리뷰
Print Friendly, PDF & Email
문화리뷰
고독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 장유경의 춤 <겨울 나그네>
이승욱 / 월간 <대구문화> 취재기자
가끔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같은 작품이 흥미로울 때가 있다. 이 작품은 알려진 대로 고독한 인간의 방황을 보여주는 가곡이다. 즉 쓸쓸함으로 대표되는 고독의 노래인 셈이다. 그런데 막상 공연을 관람하면 종종 이상한 광경 하나를 마주하게 된다. 무대에 울려 퍼지는 노래와는 별개로 또 다른 고독의 광경이 객석에서 펼쳐지곤 하는 것이다.
광경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알아채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예컨대 객석에 앉아 억지로 하품을 죽이느라 애쓴 경험이 있다면 말이다. 이는 대부분 클래식 공연과 같이 정적인 관람 방식에서 주로 나타나는 모습이다. 일종의 괴로움이다. 음악에 관심이 없더라도 혹은 취향에 맞지 않더라도, 공연이 끝날 때까지는 오로지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한다는 그런 괴로움. 그 속에서 관객들의 얼굴이 유달리 고독해 보이는 이유다. 물론 모든 공연이 그럴 리도, 모든 관객이 공연을 괴로워할 리도 없다. 다만 <겨울 나그네>가 흥미로운 것은 그것이 하필 고독의 노래라는 점에 있다.
이번 공연의 오프닝을 장식한 장유경의 무대ⓒSang Hoon Ok
지난 연말 대구콘서트하우스에서 계명대 장유경 교수가 작곡가 권은실과 함께 <겨울 나그네>를 선보인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무용과 클래식이라는 장르 간의 시너지보다는 어떤 고독들의 결합이 먼저 떠올랐다. 무엇보다 두 장르 모두 정적인 관람을 요한다는 게 이유였다. 공연 장소인 챔버홀이 주로 클래식 독주회가 열리는 공간이라는 점도 그랬다. 실제로도 이번 공연은 그처럼 정적인 관람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그 방식이 괴롭거나 하지는 않았다.
간혹 관객과 함께 박수치고 뛰노는 공연이 관객을 고독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반대로 정적인 관람이 관객을 동요시킬 때도 있다. 관람의 방식이 문제가 아니라는 뜻인데, 그럼에도 객석에 조용히 앉아 공연을 관람하는 데는 어떤 감내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다시 말해 견딜 수 있는 고독이 필요하다. 그것이 제아무리 ‘고독의 노래’라고 해도 말이다.

물론 이번 공연은 일반적으로 성악가들의 독창이 주가 되는 기존의 <겨울 나그네>와는 다른 성격의 공연이었다. 무용이 전면에 나선다는 점에서 시각적인 차별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정적인 관람을 감내할 만큼의 새로운 형식이었는지는 의문이다. 이 두 장르 간의 결합은 이미 오래전부터 보편화된 방식이기도 했거니와, 이번 공연은 일반적인 무용 공연과 비교해도 상대적으로 소박한 형태의 공연이었기 때문이다.

어항을 활용한 이준모의 공연ⓒSang Hoon Ok
정적인 관람이 문제 되지 않은 이유는 오히려 다른 데 있다. 사실 <겨울 나그네>는 슈베르트의 재해석으로 널리 알려진 작품이기도 하다. 친구인 뮐러가 쓴 동명의 시 24편을 고스란히 24곡의 서사적인 가곡, 즉 연가곡으로 작곡한 것이 이 작품이다. 그러니까 사랑을 잃은 청년이 고독한 모습으로 겨울날을 방황한다는 이 이야기는 본디 뮐러의 것이지만, 슈베르트의 새로운 음악적 서사를 통해 비로소 고독한 인간의 전형을 획득하게 된 셈이다.

이번 공연은 다름 아닌 이 방식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었다. 슈베르트가 완성한 이 작품을 장유경은 무용으로, 권은실은 음악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모든 고전의 무대가 재해석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방식은 여전히 전통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객석에 앉아 어느덧 저절로 이 공연에 몰입하게 된 것은 그것이 단순한 리바이벌로서의 재해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슈베르트가 그랬듯 자신들의 재해석이 결국 또 하나의 새로운 서사로 이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독특한 솔리스트 무대를 선보인 박금희ⓒSang Hoon Ok
실제로 이번 공연은 기존의 이야기를 새로운 고독의 노래로 풀어내고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겨울 나그네>의 마지막 곡 ‘거리의 악사’를 오프닝 무대로 선보였다는 점이다. 방황하는 나그네와 늙은 악사의 만남을 담은 이 곡은 이번 공연이 기존 작품의 여운을 그대로 간직하면서도 그것이 또 다른 시작이라는 의미를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여기에 이 무대를 장식한 주인공은 다름 아닌 예순 나이의 장유경이었다. 그는 홀로 무대에 올라 진중한 몸짓으로 <겨울 나그네>의 새로운 끝과 시작을 몸소 보여주었다.

이처럼 상징적인 오프닝 무대를 시작으로, 이번 공연은 기존의 곡들을 선별적으로 차용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새롭게 풀어나갔다. 특히 24개의 전곡 대신 13개의 곡만을 활용해 간결하면서도 압축적인 서사를 완성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기존 작품의 흐름 또한 정도껏 반영하고 있었다. 무대는 물결처럼 굴곡진 투명한 벽으로 꾸며졌는데, 관객의 입장에서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눈과 얼음, 그리고 앙상한 숲을 거니는 나그네의 여정을 상상할 수 있었다. 말하자면 미니멀한 분위기의 <겨울 나그네>였다.

젊은 현대무용가들이 꾸민 무대ⓒSang Hoon Ok
흥미로운 점은 그럼에도 이번 공연이 어떤 애절함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는 것이다. 분명 사랑을 잃은 청년의 절망과 괴로움이 호소력 있게 울려 퍼지는 형태의 공연은 아니었다. 단순히 분위기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대부분의 <겨울 나그네>가 성악가들의 독창으로 진행되는 이유는 그것이 이러한 개인의 고독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방식인 까닭이다. 무대 위 주인공이 고스란히 고독의 주인공이 되는 셈이다. 대신 이번 공연은 공교롭게도 그 방식을 애절함이 아닌 독특한 오버랩의 형태로 펼쳐내고 있었다.

장유경을 필두로 다양한 세대와 장르를 대표하는 무용수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였다. 이로 인해 매 무대마다 서로 다른 모습의 고독한 나그네들을 만날 수 있었다. 어항을 활용해 아크로바틱에 가까운 몸짓을 보여준 이준모, 중견 발레리나만의 독특한 솔리스트 무대를 선보인 박금희를 비롯해 김용철, 최두혁, 김우석, 김현태, 김정미, 서상재 등 중견 및 신진 무용가 10여 명의 무대가 차례로 펼쳐졌다.

한국무용에서부터 현대무용과 발레 그리고 독무에서 군무까지 그 형식도 다양했다.
권은실이 연출한 음악적 구성도 이와 호흡을 같이했다. 피아니스트 조영훈과 첼리스트 구희령의 협연으로 바리톤 김동섭이 고독한 나그네의 목소리를 노래했는데, 간혹 성악이 아닌 피아노 혹은 첼로 연주로만 나그네의 심경을 표현해 눈길을 끌었다. 서로 다른 모습의 무용수들처럼 바리톤과 악기로 구현된 나그네의 모습도 다르게 보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김현태, 김정미, 서상재의 무대ⓒSang Hoon Ok
물론 어떤 면에서 이들의 재해석 방식이 크게 낯설거나 놀라운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처럼 서로 다른 모습의 무용수들과 성악가, 연주자들이 나그네의 심경을 거쳐 갈수록 점점 더 선명해지는 지점도 있었다. 수많은 오버랩으로 축적된 그것은 결국 이들이 추구하는 새로운 고독의 노래가 추구하는 지향점이기도 했다. 비록 그것이 애절함과는 거리가 먼 노래하고 할지라도 말이다.

이번 공연의 마지막이 <겨울 나그네> 중에서도 가장 절망적인 장면을 그린 ‘여관’으로 꾸며진 것은 그래서 더 의미심장했다. ‘무덤’을 뜻하기도 하는 이 곡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김용철이었다.

자기 키의 몇 곱절이나 되는 검은 천을 활용해 무대를 가로지르는 그의 독무는 이번 공연 가운데 가장 절망적이면서 고독한 나그네의 모습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문득 노래하는 성악가의 몸을 과감하게 터치했을 때, 그것은 이번 공연이 왜 애절할 수 없는지를 말해주는 결정적인 장면이 되었다.

검은 천을 활용한 김용철의 공연ⓒSang Hoon Ok
이번 공연의 주인공은 과연 누구인가. 무용과 음악이 처음으로 몸을 맞댄 그 순간 알 수 있었다. 이들의 작품 속에서 고독한 나그네란 결국 어느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즉 혼자가 아니었다. 무용수나 성악가나 연주자 모두 그랬다. 그것은 서로 다른 모습들의 고독들이 <겨울 나그네>라는 이름으로 만나는 지점과도 같았다. 이들이 선보인 새로운 노래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겨울 속을 걸어가는 나그네의 이야기가 어느덧 모두의 이야기로 확장되는 순간이었다.

연출을 맡은 장유경이 공연 서문에 쓴 “슈베르트가 걷고 뮐러가 걸었던 그 겨울의 발자국을 따라 함께 하는 이들”이라는 표현이 문득 더 깊숙한 의미로 다가온 이유다. 다시 말해 그것은 <겨울 나그네>로 대표되는 한 인간의 고독이 결코 어느 개인의 고독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공감의 차원을 넘어 그런 고독이 누구나의 보편적인 고민인 동시에 공동체적인 고민일 수 있다는 것을 직접적인 무대로 보여준 셈이다.

장유경ⓒSang Hoon Ok
그렇다면 이번 공연의 또 다른 주인공은 누구인가. 그것이 누구인지를 알아채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예컨대 객석에 앉아 억지로 하품을 죽이느라 애쓴 경험이 있다면 말이다. 그렇게 우려했던 관객의 고독마저 작품으로 오버랩 시킨 이들의 새로운 <겨울 나그네>는 더 이상 고독하기만 한 이야기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