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예술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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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예술의힘 – 캐리커처 에세이
비평가, 김윤수 선생님을 회고하며
김기수 / 대구예술발전소 예술감독
김승윤 / 캐리커처
지난해 늦가을 김윤수 선생님의 부고를 듣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은 한국 미술비평계에서 그의 위상이 한 번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채 눈을 감게 되셨다는 짙은 아쉬움이었다. 사실 아쉬움이란 표현은 적절치 않아 보이는데, 그것은 나를 포함한 관련 미술인들의 직무유기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하여 <창작과 비평사>에서 조만간 선생님께서 그간 쓰신 글들을 모아 전집(또는 비평집)을 낼 계획을 갖고 있는 것 같은데, 비평가로서 선생님의 위치가 제대로 규명되는 자리가 되길 기대해 본다.

김용태 외 엮음, 『민족의 길, 예술의 길』( 2001.)
2018년 11월 29일 선생님께서 세상을 떠났을 때 대부분의 언론매체들은 선생님의 칭호를 ‘민중미술의 대부’나 ‘민족예술이론의 지주’ 등을 붙여 부음을 전했다.1) 미술계에서 선생님의 위치는 언제나 민중미술과 민족예술의 선상에서 자리매김 되었고, 그것은 거의 이견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통용되어왔던 듯하다. 나는 이러한 자리매김에 어느 정도 동의하면서도 좀 다른 생각을 가져왔다. 그것은 선생님께서 2001년 (당시 미국유학 중이던) 내게 보내주신 영남대학교 정년기념 논문집을 펼쳐봤을 때 가졌던 의문에서 비롯되었다.

정년기념 논문집에는 비평가로서 김윤수(이하 존칭생략)의 위상을 논하는 지면은 없었고 거의 민족미학, 민족예술, 민중미술이란 용어로 가득 채워졌다.2) 내가 논문집을 읽으면서 의문을 가졌던 것은 21세기 미술담론에서 이러한 용어들을 내세우며 김윤수의 비평적 관점을 거의 예외 없이 민족과 민중이란 프레임(frame) 속에 가두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나는 이 에세이에서 이러한 프레임으로부터 다소 자유로운 비평가 김윤수의 미술사적 위상을 그의 주요 저작을 통해 간략하게 스케치해 보고자 한다.

내가 문학에서 미학을 거처 미술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데 중대한 영향을 미친 책이 바로 1975년에 출간된 김윤수의 『한국현대회화사』이다.3)

지금은 서점에서 구입할 수 없는 이 책을 내가 처음 읽은 것은 1980년대 후반쯤이었을 것이다. 당시 미술비평계의 분위기는 서구의 형식주의 모더니즘의 관점에서 앵포르멜 계열의 미술을 옹호하는 이경성, 이일, 오광수 등의 기존의 평단과 이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취하며 민중미술, 민족예술을 지향했던 김윤수, 성완경, 윤범모 등의 진영으로 양분되어 있었다.
이 양자의 간극을 단적으로 증명했던 것은 아마도 1987년 미술평론가협회(회장 이일)가 김윤수를 비롯한 민중미술평론가 5명을 제명한 (비록 후자는 개의치 않고 독자적 협회를 조직해나가고 있었지만) 사건일 것이다. 그런데 당시 미술계나 비평계는 이처럼 양분되어 있다고는 하나 한국 미술제도(즉, 미술대학, 미술잡지, 미술기관 등)는 양적으로 모더니즘 계열의 미술이 지배하고 있었다. 나는 해방 이후 모더니즘 계열의 미술이 지배하고 있던 한국 평단에서 김윤수는 독보적인 비평관을 제시하고 있었다고 평가한다.

김윤수,『한국현대회화사』(1975)
김윤수의 비평적 관점은 당시 1970, 80년대에도 특출하였지만 21세기에 접어들어 전지구적으로 개진된 컨템퍼러리 아트(즉 현대미술)의 맥락에서 한층 주목받을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 그의 비평적 관점의 강점은 무엇보다 철저한 ‘역사의식’에 의거한 미술사관에 있으며, 특히 한 시기의 미술이 ‘오늘의 미술과 어떻게 관련되어 지는가를’ 집요하게 묻고 답하는 데 있었다.4) 이러한 관점에서 김윤수는 우선 기존의 한국 근대미술과 현대미술의 미술사적 구분의 문제와 한계를 분명하게 통찰할 수 있었다.
구체적으로, 이경성, 이일, 오광수 등은 한국 근대미술과 현대미술의 분기점을 1957년 경 앵포르멜의 등장에 두며, 전자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시작된 인상파(김관호, 이인성, 오지호 등)와 추상미술(주경, 김환기, 유영국)로, 후자는 1957년 이후 앵포르멜의 본격적 등장 이후로 구분하고 있는데5) 이는 이중적으로 모순과 혼란을 초래했다. 그것은 미술사적으로 모더니즘 미술로 분류되는 해방 이전의 인상파와 추상미술과 해방 이후의 앵포르멜과 단색화(박서보, 김환기, 유영국 등)를 시대적, 양식적으로 구분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6)
그리하여 기존의 평단은 미술사적으로 동일한 모더니즘 계열의 미술을 근대미술과 현대미술이란 용어로 시대 구분해왔기 때문에, 1960년대 이래 한국을 포함해 세계적으로 전개된 탈모더니즘 계열의 미술을 서술할 용어나 방법에서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이다. 컨템퍼러리 아트의 담론에 따르면, 형식적, 심미적 모던 아트는 1960, 70, 80년대를 거치며 개념적, 비판적 컨템퍼러리 아트에 의해 미술사적으로 이미 대체되었다.7) 그런데 한국미술계는 이처럼 결코 하나의 용어로 묶을 수 없는 이 양자의 미술을 (제도적으로 구분하고 있는 일본과 중국과는 과는 달리) 아직도 ‘현대미술’이란 용어로 통칭하고 있는 실정이다.8)

이러한 기존의 평단에 맞서, 김윤수는 한국 현대미술의 바른 좌표를 설정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한국 근대시대와 근대미술의 문제에 대한 비판적 성찰로부터 접근할 것을 제안했다. 김윤수는 근대(과거)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현대(현재)도 제대로 알 수 없으며, 근대미술의 문제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현대미술의 과제도 제대로 알 수 없다고 단언하며, 우선 서구의 근대와 한국의 근대, 서구의 근대미술과 한국의 근대미술의 관계와 차이의 문제를 제대로 인식할 것과, 이를 바탕으로, 한국의 현대미술의 좌표를 수립해 나갈 것을 역설했던 것이다.9)

구체적으로 김윤수는 서구의 근대와 모던 아트, 한국의 (모더니즘 계열의) 현대미술이 왜 한국의 진정한 근대와 모던 아트, 현대미술(즉 컨템퍼러리 아트)가 될 수 없는지를 다음과 같은 논조로 지적했다. 서구 근대는 시민계급이 봉건제를 타파하고 근대국가를 수립했지만 프티 부르주와지를 배반하고 제국주의로 나아갔던 모순성 때문에 한국 근대의 모델이 될 수 없고,10) 또한 서구의 형식주의 모던 아트와 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기존의 한국 근대, 현대미술은 철저하게 당대 역사적 현실과 유리되었기 때문에 우리의 진정한 현대미술이 될 수 없고, 진정한 현대미술이란 동시대 현실과 관계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11)

이러한 김윤수의 비평적 관점의 중요성은 당시 1980년대 부상하고 있던 민중, 민족 미술을 한국의 진정한 현대미술로 평가하게 했던 데도 있었지만 나아가 21세기 컨템퍼러리 아트의 담론과도 긴밀하게 맞닿아 있다는 데 있다. 오늘날 컨템퍼러리 아트의 관점에서 볼 때, 김윤수의 미술사관과 비평사관은, ‘예술을 위한 예술’이나 ‘예술지상주의’의 모더니즘 미학을 수용하며 미술을 현실과 유리시켜왔던 기존의 비평계와는 대조적으로, 매우 앞서 있었던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 1)유홍준, 「민족예술의 등불, 김윤수 선생의 삶에 대한 증언」, 『창작과 비평』, 3월호, 2019, p. 367.
  • 2)김용태 외 엮음, 『민족의 길, 예술의 길』(김윤수 교수 정년 기념기획 간행위원회 엮음), 창작과 비평사, 2001.
  • 3)김윤수, 『한국현대회화사』, 한국일보사, 1975.
  • 4)김윤수, 「한국 근대미술 – 그 비판적 서설」, 『한국현대회화사』, 한국일보사, 1975, pp. 7-10.
  • 5)이경성, 『한국근대미술연구』, 동화출판사, 1974; 이일, 「우리 미술의 동향」, 『창작과 비평』, 1967년 봄호; 오광수 외, 『한국추상미술 40년』, 재원 1997.
  • 6)최열, 「한국 근현대미술 기점에 관한 인식」, 『한국근현대미술사학』 22호, 2011, pp. 9-22. 최열은 이러한 이경성의 시대구분 방식이 최근까지 후속 연구자들에 의해 철저하게 관철되었다고 주장한다.
  • 7)Terry Smith, What Is Contemporary Art?,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9; 김기수, 「’1989년 이후 컨템퍼러리 아트’에서 ‘동시대성’의 문제」, 『현대미술학논문집』 21권, 2017, pp. 53-112.
  • 8)김기수, 「어떻게 컨템퍼러리 아트를 번역할 것인가?」, 『서양미술사학회논문집』 48집, 2018, pp. 211-237. 이를테면, 서울 국립현대미술관은 영문으로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MMCA)로 표기하고 있다.
  • 9)김윤수, 「광복 30년의 한국 미술」, 『한국현대회화사』, pp. 161-212.
  • 10)김윤수, 「한국 근대미술 – 그 비판적 서설」, 『한국현대회화사』, pp. 8-48.
  • 11)김윤수, 「한국 미술의 새 단계」, 『한국 현대미술의 반성』, 한겨레, pp. 182-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