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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문화도시사업
새로운 리듬을 만드는 문화도시 대구
우영민 / (사)인문사회연구소 연구원
영국 등 영연방 국가들에서는 크리스마스 다음 날을 ‘복싱데이(boxing day’라 부른다. 크리스마스에도 일하는 사람들에게 휴가나 선물을 주는 관습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2018년 12월 26일, 크리스마스가 하루 지난날, 크리스마스 공연과 전시, 문화행사로 지쳐있던 대구의 예술인, 스태프, 기획자들에게 짧은 문자 메시지가 기사 링크와 함께 전달됐다. “대구, 문화도시 승인됐습니다”. 짧게는 1년, 길게는 5년 동안의 준비과정에 대한 선물처럼 느껴졌다.
문화도시 정책토론회 / 2018.03.09
문화도시는 지역별로 특색 있는 문화자원을 활용해 문화 창조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지역문화진흥법에 따라 지정된 도시를 말한다. 지방자치단체에서 향후 5년 동안의 문화도시 조성계획을 문체부에 제출하면, 문체부는 현장실사, 최종발표회 등의 절차를 거쳐 문화도시 조성계획을 승인·의결한다.
문화도시 현장검토 / 2018.10.15
지난해 8월, 18개 지자체에서 문화도시 조성계획을 문체부에 제출했고 문화도시심의위원회는 소정의 과정을 거쳐 제1차 법정 문화도시 예비도시로 대구를 비롯해 10개 도시의 문화도시 조성계획을 승인했다. 대구는 법정 문화도시로 가기 위한 첫 번째 과정을 통과한 것이다. 그중에 대구는 유일한 광역자치단체로서 승인을 받았다.

문화도시 조성계획 수립 과정에서 대구의 특색 있는 문화자원은 무엇일지에 대해 논의가 오갔다. 2014년 선정된 문화특화지역조성사업에서는 뮤지컬·오페라를 비롯한 ‘공연’이 대구의 특화 콘텐츠였다면 이번 문화도시 사업은 결이 조금 달랐다. 기존의 문화 사업들이 큰 축제를 개최하거나 특정 장르를 지원하거나 대형 인프라 건축을 통해 지역문화의 발전을 노린 사업이었다면 문화도시 사업은 그 반대다. 지역사회 주도의 지역공동체가 이 사업의 핵심이다. 중앙·관 주도가 아니라 지역이 중심이 되고 시민이 주도하는 거버넌스를 우선 만들어야 했다.

기초-광역 자치단체간 관계자 회의 / 2018.08.21
당사자, 연구진으로 구성된 워킹그룹에서는 문화도시 거버넌스 구축을 위해 문화생태계를 영역과 섹터로 나누어 봤다. 공공기관·단체, 전문예술단체, 인디·자립단체, 시민문화, 문화산업 5영역으로 나누었고, 이를 또다시 공공부터 민간까지의 스펙트럼으로 5개 섹터로 나누었다. 25개의 매트릭스를 펼쳐놓고 보니 대구 문화생태계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대구시 도시문화 연관 생태계 참여자 및 단체 2,578개 가운데 78.3%(약 1,900여 개)는 인디·자립 단체와 시민문화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그중에서 공공분야에서 속하지 않고 제도권 밖에서 분절적, 고립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약 1,600여 개의 주체들이 나타났다.

대구 문화생태계 중 허리 역할을 하는 이들은 제일선에서 대구문화를 떠받들고 있었다. 그러나 그간 개인과 단체를 경쟁시키는 공모 방식의 지원체계, 장르 중심의 지원방식으로 인해 제도권에 속한 소수 단체만이 전면에 드러나 있고 이들 소수에게 문화 행정의 지원이 몰입되어 있었다. 지금까지 직접적인 지원이 없던 생태계 허리 영역으로 직접 지원과 응원 등 시선 이동이 필요했다. 이들이 바로 대구의 ‘특색 있는 문화자원’이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대구의 문화자원을 활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았다. 각 분야별 당사자들이 참여한 워킹그룹에서 공공기관·단체, 전문예술단체, 인디·자립단체, 시민문화, 문화산업 다섯 개 분과를 만들었고 자발적인 분과별 라운드테이블을 수십 차례 진행했다. 콘셉트는 ‘내 친구를 소개합니다’였다. 각 분과의 간사들이 자발적으로 참여자들을 수소문하고, 새롭게 라운드테이블에 참여한 참여자들이 다음 모임에 자신의 친구들을 라운드테이블로 초청을 하는 방식이었다. 그간 비슷한 분야, 업계에서 일하고 있지만 누가, 어느 지역을 기반으로, 어떤 방식의 활동을 하는지는 잘 몰랐던 게 사실이다. 라운드테이블을 통해서 문화도시의 이슈를 공유하고 공론화하는 과정을 약 5개월 동안 이어왔다.

대구광역시 도시문화 네트워크 워크숍 / 2018.10.10
문화도시 라운드테이블에는 지금껏 대구에서 있었던 여러 방식의 협의기구, 모임의 방식과는 큰 차이점이 있다. 가장 먼저 서로 연락을 취하고 라운드테이블을 꾸려나간 사람들은 젊은 실무인력들이었다. 기존에는 협의를 위해서 주로 테이블에 앉았던 사람들은 각 기관의 대표이거나 단체의 장이었다. 많은 경험과 노하우, 정책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있을 수 있겠으나 결국 사업을 적극적으로 실행해나가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협의의 결과를 실질적으로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들은 각 기관과 단체의 실무인력이지 대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분과별 모임에서 문화도시 협의체 구성원을 추천하고, 그 문화도시 협의체에서 문화도시 센터와 사무국에서 진행할 사업들에 대해 균형추를 잡아주는 역할을 수행한다면 진정한 문화도시로의 거버넌스가 되지 않을까 예상한다.

앞으로는 5개 분과에 추가로 지역 기반의 문화예술 커뮤니티가 추가되어 더욱 다양한 라운드테이블이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대명공연예술센터를 중심으로 한 60여 개의 극단이 있고, 대구음악창작소 · 클럽헤비 · 락왕 · 레드제플린 등을 거점으로 한 지역음악 커뮤니티가 그물망처럼 형성되어 있다. 아직 발굴되지 않은 대구의 문화예술 생태계의 주체들을 끊임없이 발굴하고 연결하는 작업이 문화도시 사업과 함께 병행되어야 한다.

대구문화도시 비전포럼 / 2018.12.18
아울러, 지금껏 다소 분절적으로 진행되어 온 분과별 모임은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하는 유연한 형태로 변화되어야 할 것이다. 올해 예비사업 기간에 진행되어야 할 프로젝트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분과 구분을 넘어서는 대구 문화 신(scene)의 공공선을 위한 프로젝트다. 대구 문화도시의 중요한 자원이 대구의 문화생태계 그 자체라면, 문화도시 사업은 그 신을 건강하게 넓혀가는 사업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 대구 곳곳에서 벌어지는 작지만 의미 있는 활동들을 문화예술인 스스로 조사하고 기록하여 대구만의 탄탄한 아카이브를 구축해나가는 프로젝트를 기획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프로젝트는 이번 문화도시 (예비) 사업을 통해 지자체·정부의 지원금을 통해 ‘해야만 했던 사업’에서 벗어나 ‘정말로 함께 해보고 싶었던 사업’을 스스로 기획·협력해서 진행해보는 것이다. 정부와 지자체 공모사업, 지원 사업에서는 서로가 경쟁자였고, 그래서 지금껏 어쩔 수 없이 정책의 입맛에 맞는 사업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문화도시 사업은 철저히 당사자와 시민 주도의 상향식 사업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올해 진행될 파일럿 사업은 참여자들이 공동기획을 해보고 자신의 역량을 키워갈 기회일 것이다.

앞으로 6년 동안 행정, 당사자, 시민 모두 대구에서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이 마구 벌어질 예정이다. 우선 당사자와 시민들은 우리 도시에서 필요한 사업들을 스스로 기획하고 실행해 나가야 한다. 그간의 경쟁 관계에서 벗어나 대구의 문화적 공진화를 위해 협력하는 것이다. 기획단계에서 선정되지 못한 주체들이 팔짱 끼고 ‘어디 잘 되나 두고 보자’는 식의 태도가 아니라, 힘을 보태서 보다 좋은 기획과 보다 추진력 있는 사업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관계의 생성이다. 동시에 행정에서는 문화 예술계를 감시하거나 감독하던 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응원하고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기 위해 문화예술과의 신뢰를 구축해 나가는 것이다.
흔히 음악을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가 있다고 한다. 멜로디, 하모니, 리듬이 그것이다. 음악 중에는 멜로디가 없는 음악이 있을 수 있고, 하모니가 없는 음악이 있을 수 있지만, 리듬이 없는 음악이란 성립할 수가 없다. 음의 규칙적인 흐름을 뜻하는 리듬이 없다면 단지 마구 뒤섞여버린 소음에 지나지 않는다. 문화도시 대구에서는 사업의 비전으로서 ‘새로운 리듬’을 만들어보려고 한다. 대구 문화도시를 만들어나가는 주체들은 기존에 없던 새로운 주체들의 탄생이 결코 아니다. 대구의 문화예술인, 대구의 행정, 대구의 시민들이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도시의 문화를 움직여 나가는 과정이다. 수단으로서의 인력이 아닌 ‘사람’으로, 평가되는 프로그램이 아닌 ‘활동’으로, 추상의 공간이 아닌 ‘장소’로, 고립적 주체가 아닌 ‘생태계’로 도시를 바라보는 시선이 새로운 리듬을 만들어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