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도시 조성계획 수립 과정에서 대구의 특색 있는 문화자원은 무엇일지에 대해 논의가 오갔다. 2014년 선정된 문화특화지역조성사업에서는 뮤지컬·오페라를 비롯한 ‘공연’이 대구의 특화 콘텐츠였다면 이번 문화도시 사업은 결이 조금 달랐다. 기존의 문화 사업들이 큰 축제를 개최하거나 특정 장르를 지원하거나 대형 인프라 건축을 통해 지역문화의 발전을 노린 사업이었다면 문화도시 사업은 그 반대다. 지역사회 주도의 지역공동체가 이 사업의 핵심이다. 중앙·관 주도가 아니라 지역이 중심이 되고 시민이 주도하는 거버넌스를 우선 만들어야 했다.
대구 문화생태계 중 허리 역할을 하는 이들은 제일선에서 대구문화를 떠받들고 있었다. 그러나 그간 개인과 단체를 경쟁시키는 공모 방식의 지원체계, 장르 중심의 지원방식으로 인해 제도권에 속한 소수 단체만이 전면에 드러나 있고 이들 소수에게 문화 행정의 지원이 몰입되어 있었다. 지금까지 직접적인 지원이 없던 생태계 허리 영역으로 직접 지원과 응원 등 시선 이동이 필요했다. 이들이 바로 대구의 ‘특색 있는 문화자원’이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대구의 문화자원을 활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았다. 각 분야별 당사자들이 참여한 워킹그룹에서 공공기관·단체, 전문예술단체, 인디·자립단체, 시민문화, 문화산업 다섯 개 분과를 만들었고 자발적인 분과별 라운드테이블을 수십 차례 진행했다. 콘셉트는 ‘내 친구를 소개합니다’였다. 각 분과의 간사들이 자발적으로 참여자들을 수소문하고, 새롭게 라운드테이블에 참여한 참여자들이 다음 모임에 자신의 친구들을 라운드테이블로 초청을 하는 방식이었다. 그간 비슷한 분야, 업계에서 일하고 있지만 누가, 어느 지역을 기반으로, 어떤 방식의 활동을 하는지는 잘 몰랐던 게 사실이다. 라운드테이블을 통해서 문화도시의 이슈를 공유하고 공론화하는 과정을 약 5개월 동안 이어왔다.
앞으로는 5개 분과에 추가로 지역 기반의 문화예술 커뮤니티가 추가되어 더욱 다양한 라운드테이블이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대명공연예술센터를 중심으로 한 60여 개의 극단이 있고, 대구음악창작소 · 클럽헤비 · 락왕 · 레드제플린 등을 거점으로 한 지역음악 커뮤니티가 그물망처럼 형성되어 있다. 아직 발굴되지 않은 대구의 문화예술 생태계의 주체들을 끊임없이 발굴하고 연결하는 작업이 문화도시 사업과 함께 병행되어야 한다.
두 번째 프로젝트는 이번 문화도시 (예비) 사업을 통해 지자체·정부의 지원금을 통해 ‘해야만 했던 사업’에서 벗어나 ‘정말로 함께 해보고 싶었던 사업’을 스스로 기획·협력해서 진행해보는 것이다. 정부와 지자체 공모사업, 지원 사업에서는 서로가 경쟁자였고, 그래서 지금껏 어쩔 수 없이 정책의 입맛에 맞는 사업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문화도시 사업은 철저히 당사자와 시민 주도의 상향식 사업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올해 진행될 파일럿 사업은 참여자들이 공동기획을 해보고 자신의 역량을 키워갈 기회일 것이다.
앞으로 6년 동안 행정, 당사자, 시민 모두 대구에서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이 마구 벌어질 예정이다. 우선 당사자와 시민들은 우리 도시에서 필요한 사업들을 스스로 기획하고 실행해 나가야 한다. 그간의 경쟁 관계에서 벗어나 대구의 문화적 공진화를 위해 협력하는 것이다. 기획단계에서 선정되지 못한 주체들이 팔짱 끼고 ‘어디 잘 되나 두고 보자’는 식의 태도가 아니라, 힘을 보태서 보다 좋은 기획과 보다 추진력 있는 사업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관계의 생성이다. 동시에 행정에서는 문화 예술계를 감시하거나 감독하던 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응원하고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기 위해 문화예술과의 신뢰를 구축해 나가는 것이다.
흔히 음악을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가 있다고 한다. 멜로디, 하모니, 리듬이 그것이다. 음악 중에는 멜로디가 없는 음악이 있을 수 있고, 하모니가 없는 음악이 있을 수 있지만, 리듬이 없는 음악이란 성립할 수가 없다. 음의 규칙적인 흐름을 뜻하는 리듬이 없다면 단지 마구 뒤섞여버린 소음에 지나지 않는다. 문화도시 대구에서는 사업의 비전으로서 ‘새로운 리듬’을 만들어보려고 한다. 대구 문화도시를 만들어나가는 주체들은 기존에 없던 새로운 주체들의 탄생이 결코 아니다. 대구의 문화예술인, 대구의 행정, 대구의 시민들이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도시의 문화를 움직여 나가는 과정이다. 수단으로서의 인력이 아닌 ‘사람’으로, 평가되는 프로그램이 아닌 ‘활동’으로, 추상의 공간이 아닌 ‘장소’로, 고립적 주체가 아닌 ‘생태계’로 도시를 바라보는 시선이 새로운 리듬을 만들어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