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공감

목차보기
문화공감
Print Friendly, PDF & Email
문화공감 – 문화라이프
메트로(Metro)문화
제 1편 대구도시철도 1호선 – 기억을 담고, 삶을 지고.
글_이경희 시각예술작가
지하로 내려간 열차
유년 시절 나는 백과사전에 나온 만국박람회의 사진을 보고 한동안 만국박람회는 기차역에서 열렸을 거라 생각했다. 영국과 프랑스에서 시작된 만국박람회는 각국의 새로운 기술을 소개하기 위해 열린 행사였다. 축구장 몇 배 크기의 공간에 각종 발명품부터 거대한 산업기계, 건축양식에 이르기까지 말 그대로 가져다 놓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전시했다. 당시 만국박람회에 가져다 놓지 못하는 상품은 없었다하니 이 박람회의 규모와 성격을 가히 짐작할 만 하다. 파리의 에펠탑, 런던의 크리스탈 팰리스 같은 구조물과 그 사이로 움직이는 거대한 기계들, 그리고 그 당시 가장 혁신적인 발명품이었던 증기기관차는 아래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박람회장 안까지 들어오게 된다. 아마도 내가 기억하고 있는 장면은 사진과 같은 장면일 것이다.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 (Paris Exposition train, 1889) (출처 : Wikipidia)
1895년 파리의 한 카페에서 최초의 영화 상영회가 있었다. 뤼미에르 형제는 이 자리에서 1~3분 분량의 영상을 여러 편 상영했는데, 그 중 사람들에게 가장 큰 놀라움을 안겨 준 영상은 「열차의 도착(Arrival of a train)1)이었다. 이 영상은 단순히 기차가 플랫폼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선착장에서 카메라로 촬영한 흑백 영상이다. 지금 보면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겠지만 앞서 말했듯 이것은 역사상 최초의 영화 상영회였다. 당시 사람들은 움직이는 사진을 접한 적이 없었다. 그들에게 이 영상은 실제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스크린 속에서 기차가 플랫폼을 향해 점점 다가오자, 이를 구경하던 사람들은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울거나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결국 기차가 화면을 빠르게 스쳐지나갈 때 쯤 카페에 앉아 있던 많은 사람들이 다가오는 기차를 피해 줄행랑을 쳤다는 일화는 지금까지도 영화의 역사를 말할 때 빠지지 않고 회자되는 일화다.

이처럼 한 시대의 중심에 있었던 증기기관열차는 1차 세계대전 이후 도시의 부족한 교통편을 보완하기 위한 방법으로 지하로 달리는 증기기관열차로 운영되었다. 이후, 증기기관 대신 전기를 이용하는 형태로 변형된 것이 지금의 지하철이 되었다. 한국에는 이로부터 100년 뒤인 1974년, 서울지하철 1호선 서울~청량리 노선 7.8km 구간이 개통되어 첫 운행을 시작했다. 이후 현재까지 서울(수도권), 대전, 대구, 부산, 광주 5개 도시에 30여개의 노선으로 확장되어 운행되고 있다.

Grips theater 「1호선(Line 1)」(출처:Grips theater)
1991년 대학로의 한 극단에서는 지하철을 배경으로 한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이 첫 공연을 올렸다. 「지하철 1호선」은 독일의 극작가 폴커 루드비히(Volker Ludwig) 원작, 그리프스 극단(Grips Theater) 공연의 「1호선(Line 1)」을 각색한 작품이다. 원작은 독일 베를린의 U-bahn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원작자 폴커 루드비히는 극단을 오가는 배우와 스텝들이 매일 U-bahn에서 겪은 에피소드들을 들려준 것이 이 작업의 시작이었다고 말한다. 원작 「1 호선(Line 1)」은 아동극이었음에도, 지하철안에서 벌어지는 생생한 이웃들의 모습을 통해 독일 사회의 단면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이후 「1호선(Line 1)」은 독일 뿐 아니라 미국, 영국 등 55개국에서 공연되었다. 한국의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시놉시스와 극의 구조는 유지하면서 극의 배경을 서울 지하철 1호선으로 바꾸어 각색하였고, 한국사회의 모습을 반영시켜 시민들의 공감을 얻었다. 초연이 시작된 1991년부터 2017년까지 총 4000회를 공연하고 막을 내렸다. 한국의 「지하철 1호선」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한국사회의 모습과 우리 시대의 군상들을 극에 담아내어 원작만큼이나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학전소극장 「지하철 1호선」(출처: 학전소극장)
이제 지하철은 거미줄처럼 얽힌 도시의 지하통로를 다니며 동네와 동네, 시민과 시민을 이어주는 가장 서민적인 대중교통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한 때는 낯설고 처음 보는 기계였을 지하철이, 이제 도시에 사는 사람들 가장 가까이에서 매일의 삶을 날라다주는 교통수단이자 친숙한 문화가 된 것이다.
글을 들어가며
기계와 문화를 잇는 지점은 무엇일까. 그건 아마 사람들의 이야기일 것이다. 그래야 기계는 숨을 얻고, 인간의 삶과 문화 속으로 들어올 수 있다. 처음 지하철과 문화에 대한 글을 부탁 받고 나는 지하철이라는 기계와 문화를 과연 연결 지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하철은 단지 전기로 움직이는 운송기계이고 정확한 사용목적과 기능이 있다. 거기에 문화라는 키워드를 끼워 넣으려니 뭔가 억지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사이를 바느질 하듯 연결할 수 있는 무언가 있지 않을까. 오랜 생각 끝에 지하철이라는 기계와 문화를 이어주는 유일한 요소는 바로 지하철을 타고 이리저리 움직여 다닌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모습과 흔적, 기억들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나는 앞으로의 3번의 기고에서 지하철을 배경으로 삶과 사람을 주목한 문학, 시각예술, 공연 등 다양한 문화 예술을 소개하고, 각각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하려 한다. 3번의 글은 각각 대구지하철 1호선, 2호선, 3호선으로 나누어 전개될 것이며, 각 노선을 통해 만날 수 있는 대구의 주목할 만한 장소 혹은 정보도 함께 소개하도록 하겠다. 따라서 이번 첫 번째 글은 대구지하철 1호선에 관한 것이다.
제 1편 : 대구도시철도 1호선 – 기억을 담고, 삶을 지고.
Bill Brandtd의 사진 「Liverpool Street Station underground shelter during the Blitz」(1940)과 Henry Moore의 「Women in a shelter」(1941)
(출처 Museum of London)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런던은 독일의 공습에 시달리고 있었다. 런던 시민들은 공습을 피해 개인 벙커나 공공 대피소로 이동해야 했는데, 그 중 일부의 시민들이 당시 아직 공사 중이던 런던 지하철 역사에서 공습을 피할 수 있었다. 현재까지 운행되고 있는 런던 중앙선의 리버풀 스트리트(Liverpool street)역과 베스날 그린(Bethnal Green)역에는 런던 인구의 5%가 대피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을 그림으로 기록한 화가가 있었으니, 사람이 기대어 앉은 형상의 조각으로 잘 알려진 조각가 핸리 무어(Henry Moore)2)이다.

당시 조각가로 활동하고 있던 핸리 무어는 공습으로 인해 당시 전쟁 상황을 기록하는 전쟁화가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그는 런던 시내를 돌아다니며 각종 대피소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삽화로 그려냈는데, 그 중 대부분이 지하철역에 있는 사람들을 묘사한 그림이다. 당시 핸리 무어는 지하철에서 벽이나 서로의 몸에 기대어 앉거나 반쯤 누워 지내는 사람들의 모습에 대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본인이 만들던 조각품과 똑같은 자세로 누워있는 광경은 처음 보았으며, 지하철이 다닐 빈 터널의 모습은 마치 자신의 조각품에 나 있는 인체를 통과하는 큰 구멍과 같았다는 말을 남겼다. 이 기술은 런던 박물관(Museum of London)의 기록물에 남아있다. 그는 재난상황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기록했다. 당시 그가 맡은 전쟁화가라는 특수한 임무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그가 ‘현장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려 했다’는 점은 집중해 볼 가치가 있다. 작가가 맞닥뜨린 현실과 그가 만난 사람들 내면에 자리한 불안감, 현장에 맴도는 정전의 긴장감이 작가의 드로잉을 통해 현재까지도 전해져온다.

전쟁이나 재난으로 인한 참상을 기록하고, 기억하려는 움직임은 계속 있어왔다. 전쟁 속에서 비극적 상황에 몰린 군상들의 모습을 기록한 캐터 콜비츠(Kathe Kollwitz)의 판화, 2차 대전을 겪은 독일의 황폐한 땅과 전쟁으로 황폐해진 인간의 내면을 기록 하듯 대형 화폭에 옮긴 안젤름 키퍼(Anselm Kiefe)의 작업, 유대인 희생자들의 얼굴이 담긴 사진과 빛을 사용한 크리스티앙 볼탕스키(Christian Boltanski)의 설치 작품 등을 예로 들 수 있겠다. 한국에서도 전후 문학으로 불리는 박경리의 『불신시대』, 이범선의 『오발탄』 등 한국전쟁 이후 전쟁의 참혹함과 혼돈의 시대를 그려낸 수많은 문학작품이 쏟아져 나왔다. 전쟁에 관한 영화나 애니메이션, 삽화 등 문화예술 전반에서 다양한 작품들 역시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기억의 보고로써 작동하는 예술은 과거에만 한정돼 있지 않다. 현대사회에도 자연재해, 지역분쟁, 테러, 난민과 같은 우리 삶에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치는 상황들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으며, 그것을 기록하려는 예술의 시도 역시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핸리 무어(Henry Moore) 「Four Grey Sleepers」 / 핸리 무어(Henry Moore) 「Pink and Green Sleepers」 (출처 Henry Moore foundation)
대구지하철 1호선은 안심역과 설화명곡역을 연결하는 노선으로 총 32개의 역을 거쳐 대구 동부와 남부 지역을 연결하고 있다. 대구지하철 1호선은 대구역과 동대구역, 종합버스터미널을 끼고 있어 대구시민 뿐 아니라 타지역에서 대구를 방문하는 사람들도 많이 이용 하는, 대구와 타지역을 연결해주는 주요한 교통수단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노선은 대구에서 가장 먼저 생겨나 지금까지도 계속 연장되며 길게 뻗어나가는 중이다.
대구지하철 1호선의 시작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1995년 지하철 공사가 진행되던 중 인근 공사장 가스관에서 새어나온 가스 폭발로 300여명의 사상자를 낸 상인동 가스 폭발사고가 있었다. 이어 2003년 2월 중앙로 역에서 지하철 방화로 인해 350여명의 사상자를 낸 대구 지하철 참사가 있었다.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될 이 비극적인 참사는 가족을 잃은 유가족과 지인들, 생존자들뿐만 아니라 많은 시민들 가슴에 잊혀지지 않는 트라우마로 남았다. 하지만 우리에게 남은 것이 상처와 트라우마 뿐일까. 지하철은 아직도 그 자리에서 달리고 있다.
로미 아키투브(Romy Achituv), 「Memory’s Stain(기억의 흔적)」, 2014 (출저: 봉산 문화회관)
2014년, 대구 봉산문화회관에서 대구지하철참사를 기억하려는 기획전시 <기억, 반성, 비전>이 열렸다. 여러 작품들 중에서 봉산문화회관 내 유리벽면을 스테인드글라스 형식의 작품으로 채운 이스라엘 작가 로미 아키투브(Romy Achituv)3)의 작품 「Memory’s Stain(기억의 흔적)」은 참사의 기억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간직한 모두를 사려 깊게 다독인다. 어떤 이유였는지 모르나 지하철 참사 이후 10여년 동안 문화예술은 한동안 참사 앞에서 입을 다 물었다. 로미 아키투브는 바로 이 점을 지적하며, 참사 이후 재난지역 주변 어디에서도 참사를 기억하려는 움직임 혹은 기념비를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이 무척 충격적이었다 말했다. 작가는 비록 한시적인 기간일지라도 참사를 위한 기념비를 만들고자 했다. 그는 봉산문화 회관 2층의 외부로 열려있는 전시장 아트스페이스의 투명한 유리벽면 전체를 균일하게 분할된 스테인드글라스창으로 변화시켰다. 정사각의 공간을 둘러싼 높은 유리벽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그의 작품은 공간 전체가 하나의 기념비처럼 보이도록 한다. 낮에는 전시장 외부에서 들어오는 햇빛이 내부에 빛 그림자를 만들고, 해가 지면 내부의 조명이 색유리를 통과하여 외부로 뻗어나가게 했다. 분할된 창 마디마디를 채우고 있는 텍스트들은 참사 희생자의 이름과 생년월일, 나이의 조합으로,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구체적인 글자와 형상을 읽을 수 있게 하였지만 멀리서 보면 빛의 한 조각이 되어 아름답게 빛난다.

2015년, 대구지하철참사가 일어난 2003년 이후 12년 만에 중앙로 역에 참사를 추모하고 기억하는 <2.18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기억공간>이 생겼다. 지하철 1호선 개찰구 앞 약 15 평가량의 통로공간을 아카이브 공간으로 활용하였다. 참사 당시 상황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벽면, 기물들과 개찰구 중앙 기둥에 쓰여 진 사람들의 손글씨를 그대로 보존해 놓았다. 지하철을 이용해 중앙로를 오가는 사람들이 왕왕 이 공간에서 잠시 발길을 멈추고 조용히 숨을 고르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곁에 서 있는 친구의 팔을 가만히 붙잡는 사람, 생각에 잠 겨 걷는 사람, 그을음 위에 쓰여 진 손글씨를 하나하나 눈으로 확인하는 사람들이 그 곳에 있었다.

2.18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기억공간
안타깝게도 대구 지하철 사고와 참사를 기억하는 작품들을 더 많이 찾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큰 틀 안에서 대구 지하철 참사를 포함하여 한국 사회에 연속적으로 일어난 수많은 사회적 재난을 언급하고 기억하려는 움직임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혹시 지하철을 통해 만날 수 있는 문화행사나 문화공간의 소개를 기대한 독자들이 있다면 이 글은 기대를 배반한 것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문화라는 것이 단순히 어떤 행위나 행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축적되기도 하고 어딘가 흘러들어가 영향을 주기도 하는 유기적인 것이라 생각한다. 이 글에서 마치 바느질을 하듯 각각 흩어져있던 몇 개의 작품들과 에피소드를 지하철이라는 주제로 엮는 시도를 해보았다. 인간이 만들어 낸 혁신적인 발명품이 어떤 과정을 통해 우리 삶의 무대 안으로 진입하였는지. 그리고 그것이 긴 시간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해왔으며, 때때로 인간의 삶의 어떤 단면들을 드러내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했다. 앞으로의 글에서 대구지하철 2호선, 3호선을 중심으로 문화와 예술 이야기를 두 번 더 이어가려 한다. 부분부분 부족한 점이 많은 글에 대해 독자들에게 사과와 양해를 미리 구해본다.
1. 봉산문화회관 아트스페이스
: 대구 중구 봉산문화의 거리에 위치한 봉산문화회관 2층에 있는 아트스페이스는 4m 가량의 높은 천장과 4면이 내부와 외부공간으로 연결되는 유리 큐브 공간으로 매년 ‘유리상자-아트스타’라는 전시 공모를 통해 외부로 열린 공간을 실험적으로 활용하고, 공공성에 주목하는 작가들의 전시를 지원하고 있다. (대구 중구 봉산문화길 77, Tel. 053-661-3500, http://bongsanart.jung.daegu.kr/)
2. 2.18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기억공간
: 대구 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 개찰구 앞에 마련된 추모공간으로,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당시의 상황을 일부 그대로 보존하여 남기고, 상세한 설명과 자료를 더해 구성한 아카이브공간이다. 2014년 개관하여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와 함께 시민들에게 대구 지하철 참사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재난과 위험에 대비하도록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대구 중구 중앙대로 424 중앙로역, 2.18 안전문화재단 Tel. 053-745-0218, http://www.218safety.com)
3.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
: 대구 동구 팔공산에 위치한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는 각종 안전사고의 요인을 분석하고 이에 따른 실질적인 교육을 실시하여 시민들에게 안전의식과 재난대응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만들어진 체험시설이다. 대구 지하철 참사 이후 만들어진 공간으로 지하철 안전체험, 위기대응체험, 생활안전체험, 응급처치체험, 소방관 체험 5가지 체험과정을 교육소방관의 안내에 따라 체험할 수 있다. (대구 동구 팔공산로 1155 시민안전테마파크, Tel. 053-980-7777, http://www.daegu.go.kr/safe119/index.do)
4. 상인동 가스사고 피해자 위령탑
: 대구 달서구 상인역 인근에 있는 학산공원 안에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위령탑이 자리하고 있다. 사고 당시 영남중고등학교 교내에 <세심관>이라는 추모공간이 마련되었으나, 현재는 운영하고있지 않다. (대구 달서구 월성동 학산공원)
  • 1)「열차의 도착(Arrival of a Train at la ciotat, lumiere no.653)」, Auguste et Luis Lumiere, 00:01:00, 1895 (https://vimeo.com/115404270)
  • 2)핸리 무어(Hennry Moore,1898~1986) 영국의 조각가. 2차 세계대전 중 「방공호 시리즈」 드로잉을 남겼다. 인물을 유기적인 형태로 단순하면서도 생명력 있게 표현한 다수의 작품을 남겼다. 대표작으로는 「와상」1957이 있다.
  • 3)로미 아키투브(Romy Achituv) 이스라엘 출신 미디어 작가. 이스라엘에서 미술과 철학을 공부하고 뉴욕에서 미디어아트를 전공했다. 기억과 흔적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매체를 통해 외부와 소통하는 형태의 작업을 진행해 나가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이스라엘 The Ghetto Fighters House 미술관의 「The Hall of Memory」 프로젝트가 있다. (전시정보 https://www.neolook.com/archives/20140310a)